[스포츠니어스 | 수원월드컵경기장=김귀혁 기자] 수원삼성 염기훈이 결국 마지막에는 웃음을 보였다.

29일 수원삼성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FC안양과의 하나원큐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전반 16분 안병준의 선제골로 앞서 갔으나 후반 10분 상대 아코스티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연장 후반 14분 오현규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했다. 이날 결과로 수원은 1, 2차전 합계 스코어 2-1로 K리그1 생존에 성공했다.

극적이었다. 어찌 보면 수원삼성이라는 이름값을 대입한다면 자존심 상할 일이기도 했다. 수원은 올 시즌 11승 11무 16패 승점 44점으로 리그에서 10위를 기록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잔류할 수 있는 순위였지만 올해부터 승강 제도가 '1+2'로 변화했다. 최하위는 무조건 강등을 맞이하는 가운데 리그 10위와 11위는 K리그2에서 올라온 팀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잔혹한 상황에 놓인다.

특히 올 시즌 수원은 호기로웠던 시작과는 달리 제법 많은 부침을 겪었다. 시즌 시작 전 울산현대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수비수 불투이스와 함께 수원에서 과거 '축구 도사'로 불렸던 사리치, 그리고 덴마크 2부 리그 득점왕 출신인 그로닝까지 영입했다. 불투이스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사리치는 잔부상에 시달렸고 그로닝은 적응에 실패하며 고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수원 팬들에게는 마지막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염기훈이다. 염기훈은 지난 2010년부터 수원삼성에서 뛴 레전드다. 수원에 있으면서 리그 베스트11에 세 차례나 들었고 지난 2015년부터는 두 시즌 연속으로 도움왕에 오르기도 했다. 날카로운 왼발과 돌파를 통해 현재 K리그1 통산 최다 도움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 염기훈이 올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내건 목표가 있었다. 바로 '80-80(80골-80도움)' 클럽 가입이었다. 이는 K리그 최초이기도 하며 대기록까지도 단 세 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염기훈은 시즌 시작 전 그 기록을 목표로 마지막 시즌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팀 상황이 어려워지자 고령의 염기훈이 출전할 여유가 없었다. 대부분이 교체였고 이마저도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은퇴는 박수를 받으며 마무리를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축구 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전북현대의 이동국이 팀의 K리그 우승과 함께 박수받으며 팀을 떠났다. 올 시즌 은퇴한 인천의 정혁 역시 마지막 경기에 교체로 나와 활약했고 팀도 4위를 기록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은퇴식을 치렀다.

하지만 염기훈은 마지막까지 웃을 수 없었다. 목표로 했던 '80-'80'은 고사하고 팀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날도 명단에는 들지 못한 채 선수단과 함께 관중석 꼭대기에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양이 후반전 아코스티의 동점골과 함께 기세를 올리자 염기훈의 표정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옆 안양 선수단이 기대에 찬 눈빛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웃었다. 모두가 승부차기를 예상했던 연장 후반 14분에 마나부의 크로스가 올라갔다. 높게 뜬 공을 강현묵이 머리에 맞춘 뒤 오현규에게 공이 전달됐다. 이후 오현규는 수비와 한 번 경합한 뒤 재차 헤더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모두가 환호하던 그 순간 염기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관중들보다 더 격한 모습이었다. 선수들과 얼싸안으며 포옹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를 확신했다.

수원 구단은 지난 11일 염기훈의 은퇴식을 내년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단 관계자는 "내년에 더 좋은 분위기에서 은퇴식을 열어주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오현규 역시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양)상민이 형과 은퇴하는 (염)기훈이 형을 위해 뛰었다"라고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염기훈의 은퇴는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설명했듯 화려한 은퇴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극적으로 염기훈은 수원의 마지막 경기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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