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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영덕=김현회 기자] 스포츠에서 원클럽맨은 모두의 로망이다. 데뷔한 팀에서 쭉 뛰다가 그 팀에서 은퇴한다는 건 실력과 행운, 노력이 모두 갖춰져야만 이뤄질 수 있는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길을 걷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FC서울의 고요한이다. 2006년 FC서울에서 데뷔한 그는 지난 시즌까지 무려 18년 동안 이 팀에서만 353경기에 나섰다. K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는 원클럽맨이다. 그런 그가 FC서울에서의 19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경북 영덕의 FC서울 전지훈련장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고요한을 직접 만났다.

요새 어떻게 지냈나.

구단에서 휴식에 대해 많이 배려해 주셨다. 1,2차 동계훈련 때는 휴식을 주셨고 여기 3차 동계훈련부터 합류해서 몸을 만들고 있는 단계다. 지난 시즌에 고생했다고 저와 (기)성용이, 오스마르, 팔로세비치 이렇게 네 명은 1,2차 동계훈련 때 휴식을 취했다. 알아서 몸을 만들고 오라고 배려해 주셔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차 전지훈련에 합류한 이후 몸 상태는 어떤가.

쉬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고 개인 운동도 했다. 웨이트트레이닝 위주로 안 좋았던 부위를 보강했다. 내가 오른쪽 다리 근력이 수술 이후 떨어져 있었는데 그쪽 보강 훈련을 많이 했다. 이제 팀에 합류한지 보름 정도됐다. 다른 시즌보다 올 시즌에는 개막이 더 빨라 훨씬 몸 상태를 빨리 끌어 올려야 한다. 빠르게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뒤늦게 팀에 합류해 몸 상태를 끌어 올리는 게 체력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할 만한가.

이제 어린 선수들처럼 막 죽어라 뛰면서 할 나이는 아니다. 앞에서 많이 뛰면서 해야 할 역할은 어린 선수들에게 맡겨놓고 나나 성용이 같은 경우에는 이제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 체력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게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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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일) 부산과의 연습경기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했다고 들었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포항스틸러와의 맞대결 이후 한 두 달 만에 처음 경기에 나섰다. 오늘 경기에서는 90분을 다 소화했는데 70분 정도 지나니까 좀 힘이 들더라. 이제 개막이 일주일 남았으니 여기에서 체력적으로 조금만 더 끌어 올리면 된다.

평소에는 90분 경기를 기준으로 몇 분 정도가 지나면 체력적으로 힘든가.

경기마다 다르긴 한데 보통 그래도 80분까지는 할 만하다. 그러다가 마지막 10분은 정말 힘들다. 그런데 이것도 여러 변수에 따라 체력적인 문제가 다르다. 이기고 있을 때는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힘은 좀 있다. 하지만 지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도 정말 힘들다.

안익수 감독이 스파르타식으로 선수들을 지도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는 어떤가.

감독님께서는 팀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서 훈련에 적용시킨다. 공격을 할 때 수비 라인이 어떻게 움직여 줘야 하는지 등도 체계적으로 잘 이해시켜 주신다. 처음에는 조금 헷갈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켜야 될 건 확실하게 짚어주시고 배려심도 깊으시다. 무조건 강하게만 지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팅 시간은 늘 길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감독님 성향이신 것 같다. 보통 다른 감독님들은 10분에서 15분 정도 편집된 영상을 보여주면서 딱딱 짚어주시고 미팅이 길어도 20분 정도면 끝난다. 그런데 안익수 감독님은 한 장면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면서 꼼꼼하게 짚어주신다. 그래서 미팅 시간이 좀 길어지기는 했다.

안익수 감독이 선문대학교 때는 미팅만 한 번에 세 시간씩도 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런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길어지면 미팅을 50분 정도까지는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전날 이렇게 미팅을 하고 다음 날에도 또 미팅을 한다. 어제 미팅 내용에 이어지는 내용이 다음 날 준비돼 있다.

앉아서 경기 영상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그라운드에 나가 뛰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미팅은 길지만 우리 팀에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걸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건 당연히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안익수 감독님이 오시고 나서는 나도 축구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있다. 감독님의 열정적인 모습을 더 배우고 싶다.

프로 생활 19년차다. 이제는 감독이 영상으로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아도 다 알 나이 아닌가. ‘굳이 이렇게까지 미팅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축구라는 게 답이 없다. 매번 경기에 나가도 똑같은 상황은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 상황 상황이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가 자신의 판단만으로 그라운드에서 선택하는 게 다 맞다고 볼 수는 없다. 경험이 쌓이면 그래도 그 경험에 비추어 판단력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내가 그라운드에서 못 봤던 부분을 영상을 통해 지도자가 한 번 짚어준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장면에서 “이렇게 하면 더 좋은 패스가 나오지 않았겠어?” “이렇게 하면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았겠어?”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시면 나도 몰랐던 부분을 깨달을 때가 있다.

지난 시즌 FC서울은 우여곡절도 있었고 위태로운 시기도 있었다. 한 시즌을 돌이켜 보면 어떤가.

많이 아쉬웠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동계훈련을 할 때는 컨디션이 좋아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기대했었다. 그런데 지난 시즌 동계훈련 마지막 연습경기에서 내가 허리 쪽에 골절을 당하면서 석 달을 쉬게 됐다. 그리고 힘겹게 복귀했는데 울산전에서 김태환 선수에게 차이면서 왼쪽 무릎 내측 인대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다시 석 달을 쉬고 7월에 복귀할 수 있었다. 부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힘들었다. 팀도 성적이 좋지 않아서 더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팀은 가까스로 K리그1 생존에 성공했다. 시즌 막판에는 매 경기가 전쟁이었다.

정말 까딱하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우리가 강등 위기를 몸으로 겪었다. 내가 골을 넣은 경기여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정말 지난 시즌 광주와의 11월에 열린 그 경기에서 졌으면 진짜 까딱할 뻔했다. 그날 우리가 극적인 승부 끝에 4-3으로 이겼다. 모든 경기가 불안했지만 사실 그 경기가 정말 가장 불안했다. 경기를 준비하면서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 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컸다.

지난 시즌 막판 FC서울은 감독을 교체하면서 더 비장해졌다.

파이널A보다 파이널B가 더 힘들다. 파이널A는 이기면 좋은 성과가 있고 지면 사실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 파이널B는 조그마한 실수 하나로 강등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어마어마하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지만 2018년에는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경험했다. 그때 우리가 정규리그에서 한 번의 무승부만 더 했어도 플레이오프까지 가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1무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파이널B에서 승점 1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 때문에 지난 시즌에도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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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SNS에 딸이 한복을 입고 그네를 타는 사진과 함께 ‘우리 거야’라는 글을 올렸다. 한복을 중국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했다. 맞나.

그렇다. 사실 다른 것도 많이 올리고 싶었다. 요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을 보면서 같은 스포츠인으로서 판정이 이래도 되나 싶다. 그 선수들은 4년, 아니 평생 그 한 장면을 위해 운동을 해온 선수들이다. 나도 그걸 잘 안다. 4년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 선수 생활하는 내내 그 순간을 위해 해온 이들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순간에서 잘못된 판정으로 인해 한 사람의 꿈이 물거품이 된다는 게 너무 화가났다. SNS에 이 분노를 그대로 표출할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러면 또 그게 확대 재생산될까봐 참았다. 티는 많이 못 내지만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나간 한국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한복과 관련된 게시글을 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견 표현은 그 정도다. 뉴스를 보고 화가 나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한복을 입고 그네를 타고 있는 사진이 한 장 있어서 올렸다. 사회적인 문제도 뉴스에 나오면 찾아보는 편인데 표현은 잘 안 하려고 한다. 이슈에 의견을 냈다가 다른 이슈로 번질 수도 있어서 참고 있다. 하지만 한복 문제는 화가 나서 글을 올렸다.

전지훈련지에서 동계 올림픽을 열심히 찾아보는 것 같다.

그렇다. 딱 경기가 우리 저녁식사 후에 열리더라. 그래서 치료실에서 선수들과 마사지를 받으며 보고 있다. 선수들하고 이상한 판정이 나올 때마다 “저게 말이 돼?”라며 열심히 응원 중이다.

앞서 지난 해 부상 상황에 대해 김태환에 대해 언급해서 하나 물어보겠다. K리그에서 가장 거친 선수로 김태환과 김진수, 그리고 당신이 같이 묶일 때가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잘 모르겠다. 나도 상대방과 자주 부딪히는 성격이다. 스포츠인으로서 지고 살 수는 없다. 승부욕도 강하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해코지를 한다거나 상대 선수의 발목, 무릎을 향해 태클을 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특정 선수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이건 누구와의 비교를 떠나 팬들의 눈에 내가 그렇게 비춰진다면 앞으로는 경기장에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셋 중에 누가 더 거친지 비교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나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팬들에게 그렇게 거론된 것 자체로도 앞으로는 더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부상을 여러 번 당하니까 예민해지는 것도 있다.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깊게 들어오면 예전에는 그냥 피하고 말았는데 요즘에는 그런 태클이 들어오면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나이도 있어서 부상을 당하면 회복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좀 더 예민한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직업으로 효도르의 경호원과 당신의 에이전트가 꼽혔다. 당신은 K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원클럽맨이다. 심지어 군대도 가지 않아 아주 빡빡한 기준으로 꼽아도 몇 손 안에 드는 원클럽맨이다. 이적을 하지 않으니 에이전트가 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에이전트가 없다. 에이전트 없이 지낸 게 5년은 된 것 같다. 어린 선수들은 에이전트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나는 딱히 에이전트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당시 내가 일부러 ‘나는 원클럽맨이 될 거니까 에이전트가 필요없어’라면서 에이전트와 계약을 끝낸 게 아니다. 그냥 여차저차 하다보니 상황이 이렇게 됐다. 최근에는 딱히 에이전트가 할 일이 없다보니 그냥 에이전트 없이 지내고 있다.

구단과 재계약 협상 등에 임할 때는 어떻게 하나.

구단에서 협상을 할 때 물어본다. “에이전트가 있으면 연락처를 알려줘. 그러면 에이전트 통해서 협상을 할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에이전트가 없으니 저하고 소통하시죠”라고 한다. 그래서 몇 번 협상에 임해봤더니 할만 하더라. 한 번 경험하고 나니까 그냥 내가 하게 됐다. 재계약을 할 때 구단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도 협상이라는 건 자신의 성과를 어필하면서 더 좋은 조건을 끌어내는 어려운 작업 아닌가.

몇몇 에이전트들은 해당 선수들이 한 시즌 동안 몇 경기에 나섰는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일목요연하게 자료를 뽑아서 협상을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자료 정리는 부족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협상에 임한다. 원클럽맨이다보니 나도 그렇고 구단도 그렇고 서로 조심스럽다. 내가 막 과한 조건을 내세우기도 그렇고 구단에서도 막 조건을 깎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서로 더 좋은 방향으로 계약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수월하게 재계약을 맺었다.

당신은 앞으로도 에이전트를 선임할 일이 없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그렇다. 이제 이 나이에 축구를 그만뒀으면 그만뒀지 팀을 옮기겠다고 에이전트를 선임할 일이 있을까. 뭐 혹시라도 구단이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지 않아 갑자기 틀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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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역사상 상무에도 입대한 적이 없는 원클럽맨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김광석 형님이 계셨는데 인천으로 옮겼고 신태용 감독님이 현역 때 원클럽맨으로 활약한 걸로 기억한다. 내가 지금 신태용 감독의 그 어마어마한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신태용 감독님이 현역 시절 한 팀에서 무려 400경기를 넘게 뛰셨다. 그걸 꼭 한 번 깨보고 싶다.

굉장히 팍팍한 기준으로 따지고 보면 신태용 감독도 원클럽맨은 아니다. K리그를 떠난 뒤 호주에서 잠깐, 아주 잠깐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그래도 K리그에서만 놓고 본다면 신태용 감독님을 넘어서는 원클럽맨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내가 신태용 감독의 기록을 넘어서는 원클럽맨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현재까지 FC서울의 원클럽맨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19년 전에 FC서울에 입단해 지금까지 뛰면서 모든 역사와 함께 했다. 지금 어린 선수들이 FC서울에 느끼는 자부심 그 이상으로 나에게는 이 팀에 있어서 느끼는 자부심이 크다. 리그 순위가 낮은데도 선수들이 뭔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원클럽맨으로서 오랜 시간 한 팀에서 뛸 수 있는 비결은 뭔가. 누군가는 ‘너무 잘해서도 안 되고 너무 못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에도 동의한다. 아마 여기에서 더 잘했으면 유럽으로 갔을 수도 있고 더 못했으면 일찍 팀을 떠나야 했을 수도 있다. 또한 나는 늘 빛나는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주연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 역할을 해왔다. 그런 꾸준함이 한 팀에서 오래 뛸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것 같다. 또한 감독님이 새롭게 바뀔 때마다 ‘이 선수는 꼭 있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헌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나도 한두 번 정도는 이적 이야기가 나왔던 적도 있다.

그게 언제였나.

과거에 중동에서의 이적 제안이 있었다. 에이전트를 통해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나는 꼭 해외로 나가기 위해 구단과 치열하게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해외로 갈 운명이면 가는 거고 여기 있어도 그 자체로 행복하니까 물 흐르는 대로 맡겼다. 그 팀이 카타르였다.

아마 그때 카타르로 갔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

금전적으로는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를 그만두고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고 할 때 FC서울을 떠난 걸 아쉬웠던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전혀 후회는 없다.

당신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2-0 승리 때 출장한 선수였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입었던 유니폼을 쿨하게 관중석으로 던져줘 화제가 됐다. 평생 기억에 남을 유니폼을 관중석에 던져주고 나서는 후회하지 않았나.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주위에서 “미쳤냐. 독일전 그 실착 유니폼을 네가 보관해야지 그걸 왜 던져주느냐”고 하더라. 사실 경기 때마다 유니폼이 두 벌이 나온다. 전반전용이 하나가 나오고 후반전용이 하나가 더 있다. 그런데 그날 경기가 끝난 뒤 FC서울 유니폼을 입을 관중을 발견하고는 내가 입고 있던 유니폼을 던져줬다. FC서울 유니폼을 보고 내가 순간적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이라고 착각을 한 모양이다.

지금도 후회는 없나.

거기에서 FC서울 유니폼을 보니까 반가웠다. 후회는 별로 없다. 독일전 유니폼이 한 벌 더 있으니까 괜찮다. 그 유니폼은 선수들의 사인을 다 받아서 집에 잘 보관하고 있다.

독일전은 선수 생활 내내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될 것 같다.

물론이다. 솔직히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축구선수는 누구나 월드컵에 서는 게 꿈인데 나는 월드컵 첫 경기가 독일전이었고 그 경기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다. 너무나도 행복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 경기에서 대패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뛴 경기에서 이겼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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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나. 새로운 선수들과의 호흡은 어떤가.

일단 기존 외국인 선수인 오스마르나 팔로세비치는 워낙 좋은 선수들이고 지난 시즌에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여기에 히카르도 실바는 아직 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몸만 잘 만들면 금방 적응할 것 같다. 성실하고 배울 준비가 돼 있더라. 아직 벤은 부상이 있어서 운동을 같이 못하고 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나도 궁금하다.

당신 스스로는 올 시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신태용 감독님이 한 팀에서 세운 401경기 출장 기록에 도전해보고 싶다. 신경도 꽤 쓰고 있다. 내가 현재 K리그에서 FC서울 소속으로만 353경기에 나갔다. 부상으로 쉰 기간만 다 합치면 1년 반에서 2년 정도가 된다. 그 기간 동안 1년에 25경기씩만 뛰었어도 벌써 50경기다. 그러면 신태용 감독님 기록에 도달했을 텐데 앞으로 그 기록을 깨려면 50경기는 더 해야한다.

정말 K리그 역사에 남을 대기록이다.

신태용 감독님의 아들인 (신)재원이한테도 많이 이야기했다. “내가 너희 아버님 기록 깰 거니까 마음의 준비해”라고 하면 재원이도 “형, 깰 수 있어요”라고 하더라. 내가 그 기록을 정말로 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클럽맨으로서 달려온 역사를 뒤돌아보면 후회없이 한 번은 도전해보고 싶다.

부상 없이 2년 정도 뛰면 가능할 것 같다.

나도 노력해야겠지만 구단에서도 나에게 기회를 줘야한다. 그때까지 내 몸이 완벽하다면 기록을 깰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느 정도 구단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까.

미우라처럼 길게 선수 생활을 할 생각은 안 해봤나.

사람은 내려올 땐 확실히 내려와야 한다.

올 시즌에는 어떤 각오로 임하고 싶은가.

작년 후반기에 우리가 보여줬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자만하지 않고 더 갈고 닦아야 한다. 첫 경기부터 좋은 결과를 내야 한 시즌을 잘 소화할 수 있다. FA컵 우승컵 정도는 들고 싶다.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인 것처럼 나도 ACL에 나가서 우승컵을 들어보고 싶다. 다른 우승컵은 다 들어봤는데 ACL 우승컵은 들어보지 못했다. 정말 따내기 너무 어려운 우승컵이라서 은퇴하기 전에는 한 번 그 컵을 들어보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신태용 감독이 세운 한 구단에서의 최다 출장 기록에도 도전하고 있지만 이 목표 외에도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내가 지금 서른 다섯이다. 처음에는 프로 무대에서 20년을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올해로 19년째에 임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조금 더 욕심이 난다. 내가 월드컵 때 입었던 유니폼의 등번호가 22번이었다. 그 의미를 더해 프로에서 22년을 채우고 싶다. 그러면 아마 신태용 감독님 기록도 깰 수 있지 않을까. 22년을 채우면서 우승컵을 한 번 들고 딱 신태용 감독님 기록을 깨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요한은 K리그 역사상 손에 꼽히는 원클럽맨이다. 그는 신태용 감독이 세웠던 대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2006년 FC서울에 입단해 19년 동안 한 팀에서만 무려 353경기에 나선 이 살아있는 전설은 올 시즌에도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빌 예정이다. 그가 나서는 경기 하나하나가 역사다. 고요한은 지금 FC서울의 역사는 물론이고 K리그의 새로운 역사에도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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