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남해=김귀혁 기자] 지난 시즌 FC안양은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며 승격 문턱까지 갔다. 그전 시즌 순위(9위)를 생각하면 분명 만족할 만한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더 짙었다.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대전하나시티즌에 일격을 당했다. 코앞에 있던 승격이었으나 정작 중요한 순간에 패배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8부 능선 앞에 멈췄으니 뼈아플만했다.

이에 FC안양은 칼을 빼들었다. 지난 시즌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만 3명의 선수를 배출했음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기존 자원인 조나탄 모야와 백동규의 완전 영입에 성공한 가운데 준척급 선수도 다수 영입했다. 연제민을 비롯해 황기욱, 백성동 등 알찬 보강을 이뤄냈다. 그리고 K리그1에서 성남FC의 잔류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이창용을 영입하며 방점을 찍었다. 1부 리그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선수가 왜 2부 리그를 선택한걸까. 그 해답을 듣기 위해 <스포츠니어스>는 FC안양의 전지훈련지에서 이창용과 만났다.

올 시즌 새로 팀에 합류했습니다. 전지훈련 분위기부터 새로운 팀에 왔음을 실감할 것 같은데요.

성남하고 비교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훈련 프로그램은 여기가 많은 느낌입니다. 하루에 두 번씩 스케줄이 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선수들 부상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가끔은 훈련량을 조절해 주시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성남은 K리그1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팀이잖아요. 거기에 맞춰서 좀 빡빡하게 간 느낌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여기에서는 그런 부분이 덜 하죠. 그런데 막상 훈련할 때는 안양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성남은 전술 훈련 위주로 많이 했거든요. 반면에 안양에서는 그 전술을 게임 식으로 많이 해서 선수끼리 몸을 맞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남이 K리그1에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양으로 이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선수는 1부에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성남에서 성적이 좋든 안 좋든 저와 가족들은 이미 여기에 적응이 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성남에 남을 생각이 더 컸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K리그1 팀에서도 연락이 오면서 조율을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FC안양에서 제안이 들어왔어요. 다른 팀과 조율하고 있을 때 안양은 제가 만족할 만한 제안을 한 번에 해주시더라고요. 소위 말해 '밀당'이 없었습니다.

이후에 이우형 감독님과 통화까지 하면서 일이 진행됐습니다. 사실 감독님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어요. 원래 감독님이 잘 아는 선수를 데려오기 마련이잖아요. 서로 어느 정도의 리스크가 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지금 안양의 류병훈 수석 코치님과 최익형 골키퍼 코치님이 제가 아산무궁화에 있을 때 계시던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이야기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안양에 왔을 때 팀 분위기는 어땠나요?

저에게는 신선했습니다. 팀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고참들하고 코치 선생님들이 다 같이 모여서 대화를 나눴거든요. 축구 관련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그냥 한 방에서 치킨 먹으면서 장난도 치는 분위기였습니다. 조금 신기하더라고요. 그 자리를 통해서 어색함이 많이 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나눴던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나요?

(백)성동이 이적 과정을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동계훈련 중에 감독님께서 갑자기 운동하고 있는 (김)경중이에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중아 큰일났다. (백)성동이가 전화를 안 받는다"라고 하신게 너무 웃겼습니다. 그때가 성동이 이적이 거의 마무리되던 시점이었죠. 그래서 경중이가 본인이 전화 하겠다고 했는데 그때도 안 받았다고 해요. 그러다가 새벽에 성동이로부터 답변이 왔나 봐요. 그러면서 감독님하고 코칭 스태프 선생님들이 "됐다" 이러면서 안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성동이가 옆에서 듣고 있는데 너무 웃기더라고요. 반응도 못하고 푹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이창용 선수는 안양에 원래 알던 선수가 좀 있었나요?

(주)현우! 사실 처음에는 그냥 K리그1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현우가 맨날 전화와서 안양에 오라고 하더군요. 여기는 승격할 수 있는 팀이니까 한 번 해보자고 계속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세뇌를 당한 것 같아요. 사실 성동이도 경중이한테 그런 식으로 영업을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안양의 좋은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던가요?

그런 이야기는 크게 없었어요. 체력단련장 하나는 좋다고 했습니다. 감독님도 처음에 왔을 때 여기 오면 환경은 안 좋을 거라고 미리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집은 성남에 있다가 안양으로 이사를 하셨겠군요.

아직 짐을 못 뺐어요. 일단은 출퇴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금 집이 나가면 안양으로 이사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중앙 수비부터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실 수 있잖아요. 이창용 선수는 안양에 와서 어떤 포지션을 소화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항상 중앙 수비에 섰을 때가 잘 됐던 것 같아요. 물론 중앙 수비수로서 치명적인 단점인 신장이 있긴 하죠. 감독님들 입장에서는 저를 기용하는 게 어찌 보면 위험성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감독님들은 그런 거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박동혁 감독님하고 남기일 감독님도 그랬고요. 김남일 감독님은 조금 주신 것 같긴 한데··· 그러면서도 출전 기회는 많이 주셨죠.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는 많이 뛰어야 하고 공을 예쁘게 차야 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공격을 전개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냥 몸 싸움하면서 부딪히라고 하는 것들은 할 수 있겠거든요. 그런데 전개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우형 감독님은 요즘 연습경기 때 주로 어디로 뛰게 하시나요?

전반은 수비수로 기용하고 후반에는 미드필더로 올려서 기용하시더라고요. 사실 수비 호흡은 앞으로도 많이 맞춰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5일) 대구FC과 연습 경기가 프로와는 첫 경기였거든요.

오늘 날씨가 추운 가운데 경기를 했습니다. 선수단 자체도 부상에 대한 염려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이 부상에 엄청 예민하세요. 그리고 오늘 운동장이 너무 딱딱하더라고요. 바닥도 거의 흙 수준이었습니다. 대구 선수들도 거기에서 훈련을 주로 한다고 들었거든요. 초반에 부상자가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오늘은 운동장을 밟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를 하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여기에서 다치면 너무 손해잖아요. 그런 식으로 조심하면서 경기를 했습니다.

경기를 보니까 대구와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더라고요.

세징야가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죠. 오늘은 세징야가 안 나왔습니다. 성남에 있을 때도 항상 저에게 세징야를 맡으라는 주문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세징야가 저보다 몇 수는 높더라고요. 제가 압박을 하러 들어가면 반대로 돌아서 가거나 그 압박을 이겨버립니다.

사실 K리그2에는 오랜 만에 오셨습니다. 안양 내에서는 어떤 선수가 위협적이던가요?

아코스티가 공을 잘 차더라고요. 실제로 여러 구단하고 아코스티를 놓고 경쟁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코스티는 수도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고 해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한국 예의도 엄청 잘 배워놨어요. 정말 젠틀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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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 이야기가 나와서 여쭤봅니다. 부천FC1995는 설날에 닐손주니어의 주도 하에 외국인 선수들이 세배를 했다고 들었어요. 안양 구단은 설날에 어떻게 보냈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운동이 두 번 있었어요. 그래서 오전에 한 번 하고 오후에 나갈 준비를 하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1층에서 돈 만 원씩 들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보니까 팀을 짜서 윷놀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또 나름의 규칙이 있었어요. 우리는 외래어를 쓰면 안 되는 훈민정음 윷놀이였습니다. 반대로 아코스티와 조나탄은 한국말 대신 영어만 써야 했어요.

누가 제일 속임수를 잘 쓰던가요? 소위 '타짜'라 불리는 선수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희 팀은 2등을 했거든요. 그런데 1등 한 팀에서 (김)동진이가 참 얄밉게 하더라고요. 윷을 던질 때 그냥 던지든가 해야 하잖아요. 약간 살포시 내려놓는 식으로 해서 윷을 던지더라고요. 어쨌든 서로 딴 돈으로 편의점에서 작은 회식을 즐겼습니다.

사실 작년 일이긴 합니다만 궁금해서 질문합니다. 개인 SNS에 제주도 '연돈'에 갔던 사진을 게시했더라고요. 대기가 길어서 가기 어려운 곳인데 어떻게 해서 가게 된거에요?

그때는 전 날에 가서 다음날 예약을 했던 시스템이었습니다. 후배와 같이 가서 서로 한 테이블씩 잡기로 했어요. 다들 고생하니까 좋은 추억을 남기고자 그랬던 거죠. 그래서 그때 (안)영규형하고 후배들에게 밥을 사줬습니다. 사실 먹고 나면 사준 사람 성의가 있으니 맛있다고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별거 없네"이러더라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튀김옷이 조금 달랐어요. 입천장이 찔릴 듯한 바삭함이 있더라고요. 카레도 맛있었습니다. 저는 맛을 떠나서 그런 돈가스는 처음이었어요.

가족들 생각도 많이 났겠습니다.

아내가 따로 뭐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못 갔어요. 그때 울산에서 성남으로 트레이드가 됐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성남의 팀 스케줄에 맞춰야 했던 거죠. 아내와 만났던 과정도 참 재밌습니다. 11월 정도에 집안 어르신들이 주선을 해줘서 만났거든요. 교회에서 소개해 준 거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내를 처음 만나서 "길게 끌고 싶지 않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결혼 이야기를 꺼냈죠. 그 다음 주에 두 번째 만날 때는 바로 상견례를 했습니다. 이후 세 번째 만날 때는 웨딩 촬영을 했어요. 이후에 4주 차 때 결혼까지 속전속결로 진행했어요.

와··· 주변 반응이 어땠어요?

당시 지금의 형님이신 아내의 오빠가 상견례 자리에 안 나오셨습니다. 너무 빨라서 어이가 없으셨던 거죠. 주변 동료들도 그때는 '사실 창용이가 여자친구가 있었구나'라는 반응이었습니다. 항상 없다고 말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는 미친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울산에 있던 (이)근호 형이나 (김)용대형도 "적어도 계절은 한 번 지나봐야 되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워낙 빨리 결혼하다 보니까 속도위반 아니냐고도 말하더라고요.

아내는 그때를 회상하면 뭐라고 하던가요?

아내가 결혼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결혼식장을 갑자기 잡아야 했거든요. 제 고향이 광주인데 지방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결혼식장이 잡히긴 하더라고요. 그렇게 식장을 잡으려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났으니까 교회에서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 했던 거죠. 그런데 사실 사진을 찍어도 화려한 조명에서 찍어야 잘 나오잖아요. 그런데 교회는 안 이쁘게 나오더라고요. 그것만 조금 후회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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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개인 SNS 이야기입니다. '피파온라인4'에서 이창용 선수 본인의 카드를 글로 올려놨더라고요. 어떤 배경에서 올린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한건 아니고 팬들이 제 카드를 만들어서 DM으로 보내주셨더라고요. 제 8카를 만들어 주신 거니까 너무 감사해서 올린 거죠. 또 능력치가 100 이상을 상회했습니다. 보통 월드 클래스 선수들의 능력치가 그렇잖아요. 게임에서 내가 '월클'이 된다는 게 좋아서 올린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피파온라인4'를 즐겨하시나요?

아니요. 대신에 롤이나 스타크래프트는 가끔 합니다.

스타크래프트를 먼저 물어보겠습니다. 주 종목이 뭔가요?

저그요. 이제동 선수 플레이를 많이 참고합니다.

롤은 어느 정도로 하시는건가요?

우선 포지션은 정글로 많이 다닙니다. 거기에 캐릭터는 암살자 위주로 플레이하는 것 같아요. 최고 티어는 골드 정도입니다.

제가 별걸 다 물어보네요.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울산현대에서 아산무궁화로 갔다가 성남FC를 거쳐 FC안양으로 오셨습니다. K리그1과 K리그2를 왔다 갔다 하시면서 다른 점도 느꼈을 것 같습니다.

K리그1은 기술점으로 좀 더 정교해야 합니다. 울산에서는 특히 잘해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K리그2는 반대로 잘 뛰어야 합니다. 서로 실수하는 과정에서 그 틈을 노리는 거죠. 그래서 처음 안양에 왔을 때도 잘 하자는 다짐은 안 했어요. 반대로 팀을 위해 희생하고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다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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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경찰청 소속으로서 아산무궁화에서 하셨는데요. 상무로 가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가 프로에 처음 왔던 2013년도에 강원FC의 김학범 감독님이 자유 계약으로 저를 뽑아주셨습니다. 당시 자유 계약은 한 팀에 한 명만 뽑는 거였거든요. 엄청 의미 있었던 거죠. 이후에 신인들 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당시에 안익수 부산아이파크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말하더라고요.

"여기 프로는 정글입니다.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퇴보되고 사라집니다. 여기서 호랑이들은 먹고 싶은 거 먹고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토끼들은 항상 주눅 들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요. 그런데 그때 딱 자유 계약으로 뽑혔던 시기였으니까 얼마나 자신감 있었겠어요. 그래서 나는 호랑이라고 다짐을 했죠. 그러다가 6개월이 되니까 축구하는 게 무섭더라고요. 아침에 눈 뜨면 축구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셨나요?

프로에는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대학교 때는 착각이었지만 제가 제일 잘했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여기 오니까 그 벽에 부딪힌 겁니다. 그래서 그때 강원과 5년 계약을 했었거든요. 잘 되면 5년을 다 채우고 그만두던가 중간에 나갈 생각까지 했어요. 그러다가 울산으로 트레이드가 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호랑이 뿐만 아니라 용까지 있었죠. 국가대표 선수들과 있다 보니까 거기에서 제 축구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어요. 땅이나 아파트, 달러 투자, 금 투자 등을 공부하면서 세미나 들으러 다니고 그랬죠. 왜냐하면 축구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남은 기간은 축구로 돈을 벌면서 다른 쪽으로 길을 터놓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희한하게 경기는 조금씩 계속 나왔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주눅이 들었던 거죠. 공이 오면 무서워서 빨리 주기 바쁜 선수였습니다. 그런 선수였으니 상무는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시즌 중반에 경찰청에서 공문이 나왔습니다. 원래 뽑는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서 갑작스러웠죠. 그런데 중간에 뽑는 경우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이 못 갑니다. 시즌 중반에 빠지면 그 팀에서 손해니까 안 놔주려 하거든요. 그래서 곧바로 윤정환 감독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계속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서 결국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군 복무만큼은 축구로 해결하고 제 2의 인생을 살자라고 다짐을 했어요.

윤정환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던 건 그래도 이창용 선수에 기대감이 있어서 그랬던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평가할 때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그러면 아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당시 안산에(아산무궁화 이전 안산무궁화 시절) 가서 박동혁 감독님을 만났죠. 제가 처음 프로에 들어왔을 때 울산에서 선수셨거든요. 이후에 군대 갈 때쯤에는 막내 코치로 들어오셨어요. 그러다가 제가 경찰청에 간다고 하니까 감독님도 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안산에 갔더니 진짜 수석코치로 오셨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멤버들이 엄청 좋았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박동혁 당시 수석코치님이 계속 저에게 신뢰를 주셨어요. 처음에는 자신감도 많이 없었으니 의아했죠. 왜냐하면 그때 저보다 잘 하는 선수들도 많았거든요. 이후에 감독이 됐는데 저에게 주장직을 줬습니다. 그러고 나서 경기를 계속 뛰니가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번에 충남아산을 만날 때 참 기분이 묘하겠네요.

저는 언젠가 다시 박동혁 감독님을 만나는 것이 꿈입니다. 지금은 상대 팀으로 만났지만 같은 팀으로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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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한 뒤 울산에 갔을 때는 처음 울산 시절에 비해서 마음가짐이 달랐겠군요.

그렇죠. 원래는 저를 토끼로 생각하고 훈련했거든요. 그러다가 제대하고 나서는 '나는 호랑이다'라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습니다. 저는 똑같았는데 생각이 달랐던 거죠.

그러다가 성남으로 가게 됐습니다. 성남에서도 그 자신감이 그대로 있었을 것 같은데요.

성남에서는 남기일 감독님이 믿음을 많이 주셨습니다. 여러 감독님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다 있거든요. 그때 남기일 감독님에게는 K리그1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기존의 관념과는 거꾸로 가르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수비수인데 치고 달리라고 지시하셨어요. 제가 아는 수비는 공을 잡고 빨리 연결하면서 실점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게 잘 안됐습니다. 공격수가 내 앞에 있는데 뺏기면 바로 실점인 거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실점해도 괜찮으니까 계속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나중이 되니까 공격수가 압박을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더라고요.

아까 언급하시길 예전에는 가까운 동료에게 패스하기 바빴다고 하셨습니다. 엄청나게 달라진 거군요.

그때는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걸 못하면 또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가르쳐준 대로 한 번 해보자'라고요. 그리고 사실 성남이 K리그1에서 계속 잔류 싸움을 해야 하는 팀이었잖아요. 그 안에서 계속 경기를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남기일 감독님의 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투자를 공부하던 아들이 다시 축구에 전념하는 모습에 기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예전에는 항상 저를 토끼라고만 생각했거든요. 반대로 저를 호랑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감 있게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토끼 시절에는 제가 뭘 하지 말고 빨리 우리 팀 선수에게 볼을 넘겨줘야 하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되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K리그에는 '김남일 페로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창용 선수도 그 페로몬을 느껴보셨나요?

당시에 코로나19가 없던 시기라서 태국에 전지훈련 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1년 차였다 보니까 감독님만의 전술을 입히는데 여념이 없었죠. 그런데 그때 와이프가 첫째를 출산했습니다. 정경호 코치님은 당시에 "창용아 나도 딸 둘이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지금은 열심히 박차를 가해야 될 때니까 이해해 줘라"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갔다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비행기 타고 가서 아이 보고 바로 왔습니다. 확실히 선수들의 마음을 사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믿음도 많이 주시고요.

최근에 둘째도 출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가셨나요?

그때는 또 자가격리 중이었습니다. 작년에 성남이 자가격리를 두 번 했거든요. 하필 출산 날에 격리를 하고 있던 거죠. 그래서 첫째하고 둘째 다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죠.

마지막으로 안양에 처음 온 각오를 듣고 싶습니다.

사실 이런 게 제일 어렵습니다. 일단 목표는 무조건 승격이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인터뷰 보니까 모든 팀들이 승격을 외치고 있더라고요. 다 승격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팬분들이 듣기에는 조금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저는 그러면 승격은 2순위고 우승을 1순위로 하겠습니다. 우승하면 자연스레 승격이 따라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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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기사로 옮기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글로 담기에는 작문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사실 인터뷰 과정에서 보여준 유쾌함도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그 정도로 이창용은 쾌활했다. 승격이라는 흔한 목표마저도 평범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웃음이 FC안양이 바라는 시즌 후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안양과 이창용은 전지훈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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