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남해=김귀혁 기자] 축구에는 경기 외에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팀으로서는 지역 더비 경기로 훨씬 치열해질 수 있고 선수는 친정팀을 만나 더욱 전의를 불태울 수 있다. 물론 평소 친했던 친구와 상대편으로 붙었을 때의 묘한 감정도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피를 나눈 혈육과 상대편으로 맞붙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올 시즌 처음으로 K리그2에 합류한 김포FC는 개막전 상대로 K리그1에서 내려온 광주FC와 맞붙는다. 처음 프로에 들어온 팀이 지난 시즌까지 K리그1에서 경쟁하던 팀과 맞붙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매치업에 과연 이 선수만큼 흥분되는 사람이 있을까. 올 시즌 김포에 합류한 김종석은 광주와의 경기를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광주의 미드필더이자 한 살 터울 형인 김종우 때문이다. <스포츠니어스>는 색다른 개막전을 준비 중인 김종석을 만나봤다.

전지훈련지 돌아다니면서 항상 하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많이 힘들죠?

사실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엄청 힘들어요. 그런데 그 힘든 만큼 작년에 김포가 성적을 낸 거잖아요. 그런 발전한 모습들이 제가 지난 시즌 상대 선수로 봤을 때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들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고정운 감독님 스타일이 꽤나 힘들기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만나 뵙게 된 것인데 어떠신가요?

김포에 오기 전에도 주변에서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너 버틸 수 있겠냐' 이런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감독님도 그 소문이 다 사실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힘들기는 합니다. 그래도 운동선수로서는 그런 것들이 당연한 거죠. 그리고 이것을 이겨내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즌 천안시축구단에 계셨잖아요. 그리고 그 팀과 막판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했던 것이 김포FC였습니다. 그리고 그 팀에 오게 된 건데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주변 천안 친구들에게는 장난식으로 욕 많이 먹었죠. 배신자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포가 K리그2로 올라간 부분에서 선택이 이뤄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팀이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팀에 새로운 선수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훈련 분위기가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초반에는 정말 새로운 팀 같았습니다. 기존 선수들보다 새로운 선수들이 더 많아서 꽤나 조용했죠. 그래도 지금은 훈련하면서 많이 친해졌습니다. 분위기 자체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겨울 전지훈련지에 가면 서로 마음을 다지는 의미로 산에 가곤 합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에 가면 한라산에 많이 가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아까 저 멀리 보이는 보리암을 손짓하셨는데 혹시 갔다 오셨나요?

엄청 초반에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동안 있던 팀들에서도 항상 산을 갔었거든요. 아마 감독님들이 다들 산을 좋아하시는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시즌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천안시축구단으로 이적해서 팀이 역사상 첫 정규리그 1위를 했잖아요. 그 과정에서 좋은 활약을 했는데 시즌 전에 자신감이 있었나요?

사실 천안에 들어가기 전에 좀 큰 부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축구를 못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갔었죠. 그때 김태영 감독님이 손을 내밀어주셔서 가게 된 겁니다. 처음 감독님 뵀을 때도 목표로 K3리그 득점왕을 할 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감독님도 도와주시겠다고 했는데 초반에 부진이 엄청 심했어요. 제 경기력도 안 나오고 슬럼프에 빠진 느낌을 받았죠. 전반기 마지막 경기가 되서야 그때 첫 골을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후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죠. 그런데 이게 저 혼자의 힘으로 이뤄낸 건 아니었습니다. 천안시축구단 자체가 가족 같은 분위기의 팀이거든요. 그래서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주면서 지난 시즌을 보낸 것 같습니다.

천안에 있기 전에 평택시티즌FC에 있었잖아요. 그때와 비교해서 공격포인트가 꽤나 늘어난 모습이었습니다. 천안에 들어갔을 때도 득점왕이 목표라고 말씀해주셨고요. 그런 목표를 가지는데 특별히 몸 상태나 마음가짐에 자신이 있었던 건가요?

사실 대학교 때까지는 공격형 미드필더나 공격수 위치에서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인팀에 가서는 용병과 경쟁도 해야 했거든요. 그런 부분 때문에 본 포지션이 아닌 미드필더 위치에 많이 섰습니다. 그러다가 평택에서 골도 넣으면서 K3리그 무대를 경험하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천안에 가서도 충분히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목표로 잡은 것 같습니다.

전반기와 후반기의 모습이 180도 변화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계기가 있었나요?

전반기에 조그마한 부상이 한 번 왔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요. 우선 쉬면서 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후에 다시 팀에 복귀할 때 마음가짐을 잘 잡을 수 있더라고요. 이후에 한 두 골이 터지니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상이 마음을 잡는 데 있어서는 더 좋았던 거죠.

부상 중에 어떤 특별한 마음가짐을 가졌던 건가요?

절박함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들게 노력해서 천안에 왔는데 여기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식으로 축구를 하면 다음 연도부터 계속 축구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들 카페 가는 시간에 훈련을 조금 더 열심해했던 것 같아요. 부상 중에도 재활하러 열심히 다녔고 이후에도 기본적인 슈팅 연습을 따로 했습니다. 그렇게 축구에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을 보냈던거죠.

결국 후반기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선보이면서 3관왕(득점왕-베스트11-최우수선수)을 달성했습니다. 축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였을 것 같은데요.

그런 생각도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K3리그 무대도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더 높은 무대에 와 있잖아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위치에서 활약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개인 SNS에도 한 시즌을 소회 하면서 믿기지 않은 일이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면 어땠나요?

정말 감사했죠. 사실 성인 팀가서 힘든 경험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운동할 수 있다는 거에 되게 감사했던 해였죠. 사실 작년에도 득점왕만 생각했지 그 외에 삼관왕까지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상위 팀에서 그런 상을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선수 경력 초반에 부상이 참 많았습니다. 포항에 들어가자마자 피로골절이 생기고 이후에 바로 종아리뼈 골절이 발생했는데요. 본인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많이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아마추어 때까지는 부상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포항 첫해에 뼈가 부러지고 그다음 연도에 또 뼈가 부러지더군요. 그래서 2년 중에 1년을 그냥 쉬어버린 거죠. 이후에 안산그리너스에 갔는데 그 해에는 경기를 조금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연도에 감독님이 바뀌셨거든요. 이후에 팀에서는 제가 구상에 없다고 말하더군요.

결국 김해시청축구단으로 갔는데 거기에서는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평택을 거쳐 천안과 지금 김포에 온 거죠. 또 천안에서는 안산에서 구상에 없다고 하던 감독님을 만났어요. 당시 전력강화실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천안에서 제 경기를 보고는 이제 축구에 눈이 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참 묘하더라고요. 나름 복수 아닌 복수를 했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 부상을 신경 쓰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는 더 잘해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죠.

본인의 구상에 없던 감독님에게 그런 칭찬을 들어서 참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사실 복수 아닌 복수라고 말했지만 감독님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팀을 구성할 때 어떤 선수가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은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그래도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니 낙담이 컸을 것 같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형도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만약에 본인이 이렇게 다쳤으면 포기했을 거라고요. 그런데 결국 축구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형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옆에서 힘들 때마다 많이 도와줬고 조언도 많이 해줬거든요. 또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았을 때도 많은 지원을 해줬습니다.

어떤 식으로 조언을 해주셨나요?

축구가 너무 힘들어서 놓으려고 할 때마다 항상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10~15년 동안 축구하면서 성인 팀에 왔는데 고작 1~2년만 한 것은 너무 아깝지 않냐는 거죠. 그 외에도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면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형에게 반항 아닌 반항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형이 저를 생각하고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다 이해하고 받아들였죠.

형과 남성초-문래중으로 중학교 때까지는 같은 과정을 밟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형하고 좀 더 애틋한 마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하고 형이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한 9살 때부터 부모님하고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형은 부모님 같은 존재죠. 실제로 의지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도 경기장 안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정도였죠.

사실 연년생이라서 제법 싸웠을 것 같기도 한데 부모님이라고 표현하니 놀랍군요.

어렸을 때는 제가 많이 까불었습니다. 실제로도 꽤나 싸웠어요.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서 형이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형은 다른 팀에 가서 주로 형들이랑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반대로 저는 후배들을 많이 챙겨줍니다. 서로 그런 식으로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아마 형이 되게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형에게 잘하려고 합니다.

그런 형이 결혼을 했습니다.

형이 제가 알기로는 첫사랑과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여자 만나봤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아 형수님이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아무튼 형이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 신기하더라고요. 그리고 형이 축구로 성공 안 했으면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웃음). 어쨌든 너무 축하하고 앞으로 축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형과 함께 어떻게 축구를 시작했는지도 궁금합니다.

형이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기 전에 축구 클럽에 들어갔었습니다. 아침마다 그렇게 축구를 하는데 형은 축구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운동하는 것을 진짜 싫어했어요. 그러다가 거기 축구 클럽 선생님이 과천초등학교로 가서 일주일 정도만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그때 형을 따라갔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당시에 아버지 말씀으로는 제가 축구를 시켜달라 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기억에 저는 일주일 동안 운 기억밖에 없었습니다. 축구를 엄청 하기 싫어했던 거죠. 어쨌든 그렇게 형을 따라가면서 시작했습니다.

형의 프로 데뷔를 1년 먼저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당시 1년 차 때 엄청 좋은 활약을 펼쳤거든요. 지켜보는 입장에서 어떠셨나요?

형이 아마 제가 알기로는 대학교 때 프로팀에서 오라는 데가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형도 그때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실을 제가 성인이 되고 1~2년 뒤에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인 줄 아예 몰랐는데 첫 해에 그렇게 성공한 거잖아요. 사실 첫 시즌에 그렇게 성공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엄청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죠. 저로서는 엄청 대단했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형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에서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축구하는 분들은 저희가 형제인 사실을 많이 알더라고요. 형 이야기를 자주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개막전에서 공교롭게도 형과 경기를 하거든요. 여기 김포 팀 동료들은 장난 삼아 형을 발로 차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농담도 많이 합니다.

형과의 '형제더비'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사실 아마추어 때는 형과 이런 식으로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 팀에서는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경기장 밖에서는 저에게 하나뿐인 최고로 소중한 형인데 경기장 안에서는 또 다르죠. 형을 상대편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이기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일정이 나왔을 때 형은 뭐라고 하던가요?

형에게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첫 게임은 하기가 싫었거든요. 너무 갑작스럽게 붙다 보니까 그런 거죠. 그리고 어느 한 팀이 지면 그 팀의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첫 경기부터 둘 중 한 명이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건 별로 원치 않았던 이유인 거죠.

부모님 입장에서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벌써 잠이 안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농담 삼아 서로 해트트릭 해서 3-3으로 비겼으면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부모님은 형제가 한 팀이 돼서 같이 뛰는 걸 제일 바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는 안 됐지만 지금 이 상황 자체도 재미있게 보실 것 같아요.

만약에 관중 입장이 가능하다면 개막전 때 보러 오겠다고 하시던가요?

아버지는 사실 어느 경기든 웬만하면 오시는 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스케줄이 맞아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 그날은 약속을 빼고서라도 오시지 않을까 싶어요.

광주FC는 어찌 됐든 1부 리그에서 막 내려온 상황입니다. 반대로 김포는 K3리그에서 처음으로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고요. 이 매치업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광주는 1부 리그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기존 선수들이 틀을 잘 잡아주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또 김포가 도전자인 상황은 맞지만 서로 발을 맞춰가면서 원 팀이 됐다는 생각도 요즘 많이 듭니다. 저희도 쉽게 지치거나 무너지는 팀은 아니라서 얕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광주와의 형제더비를 위해서는 다른 것보다 그전까지 부상이 없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김종석 선수 부상이 워낙 많았잖아요. 그중에 세 번째 부상인 십자인대 부상 때는 그 전보다 충격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

시기가 안 좋을 때 다쳤죠. 김해시청축구단에 임대 오고 두 달만에 다친 거였거든요. 그때 수술을 하면 다음 연도 5~6월쯤 복귀 예정이었습니다. 정말 축구를 그만 둘 생각이었죠. 또 선수는 팀이 있어야 축구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때 평택시티즌FC의 윤상철 감독님께서 손을 내미셨습니다. 부상당했어도 괜찮으니 편하게 와서 몸을 만들고 가라고 말씀해주셨죠. 엄청 감사했어요. 그때 다시 축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평택에서는 아무래도 심적으로 안정이 됐을 것 같습니다. 본가가 평택으로 알고 있거든요.

신체적으로는 편했죠. 밥도 집에서 먹으면서 왔다 갔다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금전적으로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세미프로리그다 보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죠. 그때 형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평택에서 제안이 왔을 때 형은 어떤 이야기를 했었나요?

평택이라는 팀이 규모 면에서 풍족한 팀은 아니었죠. 그런데 형이 이야기한 것이 제가 평택에 간 이유랑 같더라고요. 경기를 뛰면서 K3리그 상위권 팀을 가는 게 첫 번째였습니다. 이후 경기를 많이 뛰면서 프로에 가려는 생각이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 목표를 현재 이뤘기 때문에 평택에 감사함이 있습니다.

김포에 입단하면서 다시 프로에 복귀했습니다. 사실 이전 프로무대에서는 본인의 기량을 잘 보여주지 못했잖아요. 다시 돌아온 프로 무대라서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제가 K3리그 내려갔을 때 주변 선배들은 그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K3리그로 내려가면 다시 프로로 올라오기 정말 힘들다고요. 실제로 올라오는 과정도 꽤 힘들었죠. 그런데 처음 프로 데뷔했던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상도 겹치면서 하고 싶은 플레이를 제대로 못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여러 면에서 상황이 나아졌죠. 나이도 그렇고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최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제가 축구 선수잖아요. 팬분들이 가족분들 중에 타고난 운동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말씀하시거든요.

일단 어머니는 스스로 운동을 잘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봤을 때는 운동을 잘 못하세요. 아버지는 어렸을 때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반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기 축구 나가서 하시는 거 보면 굉장히 잘하세요. 제가 봤을 때 예전에 축구하셨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실제로 새벽에도 항상 축구하러 나가실 정도로 열정적으로 좋아하십니다. 아마 아버지의 피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형과 함께 시즌 마치고 조기 축구에 나간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조기축구는 저희가 축구를 시작하고부터 나갔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성인들이랑 해봐야 피지컬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성인이 돼서도 조기 축구하러 나가면서 가볍게 몸을 끌어올립니다.

조기 축구 아저씨분들이 가끔 장난식으로 훈수를 두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저희가 엄청 꼬마일 때부터 좋아하셨던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격려나 칭찬을 많이 해주시죠. 물론 농담 삼아 그렇게 해서 축구선수 하겠냐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다 농담인 거는 알죠. 그만큼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떠올려보면 마지막 경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약간의 방심을 선수단 전체가 조금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으로 앞서고 있어서 당연히 이겼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사실 몇 분 안에도 골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나오는 것이 축구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방심했던 거죠. 그래서 요즘 훈련할 때도 고통받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친 모습을 보이면 지금 김포 수석 코치님이 그래서 졌다고 농담하시더라고요. 물론 저도 그 말씀이 틀린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 경기를 통해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아픔을 안겨준 김포로 이적하셨습니다. 아까도 짧게 말씀하셨지만 천안 동료들 반응은 어땠나요?

천안이 작년에 김포를 한 번도 못 이겼습니다. 당시에는 김포라는 팀이 너무 싫었죠. 그저 이기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리그가 같았으면 가지 않았을 거에요. 천안에 친했던 애들도 어떻게 거기를 갈 수 있냐고 말하더라고요. 다른 데는 다 가도 되지만 거기만큼은 안 된다고도 하고요. 물론 그 선수들도 지금은 다 축하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포에서 첫 시즌을 준비 중인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꼴찌만 안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감독님이 제일 자신 있어하십니다. 욕심도 꽤 있으신 것 같아요. 제 생각에도 축구 선수라면 당연히 욕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우승을 말씀드리기는 힘들겠죠. 하지만 저는 플레이오프 이상 가는 기적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 단계 올라온 무대에서도 득점왕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고정운 감독님도 공격수 출신이시잖아요. 감독님으로부터 많이 배워서 결정력을 조금 더 높여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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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형제'라는 단어가 있다.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형제들 간 워낙 자주 싸우는 데서 비롯된 은어다. 실제로 김종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 형제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형의 결혼에 대해 "축구로 성공 안 했으면 어떻게 결혼했을까 싶다"라며 은근슬쩍 디스를 했다. 물론 이런 형제들이 해가 지날수록 더욱 애틋해지기도 한다. 김종석도 형인 김종우를 부모님이라 말하며 은근슬쩍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형제더비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경기장 밖에서나 소중한 형이죠. 안에서는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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