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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남해 독일마을=조성룡 기자] '악질'이라고 표현할 만 하지만 정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울산현대에서 활약하던 이동준이 독일 무대로 이적했다. 지난 1월 29일 독일 분데스리가의 헤르타 베를린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인 이동준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25년까지다. 울산에서 한 시즌을 뛰면서 K리그1 32경기 출전 11골 4도움을 기록한 이동준은 이제 유럽 무대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동준에게는 꼭 따라다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다. 부산아이파크 시절 부산 팬들이 처음 제작한 이 걸개는 울산 이적 후에도 어김없이 등장해왔다. 심지어 국가대표 경기에도 이 걸개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이동준은 유럽으로 간다. 그러면 이 걸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재미있게도 유럽으로 함께 갈 예정이다.

이제는 '전소속팀'이 된 울산의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이동준의 이적 확정 소식을 접하고 고민에 빠졌다. 2021시즌이 시작되기 전 부산 서포터스 'P.O.P'로부터 받은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 때문이었다. 이동준이 떠난 이상 이 걸개는 울산에 걸릴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처용전사'가 제작한 것도 아니기에 처치를 고민해야 했다.

'처용전사' 박동준 의장은 결정을 내렸다. 이 걸개를 독일 현지로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박 의장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전통을 이어가고 싶었다. 이동준과 언제나 함께하는 걸개라는 의미를 유지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이동준이 가는 곳에는 이 걸개가 함께 가야한다는 의미였다.

또한 그는 "헤르타 베를린 현지 팬들에게 이동준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더 받고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라면서 "어쨌든 이 걸개를 보고 베를린 팬들이 이동준을 더 예뻐했으면 좋겠다. 이동준이 울산에서 잘한 만큼 독일에서도 정말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라고 전했다.

'처용전사' 측은 곧바로 이 걸개를 독일에 보내기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이들은 SNS를 통해 독일, 특히 베를린 현지의 한인회를 수소문했다. 한인회를 통해 이동준의 걸개를 전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도움의 손길이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의 한 유저가 헤르타 베를린의 팬이었던 것.

해당 유저는 SNS를 통해 헤르타 베를린의 현지 팬들과 소통을 주선했다.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의 취지 또한 독일 팬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이렇게 '처용전사'는 헤르타 베를린을 응원하는 한 소모임과 연결됐고 이들이 이 걸개를 인수해 홈 경기장인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 걸기로 했다.

'처용전사'는 우체국 택배를 통해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를 독일로 발송했다. 여기에 든 택배비만 6만 5천원 가량이다. 박동준 의장은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를 보내면서 울산 서포터스 소모임 머플러를 더 넣어 택배 비용이 더 들었다"라면서 "우리의 뜻에 동참해준 베를린 현지 팬들에게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는 2019시즌 부산에서 제작됐다. 당시 부산 서포터스는 이동준에게 걸개를 걸어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았다. 공격포인트 15개를 기록하면 이 걸개를 떼준다는 조건이 함께 걸려 있었다. 당시 이동준은 리그 13골 7도움으로 걸개 철거 기준을 충족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걸개는 걸려있고 이제는 유럽까지 따라가게 생겼다.

심지어 독일 현지 언론 '빌트'는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일이 더욱 커진 셈이다. 부산 팬들도 싱글벙글 하겠지만 울산 팬들도 비슷한 모양이다. 박동준 의장은 "빌트지에 보도돼 저 걸개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좋다"라면서 "무엇보다 이동준이 죽을 때까지 저 걸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행복하다"라고 활짝 웃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이 보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악질'이라고 할 만 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다. 팬들 또한 이동준을 사랑해서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이고 이동준 또한 이런 팬들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카드캡터 이동준' 걸개를 떠나보낸 '처용전사'의 박동준 의장에게 마지막으로 "정말 악질 같다"라고 비난 아닌 비난을 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우린 이동준이 국군체육부대 입대 타진 소식이 나왔을 때도 김천에 이 걸개를 보내려고 했다. 컨택도 다 했던 적이 있다. 헤르타 베를린 정도면 당연히 보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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