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니어스|보은=조성룡 기자] 2-3-5 포메이션.

경남FC 설기현 감독이 들고온 이 전술은 한국 축구에 꽤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줬다. 역피라미드 형태인 이 전술은 상당히 신선했다. '설싸커'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경남이 이 전술을 들고 나와 아직까지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싸커'로 알려진 전술이기에 한국에서 이 포메이션은 경남에서만 볼 수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무대에서 이 2-3-5 전술을 사용하는 또다른 팀이 있다. 바로 WK리그 경주한수원이다. 지난 시즌부터 '1강' 인천현대제철을 위협하는 팀으로 부상한 경주한수원은 올 시즌 2-3-5 전술을 들고 나와 한국 여자축구 정복을 꿈꾸고 있다.

경남 설기현 감독이 2-3-5 전술을 쓰는 이유는 많은 인터뷰와 분석을 통해 잘 나와있다. 하지만 경주한수원이 어떤 철학과 의도를 가지고 2-3-5 포메이션을 쓰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스포츠니어스>는 경주한수원 송주희 감독에게 물어봤다. "왜 2-3-5를 쓰세요?" 지금부터 그 대답을 공개한다.

경주한수원이 가야 할 방향을 담은 2-3-5

경주한수원 송주희 감독은 먼저 WK리그의 현실에 대해 짚었다. "우리는 계속 똑같은 팀과 경기해야 하고 제한적인 선수들을 상대해야 한다." WK리그는 여덟개 팀으로 한 시즌을 운영한다. 남자축구의 경우 K3, K4리그를 만날 때도 있지만 여자축구 성인 무대는 이 여덟 개 팀이 전부다. 선수도 많지 않아 항상 '아는 선수들'을 상대한다.

어차피 똑같은 팀과 똑같은 선수를 상대한다면 대부분 예상하는 결과가 그대로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팀들은 더 높은 순위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선수를 활용하기 어려우니 변칙 전술이 등장한다. 경주한수원 또한 이런 현실을 놓고 고민하면서 2-3-5 포메이션을 꺼내든 것이다.

송주희 감독은 2-3-5 포메이션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고 밝혔다. 정말 강한 수비와 속도감 있는 미드필더다. 하지만 경주한수원이 이를 모두 갖춘 것은 아니다. 송 감독은 "우리 팀의 미드필더가 속도감이 좋은 편은 아니다"라면서 "사실 이 포메이션은 불안 요소가 많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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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한수원이 2-3-5 포메이션을 꺼내든 이유는 '콘셉트'다. 송 감독은 "전체적으로 앞뒤 간격이나 좌우 균형을 잘 맞추면서 상대 타입에 따라 빌드업을 해야한다"라면서도 "하지만 우리의 빌드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 그렇다고 빌드업을 삭제할 수는 없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빌드업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수적 싸움을 할 때 우리가 수비를 더 끌어내서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이 빌드업이다"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경주한수원은 강팀이다. 대부분의 상대는 경주한수원을 상대할 때 수비적으로 안정적인 옵션을 채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공격적인 전술이 나온 것이다. 송 감독은 "우리가 해야 할 콘셉트는 명확하다"라면서 "그래서 이런 포메이션이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전술 꺼내든 경주한수원, 시즌 시작되니 생긴 고민

사실 경주한수원은 2-3-5 포메이션을 활용해 좀 더 다양한 세부 전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2-1-2-5 포메이션이나 2-1-3-4 포메이션도 꺼내든다. 어쨌든 측면 수비수가 중원으로 들어간다는 점은 경남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전술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송주희 감독도 고민이 있었다.

"새로운 전술은 뭐든지 좋고 신선하다"라고 말한 송 감독은 "동계훈련 때 정말 이 전술은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고등학교 남자 팀들과 연습경기를 하면 대부분 이겼다. 우리 경기를 본 타 팀 감독들도 '경기력이 굉장히 좋다'라면서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들어가니 좀 달라졌다"라고 고백했다.

경주한수원의 고민은 비슷한 전술을 들고 나왔던 다른 K리그 팀들과 꽤 비슷해 보였다. 송 감독은 "막상 WK리그에 들어가고 같은 여성 팀끼리 경기를 하니까 선수들이 실전에서 당황하고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라면서 "경기를 할 때 느끼고 생각하면서 해야 하는데 그냥 포메이션 형태만 갖추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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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시즌 초반 선두로 치고 나섰던 경주한수원은 조금씩 주춤하며 다시 2위에 자리했다. 인천현대제철과의 첫 번째 맞대결에서 0-1로 패했고 최근에는 서울시청과 수원도시공사를 상대로 1무 1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수비에 대한 불안은 여전했다. 13라운드 중 경주한수원이 무실점을 기록한 경기는 세 경기 뿐이었다. 보통의 팀이라면 나쁘지 않은 성과지만 챔피언을 노리는 입장이라면 조금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포메이션은 형태에 불과한 것일 수도"

그래서 송주희 감독은 "포메이션이라는 것 자체가 형태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포메이션은 경기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송 감독은 "결국에는 선수 개인의 경기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수가 공격적으로 경기를 할 때 내가 수비를 어떻게 끌어내서 공간을 창출할 것인지, 그리고 수비가 붙었을 때 어떻게 탈압박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은 다 경우의 수 싸움이다. 여기서 이겨내고 가속도를 붙여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우리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을 하지 못하게 된다."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사용했을 경우 득점할 수 있는 확률은 높다. 하지만 이 확률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게 된다면 실점하게 된다. 실점을 온전히 수비의 탓으로 돌리면 안된다. 다만 선수들 모두가 생각하고 반응의 속도를 좀 더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송 감독은 지난 보은상무전에서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 어떻게 보면 선수들의 복잡한 머리를 비워준 셈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수 싸움 대신 "단순한 플레이를 해달라"면서 "각자의 경기력을 극대화시키는데 주력해달라"고 주문했다. 결과는 6-0 대승이었다. 송 감독은 "선수들이 다 해줘서 정말 '해피해피'하다"라고 웃었다.

기다리면서 칼 가는 경주한수원, 목표는 신흥 '1강'

이제 관건은 '기다림'이다. 경기력이 주춤하면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낸다"라면서 "나 자신이 극과 극이다. 이기면 정말 날아갈 듯 행복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가라앉는다"라는 송 감독은 "어쨌든 공격적인 부분에서 볼 때 페널티박스 안에 들어가면 우리가 수적 우위를 점하고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좋은 장면이 나올 것이다"라면서 "나는 선수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밖에 없다"라고 웃었다.

어쨌든 2-3-5 포메이션은 대중적인 전술이 아니다. 게다가 경주한수원은 올 시즌 들어 이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성장통을 겪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놓일 수 있다. 여기서 성급하지 않게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실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송 감독은 자신이 힘들어도 기다려줘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경주한수원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올 시즌을 보내고 있다. 더 좋은 팀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다. 송 감독은 "이길 때는 영예롭게 이기고 질 때는 기품 있게 져야 한다"라면서 선수들에게 매너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강조한다. '1강'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다. 전술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정규리그를 통해 더욱 발전해 우승컵을 두고 싸울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계획이다.

경주한수원의 목표는 인천현대제철을 넘고 새로운 WK리그 '1강'이 되는 것이다. 지난 시즌 경주한수원은 인천현대제철을 상대로 리그에서 호성적을 거뒀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수 년간 굳게 유지되던 인천현대제철의 '1강 독주'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 감독 또한 "우리가 1강 체제를 삭제하면서 경주한수원이 많은 팬들에게 부각됐다"라면서 "우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제는 이렇게 부각된 상황에서 인천현대제철을 꺾는 것이 중요해졌다. 경주한수원이 강팀의 저력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인정하고 박수 쳐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과연 경주한수원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송 감독은 자신 있게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