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감독을 위해 추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의 모습.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유상철 감독이 우리 곁을 떠났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지만 결국 그는 하늘의 별이 됐다. 이틀 동안 축구계는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유상철 감독의 과거 활약도 돌아보고 그와의 인연도 떠올려봤다. 미안하고 고맙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유상철 감독과 인연이 없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와의 작별은 큰 슬픔이다. 환하게 웃던 유상철 감독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슬픈 일에도 ‘불편러’들이 있다. 누가 조문을 했는지, 누구는 조문을 하지 않았는지 감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별에 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준이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유상철 감독과 함께 뛰었던 박지성 전북현대 어드바이저가 조문도 하지 않고 애도의 뜻도 표하지 않았다면서 거센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박지성 어드바이저의 아내가 운영 중인 유튜브에도 박지성 어드바이저를 향한 비난의 댓글이 달렸다.

서울에 마련된 유상철 감독의 빈소에는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월드컵서 함께 영광의 시간을 만든 홍명보 울산현대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안정환 해설위원,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등이 찾아 슬픔을 함께 나눴다. 하지만 박지성 어드바이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재 그는 영국에 체류 중이다. 곧바로 한국으로 이동하더라도 코로나19 2주 자가격리 때문에 빈소를 찾지 못한다.

일부에서는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SNS를 통해서라도 애도의 뜻을 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유상철 감독이 세상을 떠난 이후 어떤 방식으로건 아직 애도의 뜻을 전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유상철 감독 빈소 사진을 찾아내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근조 화환도 보내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유상철 감독의 안타까운 작별 소식에 슬퍼하기보다 이 일을 빌미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걸 우리는 마녀사냥이라고 부른다.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평소에도 SNS를 하지 않는다. 애도의 마음이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유상철 감독의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할 수도 있다. 설령 이런 움직임이 없더라도 한 개인에게 애도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 슬퍼하는 모습을 증명하고 인증해야 그걸 애도로 받아들이는 걸까. 과연 이런 애도는 누구를 위한 애도일까. 보여주지 않으면 애도가 아니라고 믿는 이들을 ‘불편러’라고 칭하면 과할까. 박지성 이름이 달린 근조화환이 유상철 감독 빈소에 등장하거나 박지성이 눈물 셀카라도 올려야 ‘진짜 애도’인가.

연이어 축구 관계자들이 자신의 SNS에 유상철 감독을 애도하는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런 글이나 사진을 올리지 않고 평범한 일상 사진을 올리면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딱 욕먹기 십상이다. 애도도 누군가를 위해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남아 돌면 유상철 감독 빈소에 누가 왔고 누군 안 왔고 누군 조화를 보냈고 이런 걸 방구석에서 따지고 있나. 차라리 그 시간에 유상철 감독의 현역 시절 골 모음 영상을 한 번 보는 게 더 고인을 위한 일 아닐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심지어 빈소를 찾은 이들의 복장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상철 감독 빈소에 방문한 축구 관계자 중 김상식 감독과 박주영 등은 정장 차림이 아닌 복장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또 누군가는 애도의 자세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불편해한다. 헛소리로 넘길 법한 주장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이런 ‘불편러’들의 이야기가 이슈가 되는 게 정말 불편하다. 애도하는 마음을 SNS로 보여주고 근조화환을 보내 인증샷을 남기고 빈소에 갈 때는 꼭 검은 정장에 넥타이를 해야 ‘불편심사위원회’에서 통과를 시켜준다.

사실 어제 유상철 감독 빈소를 다녀왔다. ‘불편심사위원회’ 기준이라면 난 탈락이다. 가뜩이나 내가 쓴 기사로 여러 말이 나오고 있는데 장례식장 앞에 가서 보여주기식 인증샷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인증을 할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고백하는데 검정 면바지에 검정 반팔 티셔츠를 입고 갔다. 내가 무슨 사진 기자들에게 찍힐 사람도 아니고 검은 정장 차림으로 격식을 지키는 게 좀 더 민망한 느낌도 들었다. 빈소에 들른 뒤 사무실로 출근해야 해 편한 복장으로 갔다. 그래도 브랜드가 박혀 있는 옷을 입는 건 예으가 아닌 것 같아 아무 것도 안 프린팅되지 않은 검은 티를 입었다.

‘불편심사위원회’ 기준으로 나는 애도 합격 기준을 통과할 수가 없다. 심지어 운동화는 좀 화려한 걸 신고 갔다. 이유가 있었다. 빈소에 도착해 조문을 하고 한 관계자를 만나니 그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감독님 운동화하고 똑같네요.” 유상철 감독이 생전 신었던 운동화를 보고 너무 예뻐서 따라 샀었고 감독님과 생전 이 운동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그래서 이날은 꼭 이 운동화를 신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애도였더라면 격식 있는 구두를 신었어야 했지만 나는 이게 그냥 내 방식의 애도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하늘에서 내가 구두를 신지 않고 왔다고 화를 내셨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유상철 감독은 그 운동화를 또 신고 왔다고 껄껄 웃으셨을 거다.

애도는 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게 아닐까. SNS로 슬픔을 나누고 복장을 갖춰 애도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고 마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 이걸 마치 무슨 애도의 기준이 있는 것처럼 마녀사냥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불편러’들이여, 방구석에서 남의 행동 하나 하나에 불편해하지 말고 세상으로 나오시라. 현실에서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보여주기식 애도에 목을 매지 않는다. 오늘 밤엔 스리랑카전 현장에서 유상철 감독을 위해 박수를 크게 치고 집에 돌아가면 유상철 감독님을 그리워하며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 골 영상이나 한 번 더 보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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