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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수원=김현회 기자] K리그 감독들은 경쟁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현역 시절이나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더라도 감독이 되고 나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서로를 이겨야 살아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수원FC 김도균 감독과 충남아산FC 박동혁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줄곧 지금까지도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감독이 되고 난 후 서로를 경계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의 사이는 여전히 돈독하다.

11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지는 하나원큐 K리그2 2020 수원FC와 충남아산FC의 경기를 앞두고도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이날 경기는 저녁 7시에 킥오프 될 예정이다. 오후 4시 반에 일찌감치 경기장을 찾은 기자는 취재석에서 아무도 없는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소 일찍 경기장에 도착한 충남아산FC의 무야키치와 헬퀴스트만이 오후 5시 돼서야 잠시 그라운드로 나와 잔디를 밟으며 여유를 즐겼다. 이날 해설을 맡은 이상윤 해설위원도 그라운드로 내려와 이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가 경기 두 시간 전인 오후 5시 10분이었다.

수원FC 선수들은 아무도 그라운드로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수원종합운동장 내부에 숙소를 마련한 수원FC는 훈련 준비를 내부에서 다 마친 뒤 사전 훈련 시간에 맞춰 그라운드로 나온다. 훈련 시간 한참 전이라 수원FC 선수 중 그 누구도 그라운드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김도균 감독만이 느긋하게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시각 반대편인 원정 라커에서도 한 명이 등장했다. 박동혁 감독이었다. 이 둘은 익숙하게 그라운드에서 만났다.

선수들도 몸을 풀기 위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은 시간에 감독이 먼저 그라운드에 등장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같은 순간 상대팀 감독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건 우연은 아니었다. 선수들은 아무도 경기장에 없는데 두 감독이 만나는 모습이 연출됐다. 사전에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도균 감독과 박동혁 감독은 충남아산 벤치에서 이상윤 해설위원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셋이서 오랜 시간 대화가 이뤄졌다.

분위기는 좋아보였다. 박동혁 감독은 벤치에 기대 대화를 했고 박동혁 감독도 앉아서 큰 손짓과 함께 말을 했다. 이들의 대화는 오후 5시 10분부터 시작됐다. 이상윤 해설위원이 중계 준비를 위해 자리를 뜨자 김도균 감독과 박동혁 감독은 서로 나란히 벤치에 앉아 둘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물론 코로나19 여파로 취재진이 경기 전에 그라운드로 접근할 수 없어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이 둘은 사이좋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경기 전 긴장감은 잠시 사라져 있었다.

이 둘의 대화는 수원 선수단 관계자가 김도균 감독을 찾으러 오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수원 관계자는 김도균 감독에게 “이제 경기를 준비하러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균 감독이 자리를 뜨자 박동혁 감독도 곧장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들의 대화는 이렇게 12분 동안 이어졌다. 중간에서 관계자가 김도균 감독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이 둘의 수다는 더 오래 이어졌을 것이다. 서로 등을 돌려 각자의 라커로 돌아가는 이 둘은 패션도 닮아 있었다. 이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덧신에 로퍼를 신은 모습까지도 비슷했다.

이 둘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때부터 한솥밥을 먹었다. 당시 이들은 박진섭, 김도훈, 강철, 고종수, 이천수, 이영표, 김상식, 최태욱, 이동국 등과 함께 올림픽 무대에 진출했다. 김도균 감독은 2차전을 치른 뒤 부상으로 송종국으로 엔트리 교체가 이뤄졌다. 이 둘은 프로 무대에서는 한 팀으로 뛴 적은 없지만 현역 시절 내내 ‘베프’로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김도균 감독이 1977년생이고 박동혁 감독이 1979년생으로 두 살 어리다. 가장 빛나던 시기에 함께 했던 이 둘은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박동혁 감독은 아산무궁화 시절부터 팀을 이끌고 있다. K리그2에서 우승까지도 경험한 바 있다. 김도균 감독은 올 시즌 새롭게 수원FC에 부임했다. 프로 무대에서의 경험은 박동혁 감독이 앞선다. 시즌 시작 전 박동혁 감독은 “김도균 감독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한다”고 장난삼아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내가 감독으로서 선배다. 나한테 물어보는 게 많다”고 웃었다. 이 둘은 이런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할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프로에서의 감독 경험은 박동혁 감독이 앞서지만 최근 상황은 김도균 감독이 더 좋다. 김도균 감독이 이끄는 수원FC는 올 시즌 K리그2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최근 3연승의 상승세다. 박동혁 감독이 이끄는 충남아산FC는 올 시즌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라운드 경남FC와의 홈 경기에서 9경기 만에 마침내 올 시즌 첫 승리를 따냈다. 두 팀의 상황은 다르지만 이번 경기에서 이겨야 하는 이유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기 전 이 두 감독의 모습은 치열한 승부는 잠시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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