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아산의 이상민은 최근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됐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16일 김은선을 만나 인터뷰했다. 2018년 12월 음주운전이 적발된 그는 이후 수원삼성을 떠나야 했고 6개월 간 소속팀 없이 방황하다가 호주 A리그 센트럴 코스트로 이적했다. 이후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현재에도 소속팀 없이 은퇴를 고민 중이다. 그는 프로축구연맹에서 1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안고 있다. 만약 그가 K리그 팀과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징계가 시작된다. 한마디로 그를 영입해도 올 시즌 막판이나 돼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은선 입장에서는 그래도 한 팀과 계약해 징계 기간을 보내고 경기에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음주운전 선수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와 선뜻 계약을 추진할 팀은 없다. 영입을 추진하다가 팬들의 거센 반발을 받으면 팀에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개인운동에만 매진하고 있다. “올 8월까지가 내가 소속팀을 알아볼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스스로를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김은선은 1988년생으로 박동진, 고명진, 박용우 등과 동갑이다. 이 선수들은 한창 뛰고 있는데 김은선은 이제 은퇴의 기로에 놓여있다.

김은선과 인터뷰를 한 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음주운전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어왔고 그에 따른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김은선의 상황도 계속 떠올랐다. 물론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음주운전 범죄자의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음주운전으로 인생의 전부와도 같았던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사실을 보니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했다. 김은선이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김은선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스포츠니어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칼럼은 그들이 한 번의 실수를 저질렀으니 용서하자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한 순간의 행동으로 평생 쌓아왔던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자는 글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 험난한 경쟁을 이겨내고 돈은 돈대로 들고 남들은 가기도 어렵다는 유명 축구부가 속한 대학에 가 경사 났다고 집안에서 잔치를 벌였을 것고 바늘 구멍 만큼이나 들어가기 어려운 프로 무대에까지 가 어렵게 성공한 선수가 술 마시고 운전대 한 번 잡았다는 이유로 20여년 간의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간다.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재능을 하루 아침에 날릴 거면 그 재능이 노력해도 안 되는 다른 선수에게 갔으면 어땠을까.

이런 사고를 친 개개인이 너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다들 핑계는 좋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잠깐 차를 빼달라고 해서,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려고 했는데 대리기사가 안 와서, 술을 마신 다음 날 운전을 하는데 술이 아직 덜 깨서 등 핑계는 다들 그럴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범법 행위가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는 없다. 음주운전 한 번으로 자신이 쌓은 모든 명예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걸 기억 한다면 절대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된다. 이럴 땐 “차 좀 빼달라”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다. 남을 위해 차를 빼주려다가 내 인생이 끝나는 수가 있다.

몇 년 전 홍대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공영 주차장에 정확히 차를 주차하고 주차비도 선불로 지급한 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왔다. “난 내 돈 내고 공영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는데 왜 내가 차를 빼야하느냐. 그리고 난 술을 마셔서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다”고 거부했다. 물론 그 술집 물이 좋아서 한 순간도 거길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신나게 마시고 차로 돌아갔더니 공영 주차장에는 다음 날 있을 무슨 행사를 위한 무대를 짓고 있었고 내 차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결국 대리운전 기사님을 불러 집에 가는데 차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퀴 양 쪽에 펑크를 낸 것이었다.

타이어 수리비와 대리 기사님을 다시 보내드리면서 드린 비용, 그리고 타이어 수리 이후 다시 부른 대리 기사님의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하니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술을 마시다가 잠깐 차를 빼달라는 유혹에 빠졌으면 나는 돈과 시간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던 방송과 칼럼을 다 날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일개 칼럼니스트인 나도 이런데 더더욱 행동을 조심해야 할 운동선수라면 알아서 자신의 명예를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이건 “음주운전을 하면 앞으로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다음 날 인근 파출소를 찾았지만 CCTV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범인도 잡지 못했다. 심증만 있을 뿐이다.

김은선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스포츠니어스

김은선을 인터뷰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절대 음주운전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승부조작범도 복귀해 뛰고 있는 마당에 음주운전이 과연 승부조작 이상의 범죄 행위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음주운전을 한 선수들을 가볍게 처벌하자는 건 아니다. 한 번 더 징계의 잣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운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장인이 음주운전에 발각됐다고 해 직업 자체를 잃는 경우는 없다. 물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인 파장이 커지면서 유명인의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한다. 내 머리 속에서도 상충되는 의견이 복잡하게 돌아다닌다.

음주운전 한 번은 처음이니 적당히 봐 주자거나 승부조작범도 뛰는데 음주운전이 뭐 대수냐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백번 천번 잘못된 일이다. 선수들이 알아서 조심하자는 거다. 이게 무슨 어려운 공식을 외우라는 것도 아니다. “음주운전은 하면 안 된다”는 아주 간단한 공식만 외우면 된다. 음주운전 한 번으로 지금껏 쌓아온 수많은 걸 잃을 수 있다. 20년 넘게 오로지 운동만 해왔는데 그 모든 기록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그건 심각한 무릎 십자인대 부상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프로선수라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직업을 잃지 않기 위해 이 정도는 지킬 수 있는 거 아닌가.

오랜 만에 만난 김은선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K리그 경기장에서 봤을 땐 유난히도 밝고 장난스러웠던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도 축 처져 있었고 긴 머리에 긴 수염은 그의 최근 마음고생을 보는 듯했다. 그는 “나를 봐서라도 운동선수들이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꼭 당부한다”고 했다. 하지만 10여일이 흐른 지난 26일 충남아산FC의 이상민과 대전 하나시티즌의 박인혁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는 소식이 접해졌다.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도 배운 게 없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이유야 어찌됐건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소중한 내 직업을 걸 만큼이라면 과연 프로선수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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