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그리너스 김주희 사원에게 안산-시흥전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안산=김현회 기자] 안산와~스타디움에서 2020 하나은행 FA CUP 2라운드 안산그리너스와 시흥시민축구단의 경기가 열린 6일. 이날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FC서울과 전북현대, 포항스틸러스와 울산현대가 맞붙는 K리그1으로 향해 있었다. 안산과 시흥은 밀접한 도시여서 공통점을 묶으라면 묶을 수도 있지만 K리그2 팀과 K4리그 팀의 K리그 2라운드 경기를 주목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유독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안산그리너스 홍보 마케팅팀 김주희 사원이었다.

안산-시흥전, 남모를 특별함이 있는 이유

김주희 사원은 안산에서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그의 손이 거쳐가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무를 소화한다. 지난 해 1월 구단에 입사한 그는 사무실과 훈련장, 사회공헌활동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이날 경기장에서도 취재진을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은 이가 바로 김주희 사원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다소 복잡해 보였다. 이 경기가 흔히 말하는 ‘김주희 더비’였기 때문이다. 김주희 사원은 안산으로 이직하기 전까지 K3리그 시흥시민축구단에서 3년이나 일했다.

김주희 사원은 대학생이던 2016년 시흥에 K3리그 시민구단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구단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 정직원이 아니어도 좋으니 대학생 마케터로 일하게 해달라”고 했다. 열정을 높이 산 시흥 구단에서는 그녀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워낙 프런트의 인원이 적기 때문에 그녀가 할 일은 많았다. 홈 경기 운영은 물론이고 A보드 나르기, SNS 활동, 하다못해 선수단 식당 예약까지도 해야 했다. 또한 K3리그는 프런트 수가 적어 선수단과의 사이도 각별했다. 정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김주희 사원은 3년 간 정이 든 시흥 구단을 지난 해 1월 퇴사했다. 선수단 운영이 시 체육회로 넘어가면서 구단을 나왔다. 구단 창단 때부터 함께 했던 김주희 사원은 아쉽게 구단과 작별해야 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다 지난 해 5월 한 구단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바로 K리그2 안산그리너스였다. 그는 K3리그 구단에서 일한 경력을 높게 평가 받았고 안산 프런트로 일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안산과 시흥이 마주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안산은 K리그2에 있었고 시흥은 K3리그 팀이었기 때문이다.

안산은 이날 경기에서 시흥을 3-0으로 이겼다. ⓒ대한축구협회

‘김주희 더비’가 더 특별한 사연은?

그런데 올해 FA컵 대진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K리그2 팀인 안산그리너스가 자동으로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은 가운데 시흥시민축구단이 1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면 안산과 맞붙는 대진이었기 때문이다. 시흥의 1라운드 상대는 K5리그 대전 위너스타였다. 이 경기에서 시흥은 김정주와 오성훈의 골을 앞세워 2-0 승리를 거두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FA컵 2라운드에서 마침내 안산과 시흥의 ‘김주희 더비’가 열린 것이다. 김주희 사원은 경기 전 긴장한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이 경기는 누군가에겐 대단히 특별한 한판 승부였다.

이 경기는 ‘김주희 더비’이면서 또 다른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바로 김주희 사원의 상대팀이자 친정팀인 시흥에 그녀의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김주희 사원의 남자친구인 황지훈은 이날 백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출격 준비를 했다. 김주희 사원은 이전 소속팀을 맞으면서 남자친구도 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김주희 사원이 경기 전 취재진에게 배포한 명단에는 그의 남자친구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오늘 ‘김주희 더비’ 아니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손가락으로 남자친구 이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올 수 있을라나 모르겠어요.”

김주희 사원과 황지훈은 시흥시민축구단에서 만난 사이가 아니다. 이 둘은 사실 상대팀이었던 시절 연애를 시작했다. 김주희 사원은 연애 이야기가 나오자 “원정경기에 갔다가 눈이 맞았다”고 웃었다. 전쟁통에도 연애는 하는 법. 황지훈은 K3리그 양평시민축구단 소속이던 2016년 홈 경기장에 온 시흥시민축구단 직원인 그녀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 양평 사무국 직원과 경기 전 장난을 치며 공을 가지고 놀던 그녀에게 반했고 용기를 내 고백해 연애를 시작했다.

안산은 이날 경기에서 시흥을 3-0으로 이겼다. ⓒ대한축구협회

둘 모두에게 양보할 수 없었던 ‘김주희 더비’

이후 황지훈은 양평을 거쳐 시흥으로 이적하며 그녀와 한 팀에 속하게 됐고 이어 여주세종축구단으로 갔다가 올해 다시 시흥으로 옮겼다. 지난 시즌까지 여주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황지훈은 올 시즌 이적 이후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치고 있다. K4리그 개막 이후 줄곧 엔트리에서 제외됐던 황지훈은 이날 경기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황지훈에게도 소중한 기회였고 그의 여자친구인 김주희 사원에게도 물러설 수 없는 승부였다. 안산은 K리그를 포함한 올 시즌 안방에서 아직 승리가 없었다.

이날 김주희 사원은 경기 전부터 바빴다. 홈 경기 운영을 체크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그러다가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던 상대팀 선수들을 마주했다. 김주희 사원은 여기저기 인사를 했다. 그는 “시흥에 있는 신재필 코치님이 내가 시흥에 있을 때는 선수였다. 지금 사령탑에 올라 있는 정선우 감독님은 당시 코치님이었다”면서 “오늘 이 분들과 그라운드에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고 웃었다. 하지만 김주희 사원은 남자친구와는 거리를 뒀다. 그는 “경기 전에 남자친구와 멀리서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그냥 손을 한 번 흔들어 준 게 전부였다”고 했다.

김주희 사원은 “일부러 어제부터 연락을 피했다”면서 “서로 부담이 될 것 같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늘 오전에도 ‘잘하라’는 메시지만 보냈다”고 말했다. 안산 구단 직원들도 ‘김주희 더비’를 앞두고 장난을 쳤다. 김주희 사원은 “구단에서 다들 나에게 ‘오늘 표정 관리 잘하라’고 짓궂은 말을 많이 했다”면서 “마크스를 써서 표정을 그나마 가릴 수 있다. 시흥은 내가 일했던 팀이고 남자친구도 시흥에 있지만 그래도 안산이 이겨야 한다. 남자친구는 오늘 경기 끝나고 따로 만날 것이다. 그전까지는 절대 남자친구가 상대팀에 있다는 티를 안 낼 것”이라고 웃었다.

‘김주희 더비’ 안산의 3-0 완승

‘김주희 더비’였지만 홈 경기를 맞아 할 일이 많은 김주희 사원은 경기 내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정신 없는 90분을 보냈다. 그러다 그녀는 안산 브루노가 후반 추가 시간 세 번째 골을 터트리며 3-0 승리를 확정 짓자 두 손을 들고 환호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관계자는 “친정팀에다가 남자친구가 있는 팀을 상대하니 눈치가 보여 더 크게 환호하는 것 아니냐”고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기도 했다. ‘김주희 더비’는 안산의 3-0 완승으로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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