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박용지를 <스포츠니어스>가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박용지는 결정력이 뛰어난 공격수가 아니었다. 2013년 울산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해 2017년 한 시즌 동안 네 골을 넣은 게 시즌 최다 득점이었다. 2013년에는 울산에서 16경기에 나서 한 골을 넣는데 그쳤고 2014년에는 울산에서 부산으로 떠나며 27경기 출장 두 골에 머물렀다. 2015년에도 두 골, 2016년에는 무득점이었다. 그나마 2017년 인천에서 21경기를 뛰며 네 골을 넣은 게 최다 득점이었다. 공격수지만 6년 동안 10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그런 그가 상주상무에 입대한 뒤 확 달라졌다. 지난 시즌 입대 해 11경기에서 네 골을 넣은 그는 올 시즌 36경기에 출장해 무려 12골을 터트렸다. 6년 동안 넣은 골보다 최근 상주상무에서 2년 동안 넣은 골이 더 많았다. 특히나 올 시즌 12골의 기록은 울산 김보경(13골)에 이은 국내선수 최다 득점 2위의 기록이었다. 박용지는 군 입대 후 확 달라졌다. 과연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는 제대 날짜만 세고 있는 말년 병장 박용지를 경상북도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직접 만났다.

박용지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무려 12골을 뽑아냈다. ⓒ프로축구연맹

반갑다.

시간이 안 간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아직도 군 생활이 29일(12월 23일 인터뷰 날짜 기준)이나 남았다.

말년 병장으로서 요새 어떻게 지내나.

프로 팀에 있을 때는 시즌이 끝나면 한 달 정도 긴 휴가가 주어진다. 하지만 상주상무는 군대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일주일의 짧은 휴가를 다녀왔는데 결혼식만 다섯 군데를 다녀왔다. 원래 축구선수들이 시즌이 끝난 12월에 대부분 결혼한다. 하루에 (윤)보상이 형, (노)동건이 형 결혼식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 다른 날에는 (윤)빛가람 형 결혼식도 갔다왔다. 잠깐 친구들을 만나고 그러니 일주일의 휴가가 금방 지나갔다.

말년 병장 생활은 할 만한가. 나는 그 시기 부루마블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즌은 끝났지만 개인적으로 몸을 만들면서 제대를 준비하고 있다. 시즌 중에는 경기를 준비해야 해서 경기에 모든 포커스를 맞췄는데 지금은 늘 운동을 해도 동기부여가 떨어지긴 한다. 시간이 참 안 간다. 오전 6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점호를 하고 밥을 먹은 뒤 일과를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운동이 일과다. 당직도 서고 취사장에 가서 설거지도 한다. 아, 물론 청소도 열심히 했는데 이제는 병장이라 하는 게 별로 없다. 올해는 눈이 안 와서 눈을 쓸 기회는 별로 없었다. 제대 전까지 제발 눈이 안 왔으면 좋겠다.

국군체육부대에서 다른 운동선수들과도 친해질 기회가 많았을 것 같다.

축구부끼리만 친하다. 훈련소에 처음 들어갈 때 다른 종목 선수들과 같이 들어가면 그때 친해질 기회가 있다. 그런데 나는 축구부끼리만 훈련소에 들어갔다. 부대 내에서 다른 부서와는 마주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다른 부서 선수들과 친해지지 못한 건 아쉽다. 훈련소 때 친해져야 한다.

몸 상태는 어떤가.

올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고생을 했는데 시즌을 임하면서 부상 부위가 좋아졌다. 지금은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 한 시즌을 잘 마칠 수 있어서 기쁘다. 요즘에는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컨디션 조절 중이다. 감독님께서 우리를 전지훈련에 데리고 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안 데리고 갈 모양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1월에 제주도와 부산 기장으로 전지훈련을 간다. 그 다음에는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서 경기력을 조절한다고 들었다. 그때 그래도 제대를 앞둔 선수들도 전지훈련을 가면 시간도 잘 가고 부대를 떠나 있어 좋을 텐데 병장들은 안 데리고 가실 것 같다. 감독님께 “우리도 데려가 주세요”라고 했더니 그냥 웃고 마시더라. 부대에 있으면 6시 반에 일어나서 점호하고 일과를 다 해야한다. 꼬였다.

박용지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무려 12골을 뽑아냈다. ⓒ프로축구연맹

저런…. 올 시즌 무려 12골을 넣었다. 한 시즌에 한두 골을 넣다가 놀라운 반전을 이뤄냈다.

상주상무는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거기에다가 전술도 나하고 잘 맞았고 코칭스태프에서도 나를 믿고 기용했다. 자신감이 생겼고 한두 골 들어가다 보니 경기력이 훨씬 더 좋아졌다. 한 시즌에 12골을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을 이전까지는 크게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일이 올 시즌 실제로 일어났다.

전술적으로도 잘 맞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팀에서는 공격수인 내가 공을 받을 때 경합을 하면서 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상주상무는 공간을 많이 활용하는 팀이다. 수비가 떨어진 상황에서 공을 더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적극성이 생겼다. 예전이었으면 동료에게 미루거나 자신감 없이 플레이했을 텐데 ‘안 돼도 내가 하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상주상무에 입대한 뒤 한 단계 더 도약한 선수들이 많다. 당신도 그런 길을 걸었다.

확실히 그런 건 있다. 다른 팀이었으면 ‘한 경기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부담감이 있는데 여기는 부담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는 분위기다. 심리적인 문제와 몸 관리 문제도 있다. 상주상무에 오면 뛸 수 있는 기회,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23일) 입대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하하. 오늘 (문)선민이가 입대한다. 나하고 친한 (이)창근이, (김)보섭이는 이미 며칠 전에 입대했다. 선민이하고 자주 연락하는데 오늘 훈련소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말년 병장으로서 남의 입대에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다.

내 얼굴에서 그게 보이나.

보인다.

나도 훈련소 시절부터 예비역 형들에게 장난을 많이 당했다. 인터넷 편지로 ‘ㅋ’ 이 한 글자 보낸 형들도 있다.

당신이 이제 문선민에게도 그럴 차례다.

선민이가 군 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더라. 딸도 있어서 더 그런 거 같다. 외박은 자주 나가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 생각보다 좋다. 밥도 잘 나온다’고 답해줬다.

말년 병장이 신병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그것 말고는 없나.

일단 군대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문제될 일이 없다. 운동만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긴 간다. 행복한 군 생활을 했으면 한다.

당신 눈썹 문신 한 건가.

티 나나.

많이 티 난다. 머리보다 눈썹이 더 진하다.

슬슬 제대 준비를 하려고 좀 해봤다. 곧 자연스러워 질 거다.

박용지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무려 12골을 뽑아냈다. ⓒ프로축구연맹

눈썹은 진해졌지만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성격은 여전히 독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완 감독은 늘 당신이 더 독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더라.

내가 입대하자마자 김태완 감독님이 더 독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생각은 늘 하고 있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간절하게 더 독을 품고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늘 말씀해 주셨는데 이제는 그냥 말년이라 ‘갈 선수’라고 생각하시는지 잔소리를 안 하신다. 여기에서는 경쟁력을 쌓았으니 나가서 실전에서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말씀을 잘 새기고 있다.

당신의 이런 변화가 김태완 감독의 영향도 있는 건가.

물론이다. 김태완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신다.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주셨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여러 선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김태완 감독이 고쳤으면 하는 것도 있나. 제대하는 마당에 소원수리 한 번 하고 가자.

내가 전역이 얼마 안 남았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쭉 해주시길 바란다. 감독님께서 고칠 건 없다.

매 시즌 한두 골을 넣다가 12골을 몰아 넣으면 느낌이 어떤가.

감이 생겼다. ‘아 이럴 땐 내 거다’라는 나만의 타이밍이 생겼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다. 내가 올 시즌 한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본 적이 없다. 12경기 12골이다. 축구하면서 한 경기 두 골 이상을 넣어본 적은 작년 FC서울과의 경기에서 딱 한 번 있다. 몰아치기 능력이 부족한 게 내 단점이다. 한 골은 되는데 두세 골은 안 되더라. 내년에는 꼭 해트트릭을 해보고 싶다.

제대하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

당연히 있다. 이제 현실이다. ‘나가서도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올 시즌에 잘했기 때문에 이걸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흔히 말해 ‘상무빨’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군대에서만 잘하고 제대한 뒤에는 그만큼 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 이미지를 깨고 싶다. ‘상무빨’이 아니라는 걸 나가서도 꼭 보여주고 싶다.

박용지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무려 12골을 뽑아냈다. ⓒ프로축구연맹

제대하면 뭘 가장 먼저 하고 싶은가.

머리를 좀 기르고 싶다. 병장이 되고도 마무리까지 잘 하겠다는 마음으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또 이때가 아니면 언제 머리를 이렇게 짧게 해볼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제대를 하면 염색도 좀 해보고 싶고 해외여행도 가고 싶다. 군인 신분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긴 있는데 절차도 있고 휴가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휴가를 다 썼다. 제대하면 지금까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도 누리고 싶다.

제대한다고 끝이 아니다. 예비군 훈련이 남아있다.

나는 아직은 거기까지 생각할 단계는 아니다.

상주상무에 오기 전 인천에서의 플레이는 실망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팬들의 질타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물론이다. 인천에서 부진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다. 경기장에 들어가도 워낙 거리가 가까워 나에 대한 욕이 다 들렸다. 나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몸 상태도 지금과는 달랐었고 전술적으로나 운도 맞지 않았다. 인천에 있을 때는 내가 봐도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욕심도 덜했다. 경기에 나가면 ‘실수하지 말자’는 생각이 먼저였다. 공격수는 골로 말해야 한다는 걸 올해 더 절실히 느꼈다. 그런 욕심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인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표정에서도 그런 게 보인다고 할까.

나쁜 감정은 없는데 내가 인천에서 좋았던 기억이 없다. 경기 내용이나 출장 경기수나 팬들의 여론이나 다 좋지 않았다. 욕도 많이 먹었다. (머뭇거리며) 모르겠다. 그때는 야유도 많이 받았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속으로 안 좋은 소리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박수를 받을 만한 경기력은 아니었다.

같은 날 입대 작별 인사를 치렀던 송시우가 많은 박수를 받은 것과 더 비교돼 씁쓸했을 것 같다.

그런 건 확실히 있었다. 그 전부터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나는 원래 이런 선수다’라는 걸 꼭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안 좋게 보는 팬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상주상무에서 골을 넣으며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솔직히 짜릿했다. 그런데 내가 골을 넣고 쭉 상승세를 타고 있을 때 인천은 강등권에 있었다. 내가 잘 되면 기분이 좋을 줄만 알았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이상하더라.

앞으로의 거취도 궁금하다. 인천으로 복귀하나.

일단 계약은 인천과 남아 있기 때문에 제대하면 돌아간다. 하지만 이후 거취는 아직 확실히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곧 결정될 것이다.

박용지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무려 12골을 뽑아냈다. ⓒ프로축구연맹

이제 제대다. 군대를 떠나는 아쉬움은 없나.

제대하는데 아쉬움이 있을까.

그래도 꼽아보자.

코칭스태프와 헤어지는 건 사실 아쉽다. 제대하면 고생했던 동기들도 보고 싶을 것 같다. 상무는 전우애가 별로 없을 거 같지만 우리끼리도 전우애가 있다. (권)완규부터 (이)규성이, (윤)보상이, (송)시우, (김)건희 등등 다 끈끈하다. 같이 고생했던 이들과 헤어진다는 건 진짜 아쉽다.

특히나 호흡이 잘 맞는 선수들이 있었나.

인천 시절부터 늘 비교돼 왔지만 시우하고는 잘 맞는다. 군대에 갈 때까지도 비교됐던 라이벌인데 이상하게 경쟁심은 별로 없다. 내가 한 살 많은데 걔가 말을 정말 안 듣긴 한다. 그냥 나를 친구로 대한다. 평소에 축구 이야기는 많이 안 해도 경기장에서 뛰면 호흡이 좋다. 그리고 이번에 같이 전역하는 (김)건희도 함께 투톱으로 서면서 호흡이 좋았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전우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시간은 간다. 난 먼저 간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

군대에서만 잘했었다는 이미지를 꼭 깨고 싶다. 나가서 최소 올 시즌 정도의 경기력을 유지하고 올 시즌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 공격수라면 프로 무대에서 해트트릭은 꼭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박용지는 달라졌다. 군대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 자신감이 생겼고 경험도 쌓였다. 물론 그에게는 이제 사회로 나와 군대에서만 반짝했던 선수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해야 하는 숙제가 놓여져 있다. 박용지는 과연 올 시즌의 뛰어난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제 25일 후면 그는 민간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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