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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아직도 미우라가 현역으로 뛰고 있다. 19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우리를 상대로 골을 넣고 삼바 댄스를 췄던 그 선수가 2019년에도 현역 생활 중이다. 1967년생인 미우라는 올해 만 52세의 나이로 J2리그 요코하마FC에서 뛰었다. 미우라보다 어린 신태용, 황선홍, 홍명보, 최용수가 다 은퇴해 감독을 하고 있는데도 미우라는 여전히 현역이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 성동일, 조영구, 송강호와 동갑인 미우라는 아직도 축구선수다. 참고로 송강호의 아들인 송준평이 현재 K리그 수원삼성에 속해 있으니 미우라의 이런 기록이 대단하긴 하다.

미우라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본받아야 한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프로 팀에 속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미우라가 경기에 출전하거나 골이라도 넣는 날이면 일본은 물론 국내 언론도 들썩인다. 남들은 다 축구감독을 할 나이에 프로 무대에서 뛰고 있는 걸 엄청난 영웅으로 묘사한다.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를 느끼는 이들로서는 50대가 여전히 프로축구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것 자체로 감탄한다. 물론 나 역시 그랬다. 미우라가 세워나가는 최고령 기록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런 미우라가 다시 일본 1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까지 생겼다. 미우라가 속한 요코하마FC가 어제(24일) J2리그 최종전에서 에히메를 2-0으로 꺾고 올 시즌 리그 2위를 최종 확정했기 때문이다. 요코하마FC는 1위 팀인 가시와 레이솔과 내년 시즌 1부리그 승격이 확정됐다. 이날 미우라가 경기에 출장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이롭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이제 미우라는 만 53세의 나이로 J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다시 한 번 갈아치울 가능성이 커졌다. 만 53세의 선수가 젊은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종목은 골프가 유일하다고 믿었던 사람으로서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별 거 없다. 전형적인 일본식 영웅 만들기와 기록 집착의 결과일 뿐이다. 일본 선수지만 지금껏 철저한 자기관리를 이어온 미우라를 폄하하고 싶지도 않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아무리 일본 선수여도 이 부분은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의 과거는 충분히 존경 받을 만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최근 그의 모습은 딱 일본식 영웅 만들기의 산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만 52세의 프로선수는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일본 정서를 이용한 홍보용 선수일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이동국도 50살까지 선수 생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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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미우라는 J2리그에서 3경기에 출장했다.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큰 의미가 없다. 지난 3월 기후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54분을 뛰고 4월 아비스파 후쿠오카와의 경기에서 52분을 소화한 미우라는 이후 무려 21경기 동안 아예 후보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이후 12경기에서는 딱 세 번 후보로 이름을 올렸을 뿐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기를 벤치도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그러다가 리그 최종전인 에히메와의 경기에서 팀이 2-0으로 이기고 있던 후반 42분 교체 출장해 3분을 뛴 게 올 시즌 기록의 전부다. 승격이 확정되는 순간 예우를 한 것뿐이다. 올 시즌 미우라는 이렇게 딱 세 경기에 나섰다.

지난 시즌에는 어땠을까. 기록상으로는 미우라가 9경기에 출장해 꽤 팀에 기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 9경기에서 총 56분을 뛰는데 그쳤다. 경기마다 2분, 7분, 16분, 1분, 1분, 18분, 3분, 10분, 1분을 뛰었다. 참고로 지난 시즌 그가 뛰었던 경기 중 한 골차 이내의 승부는 딱 두 번 뿐이었다. 지난 해 3월 기후와의 원정경기에서 1-0으로 이기고 있던 후반 43분 출장했고 6월 반포레 고후와의 홈 경기에서 1-0으로 앞선 후반 45분에 출전한 게 그 기록이다. 나머지 경기에서는 팀이 0-4로 크게 패하고 있거나 3-0으로 크게 이기고 있는 등의 경기에만 출장했다. 쉽게 말해 전혀 전력과는 연관이 없는 선수다.

미우라의 현역 생활은 사실상 2011년을 기점으로 마감됐다. 이후 미우라는 소속팀에 이름만 걸쳐 놓은 수준이다. 심지어 2014년에는 한 시즌을 통틀어 단 4분을 뛰었다. 미우라가 최근 6시즌 동안 기록한 골은 6골뿐이다. 가장 최근 득점은 2017년 3월이었다. 황혼기를 넘겨서까지 현역으로서의 집념을 불태우는 미우라 자체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일본의 별다른 의미 없는 기록 만들기에 대해 지적하려는 거다. 동료였던 선수들은 다 지도자로 도전하고 있는데 최고령 기록 하나만으로 만 52세까지 선수 등록만 한 채 경력을 이어가는 게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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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에도 32경기에 출장해 9골 2도움을 기록 중인 이동국 같은 활약이라면 모를까 미우라는 사실상 최고령 기록만 이어가는 수준이다. 만 40세의 이동국은 지난 2009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10년 동안 두 자리수 득점을 이어가고 있다.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 골만 더 넣는다면 11년 연속 두 자리수 득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쓸 수 있다. 김병지는 만 44세까지 K리그에서 현역으로 활발하게 뛰며 706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썼다. 그는 은퇴하기 전 시즌까지도 K리그1의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만 52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는 미우라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너무 과하게 기록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물론 흥행 파워가 있으니 여전히 요코하마FC는 미우라와 계약을 유지하는 거다. 그가 단 몇 분이라도 경기에 출장하면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니 홍보용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8~9년 전에 사실상 현역 선수로의 경력을 마감한 선수가 이따금씩 경기장에 1~2분 등장하고 포털사이트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늘도 그가 곧 일본 1부리그 무대에 복귀할 것이라는 대대적인 보도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식이면 차범근 감독도 여전히 현역으로 뛸 수 있다.

지난 2014년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은 이미 오래 전 현역에서 물러난 골키퍼 최인영을 경기에 출장시켰다. 코치로 합류한 뒤 서브 골키퍼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 선수 등록을 했다가 실제로 경기에 나선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가 만 52세였다. 대단한 일인 것도 맞지만 이건 가벼운 뉴스 정도다. 당시 최인영 코치에게 ‘불굴의 영웅’이나 ‘기록의 사나이’ 같은 수식어가 붙지는 않았다. 이 정도 수준의 이야기를 일본은 너무 부풀리고 있다. 일본 특유의 영웅 만들기와 기록에 대한 집착이다. 젊은 선수들과 전혀 경쟁이 되지 않는 만 52세의 중년이 이벤트 형식으로 한 번씩 경기에 나서는 것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 너무 이 사연이 미화되는 것 같아 오지랖을 좀 부려봤다. 물론 나는 미우라가 40세의 나이가 넘어서도 끊임없이 도전했던 그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그의 도전은 10년 전에 은퇴했어도 그 자체로도 대단한 경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우라의 행보는 이미 현역으로서의 경력이 끝난 인물의 기록 이어가기 정도다. 이런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우라의 도전은 존경하고 존중하지만 그 이상 의미를 담는 건 전혀 의미가 없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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