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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화천=홍성빈 인턴기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많은 대학 축구선수들은 대부분 같은 목표를 보고 달린다. 프로 진출과 국가대표. 축구 외에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선수는 많지 않다. <스포츠니어스>가 2019 춘계여자축구연맹전에서 그녀와 인터뷰를 결심하게 된 것 역시 축구 실력 때문이었다. 연령별 대표팀 경력까지 있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하지만 인터뷰 방향이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전개됐다. 충남 단국대학교 공다연을 소개한다.

첼로 대신 선택한 축구, 그리고 좌절

공다연은 인터뷰 시작과 함께 자신의 전공은 축구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원래는 음악을 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첼로를 6년, 피아노를 7년간 했죠. 당시 엄마도 제가 첼리스트가 되길 바라셨어요.” 축구와 음악, 같은 예체능이지만 그 성격은 너무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노는 걸 좋아했어요. 당시 학교 체육 선생님도 ‘너는 운동선수를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요." 이런 딸이 축구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우아하게 음악을 하며 곱게 자란 딸이 운동을, 그것도 거칠고 험한 축구를 한다니 쉽게 허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한테 축구를 하겠다고 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하셨죠. 그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죠. 하지만 제가 고집을 부리자 엄마가 '네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라시며 축구 레슨을 받게 하셨어요. 일종의 시험이었죠." 그녀가 끝까지 버티며 결국 허락을 얻는 데 성공했다. "축구 하는 걸 허락 하시면서 엄마가 '네가 하고 싶어서 결심하고 하게 된 거니까 책임감을 갖고 하라'라고 하시면서요."

가까스로 허락을 받은 끝에 시작한 축구선수 생활. 공다연은 연령별 국가대표에도 선발되는 등 재능을 보였다. 지난 2014년 말레이시아에 열린 AFC U-16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해 홍콩, 베트남, 호주와의 경기에 출전했다. "고등학교 때 U17 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에 선발됐어요. 예선을 잘 치러 왔고 마지막 중국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월드컵에 진출하는 거였죠." 하지만 고비가 찾아왔다. 선수로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그 경기를 앞두고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결국 월드컵을 못 가게 됐죠."

공다연은 어린 나이에 겪은 좌절로 실망이 컸다고 했다. 축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진료를 위해 병원을 함께 찾은 부모님의 마음 역시 편할 수 없었다. "병원을 갔었는데 엄마가 너무 우셔서 의사 선생님 말씀이 들리지 않았을 정도였어요. 당시 상실감이 너무 컸어요." 새벽 운동도 빼먹지 않고 할 만큼 의욕을 갖고 하던 축구를 다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상처가 컸다.

하지만 공다연은 축구 하는 걸 허락받으면서 엄마에게 들은 '책임감'을 떠올렸다. 그리고 좋아하는 축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남자 프로선수들도 버티기 힘들어한다는 재활을 결심했다. 1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재활센터를 오가며 굵은 땀을 흘렸다. 그 과정에서 왜소한 체격을 보강하기 위해 근육 보강까지 함께했다. "재활을 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어요. 단백질 보충제도 챙겨 먹고 닭가슴살도 먹고요. 정말 이 악물고 버텼어요."

공다연은 선발 11명을 채우기도 어려웠던 단국대에 진학했다. ⓒ 스포츠니어스

단국대를 선택한 이유

재활을 거쳐 복귀한 공다연은 단국대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단국대는 선발 11명을 채우기도 힘든 열악한 팀이었다. 축구만 생각했다면 단국대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선택에 대해서 묻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단국대로 진학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가고 싶은 학교는 따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서른 살이 넘어서도 축구를 할 수 있을까'라고요." 크게 한 번 다치고 난 뒤라 또 다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축구도 중요했지만 그 외의 진로를 위해 더 공부를 할 수 있는 학교를 찾은 것이다.

대부분 체육특기생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벽 훈련이 있을 때면 수업시간마다 졸음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수업 때 녹음기를 틀어놓고 밤에 다시 들으면서 따로 공부했어요. 운동을 끝내고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개인적으로 공부하기도 하고요. 마침 이번 대회 참가 때문에 수업을 들을 수 없어서 같은 강의를 듣는 친구에게 녹음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어요."

역시 성적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자랑했다. "제가 승부욕이 강해요. 비밀이긴 한데 그 오기로 친구와 술 대결도 벌인 적이 있는데 그때 같이 마신 친구들 모두 혀를 내둘렀어요. 물론 그 이후로 그렇게 마시지는 않아요." 주변에서 독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을 정도로 그녀는 하고자 마음먹은 건 어떻게든 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초, 중, 고등학교 운동부 단체 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교에 오게 되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서 엄청 놀았어요. 이 자유를 누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까. 하루하루를 더 좋은 시간으로 쓸 수 있는데'라고요. 자아성찰을 하게 된 거죠."

축구선수? 꿈 많은 여대생

공부에도 소질이 있는데 축구를 하지 않고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지 물었다. 그러자 공다연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니까 정말 그 생각도 하곤 해요. 최근에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인 배우 전도연이 외교관 역할로 나와요. 영화 속 그 직업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공부해서 저런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경찰도 되고 싶었고요. 유치원 선생님도 하고 싶었다가 소방관도 해보고 싶었어요. 비행기 승무원도 하고 싶었어요. 아! 해설가도요. 무언가 멋진 일을 볼 때마다 '저거 나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앞서 공다연은 실업 무대 진출에 큰 욕심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축구선수라기보다 꿈 많은 여대생에 가까웠다. 아니, 어쩌면 축구가 취미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졸업하면 대학원 가서 석사, 박사를 취득한 다음에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또 하나 꼽으라면 해외 스포츠 브랜드에 입사해서 마케팅 일을 해보고 싶네요." 이를 위해 영어공부 또한 충실히 한다고 했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온 게 아니라 대학교 와서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조금씩 하고 있죠. 회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저녁마다 원어민과 통화를 통해 연습도 하고 있어요."

다양한 꿈을 갖게 된 것은 지도자의 영향이었을까? 그녀는 단국대를 이끌고 있는 오원재 감독의 조언을 언급했다.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희가 언제까지 축구를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축구를 그만두게 됐을 때 당장 다른 일을 찾는 것 보다 지금 차츰 준비를 해두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라고요." 실제로 오원재 감독은 짧게 끝난 선수 생활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대학원 석, 박사 과정을 거쳐 지도자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공다연은 선발 11명을 채우기도 어려웠던 단국대에 진학했다. ⓒ 스포츠니어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으면 피곤할 법도 했다. 힘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힘주어 말했다. "제가 해야 하는 걸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낮잠도 안 자요.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하려고 해요." 쉴 때면 방에 누워 넷플릭스를 즐겨보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는 공다연은 축구선수이면서도 영락없는, 꿈 많은 여대생이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은 단 하나의 목표만 보고 달린다. 축구를 하지 못하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이 모습을 본 스페인의 한 유소년 코치는 "축구 하나만을 보고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까지 축구를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축구가 아니어도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너무 많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코치의 말처럼 많은 꿈을 꾸고 있는 공다연에게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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