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열 감독은 FC안양을 이끌고 전북현대 원정에 나선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어제(16일) 오후, FC안양 김형열 감독은 선수단을 이끌고 전주로 향했다. K리그 최강팀이라는 전북현대와의 KEB하나은행 FA컵 경기를 하루 앞두고 미리 원정경기를 위해 적지로 향한 것이다. 지난 K리그2 경기에서 서울이랜드에 1-4 대패를 당한 선수들은 분위기는 차분했다. 전주로 가는 버스에서 잠을 청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김형열 감독은 전주로 향하는 내내 차창 밖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전주에 도착하자 선수단 버스 운전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이 변해서 여기가 전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전북현대는 현재 모라이스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최강희 감독에 대한 지지도가 전폭적인 팀이다. 최강희 감독은 곧 전북의 상징과도 같다. 전북은 최강희 감독과 함께 K리그 최강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축구를 잘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최강희 감독은 2005년 7월 전북에 부임해 전북 전성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이 이 팀을 맡기 바로 직전 지도자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워낙 최강희 감독 집권 기간이 강렬했고 길었기 때문이다. 전주로 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던 안양 김형열 감독이 최강희 감독 직전 전북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뱅크맨’ 김형열이 전북으로 간 이유는?

16년 전인 2003년 12월 전북 조윤환 감독은 실업축구 국민은행 김형열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프로에 와서 같이 해보자”는 코치 제안이었다. 당시 김형열 감독은 실업 무대에서 명장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2003년 열린 모든 실업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조윤환 감독이 김형열 감독에게 구애를 보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형열 감독은 처음 이 제안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전북은 지금과 같은 강팀이 아니었다. 김형열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전북현대는 K리그에서 중간과 꼴찌를 오가는 팀이었다. 힘들었다. 마음에 드는 외국인 선수도 막 뽑질 못하는 팀이었다.”

전북행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국민은행을 이끌며 이룬 성과 덕분에 그는 승진이 보장돼 있었다. “은행에서 차장도 달고 지점장도 할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가야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형열 감독은 고민 끝에 전북 수석코치 제안을 수락했다. 지금도 그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좀 주저했지만 이왕이면 프로축구 지도자가 돼 내 역량을 한 번 확 쏟아 부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은행에는 과감히 사표를 냈다.” 김형열 감독은 지금도 웃으며 당시를 회상한다. “국민은행에서 2003년에 우승을 하나만 안 했으면 아마 전북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전북행을 후회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는 이야기다.

당시 전북에는 최진철과 윤정환, 에드밀손, 박동혁 등이 포진해 있었고 남궁도와 조성환, 박규선 등의 유망주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전북의 상황은 열악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전북은 강한 팀이 아니었다. 선수들은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기숙사로 쓰는 아파트를 함께 쓰고 있었고 훈련장 상황도 좋지 않았다. 2004년 후기리그에서는 12위에 머물렀다. 조윤환 감독의 입지도 크게 좁아졌다. 김형열 수석코치는 그때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말이 기업구단이지 투자는 좋지 않았다. 성남일화를 제외하고는 다른 기업구단도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형열 수석코치는 안양공고 선배인 조윤환 감독을 묵묵히 보좌했다.

김형열 감독은 오랜 시간 경험을 쌓으며 지도자로 성장했다. ⓒ프로축구연맹

김형열 수석코치, 전북 감독대행이 되다

2005년 전북은 크게 흔들렸다. 리그컵에서 꼴찌를 한 뒤 정규리그에서도 2무 3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고 결국 조윤환 감독이 2005년 6월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모레이라는 기량 미달로 평가받은 채 시즌 개막 전 브라질로 돌아갔고 세자르는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이탈했다. 안토니오 역시 5경기에서 고작 1골을 뽑는 데 그쳤다. 2001년 10월 전북의 지휘봉을 잡은 후 2001/2002 시즌 아시안컵위너스컵 준우승과 2003년 FA컵 우승, 2004년 AFC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등 나름대로의 성적을 낸 조윤환 감독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김형열 수석코치도 이때 스스로 짐을 쌀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의리 같은 게 있었다. 내가 모셨던 감독님이 사퇴하면 감독님을 따라 같이 팀을 나가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때 숙소에서 짐을 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전북은 그에게 “남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구단의 말은 이랬다. “감독과 수석코치가 한꺼번에 팀을 나가면 팀이 흔들릴 수 있으니 그래도 팀을 잘 아는 김 코치가 남아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어 달라. 새 감독을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있어 달라.” ‘임시직’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감독님이 잘린 자리를 꿰어차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당시 김형열 수석코치는 동반 사퇴를 고민하다가 조윤환 감독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조윤환 감독은 진심으로 김형열 수석코치를 응원해줬다. “너도 이제 감독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니 팀을 잘 한 번 맡아봐.” 모셨던 감독이 팀을 떠나면 함께 떠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던 그는 조윤환 감독의 조언을 듣고 전북에 남기로 했다.

구단도 김형열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이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형열 감독대행은 2005년 6월 15일 부산아이파크와의 원정경기부터 지휘봉을 잡았다. 이날 경기에서 전북은 박동혁이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이후 루시아노와 뽀뽀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며 패했다. 그리고 김형열 감독대행은 두 번째 경기에서도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명승부를 연출하며 희망을 보여줬다. 수원삼성과의 홈 경기에서 두 골을 먼저 뽑아낸 뒤 연이어 두 골을 내준 전북은 이후 3-2로 다시 앞서 나갔지만 후반 추가시간 두 골을 허용하며 3-4로 역전패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인상 깊은 경기력이었다. 리그 개막 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공격력은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김형열 감독은 오랜 시간 경험을 쌓으며 지도자로 성장했다. ⓒ프로축구연맹

그가 전북에서 거둔 ‘2승’ 그리고 새 감독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경기인 대구FC와의 원정경기에서 리그 첫 승을 따냈다. 네또가 두 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하며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대구에 4-1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인천유나이티드를 상대로도 네또가 두 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챙겼다. 당시 인천은 ‘비상’을 찍던 시기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전북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이겨보질 못했던 인천을 상대로도 이겼고 대구도 잡았다. 경기력이 괜찮았다.” 구단 관계자는 김형열 수석코치에게 “하반기에도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어 달라. 성과가 조금만 더 나오면 감독대행 딱지를 떼는 것도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전북은 수원과 대구, 광주를 단번에 제치고 꼴찌에서 10위로 뛰어올랐다.

구단에서도 남은 시즌을 김형열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1월 부단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이철근 단장도 김형열 감독대행 체제에 힘을 실었다. “시즌이 진행 중이라 새로 감독을 임명하면 혼선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내년 시즌을 대비해 외국인 지도자와 국내 지도자들 가운데 새 감독을 찾아볼 것이다. 올 시즌은 김형열 감독대행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감독이 곧 부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천 원정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둔 뒤 김형열 감독이 기자회견까지 잘 마무리하고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전력강화부장이 그에게 미팅을 제안했다. “전주로 돌아가시면 잠깐 이야기 좀 나누시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김형열 감독대행은 직감했다. 새로운 감독이 선임됐으니 이제 팀을 떠나달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선수들에게 미리 이야기했다. ‘아마 팀을 떠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주장이었던 최진철을 비롯한 선수단은 이 소식에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새로 올 감독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한 김형열 감독대행과의 정 때문이었다. 예감했던 것처럼 김형열 감독대행은 전주로 돌아간 뒤 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새로운 감독이 선임됐다는 소식이었다. 새로운 감독은 국가대표팀 전 코치를 그만둔 뒤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프로팀 감독은 처음이라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다. 새 감독의 이름은 최강희였다.

김형열 감독은 오랜 시간 경험을 쌓으며 지도자로 성장했다. ⓒ프로축구연맹

14년 후 감독이 돼 돌아온 김형열

김형열 감독대행은 새 감독 선임 소식을 듣고 사흘 뒤 전남 원정 경기를 1-1 무승부로 마쳤다. 이게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새로운 감독이 올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최)강희 형이 전북으로 온다는 소문도 들었다. ‘나도 나갈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수들과 작별하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껏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선수들이 ‘송별회를 하자’고 해 전남 원정 멤버들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송별 파티를 해줬다. 애들하고 참 좋은 추억이 많았다. 한 명 한 명 다 남다른 감정이 들었다. 국민은행에서 감독을 하다가 전북에 처음 올 때는 프로팀에 가면 분위기가 딱딱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선수들과 끈끈한 관계가 너무 좋았다.”

그는 최강희 감독과 ‘형, 동생’하는 사이다. 축구계에서 오래 활약하며 이미 친분이 있던 둘은 2001년 B급 지도자 라이선스 교육을 받으며 더 가까워졌다. 이 형과 동생은 이렇게 운명처럼 전북에서 엇갈렸다. 김형열 감독대행은 이렇게 전북이 대단히 힘들던 시기 딱 7경기를 치르고 짐을 쌌다. 전남전이 끝나고 선수들과 송별식까지 마친 그는 최강희 감독이 취임식을 하는 동안 조용히 숙소에서 짐을 챙겼다. 그가 짐을 다 챙기자 코치진이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박동우 코치와 이경춘 코치, 지금은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조성환 코치 등이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최강희 감독님 오셨습니다.” 김형열 감독대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을 챙겨 최강희 감독에게 인사하러 갔다. “감독님 고생하십쇼.” 최강희 감독도 김형열 감독대행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그 동안 고생했다.”

이렇게 팀을 이끌던 감독대행과 새로운 감독은 스쳐지나갔다. 이후 최강희 감독은 전북을 이끌고 역사에 길이 남을 발전을 이뤘다. 김형열 코치는 성남일화와 중국 허난 젠예, 강원FC 등에서 코치를 역임한 뒤 2015년부터 가톨릭관동대 감독으로 활약했다. 김형열 감독은 가톨릭관동대를 U리그 권역 우승으로 이끄는 등 대학 무대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비록 화려한 곳에 있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지도자 경험을 쌓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김형열 감독이 이끄는 FC안양이 FA컵 4라운드에서 전북현대를 만나게 됐다. 김형열 감독이 감독대행 꼬리표를 떼고 감독 자격으로 무려 14년 만에 오르는 전북 원정이 성사됐다. 어제(16일) 김형열 감독이 전주행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강희의 전북’ 이전에 있었던 전북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위태롭던 전북은 이제 최강팀이 됐다. 그 팀을 오랜 시간 이끌던 최강희 감독은 팀을 떠났고 이전에 그 팀을 이끌던 감독대행은 상대팀 감독이 돼 전주성을 방문한다. 사람들은 ‘최강희의 전북’을 기억할 뿐 그 이전 잠깐의 역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형열 감독에게 전주 원정은 특별한 일이다. 김형열 감독은 감독 자리에 오른 뒤 다시 방문한 전주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원정팀이 쓰던 이 호텔 이름이 리베라였는데 이제는 르윈 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여기 도착하고 나서도 이 호텔이 그 호텔인지 몰랐다. 전주에 딱 들어오니 다 바뀌어서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전주라는 도시에 오니까 옛날 생각이 확 난다.”

14년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팀이 된 전북을 그는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 당시에는 강희 형이 이렇게 오랜 시간 전북에서 대단한 역할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고생을 많이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철근 단장님을 사석에서 만나면 ‘나 있을 때 투자 좀 해주시지’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상황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답해주신다. 지금 전북을 바라보면 내심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있을 때 지원이 좀 더 좋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축구 발전을 위해 전북이 투자하는 모습을 좋게 바라본다. 전북이 K리그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감회에 젖었지만 승부는 승부다. K리그2 개막전에서 ‘우승 후보’ 부산아이파크를 원정에서 4-1로 제압하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안양의 최근 분위기는 좋지 않다. 특히나 지난 라운드 서울이랜드와의 원정경기에서는 무려 네 골이나 허용하며 1-4로 무너졌다. K리그2 팀들이 FA컵에서 사활을 걸기보다는 로테이션을 활용할 때도 “FA컵에 전력을 다 쏟아붓겠다”고 했던 김형열 감독도 고민에 빠졌다. 그는 서울이랜드전 패배 이후 전북전 스쿼드를 고민했다. “제대로 한 번 붙고 싶었는데 지난 경기 손실이 너무 커서 선수들 심리 상태가 좋지 않다. 전북도 제주전에 뛰었던 선수들이 대거 빠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도 젊은 선수 위주로 경기에 임할 생각이다.”

김형열 감독은 오랜 시간 경험을 쌓으며 지도자로 성장했다. ⓒ프로축구연맹

전북에 도전장 내민 안양, 그리고 김형열

김형열 감독 머리 속은 복잡하다. “FA컵 다음 경기가 다가올 일요일이면 모르겠는데 토요일 경기다. 선수단에 과부하가 걸릴까봐 고민이 많다. 더군다나 전북은 선수 명단을 보면 1군과 2군 구분이 안 된다. 내가 전북에 있던 시절 골키퍼였던 이광석이 지금 전북 골키퍼 코치로 있다. 성남일화에서 지도했던 김상식도 지금은 전북 코치다. 이 코치들에게 전화해서 우리와의 경기에 나서는 선수 명단을 살짝 물어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라고 이 경기를 어설프게, 얼레벌레 할 생각은 없다. 전북의 몇 가지 패턴을 분석했고 이에 따른 준비도 했다. 이동국도 성남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선수인데 나오게 된다면 어떤 수비를 해야할지 선수들과 구상했다. 그런데 정말 누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그는 다른 K리그 팀 코치로 전주에 온 적은 있지만 감독으로서 선수단을 이끌고 전주에 온 건 처음이다. 그에게 있어 전주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아마 2004년에 전북에 가지 않았더라면 ‘뱅크맨’으로 은퇴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또래 은행원들은 거의 다 일선에서 빠졌고 후배들이 지점장을 하고 있다. 이제는 다시 돌이켜 상상해 보려고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전북도 그 사이 많이 변했다. 당시 전북 사무국장을 하던 분이 이제 단장이 돼 있는데 경기장에 가면 아마 날 알아볼지 모르겠다. 정말 많은 게 변했다. 전주에 오면서 구단 버스기사님에게도 ‘여기가 도대체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래도 전주 길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난 길로 오니 전혀 모르겠더라.”

“옛날에 전북 선수들이 열악하게 운동했던 2군 훈련장도 정말 많이 변했다고 해 가보고 싶은데 시간 여건상 그럴 수가 없다. 전주성에 도착하면 우리 코치들에게 내가 프로 지도자로 입문한 곳이 여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는 무척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김형열 감독이 지도자로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고 전북이 아시아 최강팀이 되고 안양에 사라진 프로팀이 다시 생길 시간 동안 많은 게 변했다. 이제 그는 14년 전 첫 추억을 쌓은 곳에서 지금의 제자들과 새로운 도전에 임하려 한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추억이 많은 이곳에서 녹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과 마주한다. 김형열 감독이 전북에서 최강희 감독에게 바통을 넘겨준 인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경기에는 이런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쥐어 짜내 최선 다하겠다”

김형열 감독은 쉽지는 않겠지만 이변을 준비하고 있다. 14년 만에 감독이 돼 전주에 돌아온 그는 최고의 팀인 전북을 상대로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전북은 최강 팀이고 우리는 K리그2에 있다. 하지만 경기는 모르는 거다. 선수들에게도 ‘레스터시티가 3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올라갈 때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쫄지 말고 전북을 상대해보고 싶다. 우리 역량을 전북과 비교해 보자고 했다. 나 또한 내가 가진 전술을 쥐어 짜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 14년 만에 감독이 돼 전주에 왔으니 뭔가 보여주고 가야하지 않겠나.” 김형열 감독이 14년 만에 감독 자리에 앉아 전주성에 치르는 FA컵 32강전은 오늘 저녁 7시부터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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