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대구FC를 보러온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대구=곽힘찬 기자] 전 세계엔 많은 축구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위해 직접 경기장을 방문한다. 보통 이러한 팬들은 자국에 속해 있는 팀이나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을 응원한다. 하지만 오로지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면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K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직접 경기장을 방문하거나 K리그 팀을 응원하는 외국인 팬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한국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한국 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다. 그런데 여기 대구FC를 응원하는 한 외국인 여성 팬이 있다. 그녀는 정말 특별한 팬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것도 아니며 한국어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벌써 3년 가까이 대구를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울산 현대전이 열리던 날 대구 경기를 보기 위해 직접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서 날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티’라고 밝힌 그녀는 홍콩 축구를 응원하고 있는 팬 중 하나였다. 동시에 한국 축구에 관심이 많으며 대구를 응원하는 열성적인 팬이었다. 그녀는 “대구 경기를 보기 위해 어제 홍콩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다”면서 대구 유니폼을 꺼내들었다. 홍콩에 사는 그녀가 어떻게 대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축구선수 한재웅이 나와 대구FC를 이어줬다”

크리스티와 K리그를 이어준 선수는 한재웅이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동안 무려 7번이나 이적했던 ‘저니맨’ 한재웅은 2015년 홍콩 프리미어리그에서 홍콩 레인저스FC와 이스턴SC에서 뛴 경험이 있다. 당시 크리스티는 홍콩 리그에서 뛰던 한재웅의 플레이에 매료됐다. 그녀는 “한국에서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홍콩에서만큼은 뛰어난 선수였다”고 강조했다.

홍콩에서 뛰던 한재웅이 2016년 대구FC로 이적하자 자연스레 크리스티의 눈길은 K리그의 대구로 향했다. 그녀는 “한재웅이 팀을 옮기면서 대구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한재웅을 보기 위해 지난 2017년 5월에 처음 대구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녀가 방문했던 그날은 대구와 상주 상무의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다. 그녀는 “손현준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 이후 안드레 감독 대행의 첫 공식 경기였다”고 말하며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구FC에서 은퇴한 한재웅 ⓒ 대구FC 공식 홈페이지

그렇게 한재웅을 보기 위해 대구로 날아온 크리스티는 그렇게 대구 축구에 매료됐다. 그녀는 “당시 대구는 K리그1에 막 올라온 팀이었다. 매번 대구에 올 수 없었기에 홍콩에서 인터넷으로 대구의 경기를 시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대구 경기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2018년 12월 마침 대구는 울산과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대구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말았다.

1년 만에 다시 방문한 대구, FA컵 우승을 지켜보다

당시 대구의 FA컵 결승 2차전 경기는 대구 스타디움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다. “그때 대구가 울산을 3-1로 꺾고 역사적인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는 크리스티는 ‘포레스트 아레나’라는 새 축구전용구장이 지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꼭 다시 대구를 방문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먼 홍콩에서 대구를 왕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크리스티의 이야기를 듣던 중 “아무리 대구의 새 경기장이 보고 싶었다 하더라도 대구와 홍콩을 왕복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새 경기장뿐만 아니라 올 시즌 대구의 시작이 매우 좋다. 그래서 꼭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사실 이번 울산전 일정은 매우 여유로운 축에 속한다”고 밝혔다.

사실 크리스티는 지난해 FA컵 결승 2차전이 열리던 당일 홍콩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대구로 와 대구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대구가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다음날 서울로 가 FC서울-부산 아이파크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를 관람했다. 그리고 다시 대구로 내려와 다음날 홍콩으로 돌아갔다. 지난해에 비하면 올해 일정은 무척 여유롭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대구를 향한 크리스티의 사랑은 대구 서포터즈 못지않았다. 대구와 관련된 굵직굵직한 일들을 모두 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올 시즌 대구는 세징야를 비롯한 외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면서 예리한 분석을 하기도 했다.

대구FC에서 은퇴한 한재웅 ⓒ 대구FC 공식 홈페이지

“세징야는 마법사, 대구가 너무 마음에 든다”

울산전이 시작되기 전 일찍 경기장을 방문해 DGB대구은행파크를 둘러봤다는 크리스티는 “매우 멋진 축구전용구장이다. 특히 경기를 관람할 때 시야가 완벽하다. 여기에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대구의 성적이 좋아 팬들이 많이 몰리는 것 같다. 세 경기 연속 매진이 이를 대변해준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징야를 두고 “Magician(마법사)”이라 부르며 “K리그 최고의 선수”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크리스티에게 대구는 홍콩 못지않은 ‘집’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사람이 많아 북적이는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홍콩은 매우 북적이는 도시다. 매일같이 북적임을 겪다보니 덜 붐비는 곳이 좋더라. 서울 여행을 가도 항상 서울 바깥으로 나간다. 대구가 너무 큰 도시도 아니고 있을 것 다 있으면서 너무 붐비지도 않아 마음에 든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시내에 위치한 축구전용구장까지 있으니 그녀에겐 대구FC가 최고의 클럽인 셈이다.

“대구에 다시 올래요”

크리스티는 월요일 아침 홍콩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번 여정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만약 대구가 ACL 4강이나 결승에 올라가게 되면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물론 K리그1도 그렇고 FA컵을 포함한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 한국을 다시 방문하려고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크리스티에게 “사진 한 장 찍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요청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산 올 시즌 대구 유니폼으로 갈아입더니 대구 선수들과 조광래 대표가 있는 사진 앞으로 가 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축구에서만큼은 홍콩 사람이 아닌 대구 토박이와 다름없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더라도 대구를 향한 마음은 대구 팬들과 똑같았다. 비록 그녀가 응원하던 한재웅이 지난해 1월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젠 한재웅을 넘어 대구 선수단 전체를 응원하는 홍콩 팬이 됐다.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