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남해=조성룡 기자]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아산무궁화의 전지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경상남도 남해에서 <스포츠니어스>와 마주한 이명주는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했다. 순간 위기를 직감했다. 재밌는 내용을 듣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긴장감이 몰려오면서 추운 겨울 날씨에 복숭아 아이스티를 쭉쭉 들이켰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이명주는 이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을 피하지 않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지난 시즌 이명주는 아픔이 많았다.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고 시즌 막바지 소속팀 아산은 존폐 위기에 놓이면서 불투명한 미래로 그를 답답하게 했다. 그와 함께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들을 돌이켜봤다.

존폐 위기에서 살아남아 더욱 소중한 전지훈련일 것 같다.

정말 감사함이 느껴지는 전지훈련이다. 사실 지난 연말 아산이 존폐 위기에 놓이면서 나를 비롯한 14명의 선수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자주 모여서 회의도 했다. 만일 아산이 사라진다면 전역까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전역 전까지 개인 훈련을 해야하니 14명이 돌아가면서 코치 역할을 맡으며 경기 감각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게다가 한 번 살아남는다고 했다가 다시 번복되지 않았는가. 선수들 입장에서는 조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한다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 팀이 살아남았다. 이 자리를 통해 아산 구단 박성관 대표님을 비롯해 우리 팀의 생존을 위해 신경써주신 아산시 관계자 등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걱정도 벌써 옛날 일이 됐다.

요즘 드라마 'SKY캐슬'이 화제인데 팀도 살아남았으니 좀 마음 편하게 볼 것 같다. 우리 회사 대표는 그 드라마 본다고 일을 안해서 걱정이다. 나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못보게 하더라.

내가 드라마를 잘 안본다. 그런데 'SKY캐슬'은 정말 유명해서 딱 한 번 봤다. 첫 회를 본 것도 아니고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는 회차를 봤다. 정말 보자마자 중독성이 대단한 것 같더라. 이야기를 잘 모르는 나도 빠져들어서 한참 봤다. 왜 다들 그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더라. 그래도 나는 그 회차 하나 보고 'SKY캐슬'을 보지는 않고 있다.

사실 다른 이유로 'SKY캐슬'을 알고 있다. 종종 싸이버지식정보방(싸지방)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볼 때가 있다. 나에 대한 팬들이나 미디어의 평가가 궁금해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본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갑자기 연관검색어에 이상한 단어가 뜨는 것이다. 이명주를 검색하면 'SKY캐슬 이명주'가 뜬다. 이것은 약과다. 심지어 '이명주 자살'이라는 단어도 뜨더라.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SKY캐슬'에서 배우 김정난 님이 이명주 역을 맡아 열연했다고 들었다. 그 분이 전업주부인데 아들 박영재를 서울대 의대에 보냈더라. 그런데 아들이 "당신 아들로 사는 건 지옥이었다"라며 의절을 선언하는 바람에 절망에 빠져 자살했다고 하더라. 갑자기 내 이름 연관검색어에 '자살'이 뜨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찾아봤다. 당분간 그 연관검색어 계속 있을 것 같다.

군인에게 TV는 낙인데 놀랍다. 그렇다면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믿겨지지 않겠지만 책을 읽는다. 사실 아산에 독서 모임이 있다. 김상필 회장'님'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와 김도혁 등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이다. 언제 한 번 우리 독서 모임 조명해달라.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군 생활 하면서 그저 축구만 하면 안될 것 같아 만든 모임이다. 허송세월하지 않고 자기계발을 하면서 전역 이후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기 위해 독서 모임이 생겼고 최근에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거창하게 무엇을 하는 모임은 아니다. 각자 책을 읽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모여서 발표하면서 소개하고 책의 내용에 대해서 토론한다. 나는 처음에 쉽지 않았다.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누군가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훈련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숙소에서 책을 읽거나 독서 모임 발표 준비를 하는 것이 내 일과다.

주로 무슨 책을 읽는가?

요즘 관심이 많이 가는 분야가 생겼다. 재테크다. 주로 재테크 책을 많이 읽고 있다.

돈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아랍(UAE 알 아인)에서 3년 동안 그렇게 벌고 또 돈을 불리려는 것인가.

에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워낙 돈을 잘 모으지 못했다. 재산을 모으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돈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군 복무를 하면서 월급이 확 줄어들어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하. 농담이다. 그런데 진짜 요즘 기저귀값 분유값 정말 비싸긴 하다…

한창 '분유버프'가 필요한 시기에 입대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한 생각이기도 하다. 30대가 됐으니 은퇴에 대한 생각도 해야한다. 나는 은퇴를 하면 지도자를 하고 싶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지도자들을 봤다. 그들 중에는 돈으로 인해 자신이 꿈꾸는 축구를 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하더라. 내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축구를 구현하고 중심을 잡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재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전문가가 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잘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행동력이다. 나는 지금 지식만 쌓고 있는 중이지 아직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언젠가는 여기에서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번 실행에 옮겨보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저 뜬구름 잡는 것처럼 생각만 할 뿐이다. 언제 행동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말 나온 김에 아랍에서의 생활 좀 들려달라. 딱 봐도 '럭셔리'하게 살았을 것 같은데.

많은 팬들이 중동 지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 '많이 번다'거나 '부자처럼 산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다른 곳에서 뛰는 것에 비해 비교적 많은 연봉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부자처럼 살고 그러지는 않았다. 내가 뛰던 알 아인이 있는 곳은 UAE에서 나름 시골 동네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UAE의 두바이나 아부다비 같은 동네가 아니다. 시골에서 무슨 럭셔리인가. UAE에서 나의 생활은 평범했다.

평범한 생활은 어느 정도인가? 외국인 선수들은 좋은 집에 산다는데 당신은 어땠는가.

집도 검소했다. 방 네 개에 단지 내부에 수영장이 딸린 빌라에서 살았다.

누구 놀리는가.

진짜다. UAE에서는 이 정도면 검소하게 사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들의 경우 구단에서 제공하는 집이나 빌라에서 거주한다. 나는 시골 동네여서 이 정도인 것이다. 연고지가 두바이인 팀의 경우 외국인 선수들에게 주는 집이 어마어마하다. 그 두바이에 부채꼴 모양으로 만든 세계 최대의 인공 섬(팜 아일랜드) 있지 않는가. 두바이 지역 외국인 선수들은 그곳에 딸린 호화 주택에서 산다더라.

돈도 돈이지만 UAE에서의 생활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다들 더위를 걱정하는데 한낮에 밖에 나가지만 않으면 그리 덥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온도 자체는 높으니 훈련을 주로 밤에 한다. 그래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일어나면 아침 먹고 단지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다. 그리고 쉬고 밥 먹고 훈련 나갔다가 때로는 사막도 놀러가고 마음 맞는 선수들과 양고기 파티도 했다.

한국은 살다보면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워낙 정신없이 일상이 돌아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UAE에서는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바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UAE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처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UAE에 갔을 당시 누나와 매형이 내 적응을 돕고자 함께 갔다. 나보다 두 분이 더 UAE를 좋아하시더라. 지금도 가끔 매형은 나보고 "UAE 다시 가자"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하하. 그만큼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이 또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양고기'다. 얼마 전 상주상무 윤빛가람은 양고기에 대해 "옌벤이 원조다. 진짜 맛있다"라고 하더라.

에이, 양고기의 원조는 중동이다. 중동 양고기의 맛은 그 어느 곳과도 비교가 안되게 맛있다. 우리는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 파티를 한다. 미리 마음 맞는 선수들과 "오늘 양고기 먹을래?"라고 통하면 아는 곳에다 전화를 한다. 일종의 예약이다. 그렇게 예약을 하면 양고기를 부위 별로 요리해서 준비해준다.

심지어 양도 먹기 좋고 육질이 부드러운 어린 양을 사용해 요리한다. 예약한 곳에 가면 중동 원주민 특유의 천막 안에서 사막 경치를 즐기며 먹는다.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하나도 없다. 정말 맛있다.

UAE의 삶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혹시 구단주와 친하면 나의 이직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스포츠니어스>에 제출할 사직서는 미리 준비하겠다.

그냥 계속 오래오래 <스포츠니어스>에 뼈를 묻으시라. 나도 구단주를 몇 번 보지 못했다. 선수단 격려 때 저 사람이 구단주라고 하기에 그 때 알았다. 워낙 구단주가 바쁜 사람 아니겠는가. 당신 이직 자리 알아봐 줄 정도로 친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 구단주가 돈은 엄청 많다고 들었다. 듣기로는 맨체스터 시티를 가지고 있는 '만수르' 형님보다 돈도 많고 권력도 세다고 하더라. (알 아인의 구단주 모하메드 빈자이드 알 나흐얀은 UAE의 실세로 대통령의 이복동생이자 아부다비의 왕세제다. 국민들의 지지도도 굉장히 높고 재력 또한 만수르보다 많다고 알려져 있다. 알 아인은 그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UAE 리그의 강호로 군림했다)

그것도 벌써 옛날 얘기다. 당신은 FC서울을 거쳐 벌써 군 생활 2년차다. 그러고보니 원소속팀인 서울이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ㅍ…

정말 나도 많이 당황했다. 아무래도 원소속팀이 서울이니 경기나 스코어 등은 챙겨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자꾸 지더라. '이럴 팀이 아닌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내려가더라. 그나마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아 다행이다. 아찔한 경험을 했으니 서울은 이제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전역하면 어느 정도 힘을 보태면 좋을 것 같다.

한창 '분유버프'가 필요한 시기에 입대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동기 김도혁을 많이 놀렸다. 김도혁의 원소속팀이 인천유나이티드다. 인천이 스플릿 라운드 초반까지만 해도 유력한 강등 후보이지 않았는가. 그래서 주세종과 같이 "어차피 원소속팀 K리그2 내려올텐데 여기서 말뚝 박아라"고 놀렸다. 그런데 서울과 상주의 경기가 끝나고 나서 김도혁이 우리에게 오더라. "어차피 원소속팀 K리그2 내려올텐데 여기서 말뚝 박는 게 어떻겠냐"더라. 똑같이 당했다. 솔직히 그렇게 당하게 될 줄 알았나…

서울도 힘들었지만 이명주 또한 지난 시즌이 힘들었을 것 같다.

뭐 그렇게까지 힘든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2017년 동아시안컵 마치자마자 육군훈련소에 입소해 훈련병 생활했던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하하. 물론 2018 러시아 월드컵에 가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팀이 존폐 위기에 몰렸을 때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엄청 힘들게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니 괜찮다.

국가대표에 대한 꿈은 여전히 있다. 오히려 러시아 월드컵 엔트리 탈락으로 인해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는 것을 알았다. 월드컵 전까지 자주 국가대표에 승선했지만 정작 월드컵은 가지 못했다. 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지만 이런 교훈을 얻었다. 사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욕심 난다. 지금부터 2022년을 준비하려고 한다. 몸 관리 잘하고 꾸준히 좋은 실력 보여주면서 그 때는 마지막에 웃고 싶다.

그러려면 이번 시즌 또한 잘 보내야 한다. 특히 당신은 아산의 주장을 맡았다.

책임감이 무겁다. 올해 아산은 의경 신분인 선수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합류했다. 의경 선수들의 나이는 대부분 많은 반면 새로 합류한 선수들은 어린 편이다. 서로 신분이 다른 상황에서 나이 차이도 제법 나는 상황이다.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융화가 잘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장인 내가 선수들을 잘 조율해야 한다. 아산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정말 어렵게 이번 시즌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올해 전역이라고 대충 뛰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감사하게 여기면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비록 지난 시즌 우승했지만 승격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내가 전역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승점을 선물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이에 대한 보답은 좋은 경기력과 승리 뿐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과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는 감사함 때문일까. 낯을 가린다는 이명주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K리그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의경과 일반인의 혼합 팀에서 그는 주장을 맡았다. 과연 이명주는 다시 한 번 아산을 K리그2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끌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그는 지금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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