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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성폭력 사건이 체육계를 강타하고 있다. 심석희가 자신의 스승인 조재범 코치로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체육계 성폭력 사건을 뿌리 뽑자는 거센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테니스와 유도 등에서도 성폭력 사건을 고백하는 등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곪아왔던 게 터졌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만큼 체육계는 지금껏 성폭력에 대해 방관했고 숨겨왔다.

하지만 최근 이어진 성폭력 사건은 개인 종목에 치중됐다. 단체 종목이나 구기 종목에서의 성폭력 폭로는 아직 없었다. 이곳은 과연 안전지대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포츠니어스>가 단독으로 취재한 여자축구계 성폭력 사태는 충격적이다. 감독은 물론 구단까지 나서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려고 했던 정황이 여기저기 포착됐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여자축구의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려 한다.

갑자기 “개인 사정 있다”며 사라진 감독

WK리그 경주한수원은 2016년 창단한 신생팀이다. 남자축구 내셔널리그에 속한 경주한수원과 운영 주체가 같다. 경주한수원여자축구단은 창단 사령탑으로 하금진 감독을 발탁했다. 하금진 감독은 수비수 출신으로 1997년부터 2년간 K리그 대전 시티즌에서 뛰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남자 한수원팀에서 활약한 그는 선수 은퇴 후에는 동명초 코치, 춘천기계공고 코치 등을 거쳤다.

이후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2010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 지도자로 생활했고 2011년 U-15 남자대표팀 수석코치, 2012년 U-16 대표팀 코치 등을 역임했다. 2014년에는 U-20 여자대표팀 코치, 2015년 U-16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경주한수원 초대 감독 공개 모집에 서른 명 가까운 지도자가 지원했고 하금진 감독이 최종 선택을 받았다. 그렇게 경주한수원은 2017년 3월 창단식을 열고 국내 8번째 여자축구 실업팀이 됐다.

지난 해 창단 2년차를 맞은 경주한수원은 WK리그에서 줄곧 3~4위를 유지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지난 해 9월 하금진 감독이 자취를 감췄다. WK리그 경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고문희 코치가 벤치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W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경주한수원은 고문희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내세웠다. 하금진 감독의 근황을 묻자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는 답변 뿐이었다.

경주한수원 하금진 감독은 지난해 9월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팀을 떠났다. ⓒ대한축구협회

성추문, 그리고 더 추악한 구단의 은폐 시도

하지만 하금진 감독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하금진 감독이 선수단 내에서 성추문을 일으키며 퇴출된 것이었다. 하금진 감독은 구단 선수단 소속 A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고 이를 A가 코치들에게 알렸다. 코치들 역시 지속적인 제보로 이 사건을 구단 측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단에서는 고심 끝에 하금진 감독에게 팀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를 했다. 물론 성폭력 사건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구단은 성폭력 가해자를 사법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았고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당시 이 사건을 접한 한 관계자는 “다른 선수들도 하금진 감독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들었다”면서 “구단 내부는 물론 여자축구계 전체에도 싹 퍼진 이야기”라고 전했다. 경주한수원은 사건을 일찌감치 무마하기 위해 하금진 감독을 조용히 내보내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팀을 나갔다”고 축소했다. 그 사이 하금진 감독이 떠나고 고문희 코치가 이끈 팀은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해 ‘최강’ 인천현대제철과 명승부를 펼쳤다. 비록 우승에 실패했지만 창단 2년차 팀의 돌풍이었다.

하지만 취재 후 하금진 감독 성폭력 사건의 또 다른 충격적인 이면이 밝혀졌다. 구단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행동을 자행했다는 것이었다. 경주한수원은 선수단 전원에게 “이 사실을 그 어디에서도 발설하지 않겠다”라는 각서까지 받아냈다. 각서에는 '만일 이 사건을 발설할 경우 팀에서 나간다'는 조항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문 논란을 숨기기 위한 일이었다. 피해자는 조용히 내보내면서 감쌌지만 오히려 피해 주체인 선수단에는 각서까지 받아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특혜를 제안하며 입막음까지 시도했다. (특혜 내용을 언급할 경우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어 구체적인 특혜 내용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경주한수원 하금진 감독은 지난해 9월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팀을 떠났다.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계 “언젠간 터질 일이었다”

해당 사건 취재 도중 여러 선수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들의 답변은 하나 같이 “모른다”거나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 선수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각서까지 써서 말씀드릴 수가 없다”며 “구단을 통해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용기를 낸 제보자 덕분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가해자인 하금진 감독도 지탄 받아야 하지만 이 사건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처벌은커녕 선수단에게 발설 금지 각서를 받아낸 구단 역시 더 큰 가해자라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취재 과정에서 경주한수원 측에 입장을 요구했다. <스포츠니어스>가 경주한수원여자축구단 측과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사실에 대해 묻자 “어떤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더니 “현재 담당자가 다 출장과 교육 중이다. 사무실에는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해 줄 담당자가 아무도 없다. 추후에 연락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혹시 그러면 담당자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할 수 있느냐. 입장을 듣고 싶다”고 하자 “개인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들어 체육계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의 성폭력 사태 고발은 사실상 처음이다. 한 축구인은 “여자축구에는 엄청난 성폭력 사건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그게 터지지 않고 감춰져 온 게 신기할 정도다. 문제를 일으켰던 감독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돌아오는 게 현실”이라면서 “이 기사를 통해 여자축구계의 성폭력 사태 고백이 시작됐으면 한다. 언젠간 터질 일이었는데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반드시 터졌어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경주한수원 하금진 감독은 지난해 9월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팀을 떠났다. ⓒ대한축구협회

구단의 은폐, 성폭력 만큼이나 무서운 폭력

여러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성폭력 문제는 없어야 한다. 또한 성폭력을 두둔하고 은폐하는 구단에는 더 큰 죄를 물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 팀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운영하는 공기업 팀이다. 최근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일명 ‘미투 응원법’에는 국가기관, 공공단체 등의 장과 종사자는 기관 내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때에는 지체 없이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하고 해당 사건을 은폐·축소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성폭력 문제가 터지면 피해자의 입을 막는 구단의 행위는 성폭력 가해 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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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한수원 측은 “외부 기관인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에서 피해자 및 참고인 조사 시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작성하였으나, 이는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센터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절차로, 한수원이 선수단 전원에게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적이 없으며 피해자에게 특혜를 제안한 적도 없습니다”라는 입장을 전해왔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