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중학교 체육 시간에 축구만 하면 레인보우 플릭, 흔히 말하는 사포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공은 꽤 찼는데 누가 앞에만 있으면 꼭 사포를 하려고 했다. 물론 성공률은 극히 낮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골을 넣는 것보다는 발 사이에 공을 끼고 상대 수비를 제치는 일을 더 즐겼다. 우리는 체육대회 축구 예선에서 그 친구와 약속을 했다. 경기 도중 절대 사포를 쓰지 않아야 끼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친구는 우리와의 약속을 지켰고 경기 도중 사포를 시도하지 않았다. 아직도 가끔 축구 개인기 하는 동영상을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른다.
꼭 그 기술이 필요했을까?
사포를 실제 축구에서 보는 건 쉽지 않다. 춤으로 치면 문워크 같은 거고 길거리 농구로 치면 덩크슛 같은 거다.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데 우리가 쉽게 실제 축구에선 볼 수 없는 개인기다. 동네 축구에서 개인기를 적당하게 잘 쓰는 친구들도 실전에서 쓰기란 어려운 기술이다. 동네 축구에서 가끔 이 기술을 잘못 쓰다가는 흔히 말하는 ‘역관광’을 당하거나 상대와 시비 붙기에 딱 좋다. 현란한 발재간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선수들도 경기 도중에 이 기술을 썼다가는 상대를 농락했다는 이유로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실제 축구에서 쓰기도 어렵고 쓸 때도 위험부담이 따른다. 유럽 축구에서도 사포를 시도하는 순간 수비수가 그냥 공격수를 몸으로 밀어버리는 일도 잦다.
그런데 황희찬이 이 기술을 썼다. 그것도 유튜브 축구 레슨 영상이 아니라 실제 축구에서, 금메달을 따야 본전(?)인 아시안게임에서 이 개인기를 시도했다. 황희찬은 지난 20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조별예선 E조 3차전 키르기스스탄과의 경기에서 사포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황희찬은 후반 20분 상대 수비 진영에서 돌파를 시도하다가 드리블 탄력을 이용해 공을 위로 띄운 후 상대 수비수를 넘기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이번 대회에서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황희찬이 과한 개인기를 시도했다는 비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후반 20분까지 1-0으로 간신히 이기고 있었다. 여유있는 개인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황희찬은 비난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말레이시아와의 지난 2차전에서 황희찬이 상대와의 악수도 거부한 채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는 소식까지 접해지며 비난은 극에 달하고 있다. 팀 분위기도 어수선한 상황에서 현실성이 부족한 개인기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는 당연히 지적받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사포라는 개인기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도발적인 기술로 비춰질 때도 많다.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이 기술을 쓸 경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꼭 이 기술이 아니어도 돌파는 충분했다.
사포도 축구 기술 중 하나지만…
사포라는 개인기 자체를 축구에서 금지할 수는 없다. 이 기술 시도 자체로도 선수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화려하고도 위험한 기술을 시도하는 건 그 이후 실패 상황에 대해서도 비난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나는 황희찬을 사포 시도 자체로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상대가 도발로 여길 수 있어도 그 순간 자신이 그 기술을 써 상대를 돌파해 낼 자신이 있으면 사포가 아니라 오포, 육포 다 써도 된다. 사포가 장기인 선수라면 상대와 일대일로 마주했을 때 헛다리 돌파가 아니라 사포로 상대를 뚫어도 된다. 논란이 일 수는 있어도 사포 역시 축구의 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술을 실패했을 때의 비난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파넨카킥을 떠올려보자. 지네딘 지단은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파넨카킥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월드컵 결승 무대에서 대담하게도 공을 툭 골문 가운데로 찍어 차 득점하는 지단을 보며 경악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이건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지단은 그래서 더 이 킥으로 찬사를 받았다.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킥이었으면 이 정도로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했을 때 그가 만약 이 파넨카킥을 실패했다면 어땠을까. 그냥 구석으로 강하게 차도 되는 상황에서 잔뜩 허세를 부렸다며 두고 두고 비난 받았을 것이다.
이처럼 화려하고 위험 부담이 큰 기술은 실패하면 당연히 엄청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기술을 선택하는 이유는 하나다. 성공하면 안전한 플레이를 한 것 이상의 찬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실패했을 경우는 보통 먹을 욕 이상의 욕을 먹으면 된다. 사포건 파넨카킥이건 마찬가지다. 막히면 우리 팀 전체 분위기에 타격을 주고 개인적으로도 시도 자체로도 비난 받을 만한 기술이다. 그런데도 위험 부담을 안고 시도하는 건 성공했을 때의 희열을 위해서다. 어린 시절 씨름장에서 꼭 시키지도 않은 백덤블링을 하는 애들이 있었다. 다쳐도 누가 책임지지 않는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다치면 등짝 스매싱을 당할 일이다. 사포나 파넨카킥도 마찬가지다.
사포와 파넨카킥,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일부에서는 사포가 경기를 이루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 역시 상당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사포는 늘 상대적으로 강한 팀 선수가 이기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약한 팀 선수에게만 쓰이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한다. 사포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포를 시도하는 선수가 상대에게 도발을 하려는 의도로 쓰이는 게 문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포는 문제가 없다. 명백히 잘하는 선수가 상대적으로 기량이 부족한 선수들에게 자기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쓰이는 게 문제다. 반대 의견도 충분히 존중하지만 그러려면 황희찬이 상대적으로 기량이 부족한 키르기스스탄이 아니라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에서도 당당하게 사포를 시도했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독일전에서 황희찬의 사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황희찬이 상대를 비하할 의도로 쓴 기술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추측으로 선수를 비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 기술 하나로 충분히 그럴 의도가 보일 수 있음을 스스로 조심했어야 한다. 축구를 1~2년 한 선수가 아니니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 것이다. 아무리 경기 도중 쓸 수 있는 개인기라고 해도 실효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기술을 쓰는 건 상대를 농락하는 걸로도 보일 수 있고 우리도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걸로도 보일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오해이길 바란다. 황희찬이 그 순간 상대를 제압하는 가장 적절한 기술이 사포라고 판단하고 구사했다면 그 자체로도 존중 받아야 한다.
나는 아직도 사포라는 개인기를 누군가 이야기할 때면 중학교 시절 사포를 시도하던 그 친구와 함께 부산아이콘스에서 뛰던 하리가 생각난다. 내 친구가 동네 축구에서 사포를 할 때 하리는 유일하게 실제 어른들의 축구 경기에서 사포를 시도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 하리 만큼 실력을 보여준 외국인 선수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하리를 기억하는 건 그가 실제 경기에서 보여준 사포 때문이었다. 같은 의미에서 파넨카킥을 고집하는 윤승원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FA컵 결승 수원삼성과의 승부차기에서 파넨카킥으로 골을 성공시킨 윤승원은 이후 지난 1월 베트남과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D조 1차전에서 선발로 나서 또 다시 파넨카킥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김학범호, 더 신중하고 성숙해지길
사포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여전히 하리를 떠올리고 파넨카킥이 언급될 때면 윤승원을 계속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이 두 기술은 성공해도, 실패해도 팬들의 뇌리에 남는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성공하기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이다. 모든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도 시도해야 하는 기술이라 더 오래 회자된다. 동네 농구에서 레이업슛으로 안전하게 골을 넣어도 되는데 굳이 덩크슛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면 욕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파넨카킥을 차고 골 넣으면 영웅이 되는 거고 실패하면 더 많은 욕을 먹는 거다. 단순하다. 뭐 파넨카킥이야 골키퍼와의 심리 경쟁을 무너트리는 측면이 있다고 봐도 되겠지만 사포는 사실 드리블 기술이라기 보다는 축구 묘기에 가깝다. 활용성 측면은 거의 없는 시각적 효과에 중점을 둔 묘기에 더 가깝다고 봐야한다.
간단하다. 황희찬이 처음부터 그런 도발적이고 위험한 기술을 안 했으면 된다. 늘 하던 것처럼 상대 수비를 앞에 두고 돌파를 시도하거나 패스를 했으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 다음, 황희찬이 정 사포를 하고 싶었으면 성공해야 했다. 공을 양 발 사이에 넣고 머리 위로 올리려는 순간부터는 실패하면 전국민에게 비난 받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그러다 실패한 기술이니 비판 받아도 할 말은 없다. 왜?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기술이었지만 화려하고 멋진 기술을 성공했을 때의 찬사와 그 정도 비난에 대한 부담은 맞바꿀 수밖에 없다. 사포가 아니라 헛다리 개인기 정도 하다가 빼앗겼으면 황희찬에게 이 정도의 비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디 이 비난이 선수의 자신감을 떨어트리는 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굳이 쓰지 않아도 될 화려한 기술까지 써가며 경기를 그르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말레이시아에도 패하며 대표팀은 조1위에 오르지 못했다. 민감한 상황에서 성공해봐야 잠깐 이목이나 끌고 말 기술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황희찬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이 이 비난을 계기로 더 성숙해졌으면 한다. 플레이 하나 하나에 모든 이들이 관심을 끌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