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월드컵을 보다 더 현명하게 준비해 보자. ⓒRussianPresident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18 러시아월드컵이 열리기 전부터 신태용 감독을 향한 비난은 도를 넘었다. 선수 기용으로도 욕을 먹었고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도 온갖 비난을 받았다. 흔히들 대표팀 감독을 ‘독이 든 성배’라고 하지만 나는 이게 성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이 든 소주잔’이다. 별로 이득 볼 만큼 엄청난 영광을 주지도 않는데 독만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4년 전 홍명보 감독을 그렇게 총알받이로 세웠다가 날렸고 4년 뒤에는 신태용 감독에게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최근 들어 대표팀은 온전히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욕하는 이들이 넘쳐났고 독일을 이겨도 달걀을 던졌다. 하긴 허정무 감독은 원정 첫 16강에 진출하고도 ‘선수빨’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1588-2002, “지금 바로 전화주세요”

나는 허정무 감독도 높이 평가하고 신태용 감독도 훌륭한 지도자라고 믿는다. 그저 협회가 비리로 찌들었고 인맥으로 점철된 곳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나도 협회 나팔수일지 모른다. 홍명보 감독의 월드컵 준비 과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를 너무 일찍 대표팀에 앉히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홍명보 감독도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도 믿는다. 하지만 대중은 히딩크 감독이 아니면 다 적폐 취급한다. 축구가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분열시키고 있다. 고민 끝에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제부터 그 누구도 욕 먹지 않는 아주 좋은 방법을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대표팀을 향해 달걀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ARS로 대표팀 선수를 뽑고 전술을 짜면 된다.

참신하지 않은가. 먼저 협회는 1588-2002 번호를 개설한다. 누구나 30초당 5천원 밖에 하지 않는 이 ARS 전화를 걸면 된다. 전화를 걸면 이런 안내 멘트가 나온다. “선수 선발은 1번, 전술은 2번을 눌러주세요.” 같은 방식으로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설문 조사 링크를 띄우는 거다. 물론 실력과 장래성은 중요치 않다. 오로지 국민의 뜻인데 그런 건 필요 없다. 사상 최초로 감독 없는 월드컵을 한 번 준비해 보자. 인맥과 학연, 지연에 얽매여 장현수나 뽑는 ‘축협 윗대가리’보다도 설문 조사로 선수를 뽑으면 훨씬 더 투명한 선수 선발이 될 것이다. 이러면 백승호도 뽑히고 장결희도 뽑을 수 있다. 아직 90분 풀타임 활약을 보지도 못했지만 이강인도 뽑힌다. 실제 경기 좀 못 보면 어떤가. 유럽에서 뛰는데 ‘인맥 축구’ 장현수보다는 낫겠지. ‘축알못’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보다도 낫겠지.

아, 물론 문제점도 조금은 있다. 아주 작은 문제라 언급할까 말까하다가 살짝 언급하겠다. 1998년 월드컵이 끝나고 “2002년 월드컵에서 활약한 선수는 누구일까?”라는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서정원, 고정운, 이상윤, 하석주, 고종수, 이동국 등이 높은 순위에 랭크됐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언급한 이 선수들은 단 한 명도 2002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지 못했다. 설문 조사로 대표팀 선수를 뽑았으면 아마 지금도 50대의 홍명보와 황선홍, 서정원이 대표팀에 있을 거다. 아니 그 전에 최순호 세대가 계속 대표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박지성은 못 나왔을 것이다. 아마 2000년 시드니올림픽 설문조사에서부터 박지성은 이름도 못 올렸을 테니 말이다. 이런 문제점이야 ‘국민의 뜻’인데 뭐 큰 문제는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곳에서 한국 축구가 버텨내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축사국' 캡처

ARS 대표팀, 달걀 던질 일이 없다

ARS 설문조사 1번 항목에서 선수를 뽑았으면 이제 2번 항목으로 넘어가 전술을 골라보자. “4-4-2는 1번, 4-3-3은 2번, 3-5-2는 3번, 3-4-3은 4번을 눌러주세요. 전 단계로 가려면 별표, 처음 단계로 가려면 우물 정자를 눌러주세요.”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공항까지 가 한국 축구를 조롱하며 달걀을 던질 필요가 없다. 앉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고르면 된다. 4번 3-4-3을 골라 홍명보와 최진철, 김태영이 지금도 스리백을 구성하게 하면 그 지긋지긋한 장현수와 김영권 조합을 보지 않아도 된다. 아, 김영권은 ‘까방권’을 얻었나. 헷갈린다. ‘까방권’을 얻기 전까지는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설문조사를 해 김영권을 안 썼으면 독일전 골도 없었을 것이다. 복잡하지만 패스하자.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전세계 최초로 ‘국민의 뜻’에 따른 감독 없는 대표팀 아닌가.

이러면 신태용 감독처럼 욕 먹는 감독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월드컵 세 시간 전 선발 베스트11 투표를 시작하자. MC 김성주가 사회자로 나와 “전국의 축구팬 여러분, 지금부터 투표를 해주세요”라고 외치면 된다. 그러면 죽어도 김영권과 장현수는 뽑힐 리 없다. 조현우는 아예 엔트리에도 없을 것이다. 골키퍼 자리를 놓고는 김병지와 이운재가 1,2위를 다투고 있지 않을까. 물론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다수결로 뽑는 건데 내가 원하는 선수가 뽑히지 않으면 그냥 대중이 우매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공격진에는 이동국이 20년째, 박주영이 15년째 주전으로 뛸 것이다. 기성용은 아파도 나와야 한다. 국민의 뜻이니까. 그런데 자꾸 머리 속이 복잡해 진다. 누군가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어린 김병지와 이운재, 이동국, 박주영, 기성용이 대표팀에 처음 뽑힐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 선수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

모르겠다. 그냥 설문조사로 뽑아서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팀을 만들어 보자. 그래야 달걀 맞을 일도 없고 다른 축구인 대신 신태용이 죽었어야 한다는 정신 나간 단체도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경기가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바로 작전을 지시하는 설문조사가 시작된다. 공격수가 최전방에서 한 번 헛발질을 하면 전화기를 들거나 인터넷에 접속한다. 치킨을 먹으며 “아오, 저 XX 빼”라고 중얼거릴 것도 없다. 설문 투표가 어느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바로 교체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박주영이 빠지고 이승우를 넣자. 이승우가 몸 싸움에서 한 번 밀리면 또 빼면 된다. 우리가 원하는 축구가 이런 모습 아니었나. 협회와 감독이 인맥 축구를 하니까 그 고리를 끊고 국민이 원하는 뜻에 따라 여론을 적극 반영하는 모습 아니었나. 이 ‘클린 대표팀’에 박수를 보내자. 이러면 장현수는 월드컵에 나올 일도 없겠지만 혹시 월드컵에 나가 페널티킥을 내줬을 때 ARS 9번 상담원 연결을 눌러 “바로 귀국”을 외치면 된다. 10초당 3만 원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곳에서 한국 축구가 버텨내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축사국' 캡처

‘휘둘리고 치인’ 대표팀, 정말 고생했다

물론 성적은 잘 나올 것이다. 독일을 이기고 돌아왔는데도 달걀을 던지시는 분들이 지휘하는 대표팀인데 8강 정도는 애들 장난이다.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에서 장현수를 여전히 연대 라인 인맥 축구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대표팀을 운영하면 아주 투명한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잘 되면 아예 협회 임원들도 ARS 투표로 뽑자. 히딩크 감독을 대한축구협회장에 앉히고 박지성 해설위원도 공동 회장으로 임명하자. ARS 인기투표라면 안 될 게 없다. 물론 그 분들이 고사하면 조르면 된다. 거절하면 적폐로 몰자. 아니면 협회의 거대한 음모 때문에 이 분들이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자. 유튜브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동조하면 된다. 이왕 하는 거 이 참에 히딩크 감독도 데려오고 퍼거슨 감독도 데려오고 벵거 감독도 모셔오자. 물론 그들을 모셔올 돈은? 아 몰랑, 그런 거 따지면 적폐다. 썩어빠진 ‘한국축구협회’, 이 참에 개혁 한 번 해보자.

이런 방법을 쓰면 아주 손 쉬워 진다. 물론 책임은 그 누구도 지지 않는다. 어린 백승호와 장결희, 이강인을 쓴 건 대중이고 그들이 기대 만큼 못 해주면 단칼에 잘라버리고 또 다른 어린 선수를 쓰면 된다. FM을 뒤져보면 많지 않은가. 왜 이런 훌륭한 방법이 있는데 쓰지 않고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포털 사이트 댓글창에 보면 신태용 감독보다 훨씬 더 한국 축구에 대해 깊이 알고 이 적폐 덩어리, 비리의 온상 ‘축협’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영향력을 주면 한국 축구가 지금 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 아마도 이렇게 ARS에 참여하는 수백만 명의 전문가(?)들이 매주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기 위해 K리그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자국리그도 살리고 대표팀도 살리는 아주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안이니 협회는 꼭 ARS로 운영되는 대표팀을 검토해 달라. 평소 축구도 안 보면서 4년에 한 번 ARS에 참가하려는 냄비들은 없을 것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이 정도 애정도 없을까.

아주 현명한 방법이긴 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조금 더 생길 수는 있다. 비난 받고도 우직하고 뚝심을 고집해 성장하는 선수가 나올 수 없다는 건 ARS 대표팀의 아주 사소한 문제다. ARS 대표팀에서는 조현우는 아예 탄생할 수도 없고 김영권은 이미 4년 전에 ‘아웃’이다. 이런 사소한 문제만 빼면 인맥 축구도 없애고 연대 라인도 타파할 수 있으니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혹시 나의 이 번뜩이고 현명한 방법을 쓸 게 아니라면 온갖 조롱과 인신공격, 비난을 받고서도 묵묵히 1년여를 버티며 월드컵에서 감동을 선사해준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게 어떨까. 그리고 우리의 과도한 비난에 대해서는 사과를 보내는 게 어떨까. 대표팀 감독이 대회를 앞두고 모든 대중의 비위를 100% 맞출 수는 없다. 욕을 먹으면서도 묵묵히 갈 길을 간 대표팀에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공 좀 원하는대로 못 찼다고 달걀을 던지지는 말자. 자기는 달걀로 선수 한 명 제대로 맞추지도 못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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