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삼 엘-하다리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일찍 16강 탈락이 확정된 이집트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새로운 골키퍼를 기용했다. 1, 2차전 이집트의 골문을 지킨 모하메드 엘-셰나위를 대신해 무려 73년생인 에삼 엘-하다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했다. 팀은 1-2로 패했지만 이날 엘-하다리는 전반 41분 파흐드 알-무왈라드의 페널티킥을 막으며 이집트의 1-0 리드 상황을 지켰다. 45세 151일에 나이로 월드컵에 출전한 엘-하다리는 콜롬비아의 파이드 몬드라곤 골키퍼가 가지고 있는 종전 기록(43세 3일)을 경신하고 월드컵 최고령 출전 기록을 새로 썼다.

대회 전 한 해외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엘-하다리는 “이집트 국가대표 골키퍼로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가장 큰 목표는 월드컵 출전이다”라며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이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월드컵 출전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네가 월드컵에서 뛰는 걸 꼭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했다”고 했다. 대표 선수가 된 지 22년 만에 엘-하다리는 월드컵 출전의 꿈과 아버지의 마지막 소망을 이뤘다. 팀은 조별예선에서 3전 전패를 당했지만, 엘-하다리의 도전은 무엇보다도 빛났다.

엘-하다리는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다 ⓒ 에삼 엘-하다리 페이스북

아버지의 반대와 가난에 맞섰던 소년

생전 엘-하다리에게 꼭 월드컵에 출전할 것을 당부했던 아버지이지만, 사실 엘-하다리의 어린 시절엔 누구보다도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작은 공장을 차려 공예가로 일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학업에 매진해 출세하거나 대를 이어 가구공예가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엘-하다리는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큰 꿈을 그렸다. 어떤 날은 몰래 축구를 한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근처 강에서 땀에 젖은 얼룩진 옷을 직접 빨고 그제야 집에 들어갈 정도였다.

긴 시간 부모님 몰래 꿈을 키운 그는 17살의 나이로 이집트 2부 리그 다미에타 유스 팀에 입단했다. 차가 없었던 그는 집에서 7km나 떨어져 있는 팀 훈련장까지 오직 자전거만 타고 이동했다. 첫 1년 동안엔 부모님에게 입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1년 후 큰 결심을 하고서야 부모님에게 사실대로 토로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3년 20살의 나이로 다미에타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이 무렵 엘-하다리는 골키퍼 장갑 없이 맨손으로 훈련에 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시절 장갑을 살 돈이 없어 한 번도 장갑을 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익숙한 맨손 훈련을 더 선호했다.

1년 후 1994년에 엘-하다리는 처음으로 이집트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엔 팀의 5순위 키퍼로서 쉽게 출전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대표팀 명단에 이름이 포함되고 대표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대표팀 훈련장은 다미에타 훈련장보다 훨씬 더 멀었기 때문에 출퇴근하는 내내 애를 먹기도 했다. 이때까지도 차가 없었던 그는 매번 이웃이 바래다준 덕에 대표팀 훈련에 늦지 않게 합류할 수 있었다. 다미에타에서 꾸준히 인상을 남긴 그는 1996년 알 아흘리와 계약하면서 이집트 최고의 골키퍼로 본격적인 발돋움을 시작했다.

엘-하다리는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다 ⓒ 에삼 엘-하다리 페이스북

마치 나일강의 범람을 막는 ‘하이 댐’ 같은 골키퍼

엘-하다리는 알 아흘리에서 12년을 활약했다. 이동안 8번의 이집트 프리미어리그 우승, 4번의 CAF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비롯해 26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성공신화를 썼다. 알 아흘리 이적 후 첫 시즌인 1996년에 A매치에 데뷔한 그는 곧이어 주전으로 발돋움하며 이집트 대표팀을 전성시대로 이끌었다. 그는 1998년부터 이집트 대표팀의 네이션스컵 우승을 네 번(1998, 2006, 2008, 2010)이나 함께했다. 이 중 세 대회에서 대회 최우수 키퍼로 선정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중 가장 활약이 돋보였던 대회는 의심의 여지 없이 2006 네이션스컵이었다. 당시 콩고 민주 공화국, 세네갈을 꺾고 결승까지 오른 이집트는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120분 동안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에 나섰다. 그리고 코트디부아르의 첫 번째 키커였던 디디에 드록바의 슈팅을 엘-하다리 골키퍼가 막아냈다. 엘-하다리의 선방으로 승부차기에서 4-2 승리를 거둔 이집트는 역사상 5번째 네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먼 훗날 디디에 드록바는 엘-하다리에 대해 “내가 상대해 본 최고의 선수”라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비록 이집트가 준우승에 그친 대회지만 2017 네이션스컵에서도 엘-하다리의 활약은 돋보였다. 당시 엘-하다리는 후보 골키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전 골키퍼인 아흐메드 엘 셰나위가 첫 경기인 말리전에서 25분 만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줄곧 엘-하다리가 주전 골키퍼 기회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기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약을 펼친 엘-하다리는 부르키나파소와의 준결승전에서 9번의 선방을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서도 선방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며 이집트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의 나이 44세일 때의 일이었다.

엘-하다리는 이집트 국민들에게 ‘하이 댐’이라고 불린다. 하이 댐은 이집트 나일강의 아스완 시에 있는 댐이다. 길이가 3,830m에 육박하는 하이 댐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번의 대홍수를 막아냈다. 오랜 시간 이집트의 위기를 방어해낸다는 뜻에서 엘-하다리 골키퍼에게도 ‘하이 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금도 이집트 나일강의 범람을 막고 있는 하이 댐처럼 엘-하다리도 여전히 이집트 대표팀의 골문을 방어하고 있다. 1996년 이집트 대표팀에서 데뷔를 알린 그는 2018년 6월 25일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사우디아라비아전에 출전해 자신의 A매치 159번째 경기를 마쳤다.

엘-하다리는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다 ⓒ 에삼 엘-하다리 페이스북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아들의 도전

아들이 축구 선수가 되는 걸 지극히 반대했던 아버지이지만, 프로팀 유스 선수에 이어 프로 선수, 대표 선수로 단계를 밟아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를 응원하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덧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 아버지는 아들에게 “네가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아들은 어떻게든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월드컵 출전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이집트 대표팀이 21세기 네이션스 컵에서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 최강 팀으로서 면모를 굳혔지만 월드컵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그들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4년 동안 지역 예선의 벽을 넘지 못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창 엘-하다리 골키퍼가 이집트 대표팀에서 전성시대를 누비고 있을 때도 월드컵 본선 출전의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도 월드컵 출전을 위해 긴 시간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그의 나이도 황혼기에 접어들고 말았다.

2013년부터 엘-하다리는 서서히 이집트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 자리에서 밀려났다. 셰리프 에크라미에게 1년 동안 밀리는 양상을 보였던 엘-하다리는 2014년부터 아흐메드 엘 셰나위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예전처럼 대표팀에서 확고한 주전 입지를 다지지 못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그가 대표팀에서 뛴 경기는 9경기에 불과했다. 이 중 90분을 풀타임으로 소화한 경기는 고작 6경기다. 설령 이집트가 월드컵 본선에 오른다고 해도 엘-하다리가 출전 기회를 얻을 거라 보장할 수 없었다. 한창 전성기를 맞은 후배들의 벽이 매우 높게 느껴졌다.

그러나 후보 키퍼로 참여할 것을 계획한 2017 네이션스 컵에서 대회 중 부상으로 빠진 주전 키퍼 엘 셰나위를 대신해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것이 반전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활약을 인정받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도 꾸준히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10월 8일 콩고 공화국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서 팀의 2-1 승리를 함께하며 본인의 손으로 자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이날 딜런 생-루이의 슈팅을 막아 실점 위기를 벗어난 그는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순간 크로스바에 올라가 이집트 국민들과 기쁨을 함께했다.

그러나 쿠페르 감독은 본선행을 이끈 엘-하다리를 주전 골키퍼로 생각하지 않았다. 쿠페르 감독은 소속팀 알 아흘리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모하메드 엘-셰나위를 3월 A매치부터 기용한 뒤 월드컵 본선 두 경기에도 선발로 출전시켰다. 네이션스컵과 월드컵 예선에서 연달아 좋은 활약을 보인 엘-하다리는 엘-셰나위에 밀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팀이 조별예선 두 경기 만에 16강 진출 실패를 확정 지으면서 대기록 작성을 눈앞에 둔 엘-하다리를 선발로 기용할 명분이 생겼다.

엘-하다리는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다 ⓒ 에삼 엘-하다리 페이스북

22년을 기다린 월드컵 본선 무대, 후회 없이 싸우다

1996년 이집트 대표팀 소속으로 A매치에 데뷔한 후 22년을 기다린 끝에 엘-하다리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출전했다. 그의 A매치 159번째 경기 만에 이룬 쾌거였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 나선 그는 전반 41분 파흐드 알-무왈라드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이집트를 들끓게 했다. 비록 전반 45+6분 또 한 번 허용한 페널티킥을 살만 알-파라지에게 실점하며 동점 골을 내주고 후반 45+5분 살렘 알-다우사리에게 추가 골을 내주며 패배를 면하지 못했지만, 누구도 엘-하다리의 위대한 도전과 그 가치를 얕볼 일은 없을 것이다.

대회 전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오른 후 가진 인터뷰에서 에삼 엘-하다리는 “내 사례가 축구 선수를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교훈이 됐으면 좋겠다.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모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며 신념을 밝혔다. 이어서 그는 45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간 비결을 소개했다. “그저 나이는 종이에 적힌 숫자라고 생각한다. 그저 단순한 숫자다. 난 불가능을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이 생각으로 매번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그의 성공기는 여러 사람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줄 만하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엘-하다리는 많은 나이라는 편견과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한 시기에 엘-하다리는 그 꿈을 이뤄냈다.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동을 일으킨 이집트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또 한 차례 큰 감동을 선사했다. 본선 꿈을 이룬 이집트 대표팀과 엘-하다리의 사례처럼 불가능은 없다. 나이를 비롯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편견과 어려움은 그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모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에삼 엘-하다리가 도전하는 당신에게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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