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종FCO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권창훈이 쓰러졌다. 결국 권창훈이 심각한 부상을 당해 꿈의 무대인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갈 수 없게 됐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소식이다. 권창훈은 지난 20일(한국시간) 앙제와 프랑스 리그1 최종전에 선발로 나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신태용 감독은 결국 고심 끝에 권창훈을 러시아월드컵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그는 첫 월드컵 도전을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더군다나 권창훈은 올 시즌 프랑스에서 11골을 기록하며 대단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민재와 염기훈이 부상으로 낙마하고 이근호와 김진수도 부상을 입어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 권창훈까지 빠지게 된 점은 무척이나 아쉽다.

권창훈의 아쉬운 부상, 비난 받는 디종

이 상황에서 디종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디종 측에 권창훈의 조기 차출을 제안했는데 디종 올리비에 달로글리오 감독이 “부상자들이 많아 리그 종료까지 함께해야 한다”며 이를 거절했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디종이 조기 차출을 허락했더라면 권창훈의 부상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디종은 이미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중위권을 유지 중이어서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나 강등권 싸움 등과 연관이 없었다. 큰 의미 없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굳이 권창훈을 무리해 기용했다가 선수를 망친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자꾸 ‘만약’을 이야기한다. 만약 디종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권창훈을 조기에 대표팀으로 보내줬더라면 부상 없이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디종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에서 ‘만약’을 가지고 논하면 안 된다. 세상에 어떤 선수도 예견된 부상을 당하지는 않는다. 부상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이 ‘만약’이라는 전제를 깔고 본다면 스포츠에서 부상은 없을 것이다. 디종이 어떻게 권창훈의 부상을 미리 예견하고 그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신이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다. 늘 선수들은 부상의 위험을 안고 경기에 임한다. 부상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포츠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을 이야기하지 말자.

그리고 더 되짚고 싶은 건 디종은 선수 조기 차출을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권창훈은 엄연한 디종 선수다. 디종에서 그의 연봉을 지불한다. 이렇게 말하면 비인간적일 수도 있지만 선수는 엄연히 소속 클럽의 자산이다.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국가대표팀은 잠시 이 선수들을 빌려 쓰는 셈이다. 대표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소속팀에서 실력이 부족한 선수의 경기 감각을 키워주겠다고 일부러 출장시킬 수도 없고 부상 위험이 있다고 일부러 뺄 이유도 없다. 선수 1년 연봉을 대한축구협회에서 다 대주고 관리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조기 차출을 해줬다면 고마울 일이었지만 거부했다고 해 비난할 수도 없다.

ⓒ 디종FCO

디종의 결정을 비난하면 안 되는 이유

만약 우리는 권창훈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해트트릭을 했다면 거기에 열광했을 것 아닌가. 이중적이면 안 된다. 디종 감독이라고 권창훈이 부상 당할 걸 뻔히 알면서 경기에 내보낸 것도 아니고 권리가 대한축구협회에 있는데 그걸 우겨서 기용한 것도 아니다. 대표팀을 응원하는 이들 못지 않게 디종에서도 권창훈의 부상을 가슴 아파 하고 있다. 달로글리오 감독은 이 경기가 끝난 뒤 시즌을 마쳤다는 홀가분함을 전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권창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권창훈의 부상은 충격적이었으며 이번 시즌의 소득을 망쳤다”고 했다. 대표팀만 손해를 입은 게 아니라 디종의 손해도 막심하다. 권창훈이 월드컵에 나가 활약했다면 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디종도 대단한 이익을 봤을 것이다.

리그 11위 팀의 마지막 경기를 가볍게 보는 이들도 있다. 우승이나 강등이 결정되는 순위가 아니니 전력을 다하지 않고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제3자나 하는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왜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지 않겠는가. 디종도 한 시즌짜리 티켓을 팬들에게 팔았을 것이고 그 팬들은 시즌 개막전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즐길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는 의미 없는 마지막 경기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아니다. 강등이 없는 K리그2 막판 순위 경쟁을 보면 이미 승격이 물 건너 간 팀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일 의무가 있다. 디종도 마찬가지다.

권창훈을 마지막 경기에 내보내 부상을 막지 못했다며 디종을 지적하는 이들에게는 디종을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만약 이 팀이 바르셀로나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였다고 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우승과 멀어졌다고 해 마지막 경기 출장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을까. 비록 순위가 낮을지는 몰라도 디종 역시 프로팀이다. 권창훈이 부상을 당한 건 대단히 아쉽지만 나는 디종의 결정을 존중한다. ‘어차피 이겨도 유로파리그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라고 하면 안 된다. 똑같은 논리라면 어차피 서울대 갈 것도 아닌데 공부는 왜하느냐고 물을 때 할 말이 없어진다. 더군다나 디종은 시즌 막판 권창훈을 투톱으로 올린 새 전술을 실험 중이었다.

ⓒ 디종FCO

누구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말자

비슷한 시기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과 울산현대 김도훈 감독은 이재성과 김신욱, 박주호 등 대표팀에 갈 선수를 후반 잠깐 교체 투입하거나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디종 달로글리오 감독은 통 큰 결정을 한 최강희 감독과 김도훈 감독과 비교되며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냥 최강희 감독이나 김도훈 감독의 선택 자체를 주목하면 될 뿐 디종 측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국가대표 팀을 위해 클럽 팀이 희생해야 한다는 마인드는 제발 내려 놓았으면 좋겠다. 클럽은 국가대표 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디종 감독이 한국 국가대표 팀 월드컵 성적을 위해 연봉 다 주는 선수를 규정보다 일찍 내주는 게 당연하다고 바라보면 안 된다.

디종은 월드컵을 이유로 권창훈만 조기 차출을 허락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같은 팀에 튀니지 국가대표가 두 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권창훈만 월드컵을 준비하라며 일찍 내보내 준다면 이 선수들과 튀니지 대표팀에서도 말이 나올 게 분명하다. 내가 감독이라도 누군가에게 특혜를 줄 법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건 당장 리그 마지막 경기 문제가 아니라 다음 시즌 선수단 사기에도 영향을 끼친다. 권창훈의 부상은 대단히 아쉽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비난할 일은 아니다. 아쉽게 생각하고 권창훈의 쾌유를 빌어주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디종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배려해주면 고마울 일이었는데 배려하지 않았다고 해 디종을 비난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월드컵 내내 디종을 비난하며 탓하면 우리만 속이 타 디종.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