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환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의 모습.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텔레비전에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나오면 무조건 채널을 돌려 버린다. 이런 사연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거워 지는 게 싫어 애써 외면한다. 며칠 전 우연히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를 보러 극장에 갈 때도 고민이 많았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왠지 이 영화를 보면 장애를 안게 된 선수들의 사연에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극장 앞에서 몇 번이나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영화를 봤다. 관객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 본 뒤 극장을 나설 때는 ‘정말 이 영화 보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겁지 않아서 더 좋았던 분위기

장애를 가진 선수를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영화가 아니라 너무 좋았다. 그렇게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과 ‘장애인 아이스하키 레전드’ 한민수를 알게 됐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들의 사연을 관심 있게 찾아보다가 아예 이들을 응원하러 경기장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부랴부랴 패럴림픽이 열리는 강릉 하키 센터로 달려가 파라 아이스하키, 혹은 썰매 하키라고 부르는 장애인 아이스하키 한국과 캐나다의 준결승전을 지켜봤다. 물론 파라 아이스하키를 처음 본 뒤 돌아올 때 마음이 무거워 지면 어떨지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장애를 가진 선수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면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패럴림픽 파라 아이스하키는 축제의 장이었다. 한국은 캐나다에 0-7로 대패했지만 누구 한 명 선수들이 장애를 입었다고 오로지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없었다. 그냥 비장애인 올림픽과 똑같은 경기였고 오히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중간 중간 흘러 나오는 신나는 노래와 이벤트에 관중은 춤을 추고 즐겼다. 캐나다에 0-7로 크게 졌다고 불만을 갖는 관중도 없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구분 없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축제 한 편을 신나게 즐기고 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과 단 한 번의 경기로 나는 파라 아이스하키의 팬이 됐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안타까운 장애인이 아니라 멋진 국가대표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무겁고 안타까운 시선이 아니라 친구를 대하는 듯한 편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한국은 캐나다에 패해 3,4위전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 3,4위전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날 우리 <스포츠니어스> 기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탈리아와의 3,4위전을 현장에서 보지 않으면 계속 후회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즉흥적으로 3,4위전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주말이라 K리그 취재 일정이 있었지만 이를 다 취소하고 이날 하루는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이 돼 보자고 했다. 우리 기자들과 붉은악마 머플러를 들고 이틀 만에 다시 강릉으로 향했다. 이들을 안타깝고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선 따윈 이제 없었다. 어느덧 나에게 이들은 비장애인과 똑같은 국가대표였고 이탈리아전은 올림픽 메달을 놓고 싸우는 결전일 뿐이었다. 원래 어설픈 전문가들이 제일 무섭다는 말처럼 우리는 강릉으로 가는 내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탈리아 팀을 분석했고 쥐뿔도 모르면서 “아마 이탈리아는 아이스하키도 카테나치오를 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입장권은 매진됐고 현장 판매분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스포츠니어스

매진 된 경기장, 돌아가야 했던 관중

경기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대단히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관중 입장이 시작되지 않아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줄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깜짝 놀랐다. 이미 인터넷 예매는 매진이 됐고 현장 판매분 입장권이 단 400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여기까지는 입장권을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관심이 덜한 패럴림픽이라고 생각해 충분히 현장 판매분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몹시 당황했다. 가까스로 우리 차례까지 돌아와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우리 뒤로 티켓을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이들만 수백 명이었다. 파라 아이스하키의 열기는 대단했다. 경기장 곳곳에는 선수들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온 이들도 꽤 많이 보였다.

축구를 비롯해 많은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하지만 이날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감히 말하건대 지금껏 본 경기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경기였다. 2011년 전북현대와 알사드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후 이렇게 몰입해서 경기를 본 적은 없었다. 많은 경기를 보면서 승부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졌지만 이번 이탈리아전은 달랐다. 무려 7천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아이스하키장에서 모든 이들은 축제를 즐겼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카메라에 잡혀 전광판에 등장하자 신나는 댄스를 선보였다. 단체 관람 온 고등학생들이 울트라스 못지 않은 응원을 선보였고 우리도 수줍게 챙겨온 붉은악마 머플러를 꺼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열기였다. 경기장에서는 파도타기가 이어졌다.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어르신 부부가 경기 도중 계속 이것저것 물었다. “여기 4는 뭐고 저기 2는 뭐야? 우리가 4점이야?”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드렸다. “저건 슈팅 개수고요. 지금은 0-0입니다.” 2피리어드가 끝난 뒤에는 “이제 다 끝난 거야?”라고 물으셔서 “15분 한 번 더 남았다”고 말씀드렸다. 뭐 룰이 중요한가. 다 같이 응원하고 탄식하고 같이 감동을 느끼면 그걸로 충분할 뿐이었다. 이 어르신 부부를 보니 룰을 몰라도 그냥 그 분위기 그대로 즐기는 게 스포츠의 진짜 매력이라는 걸 그동안 오래 잊고 살아온 듯하다. 이 팀은 ‘장애인’ 아이스하키 팀이 아니라 그냥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동은 그 어떤 국가대표 경기보다도 훨씬 더 컸다. 우리를 신나게 하면서도 감동의 눈물이 나게 하는 그런 묘한 뭔가가 있는 팀이다.

가슴 벅찼던 애국가 합창

한국은 이 경기에서 장동신의 귀중한 한 골을 지켜내며 1-0 승리를 따냈다. 패럴림픽 파라 아이스하키 사상 최초의 메달이었다. 1-0으로 앞선 상태에서 경기 종료 2분여를 남겨두자 우리 바로 앞 자리에 앉은 한 여성 분이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둘이 나란히 차려 입은 유니폼을 보고는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의 등번호는 44번이었다. 파라 아이스하키 1세대인 등번호 44번 이해만의 가족들이었다.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자 이해만의 아내는 아들을 꼭 껴안고 울었다. 내가 본 이번 올림픽 최고의 장면이었다. 초등학생 아들은 마치 ‘저기 있는 사람이 우리 아빠야’라고 자랑하듯 자신의 아빠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망토처럼 둘렀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아빠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요새는 태극기를 흔들거나 애국가를 크게 부르는 걸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다. 정치적으로도 사용되는 도구라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속된 말로 ‘머리가 큰’ 뒤에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그리 크게 와 닿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동메달 세리머니를 하던 선수들이 둥그렇게 보여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든 관중이 함께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나도 누구보다 크게 애국가를 불렀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이 순간 만큼은 애국가를 크게 따라 부르며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응원했다’고 들려주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한국에서 또 창피한 사건이 터지거나 ‘헬조선’ 소리를 들을 만한 일이 벌어지면 우렁차게 애국가를 불렀던 이 순간을 흑역사로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 만큼은 그냥 이 선수들과 애국가를 부르는 게 가슴 벅찼다.

오랜 만에 스포츠의 진정한 팬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요즘 들어서는 스포츠를 일로만 대했었는데 어제 경기는 정말 팬으로 돌아가 온전히 즐긴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이 경기는 앞으로도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K리그 취재도 포기하고 함께 강릉까지 가 경기를 지켜본 우리 기자들과 돌아오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왜 이 경기가 감동적이었는가에 대해 깊이 이야기했는데 딱히 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속된 말로 모든 게 ‘쩔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찾아보니 각자 인생을 영화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이야기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경기장에서 투혼을 발휘했고 관중은 환호로 답했다. 몸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지는 모습은 그냥 그 자체로도 강렬했다. 모든 게 갖춰진 최고의 현장이었다. 남편의 경기를 지켜보며 아들과 꼭 안고 눈물을 흘리던 이해만의 아내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입장권은 매진됐고 현장 판매분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스포츠니어스

다신 없을 생애 최고의 승부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 최고 스타는 누가 뭐래도 정승환과 한민수다.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은 잘 생긴 얼굴로도 많은 여성 팬을 보유하고 있다. 실력은 물론 스타성까지 갖췄다. 은퇴 무대에서 멋지게 메달을 건 한민수의 스토리 또한 엄청나다. 일본에서 장애인용 썰매 한 대를 들여와 훈련하던 1990년대부터 선수 생활을 한 1세대의 멋진 현역 마무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쓰기에도 너무 유치할 만큼 극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등번호 89번 이지훈의 팬이 됐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도 그의 몸이 조금 더 불편해 보여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아보니 그를 더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군 복무 시절 제대 두 달을 남기고 큰 사고를 당해 장갑차에 깔려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그의 사연을 들으니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더 큰 응원을 보내고 싶다.

지금껏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일상에서 마주할 기회도 많지 않았고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도 이 분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배워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맨 처음 말한 것처럼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 늘 피하기만 했던 나에게 패럴림픽에 나선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고 아름다웠다. 이 선수들을 유심히 보니 장애가 보이기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노력과 열정이 보인다. 그리고 이 장애를 극복한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 크게 보인다. 정승환은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생애 최고의 애국가였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뭐 이런 감동적인 스포츠, 뭐 이런 멋진 선수들이 다 있나. 그들을 지금껏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고 이런 감동을 선사해줘 고맙다. 나에게도 다신 없을 생애 최고의 애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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