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감독과 한만진 대표의 동행은 10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서울이랜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달 29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 2017 리그 최종전. 서울이랜드와 부천FC는 이 맞대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반드시 서울이랜드를 잡아야 준플레이오프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부천으로서는 이미 8위가 확정된 서울이랜드가 최선을 다해 승리를 허락하지 않으니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평소 차가운 표정으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던 김병수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팬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벌써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갔던 김병수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올 한해 많이 힘드셨죠? 죄송합니다. 저는 반드시 우리 서울이랜드를 일으켜 세울 겁니다. 내년에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팀의 뿌리를 먼저 잡고 그 다음에 이기는 경기를 하겠습니다. 아마도 올해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경기를 할 겁니다. 지금은 미흡하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용기는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비록 K리그 챌린지 10개 팀 중 8위에 그쳤지만 김병수 감독의 이 소신 있는 말에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김병수 감독은 한 살 터울 축구계 동료인 부천 정갑석 감독에게 미안함부터 전했다. “정갑석 감독과 친구인데 오늘 발목을 잡아 미안하다. 아쉽기도 할 것이다. 1년 동안 잘해왔는데 오늘 한 경기 때문에 슬픔이 클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우리는 승패를 떠나 재미있는 경기를 했다. 이제는 내년 시즌을 대비해 선수 구성에 총력을 기울이겠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병수 감독은 곧바로 다음 시즌을 구상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는 “한 시즌 동안 고생 많으셨다. 내년에 뵙겠다”라며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서울이랜드는 K리그 챌린지 8위로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김병수 감독을 향한 축구인과 팬들, 여론의 신임은 두텁다.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를 선보이며 영남대학교를 대학 최정상에 올려 놓았던 김병수 감독에 대한 믿음이었다. 서울이랜드와 김병수 감독은 올 1월 계약기간 3년의 계약을 체결했다. 당장 올 시즌이 아닌 미래를 내다본 장기계약이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서울이랜드의 시즌 초반 경기력은 실망스러웠다. ‘3년은 기다려야 성적이 나온다’는 축구계 정설이 있듯 서울이랜드의 시즌 초반 경기력이 실망스러웠어도 당장 조급해 하는 이들은 없었다.

서울이랜드 측은 "김병수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 서울이랜드

10개월 만에 작별한 김병수와 서울E

한 서울이랜드 선수는 선수보다 더 유명한 감독을 모시는 기분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다른 팀은 경기를 못하면 감독이 욕을 먹는데 우리는 경기력이 안 좋으면 선수들이 욕을 먹는다. 김병수 감독님이 대학 무대에서 워낙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셨고 전술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대로 못하면 ‘선수들이 감독 수준을 못 따라간다’는 소리를 듣는다. 굉장한 부담이기도 하지만 이런 감독님과 함께 하게 돼 영광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동계 전지훈련지에서 김병수 감독과 처음 훈련했던 선수는 “확실히 달라도 뭔가 다르다”며 김병수 감독을 신처럼 모셨다.

전지훈련지에서는 “서울이랜드가 제주유나이티드와의 친선전에서 볼 점유율 7대3을 기록했다. 제주 애들이 팽팽 돌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비록 올 시즌 K리그 챌린지가 개막한 뒤 서울이랜드는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김병수 감독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 경기력도 후반기 들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김병수 감독 특유의 패싱 축구가 서서히 서울이랜드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늘 마주하면 김병수 감독은 불평하기보다는 현실을 짚었다. “우리는 대단한 투자 없다. 뭐 그런 걸 바라나. 그냥 있는 자원가지고 열심히 하는 거지.” 당장의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김병수니까’라며 기다렸다. 시즌을 마치고 인사하는 김병수 감독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 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17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김병수 감독이 전격적으로 사퇴를 발표한 것이다. 서울이랜드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병수 감독과 한만진 대표의 동시 사퇴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서 “김병수 감독과 한만진 대표가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동반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불과 20여일 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팬들에게 “미안하다”면서 “내년 시즌에는 더 나아지겠다. 서울이랜드를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했던 김병수 감독의 전격적인 사퇴는 의아한 일이다. 기자회견장에서도 내년 시즌 구상을 하던 그가 이렇게 급하게 떠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이랜드 측에서는 그와의 이별을 좋게 포장하려고 하지만 사실 이면에는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

서울이랜드 측은 "김병수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 서울이랜드

김병수와 한만진, 그 깊은 갈등의 골

김병수 감독은 시즌 내내 한만진 대표와 갈등을 빚었다. 사실 김병수 감독을 노리는 구단은 해외를 포함해 꽤 많았다. 그런데 김병수 감독이 서울이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서울이랜드 측은 “대학생과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려서 미래를 그려보자”고 했다. 영남대 시절 어린 선수들을 활용해 축구의 매력을 제대로 선보였던 김병수 감독은 이 제안을 듣고 곧바로 서울이랜드 손을 잡았다. 당시 한만진 대표는 김병수 감독에게 전적인 권한을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팀에 합류하니 이야기가 달랐다. 1월에 팀에 부임하니 선수 선발의 대부분이 마무리 돼 있었다. 감독 뜻과는 상관없이 이미 구단 수뇌부가 입맛에 맞는 선수를 뽑은 것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병수 감독 부임 이후 뽑은 선수들도 대부분이 구단 수뇌부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선수들이었다. ‘얘 뽑아라’ ‘쟤 뽑아라’ 말이 많았다.” 김병수 감독이 팀에 합류한 뒤 뽑은 선수는 15명 남짓이었는데 여기에는 김병수 감독의 의중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지도자로서 자존심이 강한 김병수 감독이 한만진 대표와 이때부터 충돌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한만진 대표는 언론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김병수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한만진 대표는 언론을 통해 깨어 있고 능력 있는 경영인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김병수 감독과 ‘상의해’ 16명의 선수를 영입했다.”

하지만 김병수 감독 측근의 말은 달랐다. 선수 영입 권한도 없었고 투자도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올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 안양에서 데려온 알렉스로 버텼지만 알렉스 역시 김병수 감독의 선택이 아니었다. 이 측근은 “알렉스도 구단 수뇌부에서 데려왔다”고 했다. 지금은 구단을 떠난 또 다른 전직 구단관계자도 구단의 처우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서울이랜드는 말이 기업구단이지 K리그 챌린지에서 가장 열악한 안산그리너스 만큼밖에 돈을 안 쓴다. 20억 원으로 승격하라고 하니 도저히 이게 되겠는가.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이 적은 돈을 쓰면서도 수뇌부가 선수 선발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시즌 8위라는 올 시즌 서울이랜드의 성적은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당연해 보였다.

 그는 계속 선수를 찾으러 다녔다

늘 만날 때마다 “우리는 있는 자원 가지고 열심히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김병수 감독의 말에는 큰 뜻이 숨어 있었다.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김병수 감독은 어떻게든 팀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시즌 막판부터 아마추어 경기장을 찾아 영입할 선수를 관찰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지인의 말은 이렇다. “어떻게든 3천만 원에서 4천만 원짜리 선수 한 명 찾아보겠다고 대학 경기하고 내셔널리그까지 다 보러 다녔다. 그런 애들 선수 좀 만들어 보겠다고 계속 발품을 팔더라.” 김병수 감독은 투자도 없고 선수 선발 권한도 없는 이 팀에서 진흙 속 진주를 찾아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아마추어 무대에서 발굴한 여러 선수를 리스트에 올려 놓고 내년 시즌 영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병수 감독이 시즌 종료 후 팬들과 언론 앞에서 이야기한 내년 시즌 구상은 이런 선수들로 팀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할 감독이었더라면 이렇게 내년 시즌 준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랜드 중국 투자관리 대표, 이랜드 건설 대표를 거쳐 이랜드 그룹 자산개발 본부장을 역임한 한만진 대표는 구단 수뇌부의 지침을 받는 인물이다. 선수 선발까지도 수뇌부에 맡겨야 하는 김병수 감독과 말을 잘 듣지 않는 그를 컨트롤 해야하는 한만진 대표 사이의 앙금은 더 깊어졌다. 결국 구단 운영진은 김병수 감독과 한만진 대표가 동시에 팀을 떠나는 걸로 갈등을 해결했다. 표면적으로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감독과 대표가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울이랜드를 떠나는 건 김병수 감독 뿐이다. 서울이랜드 사정을 잘 아는 측근은 “한만진 대표가 가진 명함만 네 개다. 그 중 하나만 반납하는 것 뿐이다. 그는 수뇌부의 ‘오더’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원래 축구인도 아닌 사업가라 축구 쪽에서 떠나도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한편 서울이랜드는 호텔, 레저와 스포츠 등 그룹의 미래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현수 대표를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이번에도 '이랜드 사람'이다.

서울이랜드 측은 "김병수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 서울이랜드

“서울E가 안 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카리스마 있고 명망 있는 김병수 감독은 모든 프런트가 따를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났다. 그의 퇴진 소식에 말단 직원부터 고위직까지 다들 안타까워 했다. 김병수 감독이 팀을 떠나는 이유는 단 하나, 구단 최고위층의 지침을 하달 받은 대표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구단 내에서는 2015년 1월부터 피지컬 코치로 일하는 중인 댄 해리스 코치를 내부 승격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댄 코치는 비교적 온순하고 구단과의 사이도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병수 감독 퇴진 소식에 축구계 인사들은 굉장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김병수 감독이 수뇌부의 말에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자존심상 그러지 못했다. 이미 다 뽑아놓은 선수들로 수뇌부에서 알아서 팀을 운영할 거면 그 지략가가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김병수 감독도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불쌍한 건 선수들이다. 2017 시즌을 앞두고 온 대학생 선수들은 다 김병수 감독을 믿고 온 거다. 구단에 애정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 김병수 감독 밑에서 한 번 배워보겠다고 자처한 애들이다. 그런데 그 애들의 미래를 생각하니 불쌍해 죽겠다.” 또 다른 한 지도자는 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한 마디를 남겼다. “서울이랜드가 잘 안 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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