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상무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시즌 K리그 대상 후보자 명단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공정성의 기준을 별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난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친 김승준(울산현대)이 영플레이어상 후보 명단에 아예 뽑히지도 않았다는 건 의아했다. 곧바로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로 선정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김승준이 후보 3인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 29경기에 나와 무려 8득점 2도움이라는 대단한 성적을 기록한 김승준은 안현범(제주)과 치열하게 영플레이어상을 놓고 경쟁했어야 하는 선수였다. 안현범은 영플레이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지만 김승준도 좋은 후보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연맹은 김승준을 대신해 김동준(성남)과 송시우(인천)를 영플레이어상 후보로 올렸다. 결국 김승준이 빠진 영플레이어상 경쟁은 큰 이변 없이 안현범의 차지가 됐다.

베스트 11 후보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그런데 문제는 연맹의 이런 납득할 수 없는 K리그 대상 후보자 선정이 올해에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프로축구연맹 후보선정위원회가 KEB하나은행 K리그 2017 대상 시상식의 최우수감독상, 최우수선수상(MVP), 영플레이어상, 베스트11 부문별 후보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꽤 많다. 특히나 베스트11 부문별 후보 명단을 보면 더 그렇다. 팀 성적을 기준으로 해도 의아한 결과고 선수 개인의 활약을 기준으로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다. 팀 성적과 개인 활약을 절충해 선정한 후보자도 아니다. 구단별로 제출한 4-4-2 포메이션 베스트 명단을 연맹 후보선정위원회가 추린 건데 아무런 기준도 없이 후보 명단을 뽑아 놨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강등 경쟁 중인 상주상무에서 무려 4명의 베스트11 후보를 배출했다는 점이다. 리그 2위 제주와 리그 3위 수원삼성에서 배출한 후보자가 4명씩인데 리그 11위로 강등 걱정 중인 상주에서도 4명의 후보가 나온 건 황당한 일이다. 반대로 올 시즌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잔류에 성공한 대구는 조현우 골키퍼 딱 한 명만이 후보 명단에 올랐다. 돌풍을 일으켰던 브라질 출신 3인방은 그 누구도 후보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하위 스플릿에 속한 포항과 대구, 인천, 전남이 한 명씩의 후보를 배출했고 광주는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는데 11위 상주만 네 명의 선수가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올 시즌 주민규가 잘한 건 인정하는데 상주가 이 정도 수준이었나.

베스트11은 개인 기량도 기량이지만 팀 성적도 상당 부분 따져야 한다. 리그 우승팀에서 베스트11의 절반 가까이 독식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연맹은 2위 제주와 3위 수원삼성, 11위 상주에서 똑같은 수의 후보를 선정했다. 참고로 리그 4위 울산에서는 리차드와 김인성 딱 두 명만이 후보에 선정됐고 5위 서울은 무려 5명의 후보자를 냈다. 그렇다면 이건 팀 성적보다는 개인 기량을 더 우선시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리그 순위와 후보자 배출수의 비례 관계가 전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주가 네 명의 후보자를 낸 건 팀 성적과 베스트11이 전혀 관련이 없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후보가 네 명인데 성적이 11위면 이건 좋은 선수가 즐비한데도 성적을 내니 못한 김태완 감독을 향한 ‘디스’일 수도 있다.

김승준은 지난 시즌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영플레이어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울산현대

손준호와 롤리냐는 어디로 사라졌나?

하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또 이상한 게 있다. 만약 연맹이 팀 순위보다는 개인 기량을 우선시 했다면 포항 손준호와 롤리냐는 무조건 후보 명단에 들어야 했다. 손준호는 올 시즌 4골 12도움으로 유력한 도움왕 후보로 떠올랐다. 롤리냐는 무려 17골 4도움을 뽑아내면서 득점 5위에 올라있다. 공격 포인트만 따져도 무려 21개다. 하지만 이 둘은 베스트11 후보 명단에 아예 이름조차 없다. 연맹이 후보 선정 기준을 팀 성적이 아니라 개인 기록으로 정한 것도 아니라는 거다. 워낙 쟁쟁한 후보자가 많아 손준호와 롤리냐가 베스트11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어도 실제 베스트11 수상까지는 힘들었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은 후보 명단 정도에는 충분히 이름을 올려야 하는 선수들이었다.

만약 손준호가 도움왕을 확정지으면 연맹의 상황은 더 이상해진다. 도움왕을 기록한 선수가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후보 명단에도 없다는 건 그만큼 시상식의 공신력을 떨어트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다. 시즌 끝나면 시상식장에 갈 일이 없으니 도움왕 트로피를 들고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생선구이에 소주나 한 잔 하면 된다. 상주에서 후보로 이름을 올린 홍철과 윤영선, 김태환, 주민규 등은 다들 훌륭한 선수들이 어느 한 명 후보 명단에서 빼기에도 아까운 선수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오르샤(울산)와 매튜(수원삼성), 세징야, 주니오, 에반드로(이상 대구) 등도 후보 명단에서 빼기 아쉬운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도 후보 명단에 들지 못했다. 연맹은 리그 강등권인 상주의 후보자를 조절했어야 한다. 주민규와 홍철, 혹은 주민규와 김태환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잔류에 성공한 팀들도 후보를 한 명씩 배출했고 심지어 공격 포인트에서 눈에 띄게 앞서나가는 손준호와 롤리냐를 보유한 포항도 후보가 한 명이다. 외국인 선수에 너무 박하고 국내 선수들 중에서도 결국에는 올 시즌 팀 성적, 개인 성적보다는 선수 면면의 인지도를 더 따지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연맹은 지난 해 김승준이 영플레이어상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한 점에 대해서 “겉으로 드러난 성적은 김승준이 가장 뛰어났지만 이외에도 라운드별 베스트11과 MVP, 징계여부, 위원들이 직접 지켜본 경기력 등 다양한 기준을 종합 검토해 후보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라운드별 베스트11도 과연 공정했는지 의문이다. 경기 종료 후 감독관이 “얘는 6.0 얘는 6.5 얘는 5.5” 이런 식으로 줄줄이 매기는 점수가 시상식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만큼 공신력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김승준은 지난 시즌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영플레이어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울산현대

구단 추천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또한 K리그 대상 시상식은 구단들의 전략 싸움이 되고 말았다. K리그 모든 선수들을 놓고 그 중 가장 잘한 포지션별 11명을 뽑은 뒤 최고의 선수 한 명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 구단별로 전략을 내놓아야 더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력 시뮬레이션 게임쯤 되겠다. 구단별로 MVP 후보를 한 명씩 추천하면 연맹에서 이 중 세 명을 추려 후보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K리그 역사상 가장 막강한 투톱 공격수가 한 팀에 등장한다고 해도 이 둘이 나란히 MVP 후보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다. 구단별로 한 명씩만 추천해야 하고 이 중 연맹이 딱 세 명을 고르기 때문에 한 팀에서는 두 명의 MVP 후보가 나올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구단들은 시상식을 눈앞에 두고 마치 국회의원 선거에서나 나올 ‘확실’ ‘보합’ ‘박빙’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머리를 싸매고 후보를 내야한다.

K리그에서 영플레이어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역사적인 일이 펼쳐질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올해 전북 이재성이 MVP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김민재가 MVP를 받아도 수긍할 수 있다. 프로 생활 연차 다 떼고 그 온전한 활약으로만 보더라도 김민재의 팀내 기여도는 대단했다. 여기에 물론 K리그와는 연관이 없지만 대표팀 활약이라는 보이지 않는 플러스 효과까지 더해지면 김민재도 MVP 후보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전북은 김민재를 MVP 후보로 내지 않았다. 수상이 확실시되는 영플레이어상에 김민재를 추천하고 MVP는 다른 전북 선수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K리그 시상식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전북의 선택을 아쉽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 시상식 시스템이 그렇다는 거다.

구단 추천 제도부터 사라져야 괴물 같은 신인이 영플레이어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스토리도 쓸 수 있다. 처음부터 구단의 전략이 개입될 요소가 충분한 구단 추천 제도는 폐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경기력 좋은 선수가 많으면 한 팀에서 두 명의 MVP 후보가 나오는 일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올 시즌 줄곧 투톱 공격수로 경기에 나선 염기훈은 공격수 부문이 아니라 왼쪽 미드필드 부문으로 후보에 올랐다. 수원삼성에서 그렇게 추천했기 때문이다. 공격수 부문에 조나탄의 수상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한 팀 공격수 두 명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적으니 전략적으로 왼쪽 미드필드 부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건 지금 올 시즌 가장 축구를 잘한 선수를 뽑는 투표가 아니라 구단의 전략 싸움이다. 과연 이렇게 공정하지 못하고 기준도 모호한 시상식을 계속 해야 하는 걸까. 올해도 시상자로 이태임이나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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