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도 러시아전이 끝난 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사람은 가끔 말로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생각이 짧아 실수로 하는 게 아닐 때가 대부분이다. 적절한 단어 선택을 잘못하거나 착각을 해 오해 사는 발언을 하는 걸 말실수라고 하지 진심을 전한 말이 상대에게 불쾌하게 들렸다고 해 이걸 말실수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이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 왔고 수위 조절을 잘못 했을 뿐이다. 말은 평소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말실수? 평소 품었던 생각일 뿐

신태용호의 주장 김영권이 말실수를 했다고 한다. 김영권은 지난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가 끝난 뒤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문제를 두고 관중탓을 했다. “관중의 함성소리 때문에 의사 통이 어려웠다”고 한 것이다. 이 인터뷰가 논란이 되자 김영권은 사과의 뜻을 밝혔다. “말실수였다”는 것이다. 이란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던 6만 명이 넘는 관중은 졸지에 한국 선수들의 의사소통을 방해한 훼방꾼 취급을 받았다.

경기가 밤 11시에 끝나 집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고 다음 날 출근도 쉽지 않음에도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관중은 졸지에 한 방 얻어맞았다. 이 경기 흥행을 위해 동분서주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 역시 허무할 수밖에 없다. 신태용 감독은 “아자디 스타디움에 모인 10만 명의 관중이 검은색 옷을 입고 응원할 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 팬들에게 많은 응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김영권의 발언 하나 때문에 많은 이들은 대표팀을 열심히 응원하고도 승리하지 못한 원흉(?)으로 몰렸다. 대표팀 주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니 더더욱 실망스럽다.

그런데 이게 과연 말실수의 범주에 들어갈까. 앞서 말한 것처럼 말실수라는 건 단어 선택을 잘못했거나 전달 과정에서 와전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관중의 함성소리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웠다”는 건 말실수가 아니다. 평소에 그런 생각을 가져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뱉어진 말이다. 죄송하다면서 사과는 하겠지만 이건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한 사과일 뿐 말에 대한 실수를 정정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김영권의 발언에서 실수로 비춰질 부분은 단 한 곳도 없다. 평소에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는 것에 대해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르니 그냥 자기 생각대로 툭 뱉은 말일 뿐이다.

말은 생각에서부터 나온다

사람들은 이럴 때가 있다. 주위 친구들이 다 같이 흉을 보는 A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누군가에 A에 대해 묻는다면 아무리 좋지 않은 감정을 감추고 이야기하려고 해도 은연중에 본심이 나온다. “걔가 저하고 친하대요? 뭐 걔가 친하다면 친한 거죠.” 이런 감정을 쏟아내면 상대도 ‘아 얘는 A를 흉보고 다니는구나’라고 단번에 느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나 역시 은연중에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평소에 배배 꼬여 있는 일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만다. 이건 말실수가 아니라 혼자만 생각해야 했던 걸, 무리 안에서만 했던 걸 수위 조절하지 못하고 밖으로 내뱉은 것 뿐이다.

모든 대표팀 선수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김영권의 말을 들어보니 대표팀 선수 상당수가 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그냥 못하면 인터넷을 통해 비난이나 하는 그런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평소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언론을 통해 수위 조절에 실패해 “관중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뜬금 없이 말실수(?)를 할 이유는 없다. 갑자기 이런 말이 전두엽을 통하지 않고 혀끝에서 시작할 수는 없다. 자기들끼리 “팬이랍시고 시끄럽게 떠들고 다닌다”고 평소에 팬들 알기를 우습게 아니 공식석상에서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해대는 것 아닌가. 그냥 대표팀 수준과 분위기가 그런 거다. “많은 관중이 고마웠다”고 립서비스도 못하는 수준이다.

꽤 지난 일이지만 기성용은 SNS로 감독 욕을 하다가 걸렸다. 그리고 본인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사과는 감독을 비난한데에 대한 사과였지만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걸려서 죄송하다”에 더 가까웠다. 작심하고 쓴 글이 실수는 아니다. 평소 대표팀에서 감독을 대하는 분위기가 그렇다는 걸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당시 나는 기성용의 SNS를 공개하면서 댓글에 달린 한 선수의 이름은 고민 끝에 모자이크 처리했다. 자발적으로 비난 글을 쓴 게 아니라 댓글을 단 선수까지 공개하는 게 맞나 싶어서였다. 물론 그 선수도 기성용의 발언에 적극 동조하며 기성용을 치켜세우는 댓글을 달았다. 이 선수는 지금도 이 논란에서 벗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글을 올린 선수나 좋아요를 누른 선수나 즉흥적인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진수 인스타그램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국가대표님들

과거 일을 들춰서 미안하지만 기성용의 SNS나 김영권의 발언을 보면 이게 평소 일부 대표팀 선수들의 마인드다. 감독 욕을 하고 팬들을 무시해도 공만 잘 차고 돈만 잘 벌면 된다는 의식이 너무나도 강하다. 자기들끼리 낄낄대고 조롱했으니 그걸 SNS에도 쓰고 공식 인터뷰에서도 하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 팬들에 대한 고마움은 사라졌다. 돈은 중국에서 버는데 대표팀 팬이랍시고 욕질이나 해대는 이들이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이렇게 받아들이는 순간 그들은 국가대표로서의 자격 또한 잃는다. 팬 무서운 줄 모르는 선수는 프로선수, 국가대표로서의 자격 또한 없다. 과연 이걸 ‘말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평소에 일부 대표팀 선수들끼리 하던 말을 수위 조절에 실패했다는 게 실수라면 실수다. 그냥 없던 생각이 막 이렇게 말로 나오진 않는다.

김진수가 SNS를 통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좌절된 뒤 K리그 팀의 졸전을 보고 쓴 말이 있다. “아 우리가 한다니까”였다. 이런 말도 실수가 아니다. 평소에 그들이 자기들 무리에서 그렇다고 믿고 늘 해왔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게 밖으로 알려져도 어느 정도 파장이 있을지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일부 선수들 사이에서는 무뎌진 표현일 것이다. 선수들의 인터뷰나 SNS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여과되지 않는 표현을 쓰는 곳이 아니다. 내가 이런 걸 단순한 실수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식 석상이나 팬들이 다 보는 SNS에 이런 발언을 할 정도면 평소 그들 내부에서의 분위기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김영권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중국화가 답이라는 걸 보여주겠다.” 이 발언 역시 논란이 됐지만 평소 그들의 생각이다. 이 깜짝 놀랄 말이 언론 앞에서 갑자기 나오는 건 아니다. 중국화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이 중국파 선수들은 꼬인 마음이 있다. 몇몇 선수들에게 들어봐도 그렇다. 중국화 논란을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중국파 선수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단다. 말, 특히나 논란이 될 말은 오래된 생각에서부터 나온다. 중국화 논란에 대한 일부 선수들의 반응이나 관중을 모독하는 발언이 그냥 말실수는 아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일부 대표팀 선수들의 썩어 빠진 마인드를 제어해준 이들도 없고 따끔하게 혼을 내준 이들도 없다. 연봉이 수십억 원에 재산도 수백억 원인 김영권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고 해서 ‘빠따’를 칠 이들도 없다. 대단하신 국가대표 주장님에게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이런 글을 올린 선수나 좋아요를 누른 선수나 즉흥적인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진수 인스타그램

일부 선수들 수준이 이 정도다

선수들 인터뷰를 하다보면 과할 정도로 팬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립서비스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이런 발언은 그만큼 평소에 팬을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팬 알기를 똥으로 아는 이들은 절대 팬의 소중함에 대해 립서비스도 못한다. 일부 대표팀 선수들이 중국화 논란을 돈 잘 버는 자신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쯤으로 받아들이고 팬을 비난이나 하니 없으면 더 편할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말에서 실수라는 건 단어 선택을 잘못했거나 착각을 해 오해의 표현을 썼을 때나 말실수다. 이건 그냥 일부 대표팀 선수들의 배배 꼬인 생각을 참지 못하고 수위 조절에 실패해 일어난 논란이다. 우리 일부 대표팀 선수들의 수준이 이 정도다.

그들의 생각까지 개조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았으면 적어도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 수위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국가대표가 어떤 곳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저 선수들이 몸값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숭고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조금만 실수해도 팬들이 난리를 피우는 피곤한 곳이라고,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단순한 개념을 정 선수들의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대표팀에 정신교육 선생님이라도 초빙하자. 관중 탓하고 중국화 논란도 배배 꼬여 있는 이들이 공만 잘 찬다고 영웅대접 받는 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대표팀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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