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500~600명이던 여자축구의 이날 관중은 17000명이었다 ⓒ 스포츠니어스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배시온 기자는 스포츠니어스 독자 여러분들께 스페인 축구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전달해 드립니다. 세계 3대 프로축구 리그로 손꼽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축구 없이 못사는 스페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스포츠니어스 | 발렌시아=배시온 기자] 최근 한국 여자축구는 북한과의 남북대결로 화제가 됐다. 냉정히 말해 여자축구는 남자축구에 비해 관심을 못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특히 관심을 가진 이유는 북한과의 경기였기 때문이 클 것이다. 북한과의 경기는 더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축구 경기를 하는 팀으로만 넘기기엔 애매하다. 본선 진출이란 목표가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이겨야한다'는 바탕이 깔려있다. 그래서인지 경기가 열린 평양 김일성경기장에는 5만여명이 찾아와 일방적인 응원을 펼쳤고, 원정팀인 한국은 외로운 싸움을 해야했다. 이런 압박을 견딘 대표팀은 1-1 무승부 후 2018아시안컵 본선 진출이란 값진 결과를 얻었다.

4월 23일 발렌시아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에서도 여자축구에 뜨거운 환호를 보내는 관중들을 볼 수 있었다. 발렌시아와 레반테 여자팀의 발렌시아 더비 현장이었다. 홈팀이 대승을 거뒀다는 사실, 부드러운 분위기였다는 사실이 남북전과 다르지만 여자축구에 열광한 관중들이 경기장을 메운 사실은 똑같았다. 이날은 발렌시아 여자팀이 메스타야를 홈구장으로 쓰며 공식적인 더비를 치르는 첫 경기였다. 발렌시아는 전 관중 입장료도 받지 않으며 메스타야를 축제로 물들였다.

그 덕분인지 메스타야엔 여자축구 지역 더비를 보기 위해 17,000여명의 관중이 몰렸다. 같은 지역임에도 관중석은 홈팀 발렌시아 팬들 대부분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일방적인 응원을 펼쳤고 발렌시아 선수들은 이런 환호에 보답하듯 6-0 대승을 거뒀다. 같은날 마드리드 비센테 칼데론에서 열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여자팀 경기 관중 수인 14,000명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여자축구 1,2위를 다투고 있는 강팀간의 대결보다 메스타야에 3,000여명이 더 입장한 것은 입장료가 없기 때문도 있겠지만 발렌시아인들의 '축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자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줄을 선 팬들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스페인의 축구 열기가 뜨겁다지만 안타깝게도 여자 축구에 동일하게 적용되진 않는다. 물론 여자축구도 리그를 갖추고 있고 중계도 있다. 우리나라 유소년 선수들이 스페인으로 축구 유학을 가듯, 세계 곳곳에서 축구를 배우고 싶은 여자 선수들이 오기도 한다. 이 덕분에 아마추어팀과 아카데미까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메라리가 경기를 100유로에 볼 수 있다고 하면 여자축구는 10유로 정도로 훨씬 싼 가격에 볼 수 있듯, 축구에 죽고 사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여자축구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발렌시아 여자축구의 일반적인 홈경기 관중은 500~600명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장 1층과 2층 대부분을 꽉 채우는 관중이 입장한 것은 스페인에서도 눈에 띄는 일이다. 현지 언론에서도 경기 종료 후 발렌시아 더비의 관중 수치를 메인에 걸며 보도했다. 지역더비 이벤트와 팬들이 원하는 경기력의 조화가 잘 이뤄져 성공적인 더비 매치가 열린 셈이다. 더욱이 발렌시아 남자팀은 여자팀의 더비 하루 전인 22일 말라가 원정에서 0-2로 패했다. 발렌시아 팬들은 패배의 상처를 여자팀의 더비전 대승으로 위로받았다. 입장료가 무료인 경기기 때문에 지정좌석이 아니라 발렌시아 유니폼 사이사이에 있는 레반테 유니폼도 볼 수 있었다. 골대 뒤에 위치한 발렌시아 서포터즈를 제외하곤 모두 섞여 앉았다.

경기는 전반 초반부터 발렌시아에 쉽게 흘러갔다. 전반 8분 선제골을 기록한 발렌시아는 전반전에만 4골을 몰아넣으며 메스타야를 더욱 달궜다. 후반전에 들어서도 13분만에 다섯 번째 골이 터졌고 후반 31분 여섯 번째 골을 넣으며 대승을 거뒀다. 다섯 명의 선수가 골고루 득점포를 쏘았기 때문에 팬들은 더욱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한 순간도 환호를 멈추지 않으며 메스타야를 축제로 물들였다.

여자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줄을 선 팬들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특히 이 더비의 하이라이트는 후반 77분을 넘어갈 쯤이었다. 레반테 팬들과 발렌시아 팬들이 모두 함께 파도타기 응원을 시작했다. 발렌시아 팬들의 주도로 시작한 파도타기는 유니폼 색깔과 상관 없이 모든 경기장을 들썩이게 했다. 일방적으로 지고 있는 레반테 팬들의 입장에서는 달가울 수가 없었다. 이들은 차마 양쪽 팔을 들진 못했지만 한쪽 팔을 들며 발렌시아인으로서 어느 정도 축제에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경기장엔 여러 번의 파도가 쳤다. 발렌시아의 쐐기 골도 이때 터졌다. 파도타기 응원을 하던 레반테 팬들은 팔을 내리고 잠시 침묵했지만 발렌시아 팬들은 들고 있던 팔을 그대로 흔들며 격하게 환호했다.

발렌시아 팬들의 입장에서는 6-0 대승을 거뒀기 때문에 상대에게 더 여유로운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레반테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레반테가 선수 교체를 할 때에도 발렌시아 팬들은 매번 똑같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경기장에서 상대, 심판에게 단 한 번의 야유도 나오지 않는 모습은 신기한 광경이었다.

팀을 떠나 발렌시아인들의 축제 같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상대와 함께 응원하고, 경기를 즐기고 똑같은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지역 더비가 특히 불붙는 스페인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되기도, 오히려 같은 지역이라는 점때문에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은 축구로 인해 이들만의 작은 축제를 즐겼다는 점이다.

si.onoff@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