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성균관대 감독직에 합의한 설기현의 모습. ⓒ성균관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대한축구협회가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을 슈틸리케호 신임 코치로 선발했다. 협회는 지난 6일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오는 3월 1일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 종료일까지다. 자격증이 없는 차두리를 전력분석관으로 임명, 사실상의 코치로 쓰고 있는 대표팀은 아직 성인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본 적 없는 이까지도 대표팀 코치로 선임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형님 리더십’을 기대한다고는 하지만 대표팀에는 지금 코치가 아니라 은퇴한 형들만 넘쳐 난다. 대표팀 코치라는 자리가 이렇게 성인 무대에서 지도자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 가지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설기현 코치가 선임된 후 대표팀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만 다들 주목하고 있을 뿐 정작 이 일로 낭패를 본 성균관대를 걱정하거나 대학 감독까지 빼가는 협회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은 없다. 뭐 설기현 코치가 대표팀에 합류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여러 언론의 분석이 있으니 넘어가더라도 정말 중요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꼭 한마디 하고 싶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라고 검증되지도 않은 이를 대표팀에 부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학팀에서까지 지도자를 빼내 대표팀 코치로 선임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설기현 코치는 성균관대 감독 신분으로 러시아월드컵을 마칠 때까지 대표팀에 파견 형식으로 근무한다.

대학 축구도 곧 새 시즌이 시작한다. 하지만 성균관대는 내년 7월까지 감독도 없이 팀을 운영해야 한다.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1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감독 없이 운영되는 팀이 잘 될 리 없다. 더군다나 하루하루 기량 발전을 위한 시간이 중요한 대학 선수들 입장에서는 감독 없이 한 시즌 반을 보낸다는 게 엄청난 손해다. 그런데도 협회는 먼저 설기현과 성균관대에 파견 근무를 제안했고 협회의 제안에 성균관대가 한사코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개 대학이 거대 협회의 제안(?)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대표팀으로 가는데 그 지긋지긋한 ‘대승적인 차원’ 이야기가 나오면 괜한 성균관대만 욕을 먹을 뿐이다. 자격증도 없는 차두리 전력분석관을 임명해 코치로 쓰는 편법도 모자라 아마추어 팀 지도자까지 파견 형식으로 1년 반을 빼내오는 건 한 나라의 대표팀이 할 행동은 아니다. 파견 형식이니 성균관대는 다른 감독을 영입할 수도 없고 성균관대 학생들은 1년 반 동안 설기현 감독을 기다려야 한다.

팀 간에는 전력 수혈을 위해 선수나 지도자에게 이적 제안을 보내는 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설기현 감독이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대학이나 프로팀 지도자 자리로 옮겼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축구를 총괄하는 대표팀에서 대학 지도자까지 빼가는 건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협회는 산하 프로 팀과 아마추어 팀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대표팀에서 설기현 코치를 파견 근무 형식으로 데려온 건 아마추어 팀에 대한 예의가 눈꼽 만큼도 없는 일이다. 그것도 U리그 개막을 이제 한 달 남겨 놓은 상황이니 성균관대 선수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스타 플레이어라고 성인 무대에서 검증도 되지 않은 이를 데려간 것보다 아마추어 팀 지도자를 개막 한 달 전에 파견 근무 형식으로 1년 반 동안이나 빼온 게 더 비판받아야 할 행동인데 우리는 지금 대표팀 상황만을 바라볼 뿐 성균관대 학생들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부산 박성화 감독은 취임 2주 만에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아이파크

협회가 산하 아마추어 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딱 이 정도다. 대표팀만 잘 되면 될 뿐 산하 아마추어 팀에 대한 배려, 아니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 그래 놓고 협회가 풀뿌리 축구 운운할 자격은 없지 않은가. 파견 근무?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성균관대 감독을 빼가는 걸 파견 근무라는 아주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한창 기량이 성장할 대학교 4학년 학생이 졸업한 뒤에야 설기현 감독은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 대학 선수들은 졸업 후 프로팀 입단이 가장 큰 스트레스이자 숙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대학팀 감독이 프로팀 감독이나 스카우트에 제자를 어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성균관대 4학년이 되는 학생들은 이런 감독도 없이 졸업한 뒤 진로를 찾아야 한다. 협회가 대표팀 하나 살리겠다고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생각해 보자.

더 화가 나는 건 이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협회는 2007년 부산아이파크 박성화 감독을 올림픽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이때가 박성화 감독이 부산에 부임한지 채 2주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프로팀을 도와줘도 모자랄 협회에서 이제 막 팀에 부임한지 2주도 되지 않은 감독을 대표팀 지도자로 쓰겠다며 데려가 버린 것이다.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2011년에도 협회는 조광래 성인 대표팀 감독을 전격 경질한 뒤 전북 최강희 감독을 후임 지도자로 선정했다. 위기의 대표팀을 위해 최강희 감독이 “그렇다면 전북과 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겠다”고 했지만 협회는 전북을 포기하고 대표팀에 집중해 주길 강요했다. 결국 최강희 감독은 전북 지휘봉을 잠시 내려 놓고 대표팀 벤치에 앉아야 했다. 협회의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 등의 압력설 등도 파다했다. 협회가 최강희 감독을 빼간 사이 전북은 조금씩 망가져 가고 있었다.

아니 아마추어 팀 감독을 파견 근무 시켜야 할 만큼 도대체 한국 축구계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 쉬고 있는 지도자들 중에도 훌륭한 이들이 많으니 그들을 놓고 저울질해 선임해도 충분한 일이다. 꼭 설기현이 아니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협회가 대표팀 코치 선임 조건으로 감독 경험이 오래되지 않은 이를 찾았다는데 이건 그냥 대표팀 분위기를 이끌 형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다음 달에 개막을 맞는 아마추어 팀 지도자를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데려올 필요가 있었을까. 설기현 감독의 대표팀 코치 선임은 의도 자체도 이해할 수 없고 과정도 더더욱 불만이다. 또한 이 일은 과거 박성화 감독이나 최강희 감독을 대표팀에서 빼갔던 것처럼 협회가 국내 프로팀과 아마추어 팀에 대해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일이다. 주변에 아무리 매력적인 여성이 있더라도 남자친구가 있다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남자들 사이의 예의 아닌가. 협회는 자꾸 임자 있는 이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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