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에겐 정말 내달 15일 열릴 우즈베키스탄전이 운명을 가를 경기일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지난 14일 이용수 기술위원장 주재로 긴급 회의를 열고 다가올 우즈벡전에서 대표팀이 승리하지 못할 경우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기술위원 전원, 슈틸리케 감독의 동반 사퇴를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즈벡전을 이겨야 한다는 필승의 각오라고 보면 좋을 텐데 이거 왠지 한국 축구가 과거 실패를 반복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며칠 전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오늘은 이 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부터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를 펼쳐보겠다. 물론 내 예상이 들어맞지 않길 바란다. 나는 그저 내 꿈 이야기를 하는 거다.

우즈벡전 승리가 반드시 필요한 슈틸리케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를 일주일 앞두고부터 언론은 연일 슈틸리케 감독을 압박한다. <슈틸리케, 우즈벡전에 감독 목숨 달렸다>는 기사부터 <‘무색무취’ 슈틸리케호, 벼랑 끝에 몰렸다>는 기사가 연일 포털 사이트와 신문 헤드라인을 도배한다. 기자회견 때마다 언론에서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이번 경기에서 지면 정말 감독직을 내려 놓을 것이냐”고 묻고 슈틸리케 감독은 얼버무린다. “최선을 다하겠다. 다른 경기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경기를 위해 입국한 손흥민에게도, 기성용에게도 오로지 감독 거취에 대한 질문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님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손흥민이 “반드시 이기겠다”고 하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쏟아진다. <손흥민, “슈틸리케 감독을 위기에서 구하겠다”> 조회수는 폭발한다.

경기를 앞두고 관점은 오직 슈틸리케 감독이 우즈벡전을 통해 살아남느냐와 살아남지 못하느냐 뿐이다. 그리고 막상 우즈벡과의 경기가 시작되자 내용은 팽팽하게 흘러간다.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큰 일을 위해 치르는 경기에서 선취골을 넣지 못해 우리가 초조해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힌 우즈벡 여자 응원단은 춤을 추며 신이 났다. 그런데 예쁘다. 잠시 ‘장인 어른의 나라를 응원할까’라고 생각하다가 내 뺨을 때리며 경기에 집중한다. 전반전은 이렇게 0-0으로 마무리됐고 라커룸으로 향하는 슈틸리케 감독을 카메라가 비춘다. 답답한 관중과 달리 이천수 해설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선수들 자신감 있게 플레이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 파이팅입니다.”

후반전도 팽팽하게 이어지면서 모두가 초조해하고 있던 후반 36분 마침내 골이 터졌다. 장현수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려준 공이 우즈벡 수비수 발에 맞고 방향이 바뀌며 골문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우즈벡 골키퍼가 몸을 날려 봤지만 역동작에 걸려 이 공은 손에 닿지 못했다. 적지에서 경기를 잘 풀어가던 우즈벡의 어이없는 자책골이었다. 결국 한국은 후반 막판 우즈벡의 완벽한 슈팅이 골대에 맞고 나오는 행운까지 겹치며 안방에서 1-0 신승을 따냈다. 슈틸리케 감독도 우즈벡전 승리로 동반 사퇴라는 최악의 경우는 면하는 듯했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겼어도 여론은 여전히 냉담했다. 누군가는 슈틸리케 감독을 향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사람 아직도 그 자리에 있어요? 아주 나쁜 사람이네.”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나면 후임자는 신태용 코치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시간이 부족해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성남FC

“새 감독 오면 시간이 부족하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찜찜한 승리’, 슈틸리케는 더 이상 구세주가 아니다>, <분위기 전환 위해 감독 교체 필요하다>는 언론의 거센 비난이 이어지고 ‘100분 토론’에서는 <슈틸리케 감독은 2년 동안 무얼 했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펼쳐진다. 이 자리에 등장한 원로 축구인들은 “외국인 감독이 우리나라 실정을 너무 모른다”며 불만을 표하고 전화로 연결된 시청자는 “이러다가 월드컵에 못 나가서 축구를 보는데 2022년까지 기다리는 건 재앙”이라고 걱정한다.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는 김현회가 <감독 경질 능사 아니다, 감독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가 역풍을 맞고 “박주영과 기성용에게 사과하라”는 여론에 직면한다. ‘슈틸리케 경질 서명운동’이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페이스북에는 슈틸리케 감독이 원래는 강등 전문가라는 내용을 담은 ‘슈틸리케의 무능함’ 영상이 좋아요 60만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결국 사흘 뒤 대한축구협회가 전격적으로 슈틸리케 감독 경질을 발표했다. 물론 죄없는 슈틸리케 감독의 통역도 졸지에 백수가 됐다. 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면 선수를 파악하는 데만도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한국 축구를 잘 이해하고 올림픽에도 나서 큰 대회 경험도 충분한 신태용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남은 월드컵 예선을 이끌기로 했다.” 물론 신태용 감독대행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까지만 맡기로 했다. 협회는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본선 진출이 확정되면 이후 세계적인 명장을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신태용 감독대행에 대한 주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경력이 재조명받았고 레슬링복 세리머니 사진이 다시 퍼지면서 소탈한 모습으로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경기력도 점차 좋아졌다. 신태용 감독대행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남은 예선 경기에서 승승장구했고 그는 ‘갓태용’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또 <신태용의 형님 리더십,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했다>고 대서특필했다. “K리그 득점왕은 J리그에 가지 않는다”던 그의 과거 발언까지도 다시 알려지며 신태용 감독의 주가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결국 2017년 9월 우즈벡과의 마지막 원정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신태용호는 이란에 이어 조2위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위기에서 한국 축구를 구해낸 신태용 감독대행은 영웅대접을 받았고 대통령 선거에 나와도 뽑겠다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tvn에서 100번씩 재방송하는 <명단공개2017, 신이라 불리는 전설들>편에서는 1위 유재석에 이어 신태용 감독대행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3위는 김연아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나면 후임자는 신태용 코치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시간이 부족해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성남FC

명장 영입? 행복한 고민 빠진 축구팬들

그러는 사이 슈틸리케 감독은 고국인 독일로 돌아가 ‘빌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축구 전체를 향한 쓴소리를 퍼부었다. “한국 축구는 이상하다. 감독을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아는 나라다. 지금껏 그들이 감독을 바꾼다고 해서 한국 축구가 발전했는지 묻고 싶다. 누군가는 나에게 선수 선발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책임은 내가 졌다. 한국에서의 2년이란 시간은 행복하기도 했지만 가끔 나는 악몽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인터뷰는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독설’ 슈틸리케, “한국 생활은 악몽 같았다>고 전해졌고 그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듣고 보면 슈틸리케 감독의 지적은 대부분 맞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갓틸리케’로 불리던 슈틸리케 감독은 이렇게 어느 순간 한국 축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역적 취급을 받았고 그에게는 아무런 해명의 기회도 없었다.

이 무렵 협회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할 경우 세계적인 명장을 영입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팬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디에고 시메오네를 데려와야 한다는 이들과 호세 과르디올라와 접촉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언론에서도 <새롭게 한국 축구 이끌 명장은 누구?>라는 기사를 통해 세계적인 명장의 이름을 들먹였다. 일부에서는 중국에 진출한 마르셀로 리피나 스벤 예란 에릭손 등을 언급했지만 대다수 팬들은 “이미 한 물 간 감독”이라면서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는 <현재 백수인 명장 리스트>라는 글이 올라오는데 여기에는 쟁쟁한 후보군들 중 루이스 반할 감독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자 댓글에서는 이렇게 반응한다. “반할이 저기에 있다고? 형들. 반할이 한국 감독으로 오는 거 나만 불편해?”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신태용 감독대행은 높아진 주가로 몸값도 치솟았다. 한 중국 구단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그를 영입할 것이라고 중국발 ‘시나닷컴’이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협회 관계자, 극비리 유럽 출국… 누구와 협상하나?>라는 기사가 터져 나왔고 곧바로 <안첼로티와 협상 시작, 이틀 내로 결론날 듯>이라는 기사에 이어 <협상 마무리 단계, 안첼로티 사인만 남았다>는 기사까지 이어진다. 신문 1면 헤드라인 바로 옆에는 <트와이스 정연, 김현회 기자와 열애 중>이라는 제목이 떠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들뜬 사이 살짝 불안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안첼로티와 협상 지연, 계약 문제 이견 보여>, <한국행 ‘빨간불’, 안첼로티는 왜?>라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결국 협회는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위르겐 클롭과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측을 접촉하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높아진 눈은 보라 밀루티노비치와 필립 트루시에로까지 내려갔지만 그들도 한국행은 모두 거부했다. 월드컵 본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경력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 감독 오면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협회 관계자는 유럽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축구 원로들은 이 상황에서 ‘국내 감독이 적합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 축구 원로는 “외국인 감독이라고 다 능사가 아니다. 슈틸리케를 보면 알지 않느냐”고 했고 또 다른 축구 원로는 “외국인 감독은 고집불통이다. 소통이 잘 되는 국내 감독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적임자가 없었다. K리그에서 명장으로 소문난 이들은 다들 대표팀 감독직을 꺼려했고 그들을 막 빼올 수도 없었다. 적임자는 오로지 단 한 명, 신태용 감독 뿐이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 역시 중국에서 거액의 영입 제안을 받은 터라 대표팀 감독을 더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협회는 위기에서 한국 축구를 구해낸 ‘국민영웅 갓태용’에게 1년만 더 대표팀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신태용 감독이 이를 정중히 거절하면서 일은 더 꼬여만 갔다.

그런데 며칠 뒤 기술위원회에서 10시간의 긴 회의가 이어졌고 결국 감독 선임 문제를 해결했다. 그들의 발표 내용은 이랬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면 선수를 파악하는 데만도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한국 축구를 잘 이해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을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끈 신태용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직을 맡기로 했다.” 알고 봤더니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직접 신태용 감독을 만나 삼고초려를 해 그의 허락을 받아낸 것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중국의 수십억 원 제안도 마다하고 다시 한 번 한국을 맡은 ‘영웅’이 됐다. 신태용 감독은 처음에는 월드컵 준비 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아 제안을 고사했지만 결국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를 수락했다. 그 사이 협회가 영입하겠다던 외국인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쏙 들어갔고 모두가 ‘신태용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1년 만에 대표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는 건 불가능했다. 1년 동안 임시적으로 팀을 운영했던 감독대행 시절을 다 더해도 신태용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10개월 정도였다.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고 그에게 남은 시간은 10개월 뿐이었다. 결국 신태용 감독은 자신이 과거 지도해 본 적 있는 홍철 등을 비롯한 선수들을 중점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함께 했던 황희찬과 류승우 등도 중용됐다.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 콜롬비아, 튀니지와 한 조에 속한 한국은 튀니지는 반드시 잡고 콜롬비아전에 승부를 걸어 16강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신태용호는 결국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결국 1무 2패라는 성적으로 짐을 싸야했다. 그러자 ‘신태용 찬가’를 부르던 언론은 순식간에 돌아섰다. 경기력이 별로인 선수를 계속 기용했다면서 ‘인맥 축구’ 논란을 제기했고 월드컵 도중 맥주 파티를 했다는 제보도 터져 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나면 후임자는 신태용 코치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시간이 부족해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성남FC

우리는 왜 반복 학습을 통해 배우지 못할까

마치 신태용 감독이 대통령 선거에 나와도 뽑아줄 것처럼 들썩이던 여론도 싸늘해졌고 결국 호기롭게 출국한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와야 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거액의 중국 구단 영입 제의도 마다하고 희생을 감수했던 신태용 감독이 온갖 비난에 시달리는 동안 협회는 모든 책임을 신태용 감독에게로 돌렸다. 그 누구도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감독을 교체한 책임을 지지 않았고 월드컵에서의 부진에 대한 책임 역시 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다르다”면서 또 다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고 언론과 팬들은 이 외국인 감독의 행보에 ‘갓’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물론 이 신격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잘 나가다가 세 경기에서 흔들리자 경질론이 대두됐고 누군가는 그를 흔들기 시작했으며 결국 그 역시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나는 흠뻑 땀에 젖은 채로 잠에서 깼다.

한국 축구는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나 역시 최근 대표팀 경기력이 불만족스럽지만 감독을 바꾼다고 해서 변할 건 별로 없다. 감독 경질 이후 어떻게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에 나갔다고 치자. 1년짜리 감독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힘 한 번 써보지 못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 월드컵 본선 세 경기하자고 한국 축구 전체를 또 다시 악순환의 반복으로 집어 넣는 일은 없어야 한다. 월드컵 한 번 못 나가더라도 차라리 원칙을 중시한다면 얻는 게 더 있을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경기력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비판하되 그를 흔들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렇게 ‘홍비어천가’를 부르다가 이제는 ‘슈틸리케 역적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언론도 그러면 안 된다. 용기가 있건 일관성이 있건 둘 중 하나만 하자. 사람이 잘못된 일을 겪었으면 ‘아, 다시는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느껴야 하는데 우리는 반복 학습이란 게 없다. 감독의 임기는 보장받아야 한다. 감독 교체로 성적이 났으면 지금쯤 세계 최강은 사우디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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