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서울대학교에 예비 3번으로 예비 합격자 통보를 기다리던 친구와 서울대 예비 42번으로 기다리던 친구가 있었다. 물론 둘 다 결과적으로는 등록을 포기하는 학생이 적어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했다. 그런데 예비 3번인 친구는 “수능에서 한 문제 정답이 이상했다.”, “내신 성적 반영에 문제가 있었다”고 투덜댔지만 예비 42번인 친구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고 예비 합격자를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 하지도 않았다. 자기보다 앞 순위에 있는 42명이 갑자기 서울대 입학을 포기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완벽한 패배라고 생각했고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다. 변명거리가 없으니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이란은 침대축구도 안 했다

어제(11일) 열린 한국-이란전이 그랬다. 완벽히 졌다. 도무지 변명거리도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이란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4차전 원정경기에서 0-1로 패했다. 비등비등하게 대결하다가 졌으면 “억울하다. 화가 난다. 안타깝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은 이란전에서 핑계 댈 것도 없이 그냥 졌다. 아깝게 예비 합격 3번으로 서울대에 떨어진 친구는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서울대 예비 합격 42번이던 내 친구는 이런 심정을 잘 알 거다. 이건 수능 한 문제 정답이 이상해서도 아니었고 내신 성적 반영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경쟁할 실력이 되지 않아 떨어진 거다.

원래 이란전에서 패하면 텔레비전을 끄면서 ‘왜 하필 백악기  공룡은 저 나라 땅에서 죽어서 석유가 됐는지’를 원망하고 국제 유가를 비난하고 ‘심판이 매수됐다’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그들의 침대축구를 비난해야 하는데 어제는 그러지 못했다. 화가 나지도 않을 완벽한 패배였다. 더 뼈아픈 건 늘 앞선 상태에서 후반 막판 20분은 우리를 애타게 하며 침대축구를 펼치던 이란이 이런 비매너 플레이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침대축구를 하며 시간을 끌어야 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아자디 스타디움에서의 이란전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승점 1점만 따와도 대단한 성과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승점 1점은 무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승점을 반납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원래 이란전은 ‘10분만 더 있었으면…’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는 재미라도 있는 법인데 어제 경기는 100분을 더 줬어도 이길 수 없는 경기였다. 이러다 진짜 월드컵에 못 나가고 그러면 내 수입도 줄고 치킨집 사장님들 수입도 줄기 때문에 무조건 우리는 반드시 월드컵에 나가야 한다. 그래서 가뜩이나 수입이 적은데 더 수입이 주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내가 급한 마음에 이란전 패배를 분석해 봤다. 나는 어제 경기가 슈틸리케 감독의 완벽한 전략 실패라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그 근거를 하나씩 들어보려 한다. 인터넷 기사와 댓글까지도 다 확인한다는 슈틸리케 감독이 신생 언론사 <스포츠니어스>까지 들여다 볼 일은 없겠지만 혹시 슈틸리케 감독 지인이 있다면 이 문제를 꼭 지적해 주길 바란다. 슈틸리케 감독이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우리는 이란의 침대축구를 보며 분통터질 일도 없이 완벽한 패배를 당한 것일까.

한국은 90분 동안 이란을 상대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란축구협회

김신욱 없는 ‘롱볼 축구’는 안 통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동원을 선발 원톱으로 기용했다. 김신욱이나 석현준 등 다른 원톱 공격수에 비해 지동원은 제공권에서 우위에 있는 선수가 아니다. 정통 포워드 자원이라고 보기에도 어렵고 소속팀에서도 주로 측면 공격수로 나서는 선수다. 나는 슈틸리케 감독이 지동원을 원톱으로 기용했을 때 뭔가 대단한 변칙 전략이 있는 줄 알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란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전략 분석에 몰두하는 사진을 공개할 만큼 준비한 게 있어 보였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이란행 비행기에서 한 건 전략 분석이 아니라 <풋볼매니저>였다보다. 이란전에서 보여준 공격 전략은 전혀 변칙적이지도 않았고 지동원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란이 중원에서부터 압박을 해 점유율을 완전히 빼앗긴 상황에서 지동원의 머리만을 노린 ‘롱볼 축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제공권에 능한 김신욱에게 더 맞춤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가뜩이나 몇 번 없던 전반전 역습 기회에서 내내 의미 없이 지동원의 머리를 향해 공을 올렸다. 김신욱이 없는데 김신욱을 위한 전술을 쓰니 이게 먹힐 리가 없었다. 전반전 45분 동안 한국은 단 하나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아무리 상대가 원정에서는 부담스러운 이란이라고 해도 우리가 이랬던 적은 없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후반 들어서였다. 어차피 후반 들어 공격 변화를 위한 카드는 김신욱 뿐이었다. 지동원이 전혀 날카롭지 않으면 빨리 김신욱을 투입하는 게 상식이다. 여러 변화 상황을 지켜보고 손에 쥔 여러 장의 교체 카드 중 하나를 골라서 투입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도저히 동점골을 넣고 수비를 강화해 무승부 전략을 쓸 것도 아니었으니 케이로스 감독이 봐도, 우리 엄마가 봐도, 누가 봐도 교체 카드는 김신욱 뿐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김신욱을 후반 23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 투입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선수 교체가 이상했다. 오른쪽 공격을 책임지던 이청용을 빼고 그 자리에 지동원을 넣고 김신욱을 최전방에 투입한 것이다. 그래도 지동원보다는 측면에서 돌파를 통해 크로스를 연결할 이청용이 더 요긴한 자원이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은 의아했다. 더 이상한 전략은 이어졌다. 그나마 김신욱의 위협적인 제공권을 기대했는데 한국이 김신욱 투입 후에 갑자기 ‘티키타카’로 귀신 같은 전략 변화를 준 것이다. 김신욱이 없을 땐 마치 최전방에 김신욱이 있는 것처럼 플레이하더니 이제 김신욱이 활약할 만하니까 중원에서부터 짧은 패스를 하며 점유율 축구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한국은 후반 막판 7~8분여를 남길 때까지 의미 없는 패스를 남발하며 김신욱을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슈틸리케는 전략에서 케이로스에 완패했다

이미 김신욱 효과가 떨어진 뒤 후방에서부터 ‘난 분명히 공을 줬으니 네가 알아서 헤딩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패스, 아니 걷어내기가 시작됐다. 김신욱은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했지만 이미 동료 공격수들은 체력이 바닥 나 뛰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신욱이 헤딩으로 떨궈주면 측면 공격수인 손흥민이나 지동원이 김신욱과 간격을 좁혀 리바운드 공을 따내야 공격이 이뤄지는데 손흥민과 지동원은 지쳐서 발을 제대로 떼지도 못했다. 김신욱을 투입하기 전까지 67분을 지동원에게 겨냥하는 ‘롱볼 축구’로 허비했고 김신욱이 투입된 이후 15분은 갑자기 ‘티키타카’를 했으며 나머지 8분은 동료들의 체력이 다해 김신욱 효과도 보지 못했으니 이거 도대체 90분을 왜 그렇게 힘들게 뛰어다녔나 싶다. 이란 골키퍼는 어제 경기가 끝난 뒤 샤워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유효 슈팅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슈틸리케 감독의 완벽한 전략 실패였다. 한국이 브라질 원정을 떠나도 90분 동안 유효 슈팅 한 번은 쏘지 않을까.

헛웃음이 나오는 건 슈틸리케 감독이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상대팀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여우처럼 너무나도 영리하게 척척 원하는 카드를 썼다는 거다. 중원을 책임지는 안드라닉 테이무리안을 과감히 선발에서 제외한 케이로스 감독은 마치 이 축구경기를 혼자만 녹화로 보는 것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후반 38분 손흥민과 지동원의 체력이 바닥 나 김신욱의 날카로움도 덜해지고 이미 승기가 굳어지자 최전방의 사르다르 아즈문을 뺀 채 미드필더 테이무리안을 투입했다. 이건 거의 슈틸리케 감독을 가지고 노는 듯한 전략 성공이었고 슈틸리케 감독보다 케이로스 감독이 몇 수 위의 전술가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우리 감독을 자랑스러워해야 하지만 어제 경기만 놓고 본다면 분명히 그랬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서도 졌지만 이미 감독의 전략에서도 지고 들어간 경기였다. 케이로스가 한국 팬들에게는 미운 털이 박힌 감독이지만 이런 여우 같은 명장도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장현수의 측면 수비수 기용 실패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전반전에 오른쪽 측면을 책임지던 장현수는 뒷공간을 내주고 공격적인 움직임도 보여주지 못한 채 후반 들어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오른쪽 측면은 오재석이 채웠다. 멀티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앙 수비수로 가장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이는 장현수를 자꾸 오른쪽 측면이나 중원에 세우는 건 슈틸리케 감독의 판단 착오다. 장현수는 홍정호와 더불어 ‘중국화’된 선수라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는데 자꾸 어색한 옷을 입히려는 슈틸리케 감독도 이런 비난을 제공에 한 몫 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원래 포지션도 아닌 선수로 그 자리를 메우고 결국에는 45분 만에 교체할 바에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 오른쪽 측면에는 최철순이나 혹은 최철순 같은 선수가 있고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도 신형민 아니면 신형민, 그것도 아니면 신형민 같은 선수도 있다.

한국은 90분 동안 이란을 상대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란축구협회

경질설 이르지만 ‘소리아 발언’은 잘못

벌써부터 감독 경질에 대한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단계는 아니다. 나는 최근 들어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 및 전략 실패, 수비 불안 등이 걸리긴 해도 여전히 그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 분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이건 내 생각이다. 2년마다 한 번씩 감독을 갈아치우는 팀이 잘 될 일도 없을뿐더러 이미 지난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도 두 번이나 감독 교체로 팀이 흔들리는 모습을 봤는데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해서는 안 된다. 감독 경질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두세 경기 뿐인데 이건 정말 정말 슈틸리케 감독을 믿고 믿다가 진짜 마지막에 꺼내야 하는 카드다. 최종예선 막판 두세 경기를 남겨 놓고도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꺼내야 하는 임시방편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일단 비판은 하되 그와 함께 가야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감독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 ‘갓틸리케’라고 찬양하다가 몇 경기가 실망스러웠다고 갑자기 역적을 만드는 일도 없어야 한다. 우리 이런 거 1998년 프랑스월드컵 차범근 감독 경질 이후 미개하다고 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나는 비판하면서도 그를 ‘아직은’ 믿을 것이다. 싸우긴 매일 싸우는데 헤어지지는 않는 연인처럼 옆에서 계속 비판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을 ‘아직은’ 붙잡고 있고 싶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란전 이후 “스스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경기를 분석하겠다”고 했으니 아마도 그는 이런 비판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이란 원정이 부담스럽다고 해도 과거 선배들은 몰아치다가 한 골 내주고 침대축구에 당해 이기지 못한 뒤 분해서 땅을 치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어제 경기는 계속 두들겨 맞고 두들겨 맞다가 골 먹고 또 두들겨 맞고 끝났다. 땅을 치고 안타까워 할 코딱지 만큼의 여지도 없다. 이란한테 지면 분명히 화가 나야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화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무기력할 줄은 몰랐다’ 정도의 느낌일 뿐 별로 큰 분노가 없다. 그래서 이게 더 비참한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슈틸리케 감독을 아직까지는 지지하면서도 잘못된 점은 지적할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경기력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건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 팀에는 카타르의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이렇게 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건 진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말이다. 지난 카타르와의 경기 전에는 지금껏 우리 수비수들 앞에서 제대로 활약 한 번 한 적 없는 무슨 소리아 타령인가. 레반도프스키나 카바니를 언급했다면 모를까, 잉글랜드에서 가장 핫한 손흥민을 쓸 수 있는 감독이 어디 소리아를 찾고 있나. 이건 내 차가 페라리인데 “구형 SM5가 출력이 좋아서 탐난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력에서의 여러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고 특히나 한국 팬들, 그리고 선수들이 상처를 받을 만한 말은 조심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하겠다. “슈틸리케 감독님, 소리아 발언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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