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구 경기 취재나 인터뷰 등을 위해 지방에 가면 꼭 그 지역 맛집을 들른다. 지역 특산물도 꼭 먹어보려고 한다. 얼마 전 고등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함안에 갔다가 근처 마산에 들러 맛이 기가 막힌 원조 마산아귀찜을 먹어본 뒤로는 서울에서 일반적인 아귀찜은 입맛에 차지 않아 고생했던 적도 있다. 아직도 2011년 전북현대와 알 사드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직후 전주 막걸리 타운을 가득 채웠던 전북의 녹색 유니폼들도 잊지 못한다. 명승부 끝에 패한 뒤 허탈한 마음에 몰려든 전북 팬들과 함께 밤새 막걸리를 마시며 축구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즐거움이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나는 축구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되면서 여러 좋은 점이 있지만 그 중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내가 축구와 관련 없는 직업이었더라면 전주나 포항, 울산, 광양 등에 갈 일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이런 지역에 가 특산물을 먹고 즐기는 건 나의 오랜 행복이다.

또 하나 기다리던 날이 있다. 바로 이번 주 주말이다. 몇 년 동안 포항에 여러 번 갔지만 늘 포항 구룡포 과메기 축제에는 가보질 못했었다. 수도권에 사는 입장에서는 이 축제가 언제 열리는지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에서 과메기에 소주 한 잔을 걸치는 걸 늘 상상해 왔는데 내가 포항에 취재차 내려 갔을 때마다 과메기축제는 이미 끝난 뒤였다. 그래서 올해에는 몇 달 전부터 매일 검색창에 포항 구룡포 과메기 축제가 언제 열리는지를 확인할 정도였다. 평소에 먹는 과메기도 맛있지만 축제 때 현지에서 즐기는 과메기 맛은 또 다를 것 같아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올해 열릴 과메기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일부러 이 일정에 맞춰 포항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많았다. 광고 아닌 광고를 하자면 올해 과메기 축제는 다가오는 21일(토요일)과 22일(일요일), 이틀에 걸쳐 열린단다.

스틸러스 경기 없는 포항 지역 축제

그런데 아쉬운 게 하나 있다. 이왕 포항에 내려가는 거 포항스틸러스 홈 경기도 함께 관람하고 왔으면 좋을 텐데 포항은 이번 주말 홈 경기가 없다. 22일(일요일)에 수원 원정 경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사랑하는 포항에서 나는 스틸야드는 구경도 못하고 과메가 축제만을 즐기고 와야 한다. 처음 가보는 과메기 축제가 설레이기는 하지만 나는 과메기 축제보다는 그래도 스틸야드에서의 멋진 축구 경기가 더 좋다. 포항에 한 번 내려간 김에 포항 홈 경기와 과메기 축제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건 나만의 의견은 아닐 것이다. 축구에 그다지 많은 흥미를 갖지 않은 이들도 포항이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 어렴풋이 스틸러스를 연상하는 이들도 꽤 있다. 이왕 포항 여행을 떠난 김에 스틸러스 홈 경기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스틸야드는 한국 축구의 역사와도 같은 곳 아닌가.

지역 축제와 K리그 경기를 연계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프로축구연맹이 경기 일정을 짤 때는 여러 가지 상황을 반영한다.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도 고려해야 하고 홈 경기장 보수 공사 등을 이유로 일정을 변경하거나 장소를 바꾸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일정을 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K리그가 보다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지역 축제 일정과 어울려 진행되는 게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과메기 축제 기간에 맞춰 포항 홈 경기가 열리고 스틸야드 앞에서도 과메기 축제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어떨까. 스틸야드와 구룡포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해 경기가 끝난 뒤 관중들이 구룡포로 가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축제 현장에 있는 이들도 경기 시간에 맞춰 스틸야드로 올 수 있도록 돕는 건 어떨까. 지역 축제와 K리그가 서로를 홍보하고 돕는 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 아닐까 싶다. 프로 스포츠라는 게 지역에 정착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지역 축제는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2009년 당시 스틸러스는 일본에서 열리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난 뒤 현지에서 과메기 축제를 준비했었다. 전세기로 과메기를 공수해 우승 축하 기념 파티를 성대하게 열고 과메기를 홍보하는 일을 기획한 것이다. 500여 명의 원정 응원단과 1000여 명의 현지 교민들 앞에서 과메기 파티를 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뉴욕에서도 과메기를 알리는 행사를 벌였는데 도쿄라고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 축제는 무산되고 말았다. 경기장 인근 주택가 문제로 집회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축제가 실제로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이런 접근만으로도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뉴욕과 도쿄에서도 추진했던 일을 정작 포항 홈 경기 때 기획하지 못한다는 건 아쉽다. 포항 구룡포 과메가 축제가 열리는 날 포항 홈 경기가 동시에 치러지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텐데 포항시와 연맹 등에서 미리 일정 조율을 했다면 어땠을까.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과메기 축제와 포항 홈 경기가 치러졌을 것 같다. 참고로 2012년 포항 구룡포 과메기 축제에 참가한 이들만 해도 4만여 명에 이른단다.

지역 축제, 서로 상생하길

비단 포항과 과메기 축제뿐이 아니다. K리그 연고 지역 내에도 숱한 지역 축제가 있다. 고양국제꽃박람회(고양Hi FC), 여수진남 거북선축제, 순천만갈대축제(이상 전남드래곤즈), 전주 한지문화축제(전북현대), 부산바다축제, 부산 불꽃 축제(부산아이파크), 포항국제불빛축제(포항스틸러스), 울산 서머페스티벌(울산현대), 대구 치맥페스티벌(대구FC), 수원화성문화제(수원블루윙즈, 수원FC), 인천소래포구축제(인천유나이티드), 강릉 커피축제(강원FC), 서울억새축제(FC서울), 최남단방어축제(제주유나이티드), 광주김치문화축제(광주FC) 등 K리그와 연계할 수 있는 지역 축제는 많다. 방식 역시 축제 형식에 따라 자유롭게 손을 맞잡을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셔틀버스를 운행해 K리그 경기장과 지역 축제 현장을 잇는 건 물론 입장권이 있는 축제라면 경기장 할인권을 주는 방법도 있고 선수들이 직접 축제 현장에 가 지역민과 함께 어우러지는 방법도 있다. 먹을거리 축제라면 경기장 주변에서 이 먹을거리를 이용한 이벤트를 하는 것도 좋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크고 작은 축제는 2000여 개에 이르는데 올해 지자체가 개최한 각종 축제와 행사비로 1조 원이 넘는 예산이 집행됐다고 하니 이거 거의 축제의 나라 브라질 뺨을 후려칠 정도다. 하지만 이들 중 외부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제대로 자리 잡은 축제는 얼마 없다. 대부분이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들만의 축제가 되거나 부실하게 운영된다. 지역 축제를 여는 입장에서도 외부인들이 대거 몰릴 수 있는 K리그 경기와 연계한다면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 볼 건 없다. 반대로 K리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와 지역민의 사랑 없이는 K리그가 그 연고지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자체의 협조가 상당히 중요하다. 홈 경기장 대여도 그렇고 하다 못해 시내에 경기 홍보 현수막 하는 거는 것조차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안 된다. 하지만 몇몇 구단은 여전히 지자체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며 제대로 된 협조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지자체와의 협조를 위해서라도 지역 축제와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어떨까.

21일(토요일)에 낮에 포항 홈 경기가 열리고 저녁에는 경기장을 찾았던 사람들이 대거 구룡포 과메기 축제 현장으로 건너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황선홍 감독이 사인회를 열고 과메기 쌈을 하나씩 싸 그동안 많은 응원을 보내준 이들에게 선물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김원일이 해병대 옷을 입고 가 교통정리를 돕는 모습도 즐거울 것이다. 지역 축제 때 이 지역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스틸러스 선수들이 한 번쯤은 이런 봉사를 하면 언젠가는 이 나눔이 더 큰 응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인천소래포구축제는 딱 전어철에 열리는데 이날 케빈과 요니치가 전어를 팔고 이 수익금 중 일부를 유소년 축구 발전 기금으로 적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연고 정착을 위해서는 자꾸 선수나 코치진, 구단 프런트 등이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나가야 하는데 지역 축제 만큼 제대로 시민들에게 어필할 기회가 또 있을까. 출근길에 경기 일정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도 종종 하는데 이렇게 선수나 감독이 지역 축제 현장으로가 함께 어울리는 것도 못할 건 없다.

가끔 FC서울의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 종료 뒤에도 홍대에 서울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속속 보인다. 수원 아주대 앞 번화가에는 수원블루윙즈 경기가 있는 날 푸른 유니폼이 넘실댄다. 나는 이게 바로 K리그가 지역과 밀착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 일대에서 들썩이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경기장을 찾은 이 관중들이 곧바로 소비자가 돼 지역 경제에 힘이 돼주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그런 면에서 지역 축제는 K리그가 지역민들에게 사랑받기 위한 소중한 기회다. 연맹에서는 앞으로 경기 일정을 짤 때 지역 축제와도 어느 정도 교감을 했으면 좋겠고 구단 측에서도 지역민들, 그리고 외부인들이 홈 경기와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많이 기획했으면 좋겠다. 포항에 내려가 스틸야드의 멋진 잔디 냄새를 맡은 뒤 과메기 축제 현장으로 가 과메기에 소주 한 잔 하는 환상의 일정이 내년에는 꼭 완성됐으면 좋겠다. 트로스 가수 김정욱 씨의 노래 <포항여행> 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너울 너울 갈매기다. 너울 너울 행복이다. 호랑이 꼬리 호미곶 등대. 윙크할 때에 포항제철 삼대미항 해병대가 반겨준다. 연오랑 세오녀와 과메기가 반겨준다. 스틸러스 반겨준다.” 이번 주말 포항에서 과메기는 나를 반기지만 스틸러스는 반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