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매주 KBS 2TV <청춘FC-헝그리 베스트일레븐>을 꼬박꼬박 챙겨 본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 번 축구로 좌절을 맛본 이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좋다. 지금껏 이 프로그램을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챙겨보는 걸 권한다. 빵빵 터지는 예능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도 있고 소소한 미소도 지어진다. 축구로 좌절을 맛본 이들은 다들 이유가 있다. 큰 부상이 있었던 이들도 있고 집안 형편이 가난해 포기해야 했던 이들도 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났거나 에이전트에게 사기를 당한 이들도 있다. 물론 실력이 부족한 이들이 가장 많다. 저마다 사연은 다 다르지만 한 번 실패한 이들이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만 하더라도 이 프로그램은 참 의미가 깊다.

<청춘FC-헝그리 베스트일레븐>을 보다보면 이들과 부경고등학교가 평가전을 치르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때 부경고 학생들이 이런 말을 한다. “저 형하고 저 형은 고등학교 때 전설적인 형들이었어요.” 그러면서 골똘히 생각하게 됐다. ‘저 친구들처럼 재능 넘치는 선수들도 프로에서 뛰지 못하는데 도대체 프로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은 얼마나 대단한 걸까.’ 가끔 과거의 선수들을 조명하면서 잊혀진 천재에 대해 칼럼으로 소개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대단한 재능을 갖추고도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나는 K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 이들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개리그’일지 몰라도 K리그에서 뛴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공부로 치면 서울대 의대 수준의 경쟁률을 뚫은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우리가 매주 경기장에서 마주하는 K리그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 경쟁을 뚫었는지 살펴보자.

초등학교에서 프로팀까지 갈 확률 0.8%

2015년 기준 대한축구협회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등록된 선수가 8,598명이다. 난립하는 무자격 클럽팀을 제외하고 오로지 협회에 정식 등록된 선수만 해도 이만큼이다. 그런데 이중 10%는 중학교 축구부로 가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야 재미로 축구를 한다고 해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는 보다 본격적인 축구선수의 길을 걷는 게 부담스러운 이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학생 등록선수는 7,765명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문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보다 훨씬 더 좁다. 고등학생 등록선수는 현재 5,284명으로 중학교에서의 진학률이 68%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축구부로 진학해 공을 찰 수 있는 확률은 61%다. 10명 중 6명 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만두더라도 사회에 나와서는 ‘메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등학교 축구부에 진학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축구부로 진학할 확률은 앞서보다 훨씬 더 뚝 떨어진다. 현재 대학생 등록선수는 2,643명으로 고등학교 등록 선수의 절반에 불과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찌어찌해 겨우 축구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간다고 해도 대학교 진학은 장난이 아니다. 축구 명문인 고려대와 연세대 등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2년제 대학 축구부까지 포함하더라도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대학교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37%에 불과하다. 특히나 이때 재능 있는 많은 이들이 좌절한다. 중요한 고등학교 시합에서 부상을 당해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만둬야 하는 이들도 있고 진학 과정에서 지도자와의 충돌로 축구화를 벗어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 ‘빽’으로 자리가 다 차 있어 대학에 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오로지 축구만 바라봤던 이들 중 절반은 이때부터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고등학교 때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능력을 인정받은 것인데 이중 절반은 이렇게 나가떨어진다.

그렇다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축구선수로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문턱에서 프로로 가는 게 진짜 바늘구멍이기 때문이다. 일단 대학 무대에서 전국대회 입상이나 득점왕, MVP 등을 받지 않은 선수는 아예 프로 구단의 눈에 한 번이라도 들 수가 없다. 1년에 대학교 졸업 예정자와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행을 노리는 이들만 해도 2,600명이 쏟아지는데 이들 중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살아남는 건 단 100여 명뿐이다. 단 3.8%만이 프로 무대에 진출한다. 오차는 있겠지만 초등학교 축구선수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무대에서 활약하고 K리그 클래식에 입단할 확률은 0.8%에 불과하다. 우리가 실패한 선수라고 규정하는 내셔널리그와 K3리그까지 포함하더라도 성인이 돼 축구를 계속 이어가는 이는 채 3%가 되질 않는다. 동네에서 날고 긴다는 어린 선수들 중에서도 채 한 명이 프로선수가 될까 말까한 확률이다. 프로 무대에서 경쟁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지금껏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얼마나 혹독한 경쟁을 이겨왔는지 잘 느끼지 못했다.

0.8%의 확률 뚫어도 끝이 아니다

0.8%의 확률로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고 다 성공한 축구선수가 되는 건 아니다. 한 팀에 보통 30명 이상의 선수가 있는데 이중 경기에 나서는 이는 11명에 불과하고 한 시즌을 모두 따져 봐도 주전급 선수는 채 15명이 되질 않는다. 또한 이 주전 11명 중 상당수는 외국인 선수들이 채운다. 그나마 프로 무대에서 한 경기라도 뛰고 방출된 선수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0.8%의 확률을 뚫고 프로 무대에 입성한 뒤 벤치에도 앉지 못하고 선배들의 경기를 관중석에서만 지켜보다 축구를 그만두는 이들도 수 없이 많다. 내가 수학을 잘 못하는 탓도 있지만 0.8%의 확률에서 살아남아 K리그 클래식에서 주전으로 뛸 확률은 얼마나 될까. 따지기도 어렵다. 칼럼에서야 축구선수로의 꿈을 꾸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희망을 줘야겠지만 만약 내 초등학생 조카가 이런 꿈을 꾼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응. 그건 불가능 해.” 이렇게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이재성이나 권창훈처럼 태극마크까지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건 차라리 내가 2주 연속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확률이 더 낮을 것이다. 24년 동안 주전을 지켜온 김병지는 그냥 신이다.

아마 주변에 축구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그런 친구들이 다들 한둘은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정조국을 “아, 그 조국이 형”이라면서 친한 척하는 친구가 있다. 정조국에게 물어보니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한 건 사실이다. 이 친구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지만 지금도 동네에서 ‘메시 놀이’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프로까지 입성했지만 결국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지금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이 친구는 동네에서 호날두다. 나는 이런 우리 동네 메시와 호날두가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지 못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군대 시절 축구로 중대를 씹어 먹던 한 후임은 제대 후 한 프로팀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가 보기 좋게 탈락하고 말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K리그가 얼마나 좁은 문턱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동네에서 날고 기는 메시와 호날두도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있다. 꿈을 꺾는 게 잔인한 일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가끔 “전문적인 선수 생활을 한 적은 없는데 동네에서 공을 잘 찬다. 프로팀 입단 테스트를 받고 싶다”는 이메일이 올 때면 나는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축구는 그저 취미로 즐기시는 게 나을 듯 합니다.”

0.8%의 확률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로 실력이 부족했을 것이고 부상이나 지도자와의 충돌, 어려운 집안 환경도 축구를 그만둬야 했던 99.2%의 이유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보아온 실패한 선수들이라도 누구 한 명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학창시절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장을 달리고 밤 늦게까지 개인 운동을 하며 언젠가 한 번 찾아올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에는 노력해도 그 이상으로 노력하고 재능을 타고났고 여기에 천운까지 따르는 이들이 지금 K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이들이다. 사석에서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 K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은 타고난 재능에 엄청난 노력, 그리고 결정적인 운까지 작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선배가 부상을 당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 첫 경기에서 의도치 않은 골을 넣는다던가, 계속 못하다가 스카우트가 지켜보는 경기에서 한 번 잘한다던가 하는 건 운 아닌가. 0.8%의 확률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실력을 갖춰야겠지만 여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천운도 타고나야 한다. 나는 그래서 K리그 클래식의 주전 선수들을 하늘이 정해준 사나이들이라고 여긴다.

대한민국에서 K리거로 산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유럽 무대를 밟지 못한 하찮은 선수들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물론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은 이들보다도 훨씬 더 좁디 좁은 확률 게임에서 승리한 이들이다. 하지만 나는 K리그 클래식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속 썩이는 것과 욕 먹는 건 전국 상위 0.8% 안에 들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무리 한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국에서 좋은 쪽으로 상위 0.8% 안에 들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들은 험난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다. 포항에 가면 맛집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김원일이나 제대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어 “그 날은 오지 않는다”고 놀렸던 상주의 서상민도 이런 확률을 뚫었다고 생각하니 그 동안 이들을 너무 편하게 대한 게 미안할 따름이다. <청춘FC-헝그리 베스트일레븐>을 애청하며 한 번 실패를 맛 본 이들을 응원하면서도 이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K리그 선수들에게도 존경심을 보내고 싶다. 오늘도 이 0.8%의 확률을 뚫은 사나이들은 골과 승리라는 또 다른 낮은 확률에 도전하며 경기를 치른다. 오늘은 이 확률 게임에서 또 누가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