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유승준이 한 순간의 잘못된 행동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어떤 행동을 해도 비호감이었던 문희준은 ‘국민 보살’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 소개할 만한 한 축구인이 있다. 무려 12년 전 한 순간 화를 참지 못해 지금껏 쭉 호남 지역에서 낙인이 찍혔던 이 사람이 지금 호남 축구의 영웅이 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남기일 감독의 대반전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남기일의 아찔했던 ‘주먹감자 세리머니’

2003년 9월이었다. 당시 부천SK 소속이던 선수 남기일은 전남드래곤즈와의 원정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게 전남 광양 원정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이었던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 치르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전남 지역 프로팀은 전남드래곤즈가 유일했다. 비록 그는 원정팀 소속 신분이었지만 고향의 많은 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호남에서 태어나 광주 북성중학교와 금호고를 졸업한 ‘오리지널 호남인’이었다. 남기일은 벤치에서 후반 교체 투입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경기는 숨 막히는 승부가 펼쳐졌다. 전반 1분 만에 전남 신병호가 골을 뽑아내자 전반 4분 부천 이원식이 동점골로 응수했고 이후 전남은 전반 이따마르와 김남일의 연속골로 또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천 하재훈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남기일을 투입했고 남기일은 투입과 동시에 분위기를 부천 쪽으로 이끌었다. 부천은 1-3으로 뒤진 후반 9분 이동근의 도움을 받은 이원식이 득점포를 가동하며 추격하더니 마침내 후반 40분 극적인 동점골까지 뽑아냈다. 남기일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다보가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내준 공을 남기일이 달려들며 동점골로 연결한 것이었다. 고향팀을 향한 멋진 득점이었다. 전남 팬들은 탄식했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온 선수의 득점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1-3으로 뒤진 상황에서 후반 들어 두 골이나 기록하며 극적인 동점에 성공한 부천의 저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남기일은 사고를 치고 말았다. 골을 넣은 뒤 원정팀 서포터스석이 아닌 홈팀 팬들을 향해 달려가더니 주먹 감자를 날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주먹 감자를 따발총처럼 날리며 혀를 낼름 거렸다. 홈팀, 그것도 고향팀을 향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경기 내내 전남 수비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입 안에서 피까지 날 정도로 시달렸던 남기일은 전남 벤치에서 “엄살 부리지 말고 뛰라”는 말까지 들어 이성을 잃고 만 것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골을 넣은 뒤 저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죠.” 남기일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동료들이 남기일을 말렸고 이원식은 관중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까지 했다. 하재훈 감독도 상대팀에 연신 손을 들며 “미안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남기일의 거짓말 같은 전남 이적

하지만 고향팀을 향해 도발한 남기일에 대해 일부 관중도 분을 참지 못했다. 일부 관중이 도발로 퇴장 명령을 받은 남기일을 향해 달려들며 그라운드에서 추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골 세리머니 한 번으로 남기일은 그렇게 고향인 호남 지역에서 지탄의 대상이 됐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전남 팬들은 부천 구단 버스를 막고 남기일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남기일이 직접 나와서 사과하라.” 결국 그는 직접 버스 밖으로 나와 전남 팬들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용서를 받을 수는 없었다. 남기일은 이후 사과문을 올리고 네 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400만 원의 징계까지 받았다. 전남 구단 역시 관중석 소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 원이 부과됐다. 당시 유독 K리그에는 이런 사태가 자주 발생해 경기장 폭력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자신이 1년 전 사고를 쳤던 그 호남 구단, 전남드래곤즈로 이적하게 된 것이었다. “전남이 널 필요로 한다.” 당시 전남 이회택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나기 직전 몇 차례 남기일을 원했고 결국 김길식에 현금을 얹는 조건으로 전남 유니폼을 입게 됐다. 하지만 전남 팬들이 가만히 있질 않았다. 구단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 “왜 남기일을 영입하려 하느냐”고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전남 훈련에 합류한 남기일은 이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온 팬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팬들로부터 주먹 감자를 먹어야 했다. ‘너도 먹으라’는 항의의 뜻이었다. 한 순간의 행동으로 남기일은 전남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 돼 있었다.

남기일은 꾹 참았다. 그리고 2004년 4월 3일 대구와의 홈 경기를 앞두고 다시 한 번 홈 팬들에게 사과했다. 4면의 관중석에 대고 사죄의 의미로 큰절을 올렸다. 하지만 전남 팬들은 남기일이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고향팀에서 열린 데뷔전에서 도움을 기록했지만 남기일을 환영해 주는 이들은 없었고 결국 남기일은 전남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또 다시 성남으로 이적해야 했다. 남기일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할 수 있는 사과는 다 했다. 하지만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이후 남기일은 성남에서 영광스러운 시절을 보낸 뒤 내셔널리그 천안시청을 거쳐 광주FC 플레잉코치로 활약했다. 전남드래곤즈가 유일했던 전남 지역에 새로운 프로팀 광주FC가 창단하게 되면서 남기일도 다시 한 번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짧게 활약한 뒤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런 남기일에게는 늘 ‘주먹 감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고향인 호남 지역에서의 호감도는 늘 바닥이었다.

지탄의 대상이 된 남기일, 그의 반전

이후 남기일은 2013년 광주FC 수석코치로 복귀했다. 선수 생활을 하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노력파였던 그는 광주FC 지도자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사람의 운명이 참 재미있는 게 당시 남기일 수석코치와 함께 광주FC 지도자로 변신한 이가 바로 10년 전 그와 트레이드 됐던 김길식이었다는 점이다. 어찌 됐건 남기일은 호남 지역 팬들에게 다시 한 번 인사하게 됐다. 10여년 전 전남을 응원했던 이들 중 광주FC로 넘어온 이들도 상당수였다. 이후 2013년 8월 여범규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하고 남기일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게 되면서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한 팀의 수장이 됐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호남 축구 팬들에게 인정받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감독대행 초반 연승을 거두며 안정감을 찾는가 싶더니 이후 연패를 거듭하며 추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3년 K리그 클래식 승격에 실패한 남기일은 2014년에도 실망스러운 모습에 그치고 말았다. 2014 시즌 한때 리그 9위까지 추락하자 남기일은 또 다시 지탄의 대상이 됐다. 12년 전 고향인 호남에서 펼쳤던 논란의 세리머니를 잊지 않고 있는 관중도 많았다. “으이구, 언제까지 남기일을 믿고 갈 거야. 주먹 감자를 날릴 때부터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호남 지역에서 남기일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감독 경력도 없는 사람이 광주를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고향인 전라도 지역에서 그는 선수로도 비호감이었고 지도자로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10년 넘게 그는 늘 부정적인 존재로만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이때부터 대반전이 시작됐다. 광주가 K리그 챌린지에서 FC안양을 골득실로 밀어내고 가까스로 4위에 턱걸이하더니 준플레이오프에서 강원을 1-0으로 제압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시즌 내내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안산경찰청까지 제압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K리그 클래식 11위 경남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뿐이었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경남을 3-1로 제압한 광주는 이어 벌어진 원정 2차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마침내 2년 만에 기적적으로 K리그 클래식 승격을 확정짓게 됐다. 시즌 초반 승점을 따기 위해 수비적인 전술을 쓸 수도 있었지만 남기일 감독은 고집스럽게 자기가 원하는 축구를 구사했고 이 결과가 시즌 막판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여기에 '프로축구 지도자 리더십 유형에 따른 조직 유효성'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던 남기일 감독은 선수들을 심리적으로도 잘 이끌었다. 제종현 등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파격적으로 기용하며 초반에는 흔들리는 모습도 있었지만 이윽고 경험이 생긴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인 것도 광주의 승격 요인이었다. 이렇게 남기일은 광주의 기적을 일으키며 감독대행이란 꼬리표도 떼고 정식 감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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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절대 열세가 예상되던 수원과의 경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더 높이 날아오르고 있는 남기일

모두가 여기에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광주가 승격을 이룬 것만 하더라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2015년에는 K리그 클래식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추락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예상이었다. 하지만 광주는 K리그 클래식 복귀 이후 초반 세 경기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후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또 다시 제주와 전남 등 광주보다 전력이 앞선다는 평가를 들은 팀들을 상대로 또 다시 연승 행진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바로 어제(7일) 남기일 감독은 광주를 이끌고 수원을 찾았다. 리그 2위인 ‘강호’ 수원과의 대결에서 광주가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전날 1위 전북이 패한 탓에 수원으로서는 전북과의 승점차를 줄이기에 딱 좋은 경기였다. 그렇게 일방적일 것이라는 예상 속에 경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광주는 무서운 조직력을 선보였다. 주전 공격수 김호남이 전반 24분 만에 부상으로 교체됐고 후반 25분에는 수비수 정준연이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는 후반 33분 코너킥 상황에서 마침내 양상민의 자책골을 유도하며 ‘강호’ 수원을 상대로, 그것도 10명으로 적지에서 싸워 1-0 승리를 따냈다. 수원과의 상대전적에서 1무 4패로 일방적인 열세에 처했던 광주로서는 믿기지 않는 승리였다. 이로써 광주는 3연승을 이어가며 K리그 클래식에서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다. 3위 포항과는 승점 1점차, 2위 수원과는 승점 2점차다. 경기가 끝난 뒤 사람들은 남기일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호남 지역에서는 금지어(?)였던 남기일은 어느덧 호남 축구의 영웅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광양에서는 12년 전 주먹감자를 날렸던 남기일을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광주 지역에서 남기일은 상한가다.

이제는 광주 선수들이 남기일 감독 생일 때 함께 주먹감자를 날릴 정도로 과거의 사고는 웃으며 넘긴다. 또한 남기일 감독은 자신을 향한 비난을 오로지 실력으로 잠재웠다. 사실 그는 늘 고민하는 감독이다. 경남과의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는 함께 광주에서 뛰다 K리그 클래식으로 이적한 옛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경남의 약점을 묻기도 했다. “그건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그 제자들 덕분에 경남을 공략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남기일 감독은 수원과의 경기가 끝난 뒤에는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1라운드 통해 부딪혀보니 잘 되지 않는 것과 잘 된 점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선수들이 어떻게 경기를 할 지 이제 안 것 같아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선수들은 동료들이 도와준다는 확신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12년 만에 마침내 자신의 고향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그를 보며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쓸 데 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오로지 실력으로 편견을 이겨내고 있는 그에게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