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칼럼을 통해 '슈퍼스타 K리그'라는 축구선수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나도 가볍게 쓴 칼럼이었고 독자들 역시 대부분 "그냥 생각 자체만으로 신선하네"라며 웃고 넘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정말로 축구선수를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준비 중이다. 물론 내가 장난처럼 제안했던 것과는 달리 공영 방송 KBS에서 만드는 정말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을 다시 불러 모아 이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형식의 이 프로그램에는 안정환과 이을용이 직접 감독으로 참여하게 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한창 사전 제작 중인 이 <청춘FC> 최재형 PD를 직접 만나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귀중한 프로그램을 제작 중인 최재형 PD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청춘FC' 연출에 한창인 최재형PD를 만나 제작 과정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반갑다. 프로그램 제작 중이라 한창 바쁠 것 같다.

밤을 새 기획하고 티저 영상도 편집하고 곧바로 수원으로 촬영장 답사를 다녀왔다. 지원자의 1차 테스트를 위한 경기장을 대여하기 위해서였다. 안정환 감독과 이을용 감독 섭외 외에도 선수들 발탁과 지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운재 코치와 이용수 교수와도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잠을 별로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다.

그래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

뭐 우리 프로그램을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청춘FC> 선수 선발과 훈련 등에 필요한 건 안정환 감독에게 다 맡기고 있다. 우리 제작진은 축구팀을 운영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안정환 감독이 "이런 게 필요하다"고 하면 알아봐주고 준비해주는 역할이다. 촬영도 다큐멘터리처럼 한다. 그냥 의도된 것 없이 쭉 찍는 거다. 나중에 이걸 재구성해서 편집하는 건 내 몫이지만 그전까지는 안정환 감독을 절대적으로 도울 계획이다.

<청춘FC>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천천히 나누자. 그런데 당신은 <병아리 월드컵>과 <최수종의 골든볼>, <날아라 슛돌이>, <천하무적 야구단> 등 유독 스포츠 버라이어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축구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했는데. '축덕'인가.

일단 정정할 것이 있다. 당신이 이야기한 프로그램 중 <최수종의 골든볼>은 내가 담당하지 않았었다. 어찌됐건 사실 나는 <날아라 슛돌이> 전까지는 우리나라 남성이라면 늘 그런 것처럼 국가대표 축구에 열광하는 정도였지 축구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날아라 슛돌이>를 담당하면서 축구에 몰입하게 됐다. 유럽 전지훈련을 가면서 축구에 대핸 더 빠져 들게 됐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대단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 절대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승패만 가지고 욕을 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치열한지 알기 때문이다.

<날아라 슛돌이>를 맡기 전에는 어떤 축구팬이었나.

많이들 그러는 것처럼 결과만 놓고 국가대표팀 욕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역시나 당신을 이야기할 때면 <날아라 슛돌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아이들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2005년에 했던 프로그램이니까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 프로그램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김종국 감독과 아이들이 정말 삼촌과 조카처럼 친해져 있었다. 늘 (김)종국이가 촬영장에만 오면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입이 귀에 걸려 있을 정도였다. 그걸 볼 때 가장 행복했다. 또한 아이들을 축구하는 기계로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패하다가 첫 승을 올렸을 때 역시 참 기억에 남는다. 나는 시즌1 연출을 맡았고 시즌2는 시작할 때만 함께한 뒤 그 프로그램에서 빠졌다.

반대로 <날아라 슛돌이>를 연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다 우리 아이들 같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실력이 늘지 않고 벽을 만나게 됐을 때 주변에서 욕을 하는 거다. "왜 이렇게 못하느냐"면서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는데 참 난감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다그치게 되는 거다.

당시 한 기자가 "아이들을 승부의 기계로 만들지 말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나도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항상 그게 딜레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춘FC>에서도 이건 또 생길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받으면 마음이 아플 것 같고 조바심이 나 승부에만 집중하고 이걸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날아라 슛돌이>에는 지금의 윤후나 추사랑 못지 않은 인기를 끄는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 이들 중 연락하거나 근황을 알려줄 수 있는 이들도 있나.

김태훈이라는 아이를 기억하는 분들이 아마 있을 거다. SKK 축구교실에 있던 빠른 친구였는데 한 2년 전쯤인가 그 친구 어머니한테서 문자가 왔다. "태훈이가 축구 때문에 울산인가로 내려간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출연했던 정규 멤버 중에 아직까지도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유일한 친구가 (김)태훈이다. 그런데 사실 당시 SKK 축구교실에서 눈여겨 봤던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팀에서는 두 명을 데려올 수가 없어 (김)태훈이만 데려온 거였다. 그때 아쉽게 데려오지 못한 친구가 현재 매탄고등학교에 다니며 15세 이하 대표선수로 지난해 청소년 올림픽에서 세 골을 넣은 주휘민이다. 아마 축구팬들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얼마 전에는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했던 한 아이가 사춘기 학생으로 성장해 KBS 근처에서 "PD님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가 여의도에 있지 않아 보질 못했다. 아마 그 친구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어머님들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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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방송된 '날아라 슛돌이'는 아이들 예능 프로그램의 원조격이었다. (사진=날아라 슛돌이 방송 화면 캡쳐)

이제 본격적으로 <청춘FC>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사실 내가 5년 전에 구상한 축구선수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을 베낀 것 아닌가.

우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보이는 게 싫다. 사실 지난해 여름 벨기에 2부리그 투비즈 구단주를 만났다. 한국인인데 나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한국에서 사정 때문에 축구를 그만둔 아이들 중 괜찮은 이들이 있다면 투비즈로 영입하고 싶다"면서 혹시 축구선수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거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한두 명이라도 투비즈에서 뽑아 함께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런데 내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축구라는 게 팀 스포츠이고 선수를 판단하는 잣대가 주관적인데 오디션을 통해 뽑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 멀리 차기를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의 마음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

연예인 매니저 중에 축구를 하다 그만둔 친구들이 꽤 있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만약에 축구를 그만두고 1~2년이 지난 시기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런데 그 매니저들 눈빛이 흔들리는 거다. 서른이 훌쩍 넘은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축구를 그만두고 아직도 후회하거나 미련을 안고 사는 이들을 위해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처음에는 과거 주목받다가 사라진 이들을 찾아 이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끌어 나가고 싶었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더 좋은 취지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문을 여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테스트 형식으로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됐다.

그러면 이 <청춘FC>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은 벨기에 투비즈에 입단하는 건가.

벨기에는 빅클럽은 없지만 어린 선수를 키우는 능력이 탁월한 나라다. 그래서 투비즈에 역으로 제안했다. 구단이 촬영 협조를 해주고 선수를 나중에 영입하건 말건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선수들을 보고 판단하라고 말이다. 나는 일단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 좌절을 맛본 이들을 다시 찾아내 외인구단을 만들어 이 친구들이 훈련을 받고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 투비즈의 선택은 그 이후의 문제다. '얘네 정말 잘하는 애들인데 이대로 둘 거냐'라는 걸 증명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아이템은 축구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본방사수할 만한 프로그램이지만 KBS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이면 겨울에 추운 데서 자고 여름에 모기에 뜯기며 배꼽 빠지는 웃음을 전해주는 게 더 확실한 시청률 보증수표 아닌가.

사실 회사를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축구를 대중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이 절반 이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했다. 선수들 한 명 한 명마다 다 스토리가 있고 재기할지 못할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는 걸 어필했다. 또한 한 번 도전했다가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두 번째 기회'가 없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조금씩 넘어오더라. 이 과정만 석 달 이상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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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청춘FC 감독 부임 후 곧바로 "돈 달라"고 외쳤다. (사진=청춘FC 티저 영상 캡쳐)

그런데 안정환을 감독으로 선임한 게 참 의외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MBC와 훨씬 더 가까운 인물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안정환 감독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안정환 감독이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족구를 하고 있는 거다. '어? MBC에서 해설하던데 KBS에 나와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곧바로 <우리 동네 예체능> 녹화가 열리는 날 촬영장에 가 그를 만났다. 녹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소개를 하고 상황을 이야기하며 들이댄 뒤 계속 문자 메시지 테러를 했다. 안정환 감독이 MBC를 벗어나 축구 해설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녹화 때 또 촬영장에 찾아갔다. 안정환 감독은 "의미는 참 좋고 해야 할 일인 것도 맞는데 과연 이걸 내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안정환 감독뿐 아니라 내가 접촉한 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는 부담감에서 차원이 다른 것 아닌가. 이후 <우리 동네 예체능> 뒤풀이 자리에까지 따라가 안정환 감독과 둘이 소주를 대여섯 병은 마신 것 같다. 그러면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눴다. 그랬더니 나중에 전화가 왔다. "믿고 가겠다"고 말이다. 그 과정이 한 달 정도 걸렸다.

안정환 감독을 특별히 선택한 이유가 있나.

대표선수를 지낸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지만 안정환 감독 만큼 어린 시절 고생을 한 인물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라면 충분히 한 번 실패한 선수들을 보듬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예능 프로그램인데 시청률도 신경 써야 하고 광고 판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축구선수 중 지상파에서 이게 다 가능한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안정환 감독은 당연히 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예능감도 고려했나.

예능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웃기려고 작정해서는 아무 것도 안 될 프로그램이라는 걸 잘 안다. 그의 유머 감각은 그냥 덤인 거 같다.

그렇다면 외모는 좀 고려한 것 같다.

얼굴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얼굴로 밀고 나가서는 아무 것도 안 될 프로그램이라는 걸 잘 안다. 그의 외모도 그냥 덤인 거 같다.

하긴 안정환 감독과 함께 이을용 감독을 영입한 걸 보면 외모는 그렇게 중요한 고려 대상은 아닌 모양이다.

이을용 감독도 선수 시절 누구보다도 고생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 중국집 배달도 하고 웨이터도 했단다. 이런 험난한 인생을 산 축구감독이라면 아이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외모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사실 KBS에서의 공헌도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더 높다. 이거 너무 안정환 감독 위주로 가는 거 아닌가.

이영표 해설위원과도 물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하지만 이영표 해설위원은 캐나다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굉장히 이 프로그램에 긍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올해는 함께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는 드라마도 사전 제작이 어렵다고 들었다. 그런데 <청춘FC>는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사전 제작을 하기로 했다. 이거 참 지금껏 보지 못한 프로그램이다.

우리 프로그램은 사전 제작을 하지 않으면 속도감이 날 수가 없다. 선수 모집 공고를 낸 다음부터 곧바로 몸상태를 끌어 올린다고 해도 일주일 만에 갑자기 몸이 선수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니지 않은가. 두 달 동안 몸을 만들어도 몸상태는 60~70%에 불과한데 방송 시작 일을 선수 모집 공고 일정과 맞춰버리면 보는 입장에서 늘어질 수밖에 없다. 아마 방송 두 달 동안 매주 똑같은 화면만 나갈 거다. 사전 제작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프로그램이라고 판단해 이미 지난 4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안정환 감독을 처음 만날 때부터 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했다. 4월 초부터 6월 말까지 석 달 정도 사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고 첫 방송은 6월 말에서 7월 초 정도로 잡고 있다.

앞으로 테스트 일정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일정을 공개해 줄 수는 있나.

5월 10일 서류 마감이 끝났다. 2천 명에 이르는 분들이 지원해 주셨는데 이중 서류 심사를 거쳐 6월 초 이틀 동안 1차 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하루에 아무리 많은 지원자를 점검해도 300명 이상은 힘들다고 하는데 안정환 감독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미 한 번 상처 받은 애들인데 서류 심사에서 또 한 번 상처를 줄 거야?" 그래서 결국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주기 위해 1차 테스트를 이틀 동안 진행하기로 했다. 이때는 기본기와 축구 센스 등을 심사위원 네 분이 알아서 봐 주실 거다. 그리고 여기에서 통과한 이들은 체력 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1차 테스트에서 체력을 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지금은 축구를 그만둔 이들이기 때문이다. 아마 처음부터 체력 테스트를 한다면 대부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모집 공고를 내고 6주 만에 체력 테스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3차 테스트는 체력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전제 하에 다른 팀들과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벨기에로 떠나는 인원은 몇 명이나 될까.

18명이면 팀을 구성해 벨기에에서 연습경기를 진행하며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안정환 감독이 "18명만 딱 벨기에에 데려가면 아이들 발전이 더딜 것"이라면서 "22명 정도 데려간 뒤 마지막 경쟁 과정을 거치자"고 하더라. 그러면서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축구는 냉정하다"는 말을 했다. 안정환 감독의 말을 참고해 추진할 예정인데 아직 이 부분은 논의를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예능 프로그램이다보니 참가자들의 구구절절한 감동 스토리도 빠질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실력 외적으로 이런 이들이 스토리 때문에 선발되는 게 우려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수 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감성 팔이를 봐왔다.

이미 서류 심사 작업을 거치면서 몇몇 스토리 있는 참가자들에 대한 촬영이 들어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 연출진과 작가들만 안다. 안정환 감독도 누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마지막까지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또한 이미 촬영에 들어간 몇몇 참가자들에게도 말해뒀다. "우리가 지금부터 촬영을 하고 있다고 해 합격한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테스트에 맞춰 성실히 준비해 달라." 스토리를 갖춘 이들이 방송 초기 좀 더 주목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스토리를 심사에 반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살짝만 물어보겠다. 혹시 지원자 중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선수도 있나.

있다. 해외에서 뛰며 유망주로 주목받다가 결국 잊혀진 선수인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 그 이상은 나중에 방송을 통해 확인해 달라.

60초 기다리는 것도 어려운데 한 달 반을 어떻게 더 기다리나. 그런데 나처럼 축구를 너무 사랑하는 이들은 이 프로그램이 반갑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과연 이 프로그램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과거 <날아라 슛돌이>처럼 미모의 매니저가 등장하는 건 어떨까.

아리따운 매니저 같은 건 없다. 아쉽지만 우리 프로그램에는 남자들만 득실거린다.

정말 아쉽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쁜 여자 출연자도 없고 여기에 빵 터지는 웃음 한 번 없는 것도 너무 곤란하지 않을까. 이거 다큐멘터리인가.

다른 예능 프로그램처럼 배꼽을 잡는 웃음은 없을 거 같다. 그나마 예능 포인트가 있다면 안정환과 이을용 콤비의 콤과 제리 같은 티격태격하는 웃음 정도다. 우리는 방청객 웃음도 입히지 않을 거다. 그냥 덤덤하게 웃기면 웃기는 대로 갈 예정이다.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거기 코믹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잘 나가는 톱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러브라인이 명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드라마는 화제성이 대단했다. 그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드라마지만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FC>가 축구 전문 프로그램이 아니라 '두 번째 기회'라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나도 겪을 수 있고 내 자식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항상 회의할 때마다 "우리 무기는 진정성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알겠다. 항상 응원하겠다. 그런데 <날아라 슛돌이>나 <천하무적 야구단>은 마무리가 아쉬웠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청춘FC> 역시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고민이 될 것 같다.

맞다. 기적적으로 만수르가 돈을 대 이 친구들을 데리고 프로팀을 창단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 선수들이 국내 스카우트가 참관하는 경기를 세 번은 만들어주려고 한다. 거기에서 모든 걸 쏟아 붓고 투비즈에 진출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그대로 전달할 생각이다. 당신이 이야기한 것처럼 <날아라 슛돌이>와 <천하무적 야구단>은 마무리가 아쉬웠다. <날아라 슛돌이>는 시즌1에서 끝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회사 사정이 있어 시즌2에 돌입하게 됐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마무리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 컸다. 그 팀이 전국대회 1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속된 말로 '멘붕'에 빠진 것이다. 늘 그들과 붙어 있으니 한 발 떨어진 시각으로 볼 수가 없었다. 선수들 이상으로 제작진이 전국대회 1라운드 탈락 이후 더 공허함에 빠질 정도였다. 왠지 기적적으로 4강 정도는 가지 않을까하는 그런 바보 같은 기대를 한 거다. 그 허망함에서 벗어나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그래서 결국 이전 두 프로그램을 통해 스포츠 버라이어티는 그 끝이 아름답건, 그렇지 않건 마무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예능 프로그램이 그 이후까지 끌고 갈 힘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 거다.

아마 <청춘FC>에 지원한 2천여 명의 지원자가 오늘 인터뷰를 유난히도 자세히 살펴볼 것 같다. 그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내가 조언하기엔 주제 넘은 질문이다. 그래도 내가 인생을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다. 노력도 배신하는 경우도 있더라. 그런데 뭔가 미친 듯이 한 번 후회 없이 도전해 보는 건 성공과 실패를 떠나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청춘FC>가 모든 지원자에게 핑크빛 미래를 보장해 줄 수는 없다. 나도 그렇고 안정환 감독도 그렇고 요새 고민이 많다. 지원자들의 앞날에 <청춘FC>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우리가 머리를 써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제작진 역시 끝까지 '머리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할 거다. 그러면 하늘도 돕지 않을까 생각한다. 함께 가자.

마지막으로 <청춘FC>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에게도 한 마디 해달라.

우리가 촬영을 하면서 K3리그 합숙소도 방문했는데 마음을 많이 다친 이들도 있더라. 축구라는 게 멀리뛰기처럼 기록으로 순위를 가리는 경기면 그 순위대로 자르면 된다. 하지만 축구는 주관적인 스포츠다. 안정환 감독이 좋게 본 지원자도 이을용 감독은 좋지 않게 평가할 수도 있다. 자기 축구 철학과도 연관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시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우리가 선수를 선발함에 있어 부조리와 불합리는 절대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이 <청춘FC>가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진정성을 담아 만들고 싶다. 지켜봐 달라.

최재형PD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러 차례 '두 번째 기회'를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축구를 포기한 이들이 다시 기회를 얻어 재기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꼭 축구뿐 아니라 이 사회가 한 번 실패한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건전한 토론의 장도 마련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청춘FC>에 지원한 2천여 명의 청춘에 봄이 오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