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등 굵직한 이슈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한 대전시티즌이 승부조작 가담자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얼마 전 슬쩍 전해졌다. 대전은 승부조작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았던 안현식을 영입한다고 밝혀 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이미 죗값을 받고 연맹의 징계도 풀려 복귀에는 절차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나 역시 안현식의 영입을 결사 반대한 팬들 편에 서려고 했다. 승부조작 당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대전이 승부조작 가담자를 데려온다는 건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은성의 눈물을 기억한다면 절대 이런 영입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전이 바로 어제(11일) 밤 전격적으로 안현식 영입을 철회하기로 했다. 선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대전의 이런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승부조작 가담자 대변인 노릇하는 일부 구단

안현식은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배가 준 돈 200만 원이 단순한 용돈인줄 알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신뢰할 수가 없다. 그 어떤 선배도 후배에게 아무 대가 없이 용돈을 20만 원도 아니고 200만 원씩은 주지 않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후배에게 용돈을 200만 원씩이나 주는 K리그 선수 참 할 만하다. 그는 직접적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법원에서는 그에게 승부조작에 대한 혐의를 인정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가 정말 승부조작 혐의가 없었더라면 무죄를 선고받았어야 한다. 단순한 용돈 200만 원인 줄 알았다던 안현식의 주장은 이미 법원에서 죄가 있는 걸로 결론 내려졌다.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친구가 한 번만 도와달라고 사정을 해서”, “부모님이 아프신데 돈이 급해서”, “단순한 용돈인 줄 알아서” 등 다 핑계가 있다. 이런 핑계를 다 들어줄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전 승부조작 가담자 복귀 사례를 살펴보면 구단이 오히려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구FC는 승부조작 가담자 조형익을 복귀 시키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어렵게 돌아온 만큼 조형익이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애를 많이 쓴다. 충분히 반성하고 돌아왔다.” 대구는 이후 마찬가지로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양승원까지 영입했다. 제주는 승부조작 가담자 오주현을 영입하면서 아예 ‘감성팔이용’ 보도자료를 뿌리기도 했다. 제주는 이 보도자료에서 오주현의 승부조작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배후 조직의 협박에 시달리던 친한 선배의 부탁을 받았다. 자세한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도와달라는 말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고 ‘감성팔이’를 했다. 고양 Hi fc는 승부조작 가담자 안현식을 영입한 뒤 그가 ‘고양 Hi FC 제2차 부정방지교육’ 연사로 나섰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승부조작 가담자를 영입해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구단의 행동은 참으로 역겹다. 이런 구단은 어떻게든 범죄자의 범죄 혐의를 축소시키려 한다.

대전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고양 Hi fc에서 뛰던 안현식을 영입하기로 하면서 용돈인 줄 알고 선배로부터 200만 원을 받았다는 안현식의 주장을 내세우며 팬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미 대구와 제주의 승부조작 선수 복귀 사례까지 언급했다. 다른 구단도 승부조작 가담자를 받아들이니 우리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대구나 제주, 고양 등에서 했던 행동도 참 불쾌하지만 대전의 이같은 결정은 더더욱 실망스러웠다. 다른 구단도 아니고 승부조작으로 아예 구단 존폐 자체까지 몰렸던 대전이 승부조작 가담자를 영입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팬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나 역시 대전의 이런 행동이 몹시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말이 간담회지 아마 이런 자리가 열렸다면 안현식이 나와 눈물로 호소하며 자기는 억울하다고 했을 것이고 한 번만 기회를 주면 반성하는 마음으로 뛰겠다는 입장 표명의 자리로 전락할 게 뻔했다. 구단에서도 팬들을 설득하며 “한 번만 더 믿어보자”고 했을 것이다.

안현식 영입 철회, 대전의 용기 있는 결단

하지만 결국 대전은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김세환 사장이 어제 직접 구단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안현식 영입 철회 사실을 밝혔다. 김세환 사장은 “안현식 선수 영입으로 팬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면서 ”최종결정을 내린 사람으로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팬 여러분의 사랑으로 존재하는 구단이기에 팬들의 의견을 존중하려한다“고 전했다. 아예 처음부터 이런 승부조작 가담자의 복귀 자체를 논의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느끼고 이 영입을 철회하는 행동은 참으로 용기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장으로서 번복하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대전의 이같은 선택은 결국 팬들의 사랑으로 존재하는 구단이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고양 Hi fc는 안현식 영입 당시 팬들이 이에 결사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응원을 보이콧하는 등 강경하게 나섰지만 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안현식을 선수로 받아들였었다. 이게 바로 이미 진행된 계약도 팬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철회한 대전과 승부조작 가담자가 자체 부정 방지 교육 연사로 나서 반성하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내는 고양의 차이다.

대전의 이런 선택은 앞으로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어떤 구단이라도 팬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승부조작 가담자 영입을 강행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대전이 이렇게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으니 비교 대상이 될 게 확실하다. 팬들 의견을 이렇게 수렴하는 대전 같은 구단이 있는데 귀를 막고 승부조작 가담자를 받아들이기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보호관찰 2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 받았던 C등급 양승원, 오주현, 조형익, 안현식 등은 이미 징계가 풀려 K리그로 돌아왔고 박창헌, 이세주 등도 K3챌린저스리그에서 뛰며 K리그 복귀를 타진하고 있는 가운데 보호관찰 3년과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 받은 B등급 승부조작 가담자 박병규, 성경일, 윤여산, 안성민, 이상덕, 박정혜, 어경준, 김인호 등도 이제 징계 해제가 임박했다. 이번 안현식의 사례처럼 아마도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K리그 진출 시도가 잇따를 것이다. 징계에서 풀리면 절차상으로는 입단에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팬들의 거부감은 엄청나다. 또한 처음에는 엄벌을 내릴 것처럼 하더니 슬슬 징계를 경감해 이제 승부조작 가담자들에게 절차상 복귀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프로축구연맹이 일단 가장 먼저 비판받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다 받아주다 보면 후에는 어떻게 될까. 승부조작 A등급으로 분류돼 보호관찰 5년, 사회봉사 500시간을 선고받은 최성국도 충분히 복귀가 가능하다. 다른 선수들은 다 되는데 최성국이라고 복귀를 막을 명분이 없다. 과연 그때 K리그는 최성국의 복귀를 막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구단이 나서서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쉴드’를 쳐주는 상황이라면 최성국의 복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전의 결정은 참으로 용기 있었고 좋은 선례로 남게 됐다. 팬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고 귀를 막아버린 구단도 있지만 사장이 직접 나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이 결정을 번복한 대전에 박수를 보낸다. 다른 구단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승부조작으로 지옥까지 떨어졌던 대전은 최은성의 눈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구단 팬들도 이게 그저 남의 팀 이야기라고 관심밖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편 이미 죗값을 치루고 반성하고 있음에도 복귀가 무산된 안현식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을 찾아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잘 살았으면 한다. 그게 아직까지도 잔뜩 화가 나 있는 축구팬들에게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