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고 훌륭한 기록만 기록은 아니다. 때로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기록도 우리를 즐겁게 한다. 역사라는 건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황당한 진기록도 정리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 올해로 출범 32년째를 맞는 K리그에서는 지금껏 황당한 기록이 넘쳐났다. 이제는 이런 기록도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길 바라면서 오늘은 깨지기 어려운 K리그의 역대 황당 기록들을 정리해 봤다. 아마 이 기록을 깨는 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진정 넘기 어려운 기록들이기 때문이다.

48초 - 역대 최단 시간 퇴장

2000년 7월 1일 성남과 대전의 경기에서 주심의 경기 시작 휘슬이 막 울렸다. 관중석의 누군가는 한눈을 파느라 잠시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차가 막혀 아직 경기장에 도착하지도 않았을 때다. 그런데 성남의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됐고 대전 골키퍼 최은성은 몸을 날려 상대를 덮쳤다. 하지만 이 순간 주심은 반칙 휘슬을 불더니 지체 없이 최은성에게 레드 카드를 선물했다. 경기 시작 48초 만의 일이었다. K리그 역사상 최단 시간 퇴장이라는 황당한 기록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대전은 어쩔 수 없이 경기 시작 1분 만에 백업 골키퍼를 투입해야 했다. 2003년 7월 12일 대구와 전남의 경기에서는 후반 16분 교체 투입된 대구 노상래가 투입 2분 만에 전남 이따마르와 주먹다짐을 벌여 다이렉트 퇴장 당해 교체 선수 역대 최단 시간 다이렉트 퇴장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이 기록은 양반이다. 그나마 노상래는 다이렉트 퇴장이었지만 교체 투입돼 순식간에 경고를 두 번이나 받고 퇴장 당한 위인(?)도 있기 때문이다. 1995년 LG 함상헌은 전남과의 경기에서 전반 32분 교체 투입돼 2분 만에 경고 두 장을 받고 바로 그라운드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런데 이 대단한 기록에 도전한 이가 또 있다. 지난해 3월 포항-수원전에서 후반 16분 교체 투입된 수원 조지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조지훈은 교체 투입되자마자 위험한 태클로 경고를 한 장 받은 뒤 또 다시 고무열과 충돌하며 경고를 받고 퇴장 당했다. 그가 경고 두 장을 받는데 걸린 시간 역시 아직 컵라면이 익지도 않을 시간, 2분이었다. 이 기록은 함상헌과 함께 역대 최단 시간 경고 누적 퇴장이라는 대기록(?)이 됐다. 학교에서 교무실에 들렀다가 선생님 허락 맡고 조퇴하는 데도 2분은 넘게 걸릴 것이다. 함상헌과 조지훈의 대단히 빠른 퇴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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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버터칩 만큼이나 희귀하다는 박성화 감독의 부산 시절 사진. (사진=부산아이파크)

17일 - 박성화

2007년 7월 부산은 난관에 빠지게 됐다. 앤디 에글리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하자 새로운 감독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흔들리는 부산을 구할 적임자로 박성화 감독이 낙점됐다. 1990년대 포항 감독을 맡은 뒤 이후 U-20 청소년 대표팀 감독과 성인 대표팀 코치까지 지낸 박성화라면 믿어볼 만했다. 많은 부산 팬들은 박성화 감독에게 지지를 보냈다. 박성화 감독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어린 시절 부산의 높은 축구 열기에 힘입어 많은 사랑을 받아 성장했다. 부산 감독을 맡게 되어 영광”이라면서 “당장 내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으로 들어가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박성화 감독은 기자회견을 갖고 바로 다가올 FA컵 대전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부산은 박성화 감독의 데뷔전인 대전과의 FA컵에서 2-0 승리를 따냈다. 그런데 이때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성화 감독이 부산 지휘봉을 내려 놓고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는 것이었다. 이 일이 일어난 건 2007년 8월 3일이었다. 부산 감독 부임 이후 17일 만에 사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 앞으로 신임 감독이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켜 곧바로 경질되지 않는다면 이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수도 있다. 17일 만에 물러나는 감독을 우리는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한편 박성화 감독은 부산 시절 통산 1경기를 치러 1승을 거뒀기 때문에 승률 100%를 자랑하는 감독으로도 역사에 남게 됐다. 이는 세계적인 명장 무리뉴나 퍼거슨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대기록이다.

1만호 골 - 김태영의 자책골

2008년 11월 프로축구 출범 26년 만에 대기록 탄성을 눈앞에 두게 됐다. 25라운드까지 통산 9,998골이 터져 역사적인 1만호 골이 터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은 1만호 골을 기념하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1만호 골 주인공을 맞힌 팬들에게 추첨을 통해 세탁기와 김치냉장고, 그리고 1만호 골을 넣은 선수의 친필 사인 유니폼과 친필사인 K리그 공식 경기구 등을 선물로 제공할 계획이었다. 1만호 골 득점자의 사인을 받아 기념관에 전시하고 연말 프로축구대상에서 1만호 골 득점자에게 특별 시상을 할 계획도 세웠다. K리그는 역사적인 1만호 골 탄생을 눈앞에 두고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1만호 골이 터질 것으로 예상되는 26라운드 경기가 시작됐다. 경남 김동찬이 26라운드 시작 13분 만에 전북을 상대로 골을 뽑아내 9,999호 골을 달성했고 이어 득점포를 가동할 선수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속보가 날아들었다. 부산에서 드디어 1만호 골이 터졌다는 소식이었다. 부산 김태영이 골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로축구연맹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골이 바로 김태영의 자책골이었기 때문이다. 김태영의 자책골로 1만호 골이 터진 뒤 불과 3분 만에 그림 같은 왼발 프리킥으로 1만 1호 골을 기록한 서울 김치우가 조금만 일찍 골을 뽑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특별한 1만호 골이었지만 당시 연맹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김태영의 1만호 골을 정확히 적중시킨 팬이 있다는 것이었다. 연맹이 주관한 1만호 골 주인공 맞히기 이벤트에서 경북 영주에 거주하는 한 팬은 4,154명 중 유일하게 김태영의 이름을 적어내 김치 냉장고의 주인이 됐다. 그는 당첨 후 이렇게 말했다. “누가 골을 넣을 줄 몰라 K리그 선수 모두의 이름을 다 적어서 냈다.” 이런 정성이면 자다가도 김치 냉장고가 떨어지는 법이다.

두 번의 자책골 - 포항

2007년 8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포항의 경기에서는 황당하지만 다시 보기 어려운 귀한 장면이 나왔다. 포항은 전반 12분 서울 히칼도가 왼쪽 측면에서 올린 프리킥을 수비하다가 수비수 김성근이 넘어지면서 머리로 공을 건드리고 말았다. 이 공은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책골이었다. 당시 김성근이 파울을 당했다는 항의도 있었지만 주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서울의 득점을 선언했다. 다소 논란의 판정이었지만 축구에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10분 뒤 또 다시 믿기지 않는 장면이 연출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히칼도가 왼쪽 측면에서 연결한 프리킥이 공을 걷어내기 위해 솟구쳐 오른 포항 황재원의 몸에 맞고 다시 한 번 포항 골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또 다시 자책골을 기록한 순간이었다. 한 경기에서 한 팀이 두 번이나 자책골을 넣는 황당한 기록이 탄생했다. 골은 포항이 두 번이나 넣었는데 경기는 서울이 3-0으로 이겼다. 참 이상한 경기다.

30세 6개월 - 최고령 드래프트 선발 선수 황득하

K리그 신인 드래프트는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재학 중인 어린 선수들의 무대다. 하지만 이 신예들의 무대에서 유독 튀는 선수가 한 명 있었다. 바로 황득하다. 안동대를 졸업하고 실업축구팀 할렐루야에서 선수 생활을 한 그는 실업 무대에서 인정 받는 공격수였다. 1993년 춘계실업선수권에서는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96년 여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보험회사 대리로 취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었다. 서른이 넘은 그는 축구의 꿈을 잊고 살아야 할 가장이 돼 있었다. 아내도 “안정된 월급쟁이가 훨씬 낫다”고 그의 선택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는 가슴 한 켠이 허전했다. 축구에 대한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어린 유망주들만 지원한다는 드래프트 신청서를 냈을 때의 나이가 30세 6개월이었다. 1965년 6월생으로 1996년 드래프트 신청서에 그가 이름을 올리자 축구계가 술렁였다. “노인네가 무슨 드래프트냐”고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순간이라도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며 훗날 지도자 생활의 밑바탕을 깔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북다이노스가 6순위로 황득하를 지명한 것이었다. 역대 최고령 드래프트 지명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차경복 감독은 당시 “다른 팀이 왜 황득하를 먼저 뽑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그는 2년 동안 11경기에 출장해 늦깎이 프로선수로서의 꿈을 이룬 뒤 1998년 은퇴했다. 현재 그는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축구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전반만 83분 - 조광래 감독

2008년 4월 경남과 서울의 경기는 전반만 무려 83분 동안 진행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황당한 진기록의 시작은 전반 17분 무렵이었다. 이종민이 날린 슈팅이 골대를 맞고 오른쪽 엔드라인 근처에 있던 김은중이 이를 받아 골을 넣었다. 그런데 서울 김은중의 골에 대해 부심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렸고 서울 선수들이 항의하자 주심이 부심과 협의해 이를 골로 번복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골 번복에 대해 경남 조광래 감독은 격렬하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선수들을 모두 그라운드에서 철수시키고 심판과 맞섰다. 잠시 항의를 하다 멈출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조광래 감독은 경기를 재개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무려 35분이나 경기를 속개하지 않고 버텼고 결국 대기심은 ‘29’라는 숫자가 들어 보였다. 누군가는 29번 선수의 교체 투입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전반전 추가시간이 29분이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무려 전반만 83분을 치르는 황당한 기록이 탄생하고 말았다. 0-1로 뒤지고 있던 경남은 김대건이 전반이 끝나기 전 동점골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시간은 축구에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전반 63분’에 터진 아주 희귀한 골이었다. 인디오 대신 김동찬이 투입된 시각도 ‘전반 79분’이었다. 누군가가 이 기록지를 보면 아마 오타라고 할 게 분명하다. 추가시간만 놓고 봐도 연장 전·후반은 물론 승부차기까지 해도 될 정도의 시간이었다. 한편 조광래 감독은 거센 항의로 전반 83분 경기를 한 책임을 지고 사과했고 프로축구연맹은 조광래 감독에게 5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위해서라도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지만 그래도 이런 경기가 있었다는 것 만큼은 K리그 역사에 남겨야 한다. 아마 전반 83분 경기를 또 볼 일은 없지 않을까. 어찌 됐건 기록은 기록이다.

외국인 선수 4명 출전 - 수원

아시아쿼터가 도입되기 전까지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 출전은 한 팀당 세 명으로 제한됐었다. 하지만 이 규정을 어기고 한 팀에서 네 명의 선수가 뛰게 된다면 어떨까.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진 적이 있다. 1996년 10월 수원은 포항과 원정경기를 치렀다. 황선홍과 윤성효의 골로 1-1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던 후반 12분 수원 김호 감독은 전재복을 빼고 러시아 출신 데니스를 투입했다. 데니스의 K리그 데뷔전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포항 벤치에서 격렬하게 심판에게 항의를 하자 경기가 중단되고 말았다. 어찌된 일일까. 수원에 외국인 선수가 네 명이나 한꺼번에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K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다섯 명까지 등록할 수 있고 경기 출전은 세 명만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수원에는 이미 바데아와 아디, 유리가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었다. 데니스가 투입되는 순간부터 수원은 규정을 어긴 셈이었다. 그런데 즉시 경기를 중단한 감독관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적이 없으니 어떤 판정을 내려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40분 동안 경기가 중단됐다. 외국인 선수 출전 제한은 정해져 있지만 이를 어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고민이 깊었고 오랜 시간 고민한 감독관은 결국 수원의 몰수패를 선언했다. 교체 투입된 데니스를 부정 선수로 간주한 것이다. 수원은 “엔트리 규정을 어긴 건 잘못이지만 데니스가 부정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몰수패는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김호 감독은 “내가 착각했다”고 밝혔다. 결국 몰수패 선언과 함께 경기는 중단됐고 한 골씩 기록한 황선홍과 윤성효의 득점은 무효로 처리됐다. 라데의 어시스트 기록도 날아간 채 이 경기는 규정상 포항의 3-0 승리로 판정됐다. 이는 K리그 역사상 최초의 몰수 경기였고 이 패배는 후기리그 수원의 유일한 패배였다. 수원은 이 경기 외의 모든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감독의 착각과 대기심의 실수가 콜라보레이션 돼 진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3경기 연속 무승 - 광주 상무

K리그에서 아무리 못해도 22경기 연속 이상으로 승리를 따내지 못하는 기록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다. 1997년 대전이나 2002년 부천, 2005년 부산 등은 정말 축구를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22경기 연속 무승에서 멈췄다. 이 이상 승리를 못 거두는 건 불가능한 일 같았다. 하지만 2008년 광주 상무가 마침내 해냈다. 그것도 김용대와 최재수, 고창현, 한태유, 고슬기, 김명중, 마철준, 김승용, 박규선 등 쟁쟁한 K리그 선수들을 앞세워 이뤄낸 결과였다. 4월부터 승리를 거두지 못한 광주 상무는 10월까지 무려 5무 17패를 기록하며 최다 연속 무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고 그들의 다음 상대는 수원이었다. 10월 18일 수원을 만난 광주 상무는 어떻게든 승리를 위해 처절하게 싸웠지만 결과는 역시나 0-2 패배였다. 무려 23경기에서 5무 18패를 기록하며 최다 연속 무승 기록을 갈아치운 순간이었다. 당시 광주 상무는 8연패라는 기록까지도 세우게 됐고 2008년 시즌에 3승 7무 16패 22득점 46실점하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최하위를 차지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광주의 대기록은 1994년 전북 버팔로 형님들의 기록에 비하면 다소 모자란 기록이었다. 당시 전북 버팔로는 무려 10경기를 모조리 패하며 이 부분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950분 무득점 - 인천유나이티드

2014년 K리그 개막전에서 인천의 출발은 좋았다. 비록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상주를 상대로 두 골이나 기록하며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 이후 인천은 지독한 무득점 행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라운드 전북전부터 10라운드 포항전까지 무려 9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인천은 이 9경기에서 무려 93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단 한 번도 상대 골문을 출렁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상대 수비수 발에 맞고 자책골로라도 한 번 골이 터질 법도 한데 지독히도 골운이 없었다. 5월 3일 서울전에서 이보가 골을 넣기 전까지 무려 950분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것이다. 약 16시간이면 호주에서 미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시간인데 인천은 이 시간 동안 그저 뛰어 다니기만 했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7경기 연속 무득점을 기록했던 대전은 인천 앞에서 ‘닥공’ 수준이었다. 1995년 황선홍과 2000년 김도훈은 혼자서 8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기도 했으니 인천의 기록이 얼마나 참담한지 느껴지는가.

5명 퇴장 - 1996년 챔피언결정전 2차전

1996년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격돌한 울산과 수원은 혈투를 펼쳤다. 조광래 당시 수원 코치가 퇴장 당했고 수원의 유리까지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는 와중에도 1-0으로 승리를 거둔 수원은 유리한 상황에서 2차전 홈 경기를 준비했다. 그런데 2차전은 1차전보다 더한 혈투였다. 전반 33분 수원 박충균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고 후반 8분에는 수원 바데아와 울산 윤재훈이 충돌해 나란히 경고 누적으로 퇴장 조치가 내려졌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후반 41분에는 윤성효가 심판을 밀쳤다는 이유로 퇴장 당했고 후반 종료 직전 울산 김상훈도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해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야 했다. 울산이 3-1로 승리하며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그라운드에는 수원 선수 8명과 울산 선수 9명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또한 이 경기에서는 14회의 경고(울산 8회, 수원 6회)가 나왔고 반칙도 57회(울산 30회, 수원 27회)가 나와 90분 동안 평균적으로 1분 30초에 한 번씩 주심의 휘슬이 울린 경기로도 역사에 남게 됐다.

143개의 경고 - 김한윤

파이터형 수비수나 미드필더에게 경고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론 과감한 파울로 상대 공격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상식은 현역 시절 무려 79차례나 경고를 받았고 최진철도 75차례 경고를 받으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윤희준과 박광현(이상 54개), 공오균(49개) 등도 많은 경고를 받은 선수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김한윤 앞에서는 다 수줍은 새색시일 뿐이요 ‘비폭력주의자’ 간디였다. 김한윤은 1997년 데뷔해 2013년 은퇴할 때까지 430경기에 나서 무려 143차례의 경고를 받으며 이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로 남게 됐다. 김상식과 최진철의 경고 수를 합쳐야 김한윤을 겨우 넘을 수 있을 정도다. 김한윤은 2012년 부산 시절에는 36경기에 나서 무려 18개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며 딱 세 번만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카드 관리에 능하기도 했다. 무조건 거칠게 플레이하지만은 않았다는 의미다. 한편 아마도 이 기록은 향후 수십 년간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역 선수 중 그나마 가장 터프하다는 김치곤의 역대 경고 수는 68개, 김형일의 역대 경고 수는 48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마 위의 기록을 부끄럽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이라는 게 좋은 것들만 남을 수는 없다. 이런 황당하고 어이없는 기록도 시간이 지나면 흥미로운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 물론 앞으로 더 좋은 의미의 기록이 K리그에서 많이 탄생했으면 하지만 가끔은 이런 황당한 진기록도 한 번쯤 돌이켜 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