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도양 연안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몰디브에서는 작은 축구 축제가 시작됐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전세계가 시끌벅적한 이 마당에 몰디브에서 열리는 하찮은(?) 대회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의 열정 만큼은 월드컵 본선 무대 못지 않다. 나라 이름만 들어도 “풋, 그런 나라에서도 축구를 해?”라고 반문할 만한 축구 변방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축제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챌린지컵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대회일지 몰라도 이 대회에 나서는 이들은 모두 원대한 꿈을 안고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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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타지키스탄은 챌린지컵에서 늘 강호로 손꼽히고 있다. (사진=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챌린지컵, ‘오합지졸’들의 대회가 시작되다

약 38억 명의 인구를 보유해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아시아는 세계 육지 면적의 30%를 차지할 만큼 광활한 대륙이기 때문에 국가별, 지역별로도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다. 당연히 AFC는 그 어떤 대륙보다 팀간의 축구 실력차가 크다. 한국과 일본, 사우디, 이란 등은 국제 무대에 나설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훨씬 더 많다. 트히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은 여전히 축구 변방으로 평가받는다. AFC에서는 늘 이게 고민이었다. 아시아 전체를 한 대회로 묶기에는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05년 6월 의미 있는 발표를 하게 된다. 축구 수준이 떨어지는 나라들만 참가하는 ‘개발도상국 대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바로 AFC 챌린지컵이었다.

AFC는 곧바로 팀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일단 상위 14개 팀을 ‘발전된 국가’로 선정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이란, 중국, 사우디, 쿠웨이트, 바레인 등이 여기에 뽑혔다. 그리고 그 다음 14개 국가를 ‘발전중인 팀’으로 선정했다. 방글라데시와 인도를 비롯해 요르단, 레바논, 북한, 오만, 싱가포르 등이 여기에 속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17개 국가는 축구가 발전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신생팀’으로 분류됐다. 아프가니스탄과 부탄, 브루나이, 대만, 괌, 동티모르, 몽골, 네팔, 필리핀, 타지키스탄 등이 여기에 속했다. AFC는 이 17개 ‘신생팀’들에게 챌린지컵 참가 자격을 줬다. 이들은 대부분 국가 상황이 불안하고 FIFA 랭킹도 100위권 밖으로 아시아 축구가 발전하려면 함께 성장해야할 약체들이었다.

하지만 2006년 방글라데시와 함께 공동 개최를 선언했던 네팔이 대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돌연 개최 취소를 선언하고 말았다. 워낙 저변이 약해 국제 대회를 치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아시아의 ‘오합지졸’을 모아놓은 대회이다보니 해프닝도 속출했다. AFC가 참가 자격을 부여했던 몽골과 라오스, 동티모르가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은 선수 구성이 쉽지 않고 국제 대회에 나갈 돈도 없다면서 버텼다. 결국 이들보다 한 단계 위인 ‘발전 중인 국가’로 분류된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부랴부랴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선수단도 자기들 마음대로였다. 인도는 AFC 청소년선수권을 앞두고 U-20 대표팀이 참가를 결정했다. 당시 인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랄람루아는 15세에 불과했다. 키르기스스탄 역시 청소년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다.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이라는 매력적인 혜택

2006년 4월 역사적인 AFC 챌린지컵이 서막을 올렸다. 워낙 저변이 약한 탓에 마 아지즈 치타공 경기장과 방가반두 국립경기장 등 딱 두 군데 경기장에서 31경기를 소화했다. 16개 팀이 네 조로 나눠 조2위까지 8강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자 기대 이상의 열기였다. 홈팀 방글라데시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3만 명에 가까운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고 다른 팀들의 경기에도 1천 명에서 3천여 명에 이르는 관중이 들어찼다. 또한 괌은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무득점 17실점하며 가장 형편없는 실력을 선보였지만 나머지 팀들은 엇비슷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재미를 더했다. 조별예선 24경기 중 8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정도로 전력은 팽팽했다. 팔레스타인은 아르헨티나에서 뛰고 있는 아르헨티나계인 파블로 압달라까지 모셔왔다. 이 대회에서는 타지키스탄이 결승전에서 스리랑카를 4-0으로 대파하고 감격적인 첫 우승을 차지했다.

첫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AFC는 이후 2년에 한 번 이 대회를 열기도 하고 우승팀에 매력적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다음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챌린지컵 참가 팀으로서는 이 약체들의 대회에서 우승하면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서 한국, 일본, 이란 등과 붙을 기회까지 얻을 수 있으니 죽기 살기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예선 개념까지 도입했다. 3~4팀씩 한 조로 묶어 이 조에 속한 나라 중 한 지역에서 예선을 따로 치른 뒤 본선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고립되면서 국제 무대에 오랜 시간 나서지 못했던 북한이 새롭게 챌린지컵 식구로 합류했다. A매치 기록이 부족해 FIFA 랭킹도 낮았고 경험도 부족했던 북한과 함께 미얀마와 투르크메니스탄이 새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참가국은 22개국으로 늘어나게 됐다. 특히 인도는 아시안컵 본선 무대 진출이라는 열망을 안고 챌린지컵 대회를 유치하는 등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워낙 관심이 떨어지는 약소국들의 대회라 사건 사고도 잦았다. AFC가 지역 예선을 앞두고 선수들의 자격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선수 두 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과거 우즈베키스탄 선수로 AFC 주관 대회에 나선 적이 있는 아크말 홀마토프와 타지키스탄 국적으로 이미 A매치에 나섰던 아크말 콜마토프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AFC는 우즈벡과 타지키스탄 축구협회에 공식서한을 발송했고 두 단체 모두 이 선수의 이중국적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FIFA 규정상 한 국가의 A매치에 나선 선수는 귀화를 하거나 망명을 해도 다른 국가 소속으로 A매치에 나설 수 없지만 이 선수는 두 나라에서 보란 듯이 A매치에 나선 선수가 됐다. 이후 AFC는 대대적으로 두 국적을 가진 선수를 색출하는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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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 인도는 2008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7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됐다. 맨 왼쪽이 바이충 부티아다. (사진=인도축구협회)>

안방에서 펼쳐진 인도의 아름다웠던 우승

이 대회에서는 북한도 큰 사고를 쳤다. 북한과 타지키스탄의 2008 챌린지컵 준결승 경기는 초반부터 굉장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디펜딩 챔피언’ 타지키스탄과 ‘이런 마이너들의 무대에서 뛰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 북한은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경기에서 충돌하고 말았다. 으르렁 대던 두 팀은 결국 후반 북한 공격수 최명호가 타지키스탄 다브론존 투크타스노프를 주먹으로 가격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서로 뒤엉키며 난투극을 벌여 결국 최명호는 A매치 6경기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당했고 폭력에 가담한 박남철 또한 퇴장과 함께 벌금을 물었다. 타지키스탄 투크타스노프 또한 두 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그들만의 대회로 보일 수도 있지만 챌린지컵은 아시아 약소국들의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로 과도할 만큼의 열기를 자랑하게 됐다.

이 경기에서 타지키스탄은 북한을 1-0으로 제압하고 극적으로 결승에 올랐다. 누가 봐도 ‘우승 후보’ 북한을 제압한 타지키스탄의 대회 2연패를 확신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대회는 인도 축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대회로 훗날 기억되게 됐다. 그 중심에는 인도 축구 영웅 바이충 부티아가 있었다. 1999년 잉글랜드 3부리그 베리FC로 이적하며 인도인으로는 두 번째 유럽 리그 진출이라는 역사를 썼던 부티아는 조별예선 2차전에서 한 골을 넣으며 타지키스탄과 1-1 무승부를 이끌어 냈고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도 두 골을 꽂아 넣으며 극적인 2-1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부티아는 타지키스탄과의 결승전에서도 한 골을 보태며 팀의 4-1 승리에 일조했다. 결승전을 보기 위해 몰려든 2만여 명의 관중은 1984년 이후 무려 27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인도 선수들의 감동적인 플레이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대회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2011 아시안컵에 참가한 인도는 한국과 조별예선에서 맞붙기도 했다.

인도와 타지키스탄의 2008년 챌린지컵 결승전 경기는 지금까지도 챌린지컵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부로 기억되고 있다.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끝까지 참고 뛰며 대회 MVP까지 거머쥔 부티아를 향한 인도 팬들의 애정은 절대적이었다. 밥 휴튼 감독은 결승전 경기가 끝난 뒤 이런 말을 남겼다. “오늘 밤 경기는 전술이나 계획에 의해 이긴 게 아니라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거둔 승리다. 열심히 땀 흘린 결과가 나온 순간이었다. 우리는 충분히 우승할 자격이 있다.” 인도 언론에서는 “인도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승리를 선사했다”고 극찬했다. 한편 이 대회에서 한국인 장정 감독이 이끄는 스리랑카는 투혼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1득점 9실점 3전 전패에 머물며 약체 중에서도 최약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고 캄보디아의 유기흥 감독 역시 네팔에 0-1로 충격패를 당하며 경질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아예 관심 밖에 있는 대회지만 그만큼 그들에게는 간절한 대회인 셈이다.

‘챌린지컵의 깡패’ 북한 없는 이번 대회는?

워낙 아시아 축구 약소국들의 정세가 불안해 벌어진 슬픈 일도 있다. 2010년 대회를 앞두고 팔레스타인은 대회에 나설 선수를 절반만 발표했다. 엔트리 발표 즈음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습하면서 공습을 당하지 않은 서쪽 지역 선수들 일부만을 선발한 명단을 발표한 것이었다. 이자크 함제 감독은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살아남아 대표팀에 합류할지는 알 수 없다. 기적적으로 모든 선수들이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스리랑카에서 열린 2010년 대회에는 몰디브가 추가 참가 대상 국가로 지정되면서 23개 팀이 지역 예선을 거치게 됐다. 이 대회에서는 J리거 량용기(베갈타 센다이)를 비롯해 박남철(압록강), 최명호(평양시) 등이 포진한 북한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북한은 조별예선을 포함한 5경기에서 무려 14골을 뽑아내며 지난 대회 준결승에서 패배를 안긴 투르크메니스탄을 2위로 밀어내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북한은 이 대회 우승으로 무려 19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2012년 네팔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북한은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였다. 필리핀과 타지키스탄, 인도 등과 한 조에 속한 북한은 조별예선에서 8득점 무실점하며 3전 전승을 거둔 뒤 팔레스타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을 각각 준결승과 결승에서 여유 있게 제압하며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북한은 ‘애들 싸움’에 박광룡(바젤)과 안영학(가시와 레이솔), 리광천(무앙통 유나이티드) 등 정대세를 제외하고 소집할 수 있는 모든 선수를 소집하며 엄청난 경기력으로 상대를 울렸다. 이 대회 우승으로 2015년 아시안컵 진출 티켓을 다시 거머쥔 북한은 AFC와의 합의에 따라 더 이상 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대회 참가팀 중 최약체로 꼽히던 필리핀은 이 대회에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1차 예선에서 몽골과 1승 1패를 거두며 가까스로 득실에서 앞서 2차 예선에 진출한 필리핀은 방글라데시를 3-0으로 대파하며 본선 무대에 오른 뒤 타지키스탄, 인도, 팔레스타인 등 강호(?)를 연달아 제압하고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19일) 대망의 2014 챌린지컵이 몰디브에서 개막했다. 이 대회 우승팀은 내년에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일본, 요르단, 이라크와 한 조에 속할 예정이다. 당초 개최국 몰디브의 대회 유치 준비가 부족해 AFC 측에서는 필리핀에 대신 개최권을 넘겨주겠다고 엄포까지 놓는 등 몰디브로서는 가까스로 대회 유치에 성공하게 됐다. 북마리아나 제도가 처음으로 예선에 참가했고 2006년과 2008년 우승팀인 타지키스탄과 인도가 지역 예선에서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두 팀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예선에서 탈락한 적이 없는 강팀이었다. 한편 몰디브의 높은 기온으로 인해 선수 보호 차원에서 이번 대회에는 전반 30분과 후반 30분에 각각 한 차례씩 선수들이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할 시간이 3분 동안 주어지고 모든 경기는 AFC 유투브 채널을 통해 중계될 예정이다. 개막전에서 팔레스타인은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1-0 승리를 따냈다.

아시아 축구 변방들의 ‘작은 월드컵’, AFC 챌린지컵

또한 이번 대회의 의미는 이전 대회보다 더 크다. AFC가 다음 아시안컵부터 참가국을 24개로 늘리기로 하면서 이번 챌린지컵을 끝으로 더 이상 이 대회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소외된 이들의 대회였지만 지난 대회를 통해 아시아 축구는 분명히 성장할 수 있었다. 아쉽지만 이번 대회를 끝으로 열정 만큼은 월드컵 못지 않았던 이 대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우리에게 아시안컵 본선 진출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대회에 한 번 나서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인 아시아 국가가 참 많다는 걸 한 번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떠올려 보는 게 어떨까. 비록 실력은 한참 떨어지지만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북한과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인도, 팔레스타인, 스리랑카, 미얀마,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네팔, 방글라데시, 대만, 브루나이, 파키스탄, 캄보디아, 몰디브, 아프가니스탄, 부탄, 마카오, 괌, 몽골, 동티모르, 북마리아나 제도 등 대회에 나섰던 모든 팀들의 발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역사상 마지막으로 열리는 AFC 챌린지컵에서 역사에 기록될 멋진 승부가 많이 펼쳐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