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얀이 K리그를 떠난 뒤 한 동안 역대 K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 계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흘러 나왔다. 피아퐁으로부터 시작해 라데와 샤샤, 데얀 등이 늘 최고 외국인 선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이들은 K리그에서 엄청난 기록을 써낸 외국인 선수 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적어도 실력 면에서는 이들 못지 않게 언급되어야 할 선수들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2003년 K리그를 수놓았던 몇몇 외국인 선수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잊고 있지만 당시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은 어마어마했다.

호나우도와 투톱이었던 도도의 울산 입성

“오늘 마그노 골 넣었어?” 2003년 K리그 울산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온 도도가 제일 먼저 구단 직원에게 묻는 첫 마디는 이거였다. 그만큼 이 둘은 K리그에서 엄청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도도는 지금 생각하면 K리그에서 뛸 가능성이 없는 선수였다. 도도는 브라질 최고 명문인 상파울루와 산토스, 보타포고, 팔메이라스 등 1부리그에서 158경기에 나서 무려 78골이나 뽑아낸 브라질 최고 인기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요새 웬만한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주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자랑하지만 주리그와 전국리그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전국리그에서 제일 잘 나가는 도도는 다른 K리그의 브라질 선수들과는 노는 물이 다른 선수였다.

도도는 심지어 브라질 국가대표 경기에서 호나우도와 투톱으로 나선 적도 있었다. 바로 1997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였다. 당시 브라질은 도도와 호나우도를 비롯해 카푸와 카를로스, 둥가, 레오나르도, 콘세이상, 데닐손, 타파렐 등이 경기에 나섰다. 도도가 얼마나 브라질 내에서도 유망한 선수였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또한 도도는 그해 9월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는 두 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4-2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브라질이 가장 강하던 시절에 A매치 5경기에 나서 두 골을 기록한 경력의 소유자다. 도도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호나우도의 공격 파트너로 에드문도와 경쟁하다 막판에 밀리고 말았지만 경쟁 상대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그런 그가 K리그에 입성할 당시 브라질 언론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도는 K리그 울산에 입단하자마자 엄청난 골 폭풍을 일으켰다. 2003년 정규리그 44경기에 출장해 27골을 뽑아냈고 정규리그 최종일 광주전에서는 무려 네 골을 넣는 뛰어난 골 감각을 과시하기도 했다. 도도가 기록한 골 중 무려 11골이 결승골이었을 정도로 그의 활약은 빛났다. 이듬해 다소 부진했던 그는 J리그로 이적한 뒤 2007년에는 브라질 보타포고로 돌아가 리우 데 자네이루 주리그에서 27경기 출장 15득점으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리우 데 자네이루 주리그는 상파울루 주리그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주리그로 꼽힌다. 처음 그가 울산에 입단했던 소식을 들었을 당시 국내에서 뛰던 브라질 선수들은 이렇게 외쳤다. “설마 그 도도가? 아마 동명이인일 거야. 그가 K리그에는 올 리가 없어.”

브라질 전국리그 득점왕 출신 마그노

도도가 늘 라이벌로 의식했던 마그노 또한 대단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K리그에 입단하는 상당수 브라질 선수들이 주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내세우지만 이때까지 유일하게 K리그 입성 당시 브라질 전국리그 득점왕 경력을 갖춘 선수가 바로 마그노였다. 마그노는 2000년 플루미넨세 소속으로 브라질 전국리그 세리에A에서 20골을 기록하며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그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오른 선수가 바로 호마리우였다. 마그노는 K리그에 오기 전 플루미넨세에서만 265경기에 나서 무려 111골을 기록한 어마어마한 공격수였다. 2002년에는 브라질 축구전문가들이 선정한 브라질 12대 스트라이커에서 7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할 정도로 마그노의 영향력을 대단했다. 도도와 마찬가지로 그가 K리그에 입성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들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K리그 입성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전북과 전남이 마그노를 영입하려다 법적 분쟁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당시 전북은 마그노와 먼저 계약했지만 이후 전남이 이 사실을 모르고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마그노와 접촉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그노를 영입하기 위해 K리그 구단들이 얼마나 매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그노 역시 브라질 국가대표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도도가 1997년 브라질 대표팀에 승선한 것과 달리 마그노는 K리그 입성 시기인 2003년을 기준으로 더 최근에 브라질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였다. 그는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해 지다, 레오마르, 호쳄바크, 워싱턴, 제마리아, 루시우, 에드미우손 등과 함께 뛰었다. 비록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빠진 멤버였지만 당시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바로 마그노였다는 점은 그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마그노의 2003년 K리그 활약도 대단했다. 44경기에 나서 무려 27골을 뽑아내며 도도와 똑같은 득점수를 기록했다. 한 차례 해트트릭을 포함해 7경기에서 2골 이상을 기록했을 정도로 몰아치기에도 능했고 ‘특급 도우미’ 에드밀손과의 호흡도 무척이나 빛났다. 하지만 마그노는 이듬해 전북을 떠나 J리그로 이적했고 이후 중동 등을 돌다 최근에는 브라질로 돌아간 상황이다. 비록 K리그에서의 출장수는 채 50경기가 되지 않지만 그가 한 시즌 동안 전북 유니폼을 입고 보여준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도도와 마그노는 K리그에서 그리 오랜 시간 활약하지 않았지만 기량만 놓고 본다면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라는 데 손색 없는 후보다. 2003년 K리그는 이렇게 엄청난 인재들이 있었다.

나드손과 따바레즈, 그리고 레오마르

도도와 마그노뿐 아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2003년에는 브라질 올림픽 대표 출신 나드손이 수원에 입단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2003년 북중미 골드컵에서 카카, 호비뉴, 아드리아누, 디에구, 니우마르, 마이콘, 티아고 모타 등과 함께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뛰기도 했다. 이 또래 브라질 최고 재능 중 하나로 평가받던 따바레즈 또한 2004년 포항 유니폼을 입었다. 따바레즈는 브라질 17세 이하 대표부터 20세 이하 대표, 23세 이하 대표 등을 두루 거친 브라질 엘리트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003 세계청소년대회에서 브라질 우승 주역이기도 한 그는 포항에서 활약한 이후 브라질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인터나치오날에서 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마요르카 출신으로 브라질 크루제이루에서 2003년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모두 포함해 35골을 뽑아내며 팀을 전국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던 모따도 2004년 K리그에 입성했다.

브라가에서 37경기에 나서 12골을 기록했던 에드밀손도 2002년 전북에 입단했고 바스코 다가마에서 뛴 경험이 있는 브라질 청소년 대표 출신 보띠 또한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이 시기 브라질 명문팀인 그레미우의 마리우와 보타포고의 비에라 또한 K리그에 입성했고 파우메이라스에서 특급 조커로 활약하며 2002 시즌 13경기 출전 9골을 뽑아낸 이따마르 또한 2003년 전남에 입단했다. 또한 브라질 1부리그 코리티바에서 뛰면서 2003 시즌 득점 5위에 올랐고 2004 아테네 올림픽 남미예선에 출장해 골맛을 봤던 마르셀도 수원의 선택을 받았다. 2004년에는 마그노에 이어 브라질 1부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헤나우도가 서울에 입단했고 당시 브라질 출신들이 초강세를 보이는 동안 2004년에는 터키 국가대표 수비수 알파이 외잘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턴의 크리스 마스덴 등도 각각 인천과 부산 유니폼을 입었다.

심지어 브라질 대표팀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레오마르 또한 2002년 전북에 입단하기도 했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했던 그는 4년 동안 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1995년과 1997년, 1998년, 2000년 브라질 1부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한 베테랑이었다. 레오마르는 A매치 37경기에 출전하며 브라질에서도 손 꼽히는 선수였다. 말 그대로 이 시기 K리그는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당시 K리그 외국인 선수는 브라질 주리그 득점왕 정도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쟁쟁했다. 물론 이중 K리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MVP 주인공이 된 나드손을 비롯해 따바레즈, 에드밀손, 이따마르 등은 K리그에서 성공작으로 평가받지만 헤나우도를 비롯해 외잘란과 마스덴, 레오마르, 마리우 등은 결국 K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브라질 경기 침체의 반사 이익

선수 개개인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 시기 경력만 놓고 보면 입이 쩍 벌어지는 선수들이 대거 운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첫 번째로 브라질 경기 침체 악화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아르헨티나발 경제 위기가 시작되면서 브라질의 헤알화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브라질 경제 전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K리그가 반사 이익을 얻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2001년 상반기에만 다섯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했고 헤알화 가치가 30% 넘게 하락하는 등 크게 흔들렸다. 당시 브라질 전국리그 득점왕이었던 최고 스타 마그노가 K리그에 입성할 때 임대료가 7억 2천만 원, 연봉은 3억 6천만 원에 불과할 정도였고 사상 최고 대우로 수원 유니폼을 입었던 브라질 최고 유망주 마르셀도 당시 환율로 이적료 36억 원에 데려올 수 있었다. 아마 지금이라면 100억 원을 불러도 올까 말까한 선수를 소액(?)에 영입한 것이었다.

그나마 마르셀의 이적료가 그중 돋보이게 많았을 뿐 대부분의 브라질 대표 출신 선수들은 10억 원 안팎이면 K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브라질 내에서도 상당한 이름값을 자랑하던 스타 도도 역시 울산 유니폼을 입을 때 이적료가 당시 환율로 12억 원, 연봉이 3억 6천만 원 수준이었다. 2004년 기준으로 김은중이 대전에서 서울로 팀을 옮길 때 이적료 10억 원에 5년 계약에 합의했을 때니 브라질 특급 스타를 모셔오는 데 드는 돈이 얼마나 헐값(?)이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김대의도 성남에서 수원으로 이적할 때 이적료 10억 원에 3년 계약을 맺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K리그는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브라질 선수들에게는 꿈의 리그였다. 브라질 전국리그에서 이름 좀 날리던 선수들은 대부분 K리그 구단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 이적 협상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런 흐름은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 공산국가가 연이어 무너지던 시기였다. 여기에 유고 연방도 해체되면서 정세가 굉장히 불안하던 시기 K리그는 의외의 호황을 맞았었다. 당시 K리그에는 라데와 바데아, 마니치, 조셉, 샤샤 등 유럽 무대에서도 명망 있는 선수들을 대거 저렴한 가격에 영입할 수 있었다. 특히나 당시 사리체프 영입으로 천안일화가 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자 사리체프의 라이벌로 유명했던 러시아 국가대표 샤샤(유공)와 알렉세이(전북), 불가리아 국가대표 토체프(유공), 마케도니아 국가대표 일리치(대우), 우크라이나 올림픽 대표 사브첸코(LG) 등 동구권의 쟁쟁한 골키퍼들이 대거 K리그에 모여 들기도 했다. 동구권 선수들에게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뛰고 싶었던 리그가 바로 K리그였다.

역대 최고 기량의 용병, ‘응답하라 2003 K리그’

또한 2000년 들어 스타급 브라질 선수들이 대거 K리그로 몰려든 건 2002년 한일월드컵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당시 브라질 선수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보고 K리그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처럼 임금이 밀리는 일도 없을뿐더러 그때만 하더라도 중동 무대가 활성화 되기 전이어서 월급 꼬박 꼬박 나오고 축구 인프라도 훌륭한 한국에서 뛰는 게 훨씬 나았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물론 마스덴처럼 결국 월드컵 거품이 빠져 K리그 경기장이 텅 빈 걸 보고 ‘낚였다’고 생각해 실망한 이들도 있었지만 월드컵으로 인해 한국 축구 이미지가 상당히 개선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은 자유롭게 밤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안전할 만큼 치안이 불안한 브라질과는 다른 천국이었다. 지금 같아서는 유럽 빅리그의 중위권 이상 팀에서 뛸만한 선수들이 대거 K리그로 몰려오던 시기였다.

하지만 최근 브라질 경제는 건국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0년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557억 달러(약 63조원)를 기록하는 등 5년 동안 FDI가 네 배 가까이 뛰었고 여기에 2년 간격으로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유치하게 돼 2015년에는 국민 총생산(GDP)이 3조 달러를 뛰어넘어 세계 5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는 브라질 선수들이 웬만한 거액이 아니면 유럽으로 나가는 대신 자국리그에 남을 정도로 브라질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을 K리그가 대거 영입하고 일본 도쿄 베르디에서는 브라질리그를 정복한 공격수 워싱턴을 어렵지 않게 모셔오던 시대는 이제 옛일이 됐다. 아마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특히 2003년 입이 쩍 벌어졌던 외국인 선수의 K리그에서의 활약은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힘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2003년은 브라질리그에서도 최정상급으로 평가받던 도도와 마그노가 K리그에서 득점 경쟁을 펼치던 참 놀라운 시즌이었다.

이제 브라질의 경제 불황과 월드컵 개최 프리미엄이 다시 겹치는 일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2003년 K리그의 영광을 찾기 위해 리그의 위상이 더 높아졌으면 한다. 2003년 득점왕은 김도훈의 몫이었지만 그와 경쟁한 마그노와 도도, 그리고 한 달 늦게 리그에 입성해 막판까지 추격한 이따마르까지 참 쟁쟁한 선수들이 선보인 흥미로운 시즌이었다. 비록 마그노와 도도 등 이들이 K리그에서 뛴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아 데얀이나 샤샤, 라데와 이들을 같은 반열에 올려 놓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K리그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함께 했던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서는 한 번쯤 재평가 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했고 어쩌면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수준의 2003년 K리그를 재평가하고 기억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K리그의 역사와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