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 한 명은 자주 여자친구가 바뀐다. 처음에는 오래 볼 사이라고 생각해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인사해. 형수님이야. 인마”라고 내 친구가 말할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 그때 그? 아, 아니네요. 죄송해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친구의 새로운 여자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어차피 또 다음에 만나면 여자친구가 바뀌어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통성명을 하고 “제 친구가 참 괜찮은 놈이에요. 철이 없어도 잘 부탁해요”라고 말해주는 것도 다 부질없다고 느꼈다. 절대 부러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 잔뼈 굵은 백종철 신임 감독

또 바뀌었다. 대구FC 감독에 관한 이야기다. 이영진 감독과 이제 좀 친분을 쌓고 취재에 도움을 얻으려고 했더니 모아시르 페레이라 감독이 왔다. 그리고 모아시르 감독에 대해 조금 알아가서 사이 그 역시 금방 팀을 떠났고 새롭게 사령탑에 앉은 당성증 감독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구는 최근 1년 6개월 동안 세 명의 감독을 떠나보낼 만큼 한 감독과 오랜 시간 인연을 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당성증 감독 후임으로 백종철 부산아이파크 전 수석코치가 임명됐다. 아마 대구 팬이라면 이제 새로운 감독과 정을 붙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대구의 감독이라고 하면 박종환, 변병주 이후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대구는 올 시즌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 8경기에서 3무 5패를 기록했고 최근 네 경기에서는 2득점 12실점하며 모두 졌다. 이때 기록한 두 골도 모두 상대의 자책골일 정도로 경기 내용이 답답했다. 상대가 넣어주지 않으면 본인 스스로 넣을 힘 조차 없었다. 결국 대구는 현재 K리그 클래식 꼴찌로 떨어지고 말았고 K리그 클래식에서 강등이 가장 유력한 팀이 됐다. 선수단 내부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당성증 감독은 인성이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상황이라면 감독을 교체하는 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부산과 경남, 성남 등을 돌았던 ‘서울 폭탄’도 결국 대구가 터트리고 말았다.

새로 대구에 부임할 백종철 신임 감독은 능력 있는 지도자다. 1992년 호남대학교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성남 수석코치(1993~98년)를 거쳐 1999년 여자축구 영진전문대학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그는 팀의 3연패를 일궈내면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U-19 여자축구팀 감독을 역임했다. 백종철 감독은 이후 부산아이파크 수석코치를 지내다가 이번에 대구 지휘봉을 잡고 K리그 감독으로 입성했다. 그다지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훌륭한 지도자라는 평가다. 특히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아우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종철 감독은 대구FC의 적임자일까?

하지만 나는 이번 감독 선임 역시 훌륭한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대구의 상황을 따져본다면 이번 감독 선임도 불안하다. 아직 K리그 클래식에서 감독 경험이 없는 백종철 감독이 혼자 팀을 이끌고 가기에 강등이라는 부담감은 너무 크다. 감독 경험이 전무했던 당성증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올렸을 때의 상황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저 누군가가 책임을 지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 당성증 감독 선임 당시 불거졌던 문제점이 이번 감독 선임 이후 똑같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백종철 감독의 능력이야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가 당성증 전임 감독 시절에 하지 못했던 걸 거짓말처럼 이뤄내기에는 그리 특출난 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순서를 바꿔 백승철 감독 후임으로 당성증 감독이 대구 지휘봉을 잡았어도 뭐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지금 대구는 빠른 시간에 팀을 파악하고 정비할 경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굳이 콕 집어 말하지는 않겠지만 경험이 풍부한 좋은 감독들이 시장에 여럿 나와 있다. 그저 1년 6개월 동안 임시방편으로 세 명의 감독이나 갈아치운 대구로서는 한 명이라도 오랜 시간 제대로 팀을 이끌 감독이 필요하다. 차라리 나처럼 신중에 신중을 기해 진정한 사랑이 나타날 때까지 솔로로 지내는 게 그 때 그 때 마음에 따라 내 친구가 자주 여자친구를 바꾸는 것처럼 감독을 바꾸는 것보다는 낫다. 성적이 부진할 때 감독만 자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대안도 마땅히 없고 결국에는 전임 감독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이를 또 선택할 거면서 구단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이영진 감독이나 모아시르 감독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어떨까. 2011년 10월 계약기간이 1년 남았던 이영진 감독은 승부조작 파문으로 힘든 가운데서 12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결국 경질됐다. 대구는 당시 스플릿시스템을 앞두고 이영진 감독으로부터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는 확신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영입한 모아시르 감독은 10위를 기록했지만 “재계약을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면서 떠나보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아마 이 둘 중 한 명이 팀에 남아 있었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으면 나았지 후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중간에 감독 경질하고 책임질 돈이면 차라리 모아시르 감독을 유임하는 편이 가격대비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대구의 다를 것 없는 변화

나는 김학범 감독을 데려온 강원이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에도 강원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만약 김학범 감독이 없었다면 강원은 진작에 K리그 챌린지도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김학범 감독은 없는 살림을 경험으로 보완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잔류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구단에 이런 경험 많은 지도자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런 면에서 그저 면피성, 혹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경험이 부족한 감독을 또 다른 경험이 부족한 감독으로 바꾸는 대구의 선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백종철 감독은 지난 2011년 11월 모아시르 감독 선임 당시 황보관 기술위원장 등과 함께 대구 감독 물망에 올랐던 인물이다. 계획된 인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김봉길 감독이 인천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K리그 클래식 감독 경험이 없는 이들의 이런 돌풍은 ‘로또’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선수 구성이 좋은 상위권 팀들은 경험이 다소 부족한 감독이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만 유지하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지만 하위권 팀들은 다르다. 대전은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이끌었던 유상철 감독을 경질하고 부산 수석코치였던 김인완 감독을 영입했지만 올 시즌 최악의 결과를 내고 있다. 이럴 거면 그냥 안정적으로 유상철 감독 체제를 유지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시·도민구단의 경제적인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거장을 모셔오라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던 감독을 유지하는 것 정도의 재력은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주머니 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의지의 문제다.

지금까지 보여준 대구의 경기력이라면 대구는 올 시즌 강등의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감독 경질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전임 감독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새로운 지도자가 대구에서 보여줄 능력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시즌이 끝난 뒤 또 한 번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게 또 다시 감독이 아니었으면 한다. 이번에는 대구가 궁합이 잘 맞는 감독과 영원토록 사랑을 했으면 한다. “인사해. 새로운 내 애인이야.” 이 말에 팬들이 “또야?”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도록 대구FC와 백종철 감독이 행복한 커플이 됐으면 좋겠다. 대구와 백종철 감독 사이에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거리는 사랑이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