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카타르와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극적인 2-1 승리를 따낸 지난 26일은 온통 이 경기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승리에 대한 소식보다 ‘HJ’가 누구인지가 가장 이슈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축구 경기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적은 아니지만 각기 소속 국가의 유니폼을 입고 다른 한 편으로는 K리그 대표로 A매치에 나선 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리에겐 FC서울 선수로 더 친숙한 데얀 다미아노비치(몬테네그로)와 다시 K리그 클래식 성남으로 돌아온 세르베르 제파로프(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지난 시즌 전남을 강등권에서 구해낸 로버트 콘트와이트(호주)에 대한 이야기다.

부치니치와 요베티치, 그리고 다미아노비치

2007년 데얀 다미아노비치(이하 다미아노비치)가 인천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인천과 서울을 거치며 K리그 최고 공격수로 성장한 다미아노비치는 2008년에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이탈리아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몬테네그로에는 미르코 부치니치(유벤투스)와 스테판 요베티치(피오렌티나)라는 유럽 무대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걸출한 공격수가 있었지만 그 틈에서도 다미아노비치의 능력은 빛났다. 그는 2009년 키프로스와의 2010 남아공월드컵 예선에서 혼자 두 골을 기록하는 원맨쇼를 펼치며 팀의 극적인 2-2 무승부를 이끌기도 했다

유로2012 예선에서 잉글랜드에 이어 조2위를 기록 중이던 몬테네그로는 다시 한 번 다미아노비치를 예의 주시했다. 라도미르 잘로비치(러시아 암카르 페름)와 안드리아 델리바시치(스페인 라요 바예카노) 등 같은 포지션 경쟁자들의 파괴력이 부족했던 몬테네그로는 다미아노비치의 합류가 절실했다. 다미아노비치는 “서울의 상승세를 더 이어가고 싶다”면서 대표팀 차출을 고사했지만 몬테네그로의 의지도 강력했다. 잉글랜드에 이어 예선 2위를 기록 중이지만 뒤쫓아오는 스위스와 불가리아, 웨일즈의 저항이 거세 더 위협적인 공격력을 위해서는 다미아노비치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미아노비치는 대표팀 합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지만 고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몬테네그로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2011년 9월 다미아노비치는 웨일즈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12분 잘로비치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미 스티브 모리슨(노르위치)과 아론 램지(아스널)에게 연거푸 골을 허용해 적지에서 0-2로 뒤진 몬테네그로로서는 총공세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경기에 투입된 다미아노비치는 14분 만인 후반 26분 요베티치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해 팀의 추격골을 도왔다. 비록 다미아노비치의 어시스트에도 몬테네그로는 1-2로 패했지만 그가 그라운드에 투입된 이후 분위기는 몬테네그로 쪽으로 넘어왔다. 다미아노비치는 이후 대표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는 몬테네그로에는 여전히 부치니치와 요베치티라는 세계적인 공격수가 있지만 다미아노비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분위기가 바뀌었다.

잉글랜드를 침묵시킨 다미아노비치의 동점골

지난해 10월 다미아노비치는 다시 한 번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에 참가 중인 몬테네그로는 1승 1무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와의 부담스러운 원정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와 조1위 경쟁을 해야 하는 몬테네그로는 우크라이나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그런데 이날 몬테네그로는 파격적인 선수 기용을 선보였다. 주축 공격수 부치니치를 대신해 다미아노비치를 선발로 내세운 것이다. 다미아노치비는 요베티치와 함께 투톱을 구성해 5만 홈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를 공략했다. 이 경기에서 전반 추가 시간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요베티치의 패스를 받은 다미아노비치는 이를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결승골을 뽑아냈다. 이걸로 경기는 끝이었다. 몬테네그로가 적지에서 우크라이나에 1-0 승리를 챙긴 것이다.

다미아노비치는 지난 26일 치러진 잉글랜드와의 중요한 일전에도 출격 준비를 마쳤다. 4승 1무로 조 선두를 달리고 있던 몬테네그로로서는 3승 2무로 그 뒤를 바짝 쫓는 ‘강호’ 잉글랜드와의 홈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몬테네그로는 잉글랜드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골을 허용해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력 강화를 위해 벤치에서 출격을 준비하고 있던 ‘다미아노비치 카드’를 꺼내들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그라운드에 투입된 다미아노비치는 후반 31분 코너킥을 헤딩슛으로 연결한 뒤 튀어나온 공을 오른발 슈팅으로 다시 한 번 차 넣어 잉글랜드 골망을 출렁였다. 조 하트(맨체스터 시티)도 어쩔 수 없는 골이었다. 결국 몬테네그로는 데얀의 골에 힘입어 1-1 무승부를 기록, 조1위를 유지하게 됐다. 다미아노비치는 이제 몬테네그로의 확실한 공격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우즈벡 축구 역사를 다시 쓰는 제파로프

같은 날 우즈베키스탄은 레바논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승점 8점을 기록하며 조1위를 내달리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세르베프 제파로프(이하 제파로프)를 중원에 배치했다. 제파로프는 징계로 뛰지 못한 이란과의 1차전을 제외하고 최종예선 4경기 모두 풀타임 소화한 우즈벡의 주장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제파로프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지난 2010년 6개월 만 뛰면서도 18경기에 출전, 1골 7도움을 기록하면서 서울의 K리그 우승에 큰 역할을 했던 제파로프는 2011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중동에 진출한 그는 한국과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도 얄미울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친 바 있고 최근 다시 성남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무대에 복귀했다.

제파로프가 서울에서 뛸 당시 우즈벡에는 K리그 열풍이 불기도 했다. 서울이 우승을 차지하자 우즈벡 축구 사이트에는 순식간에 2천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제파로프가 아시아 최고 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는 데 일조한 모습을 보고 그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우즈벡 축구팬들에게 K리그는 동경의 대상이자 최고의 리그로 인식돼 있었다. ‘제파로프는 K리그에 남아야 한다. 그는 우리의 즐거움이다’라는 의견부터 ‘제파로프는 서울에 완전이적 해야 한다. 그래야 우즈벡 축구가 발전한다’는 의견까지 제파로프와 K리그에 열광하는 팬이 대다수였다. 아직 성남에 입단한 뒤 한 경기만 치른 상황이라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지만 제파로프가 대표팀에 합류하자 모두가 그의 활약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02년부터 대표팀에 차출돼 78경기에 나서 17골이나 뽑아낸 그는 이날 경기에서도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더니 후반 18분 통렬한 중거리슛으로 우즈벡의 결승골을 뽑아냈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레바논을 맞아 고전하던 우즈벡은 0-0으로 팽팽하던 순간 페널티박스 오른편에서 공을 잡은 뒤 기습적인 한 방을 날린 제파로프 덕분에 1-0으로 승리를 거두고 한 경기 덜 치른 한국을 다시 밀어내며 조1위를 탈환했다. 이 경기에서도 풀타임 활약한 그는 우즈벡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우즈벡은 이날 승리로 3승 2무 1패 승점 11점을 기록, 한국과 승점 1점차 간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타슈켄트의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은 경기가 끝난 뒤 제파로프의 이름을 연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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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의 경기 전 호주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각오를 밝히는 콘트와이트의 모습. (사진=호주 폭스 스포츠)

K리그 입성 후 대표팀 기회 잡은 콘트와이트

같은 날 K리그 팬들은 호주와 오만전도 지켜봐야 했다. K리그 클래식 팬들에게는 ‘코니’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로버트 콘트와이트 때문이었다. 2005년부터 호주 A리그 통합 출범 이후 줄곧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콘트와이트는 2008년에는 올림픽 대표팀에 뽑혔고 2009년에는 그토록 원하던 호주 성인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영국 출신인 그는 호주와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가 고민 끝에 호주를 선택했다. 하지만 유럽파가 즐비한 호주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도약하지 못한 채 지난 2011년 K리그 클래식 전남드래곤즈 유니폼을 입었다. 이때 K리그 등록명으로 ‘코니’를 썼다.

앞서 소개한 다미아노비치와 제파로프처럼 공격 능력을 뽐내는 선수가 아닌 수비수이기 때문에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진 못한다. 하지만 콘트와이트가 최근 들어 전남과 호주 수비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전남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을 이끌며 지난 해 강등권 탈출의 일등공신이 됐고 수비수임에도 197cm의 큰 키를 앞세워 지난해에만 K리그에서 세 골을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재능까지 뽐내고 있다. 올 시즌 공격력이 약한 전남은 위기의 순간에 코니를 최전방에 배치하는 변칙적인 전술을 준비하기도 했다. 콘트와이트 없는 전남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K리그 클래식에서 다미아노비치와 제파로프만큼 주목받진 못하지만 전남의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무척 유용한 자원이다.

2009년 호주 대표팀에 발탁돼 쿠웨이트와의 아시안컵 예선에 단 한 번 교체 출전한 게 전부였던 콘트와이트는 지난해 대표팀에서도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호주가 한국과의 원정 친선경기 일정을 잡은 뒤 유럽파를 대거 소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콘트와이트를 다시 대표팀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전남에서 훈련하고 있던 그는 호주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고 오랜 만에 호주 팬들에게 인사했다. 호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선발 출장하는 콘트와이트의 영광스러운 경기는 바로 그렇게 자신이 꿈을 이루기 위해 입성한 한국 땅에서 펼쳐졌고 그는 이날 후반 막판 공격에 가담해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며 호주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전남 수비의 중심에서 호주 수비의 중심으로

이후 콘트와이트는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도약했다. 한국전 이후 치러진 홍콩과의 동아시안컵 예선에서 곧바로 선발 출장해 풀타임 활약한 그는 이후 호주의 모든 A매치에서 풀타임 활약하고 있다. 한국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뒤 대만을 상대로도 한 골을 기록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유럽파 등 주축 선수를 제외한 채 치른 경기였지만 콘트와이트는 어느덧 호주 수비의 기대주로 성장해 있었다. 호주는 동아시안컵 예선이 끝난 뒤 지난 2월 루마니아와의 유럽 원정 평가전을 앞두고 유럽파를 대거 불러들인 상황에서 콘트와이트를 다시 한 번 차출했다. 진정한 시험대에 선 콘트와이트는 이날 경기에서도 수비수임에도 또 다시 세트피스 상황에서 팀의 선취골을 뽑아냈다. 이제 그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수비수다.

지난 26일 열리는 이번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오만전을 앞둔 호주는 당연히 콘트와이트를 또 다시 선발했다. 이제 콘트와이트 없는 호주 대표팀은 뭔가 불안하다. 콘트와이트는 마크 슈왈처(풀럼), 브렛 홀맨(애스턴 빌라), 루크 윌크셔(디나모 모스크바), 라이스 윌리엄스(미들즈브러) 등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이제는 유럽을 떠난 마크 브레시아노(알 가라파)와 팀 케이힐(뉴욕 레드불스), 아치 톰슨(멜버른 빅토리) 등도 그와 함께 이번 대표팀에 선발됐다. 오만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호주는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브라질행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경기 전부터 분위기가 들썩였다.

호주의 권위 있는 스포츠 전문 채널인 ‘폭스 스포츠’는 경기 전부터 오만과의 승부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연신 전력을 분석했다. 그리고는 스튜디오에 앉아 있던 사회자가 이렇게 말했다. “호주의 가장 ‘핫’한 선수를 소개합니다. 로버트 콘트와이트입니다.” 콘트와이트가 스튜디오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전남 드래곤즈 & 사커루 수비수’라는 그를 소개하는 자막이 눈에 띄었다. 사회자는 한국과의 A매치에서 기록한 데뷔골과 K리그에서의 생활에 큰 관심을 보였고 콘트와이트는 이렇게 답했다. “K리그에서 뛰며 수준 높은 축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밑바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만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콘트와이트는 ‘당연히’ 선발로 나섰다. 스리백을 쓴 호주는 콘트와이트를 비롯해 윌크셔, 마이클 드와이트(퍼스 글로리)를 수비진에 내세웠다. 비록 이날 경기에서 호주는 오만에 일격을 당하며 2-2 무승부에 머물렀지만 콘트와이트는 터프한 수비력을 과시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는 이제 전남은 물론 호주 대표팀에서도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에게 K리그 클래식 진출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멋진 활약을 해 대표팀에서도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생활은 대단히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그는 수비수임에도 현재까지 호주 대표팀에서 7경기에 나서 세 골을 기록하며 눈부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이제 그들이 다시 K리그로 돌아온다

K리그 클래식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각국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데얀’이라고 부르는 다미아노비치는 이제 유럽 최정상 공격수들이 포진한 몬테네그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격수가 됐고 제파로프는 여전히 우즈벡 축구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코니’로 잘 알려진 콘트와이트는 이제 호주에서 가장 ‘핫’한 선수다. 몬테네그로와 우즈벡, 호주를 열광케 했던 바로 그 주인공들은 이번 주말부터 다시 K리그 클래식 팬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K리그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대단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매주 이들을 경기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행복이다. 지난 주말 A매치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그들이 이제 다시 K리그 클래식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