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뭔가요?” 즉석만남을 하거나 소개팅을 할 때 상대방 여성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종종 받아 왔다. 축구 보는 거 말고는 딱히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K리그 보는 거요.” 이 대답을 전하면 상대방 여성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취미가 뭔가요?”라는 질문에 폼 나는 답변을 할 수 있게 됐다. “제 취미는 클래식입니다.” 더군다나 내 직업은 이제 클래식 전문 칼럼니스트가 됐으니 이거 참 멋지다. K리그가 승강제를 시행하는 올 시즌부터 1부리그 명칭을 ‘K리그 클래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기사 이미지

‘한국프로축구 리그 명칭 및 엠블럼 발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 (사진=프로축구연맹)

하위 리그 개념 희석한 ‘K리그’

명칭 발표를 앞두고 내심 걱정됐던 게 사실이다. 순우리말로 한다면서 ‘금강리그’나 ‘백두리그’, 아니면 ‘미리내리그’, ‘아리랑리그’와 같은 명칭을 발표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모두 다 좋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축구 리그를 표현하기에는 살짝 손발이 오그라든다. 나는 한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너 오늘 아리랑리그 보러 갈래?” 이게 요새 시대에 먹힌다고 생각하나. 또 한 가지 최악은 ‘코리안 프리미어리그’라는 명칭이었다. 너무 유럽 축구 느낌이 짙고 개성이 없어 ‘코리안 프리미어리그’만은 아니길 바랐다. 줄여서 ‘KPL’이라고 쓰는 것도 별로였다. 과거 내가 주장했던 것처럼 그럴 바에는 그냥 ‘프로축구 1부리그’, ‘프로축구 2부리그’로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똑똑한 사람들은 달랐다. 호불호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연맹이 고심 끝에 발표한 이번 명칭이 무척 마음에 든다. 1부리그를 ‘K리그 클래식’으로 하고 2부리그를 ‘K리그’로 정한 아이디어는 참 멋지다. ‘금강리그’, ‘백두리그’, ‘미리내리그’, ‘코리안 프리미어리그’를 걱정하던 나는 그 동안 연맹을 너무 믿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클래식’이라는 영어 단어가 지루한 음악을 표현하는 단어인줄로만 알았지만 ‘클래식’은 이외에도 ‘일류의, 최고 수준의’라는 뜻도 있단다. ‘K리그 클래식’, 참 발음하기에도 좋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세련된 느낌이 난다. K리그의 최고 팀들이 모인 상위 리그 개념으로 손색이 없다.

더 마음에 드는 건 2부리그 명칭이 ‘K리그’가 됐다는 점이다. 하위 리그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면 흥행에도 문제가 있고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맹은 2부리그를 우리에게 익숙해진 ‘K리그’로 결정하면서 하위 리그라는 이미지를 희석시켰고 대중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게 됐다. 2부리그 명칭이 ‘K리그’가 되면서 1부리그는 기존의 ‘K리그’보다 더 상위 리그라는 이미지까지 얻었으니 이거 명칭 만든 관계자 천재 아닌가.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이 ‘프로축구 1부리그’, ‘프로축구 2부리그’ 따위의 명칭만 생각할 때 역시 배운 사람들은 한 단계 더 앞선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내가 관계자였다면 ‘K리그 클래식’의 하위리그를 ‘K리그 후레쉬’로 하자고 했다가 임의탈퇴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기사 이미지

새로운 K리그 명칭은 많은 이들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앞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할 그 이름은 바로 ‘K리그 클래식’이다. (사진=프로축구연맹)

3부리그까지 연계할 수 있는 유용한 명칭

나는 과거 칼럼에서 ‘K리그’라는 명칭이 ‘J리그’를 따라해 불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치 않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 노출된 ‘K리그’라는 브랜드를 이제 포기하기에는 늦은 것 같다. ‘K리그’라는 명칭 자체에는 여전히 불만이 있지만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이런 식으로 연결한 아이디어에는 박수를 보낸다.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이런 식으로 연계했으니 앞으로 3부리그와 4부리그가 출범해도 연관 지어 리그 명칭을 정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K리그 챌린저’, ‘K리그 내셔널’ 등 현재 리그 명칭과 엮어 얼마든지 새로운 하부리그를 구성할 수 있다. 아니면 3부리그부터는 ‘K리그1’, ‘K리그2’ 이런 식으로 체계를 잡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 명칭이라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을까. 전세계에 ‘프리미어리그’는 넘치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범위 내에서는 ‘클래식’이라는 명칭의 리그는 우리가 유일한 것 같다.

새로운 엠블럼 역시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펩시 콜라가 연상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는 태극 문양이 들어갈 경우에는 피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적어도 태극기를 아는 외국인이라면 이 엠블럼을 보는 순간 “대한민국의 축구 리그군”이라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멋을 잘 살려낸 작품이다. ‘K’라는 글자가 마치 슈팅을 하는 듯한 모습으로 형상화 된 점도 마음에 든다. 중의적인 표현, 참 예술적이다. 원래 새로운 명칭이나 엠블럼이 공개되면 혹평이 쏟아지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팬들의 반응 역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소녀시대의 신곡에 대한 평가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욕 안 먹을 정도면 충분히 잘한 거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기존 K리그 엠블럼을 그대로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K리그 클래식’에는 새롭게 공개된 엠블럼을 쓰고 2부리그인 ‘K리그’에는 기존 엠블럼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건 어떨까. 엠블럼을 통해 1부리그와 2부리그에 약간의 차이를 두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K리그’에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을 확정지은 팀이 팬들 앞에서 ‘K리그 클래식’ 엠블럼을 유니폼에 다는 멋진 퍼포먼스도 할 수 있다. 또한 ‘K리그 클래식’은 새로운 우승 트로피를 만들고 기존 K리그 우승 트로피를 2부리그인 ‘K리그’에서 계속 썼으면 한다. 그래야 K리그의 정통성이 더 확고해 질 것이다. 조금 더 센스를 발휘해 ‘K리그 클래식’의 ‘CLASSIC’을 ‘KLASSIC’으로 바꿨다면 독창적이지 않았을까.

고민한 결과, 쭉 밀고 가자

어찌됐건 7개월 동안 충분히 고민해 만든 멋진 작품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몇 년 가지 않아 또 다시 명칭을 바꾸고 엠블럼을 바꾸고 리그를 재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 번 정했으면 100년, 200년 쭉 가야한다. 그게 바로 역사고 정통성이다. 지금이야 물론 ‘K리그 클래식’이 아직 입에 붙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야 자연스럽게 ‘K리그 클래식’이 정착될 수 있다. 그때까지 변화 없이 이 고민한 결과를 밀고 갔으면 좋겠다. 또한 고생 끝에 멋진 명칭을 만들었는데 줄여 쓰기 좋아하는 언론에서 ‘K LEAGUE CLASSIC’을 ‘KLC’로 줄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코리안 프리미어리그’를 줄여 ‘KPL’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격은 스스로 높일수록 더 높아지는 법이다.

또한 연맹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리그 명칭 공개를 보고 한 가지를 더 느꼈다. 2부리그를 ‘K리그’로 정한 순간 상주 상무와 광주FC는 K리그 잔류가 확정됐다. ‘K리그’를 떠났다고 울지 않아도 된다. 또한 2부리그를 ‘K리그’로 정한 순간 안양과 부천은 그토록 꿈에 그리던 ‘K리그’로 돌아왔다. ‘K리그’에 돌아왔으니 마음껏 울어도 된다. 명칭 하나로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고 감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프로축구연맹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