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김현회입니다. 열정과 초심을 잃은 것 같아 잠시 쉬던 칼럼 연재를 오늘부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칼럼을 쉬면서 그 동안 축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칼럼 독자 분들이 부족한 저에게 보내주신 과분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느끼게 됐습니다. WK리그 구단 해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힘도 보태지 못하는 것 같아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칼럼을 통해 독자 분들을 만나는 게 저로서는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을 수도 없이 떠올리게 됐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진심과 애정을 담아 네이트에서의 630번째 칼럼을 소개할까 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우리가 주목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찾아내고 소개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부족한 칼럼에 많은 관심과 애정, 때로는 따끔한 질책 부탁드리겠습니다.

복귀 칼럼으로 어떤 주제를 써야 할지 망설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결국 늘 이맘때 그랬던 것처럼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명승부를 칼럼으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늘 시즌 개막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칼럼으로 담던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했던 올 시즌 K리그 마지막을 칼럼으로 담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그 마음을 담아 복귀 칼럼으로 올 시즌을 정리하는 K리그 최고의 명승부 TOP10을 선정했다. 지금부터 칼럼 연재를 쉬던 석 달 동안 채우지 못했던 것들까지 담아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명승부 TOP10을 공개하려 한다. 물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 내 마음대로다.

10위. 2012년 8월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 3-3 제주 (부제 : 에닝요의 센스가 빛난 동점골)

아마 전북 팬들은 납량특집 영화를 봐도 별로 감흥이 없을 것이다. 시원시원하게 골을 먹고 흥겹게 실점도 하니 심장이 아주 튼튼할 것 같다. 지난 8월 열린 제주와의 홈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반 4분 만에 제주 오승범이 날린 슈팅을 최은성이 잡지 못하고 흘리자 이를 강수일이 밀어 넣어 먼저 한 골을 내준 전북은 전반 33분 추격에 성공했다. 에닝요의 힐패스를 이어받은 서상민은 오른발로 감아 차 제주 골문을 갈랐다. 전반 41분에는 최은성이 길게 내준 공을 에닝요가 제주 골문 앞에서 이어 받아 강하게 꽂아 넣어 2-1로 달아났다. 하지만 전북 팬들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후반 36분 기습적인 롱패스를 이어 받은 서동현이 날린 슈팅이 최은성을 맞고 흐르자 자일이 이를 골문 안으로 차 넣어 동점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공세는 그치질 않았다. 후반 44분 자일의 슛이 골대를 맞고 흘러 나오자 이번에도 강수일이 이를 놓치지 않고 역전골을 만들어 낸 것이다. 두 골을 넣었지만 세 골이나 허용해 후반 종료 직전 패배를 눈 앞에 둔 전북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후반 추가시간 얻은 마지막 프리킥 상황에서 에닝요가 키커로 나섰다. 킥력이 대단한 에닝요를 막기 위해 제주 수비진은 벽을 쌓은 채 잔뜩 긴장했다. 그런데 이때 에닝요는 강력한 킥을 날리는 척 하더니 페널티 박스 안에 있는 레오나드로에게 공을 연결했고 레오나르도는 이를 침착하게 제주 골문으로 꽂아 넣었다. 제주 진영에서는 오프사이드라고 거세게 항의했지만 느린 화면은 레오나르도보다 골문 가까이에 있는 제주 마르케스를 비추고 있었다. 이 경기를 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후반 막판 한 골씩 주거니 받거니하며 이 밤이 가는구나.”

9위. 2012년 10월 7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대전 5-3 강원 (부제 : 한 경기 두 명의 해트트릭)

한 경기에서 한 선수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한 경기에서 두 명이나 해트트릭을 기록한다면? 그것도 그 중의 한 명이 ‘포동스키’ 지쿠라면? 아마 “그걸 믿느니 은혁이 정말로 아이유 병문안 갔다는 걸 믿겠다”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짓말 같은 경기가 실제로 이뤄졌다. 지난 10월 7일 열린 대전과 강원의 경기는 K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멋진 승부였다. 이날 대전 케빈과 강원 지쿠는 나란히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화끈한 골 잔치의 주인공이 됐다. K리그에서 양 팀 선수가 한 명씩 동시에 해트트릭을 기록한 건 1994년 안양LG-포항제철 경기에서 윤상철과 라데의 해트트릭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전반 8분 테하의 선취골로 앞서 나간 대전은 전반 21분 강원 지쿠에게 동점골을 허용하자 전반 33분 케빈의 골로 응수했다. 케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전반 45분에도 한 골을 더 기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쿠가 맞받아졌다. 지쿠가 후반 2분과 후반 13분 연속골을 뽑아내며 해트트릭을 완성한 것이다, 두 골을 기록 중이던 케빈도 살찐 몸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지쿠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을까. 케빈 또한 후반 17분 또 다시 한 골을 만회하며 해트트릭 달성에 성공했고 후반 45분에는 대전 한경인이 한 골을 더 만회해 이 기상천외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면 당연히 승리도 따라올 줄 알았던 지쿠의 꿈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래도 힘내자. 유병수는 인천에서 네 골 넣고 못 이긴 적도 있다.

8위. 2012년 3월 3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 3-2 성남 (부제 : 성남의 ‘이때만 하더라도’)

고대하던 올 시즌 K리그 개막전은 지난 시즌 리그 챔피언 전북과 지난 해 FA컵 우승팀 성남의 경기로 막을 올렸다. ‘이때만 하더라도’ 개막 전 열린 아시아 챌린지컵에서 화끈한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성남이 우승후보로 꼽힐 때였다. ‘닥공’과 ‘신공’의 대결은 그만큼 대단했다. 전북 이동국이 황보원의 패스를 이어받아 전반 13분 첫 골을 터뜨리고 5분 뒤 쐐기골까지 뽑아내면서 순식간에 승부가 갈리는 듯 했다. 이동국은 이 두 골로 K리그 통산 최다골(117골) 기록을 세웠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이동국의 의미 있는 골이 터지자 겨우내 K리그를 기다렸던 팬들의 환호성은 더 커졌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성남의 저력은 무서웠다. 성남은 전반 23분 박진포의 크로스를 에벨톤이 감각적인 헤딩슈팅으로 연결해 추격에 성공하더니 후반 5분 또 다시 일을 냈다. 에벨톤이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에서 때린 슈팅이 그대로 전북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2-2. 동점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디펜딩 챔피언은 달랐다. 경기가 팽팽하게 흐르던 후반 37분 에닝요가 그림 같은 오른발 프리킥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성남 팬들은 비록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디펜딩 챔피언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인 선수들에게 큰 희망을 봤을 것이다. 물론 ‘이때만 하더라도’다. 두 골 넣고 기록 세운 이동국은 기뻐서 울고 두 골 넣고도 패한 에벨톤은 분해서 울고 샤다라빠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운다.

7위. 2012년 5월 5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대전 2-1 수원 (부제 : 케빈의 ‘나 홀로 두 골’)

K리그에는 여러 미스터리가 있다. 최근에는 서울 에스쿠데로가 1988년생이라는 게 가장 신기한 미스터리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는 바로 전력상 항상 열세인 대전이 수원만 만나면 마치 중학교 시절 오락실에서 펌프하는데 뒤에 예쁜 여학생이 있어 못하던 나이키까지 하던 나처럼 없던 힘까지도 발휘한다는 점이다. 올 시즌에는 다를 줄 알았다. 개막 후 10경기 중 9번을 패하며 꼴찌로 내려 앉은 대전을 상대로 선두 수원이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둘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전은 전력상 열세임이 분명했지만 이날 경기에서 또 다시 수원을 울렸다. 꼴찌가 선두를 잡던 순간은 올 시즌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대전은 전반 22분 김형범이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연결하자 케빈이 이를 머리로 받아 넣으면서 선취골을 뽑아냈다. 하지만 대전은 10여 분 뒤 곧바로 위기를 맞았다. 전반 34분 정경호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라돈치치를 막다가 페널티킥을 허용하면서 퇴장까지 당하는 최악의 순간을 맞은 것이다. 결국 라돈치치에게 한 골을 허용한 대전은 수적인 열세를 안고 남은 시간을 싸워야 했다. 하지만 대전은 포기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수원을 괴롭히던 대전은 후반 종료 직전 역습 상황에서 케빈이 하프라인 부근부터 공을 치고 달려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고 이 공은 통렬하게 수원 골문에 꽂혔다. 이 골이 터지자 대전월드컵경기장은 귀를 찢을 듯한 환호로 뒤덮혔다. K리그 입성 후 부진을 면치 못하며 비난 받던 케빈의 데뷔골이자 멀티골은 하필이면 ‘천적’ 수원전에 터지고 말았다. 벨기에인도 대전이 수원에 강하다는 사실은 알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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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케빈은 수원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명승부의 주인공이 됐다. (사진=대전시티즌)

6위. 2012년 5월 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 3-3 전북 (부제 : 전북이 보여준 3분의 기적)

인천 김봉길 감독대행과 전북 이흥실 감독대행이 같은 감독대행 처지로 만났다. 특히 이전 경기까지 3무 3패를 기록 중이던 인천은 안방에서 전북을 상대로 독기를 품고 경기에 임했다. 인천은 전반 3분 설기현이 얻어낸 프리킥을 문상윤이 절묘하게 감아 차면서 선취골을 뽑아냈다. 그러자 전북의 반격이 이어졌다. 전반 15분 에닝요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때린 슈팅이 인천 수비벽에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가자 인천의 반격이 시작됐다. 김남일의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슈팅이 최은성 손에 막고 흐르자 쇄도하던 박준태가 오른발로 밀어 넣으며 또 다시 달아났다. 인천은 후반 35분 역습 한 방으로 또 다시 득점에 성공했다. 설기현이 전북 수비진을 따돌린 뒤 날린 오른발 땅볼 슈팅은 그대로 전북 왼쪽 골문 구석을 갈랐다.

인천은 무승 행진 마감을 위해 길지 않은 시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후반 43분 전북 에닝요의 오른발 슈팅으로 한 골을 허용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3-2로 앞선 상황에서 남은 시간만 잘 버티면 귀한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전북의 기세는 놀라웠다. 후반 추가 시간이 흐르던 46분 에닝요의 크로스를 이어 받은 이동국이 솟구쳐 올라 머리로 공의 방향을 틀었다. 인천 골키퍼가 손도 댈 수 없는 골이었다. 인천은 또 다시 승리 사냥에 실패해 땅을 쳤고 적지에서 다 진 경기를 무승부로 이끈 전북은 환호했다. 전자레인지에서 짜장이 데워지는 짧은 3분 동안 두 골을 뽑아내며 패배에서 벗어난 전북의 기세는 놀라웠지만 인천 어린이들에게는 런닝맨 결방 만큼이나 믿기 싫은 잔인한 어린이날이었다. 이동국이 인천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짓밟는 순간이었다.

5위. 2012년 8월 11일 탄천종합운동장
성남 2-3 서울 (부제 : ‘데몰리션’이 만들어낸 드라마)

전북이 선두 다툼에서 한 숨 돌리려 하면 서울이 죽어라 쫓아오던 형국이었다. 이 경기를 지켜보던 전북은 선두를 수성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서 아마 땅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성남 원정길에 오른 서울은 전반 13분 데얀이 고요한의 패스를 이어받아 가볍게 첫 골을 성공시키며 여유 있게 출발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성남의 반격도 매서웠다. 후반 12분 하밀이 헤딩 동점골을 뽑아낸 뒤 24분에는 윤빛가람이 오른발 프리킥 역전골을 꽂아 넣으면서 순식간에 경기 분위기를 바꿨다. 이전까지 5경기 연속 무패(4승 1무)를 기록 중이던 서울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후반 43분이 될 때까지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서울은 기적의 5분을 연출했다. 후반 43분 몰리나가 동점골을 뽑아내더니 추가 시간에는 데얀이 일을 냈다. 몰리나가 왼쪽에서 연결한 공을 데얀이 한 번 툭 치더니 때린 슈팅은 성남이 어떻게 손 쓸 방법도 없이 그대로 골문으로 흘러 들어갔다. ‘데몰리션’ 콤비가 일궈낸 합작품이었다. 이 골이 들어가는 순간 최용수 감독은 무릎을 꿇고 환호했고 성남 선수들은 다 이긴 경기를 패배로 마치며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다. 서울은 이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같은 날 무승부를 기록한 전북을 제치고 선두 등극에 성공했다. 반면 이날 경기장을 찾은 성남 팬들은 윤빛가람이 성남 유니폼을 입고 기록한 올 시즌 유일한 골을 봤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귀한 구경했다.

4위. 2012년 11월 17일 탄천종합운동장
성남 3-4 광주 (부제 : 광주의 ‘투혼’과 성남의 ‘설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꿈은 이뤄진다는 교훈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강등권에서 사투를 벌이던 광주는 성남 원정을 떠나 전반 초반 급격히 무너졌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레이나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광주는 전반 21분에도 에벨톤의 패스를 이어받은 레이나에게 또 다시 한 골을 허용했다. 0-2로 끌려가며 당황한 광주는 8분 뒤 또 한 골을 내주면서 사실상 경기를 포기한 듯했다. 김철호의 패스를 이어받은 에벨톤이 골키퍼까지 제치면서 여유 있게 골을 뽑아낸 것이었다. 모두들 이번에는 성남의 홈 10경기 연속 무승(4무 6패)이 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3-0으로 크게 앞선 성남은 마음을 놓고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이미 승패는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는 이때부터였다. 전반 38분 박기동의 패스를 받은 안동혁이 승부의 불씨를 지피는 골을 뽑아내더니 전반 44분에는 박기동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박희성이 차 넣으면서 2-3으로 따라붙었다. 후반 들어서도 광주의 추격은 매서웠다. 후반 1분 만에 안동혁의 크로스를 복이가 헤딩 슈팅으로 연결해 극적인 동점을 만든 것이다. 설마 설마하던 성남은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세 골이나 허용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후반 31분 거짓말 같은 골이 또 한 번 터진 것이다. 광주 주앙파울로가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에서 때린 강력한 슈팅은 그대로 성남 골문 오른쪽에 꽂혔다. 광주의 믿을 수 없는 4-3 역전승이었다. 3-0으로 앞선 경기를 여유 있게 지켜보던 성남 팬들은 이 골이 들어가자 모두 ‘얼음’이 됐다. 비록 광주는 강등 당했지만 K리그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명승부를 선사했다. 광주가 다시 K리그로 돌아와 이런 멋진 경기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3위. 2012년 3월 18일 광주월드컵경기장
광주 3-2 제주 (부제 : “내가 다시 돌아왔다”)

개막 후 두 경기에서 1승 1무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던 광주는 3라운드 홈 경기에서 제주를 만났다. 초반 분위기는 순조로웠다. “나를 동생으로만 그냥 그 정도로만 귀엽다고 하지말라”면서 이승기가 내준 공을 김동섭이 전반 시작 2분 만에 첫 골로 연결한 것이다. 하지만 제주는 전반 20분 산토스의 슈팅이 흘러 나오자 배일환이 이를 침착하게 밀어 넣으면서 동점에 성공했다. 기세가 오른 배일환은 후반 5분 송진형과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또 다시 골문을 갈랐다. 무패 중이던 광주는 안방에서 역전에 허용하며 크게 흔들렸다. 제주의 파상공세는 더욱 거세졌고 시간을 어느덧 후반 4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광주의 극적인 추격이 시작됐다. 제주 페널티 박스 안에서 광주 주앙파울로가 페널티킥을 얻은 뒤 이를 직접 차 넣어 2-2 동점을 만들었다.

모두가 주앙파울로의 극적인 골에 힘입어 무승부로 경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 순간 남 몰래 칼을 갈아오던 한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광주 슈바였다. 후반 추가 시간도 끝나갈 무렵 주앙파울로의 침투 패스를 이어받은 슈바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제주 골망을 출렁였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이 제주 골문을 가르자 광주 벤치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거짓말 같은 광주의 3-2 역전승이었다. 그리고 그가 유니폼을 들어 올리자 셔츠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왔다.” K리그 정상급 외국인 선수로 평가 받다가 부상과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방출 당했던 슈바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슈바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물론 그에게 믿을 수 없는 골을 허용하며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제주 선수들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이런 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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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이 그 옷 까봐. 혹시 장이야? 아니 세리머니야? (사진=광주FC)

2위. 2012년 3월 31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 2-3 대구 (부제 : ‘닥공?’ 우리 대구도 한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대구가 적지에서 전북을 잡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많이 않았다. 전북은 안방에서 1년 넘게 17경기 연속 무패(12승 5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이어가던 터였고 대구는 2008년 이후 전북에 2무 7패를 당하고 있었다. 실제로 경기가 시작되자 전북의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루이스가 전반 20분 에닝요의 패스를 받은 뒤 수비를 제치고 첫 골을 성공시키자 모두의 예상이 들어 맞는 듯했다. ‘닥치고 공격’하는 전북의 기세는 첫 골 이후에도 이어졌다. 전북 이동국은 후반 2분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직접 성공시키며 2-0으로 달아났다. 이 모습을 보고 전북의 손쉬운 승리를 예감하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 이들은 아마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이때부터 대구의 믿을 수 없는 대역전극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대구 모아시르 감독이 야심차게 투입한 송제헌의 발 끝에서부터 거짓말 같은 명승부는 막을 열었다.

송제헌은 후반 28분 레안드리뉴의 크로스를 달려들면서 슈팅으로 연결해 한 골을 만회하더니 10분 뒤에도 김민식이 흘린 공을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극적인 동점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적이지만 대구는 만족하지 않았다.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문 후반 종료 직전 대구가 마지막 프리킥을 얻어내자 수비수 김기희가 전북 골문 앞으로 성큼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는 측면에서 올라온 공을 그대로 몸을 날리는 헤딩슛으로 연결했고 이 공은 골키퍼 김민식이 손 쓸 틈도 없이 전북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기희의 프로 데뷔골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3-2. 적지에서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거둔 믿을 수 없는 승리였다. 누가 김기희에게 운 좋게 올림픽에서 4분 뛰고 병역 혜택 받았다고 조롱할 수 있나. 그는 이때부터 최선을 다하고 멋진 경기력을 선보여 올림픽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1위. 2012년 7월 1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 3-2 서울 (부제 : 빠울로, 빗속 혈투의 마침표)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7월 1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인천과 서울이 만났다. 객관적인 전력상 앞서 있는 서울의 어렵지 않은 승리가 예상되는 경기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경기는 팽팽하게 펼쳐졌다. 전반 32분 서울 김진규가 쉽게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중거리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내자 인천은 전반 종료 직전 한교원의 골로 따라 붙었다. 문전 혼전 중 공을 오른발로 침착하게 밀어 넣은 것이었다. 후반 들어 인천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이번에도 한교원의 발에서 골이 터졌다. 후반 17분 페널티 박스 중앙에서 공을 잡은 한교원은 수비수 현영민을 앞에 두고 두 차례나 페인팅을 하며 서울 골문 오른쪽 구석을 가르는 기가 막힌 골을 뽑아냈다. 그러자 서울은 5분 뒤 최현태의 패스를 받은 하대성이 왼발 슈팅으로 또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동점을 이뤄낸 서울의 반격은 거셌다. 후반 35분에는 고광민이 페널티킥을 얻어내면서 천금같은 역전골의 기회까지 잡았다. 하지만 인천 골키퍼 유현은 침착하게 이를 막아내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고 결국 후반 추가 시간 승부에 쐐기를 박는 인천의 결승골이 터졌다. 후반 33분 교체 투입된 인천의 카카, 아니 빠울로는 종료 직전 박준태의 크로스를 살짝 방향만 트는 헤딩골로 연결시키며 극적으로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빠울로는 골을 뽑아내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이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에게 달려가 뜨겁게 포옹했고 이를 제지하던 안전요원까지 선수들 사이에 껴 얼떨결에 세리머니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뭐 안전요원의 마음도 선수나 팬들과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 시즌 K리그가 막을 내렸다. 처음 시작된 스플릿 시스템과 강등제는 K리그의 새로운 묘미를 선사했다. 올 시즌 챔피언 자리에 오른 서울부터 아쉽게도 강등된 광주까지 정말 많이 고생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한 시즌을 보낸 16개 구단 모두에 진심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K리그가 없는 이 겨울은 무척이나 길겠지만 또 다른 전환점을 맞는 내년 시즌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