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열풍이다. 덴마크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 등 이름도 생소한 다이어트 비법이 세상에 널렸다. 남자 아이돌 그룹은 너나 할 것 없이 꿀복근을 자랑한다. 건강한 몸도 좋지만 무리한 식이요법으로 몸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겉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이런 무리한 다이어트는 속으로 골병이 든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건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것이다.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축구가 얼마나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운동인지 직접 증명하기 위해 내가 나섰다. ‘김현회의 무한도전’ 이번에는 축구로 다이어트하고 몸짱되기다. <편집자 주>

<어제 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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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훈련? 일단 원시적인 훈련부터 이겨내야 과학 훈련도 있는 법이다. 발이 너무 빨라서 안 보인다.

지옥의 개인 훈련, 고무줄 달리기

보름 간 초등학생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부잣집 아들 진민호가 서초구 반포동 자신의 아파트 단지에서 하는 축구 레슨이었기 때문에 매일 왕복 50여km를 내달렸다. 그래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보통 새벽에 칼럼을 쓰고 해가 뜨면 자는 습관이 있었지만 그래도 몇 시간 자지 않고 축구를 하러 갔다. 인간의 몸이 참 신기한 게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어 죽을 거 같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함께 운동을 하는 초등학생들과도 친해졌다. 내가 축구 칼럼니스트라는 걸 안 뒤로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저씨, 박지성 봤어요?”, “메시는 정말 키가 작아요?” “내가 어제 인터넷으로 아저씨 이름 검색해봤는데 박주영한테 왜 그랬어요?”

그렇게 조금씩 체력이 좋아졌다. 살이 빠지거나 근육이 생기는 등 몸에 특별한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운동을 며칠 했더니 몸이 좋아지는 ‘기분만’ 들었다. 어느 정도 초등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체력이 좋아지니 진민호가 나에게 이상한 물건을 건넸다. 검정색 고무줄이었다. “이거 나 성남에 있을 때 매일 혼자 밤에 훈련하는 거였거든. 형도 이제 해봐.” 고무줄을 허리에 묶고 한쪽은 난간에 고정하고 제자리에서 뛰는 무식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축구선수들도 개인적으로 하는 운동이라는 말에 고무줄을 허리에 묶었다. 20초씩 5세트를 하는데 20초가 20초가 아니었다.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20초라면 아직 2분 40초를 더 기다려야 컵라면이 익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운동을 할 때의 20초는 너무나 길었다.

이때부터 매일 축구 레슨을 받기 전에 먼저 이 운동부터 했다. 처음에는 20초,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는 10초를 더 늘여 30초씩 제자리에서 달렸다. 처음에 3개밖에 하지 못하던 리프팅도 20개는 거뜬해졌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특히 훈련의 마지막인 슈팅 연습이 가장 즐거웠다. 콘을 요리조리 피해 진민호가 내주는 공을 골문으로 꽂아 넣는 훈련이었는데 해보고 싶은 슈팅은 다 해봤다. 특히 2002년 한국과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날린 안정환의 칩슛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처음에는 공이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골문 구석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안정환처럼 칩슛을 날리고 반지 키스 세리머니 흉내를 냈더니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 다 큰 사람이 여기에서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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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죽겠는데 진민호가 이야기한다. “형 이제 그만 쉬고 패스 훈련해.” 진민호는 그동안 나한테 쌓인 원한이 많은 모양이다.

공포의 성남 서키트 앞에 항복하다

기고만장했다. 이제는 훈련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가 의외로 열심히 하는 모습에 더 욕심이 났는지 진민호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형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오늘부터 공포의 성남 서키트 훈련이야.” 뭐 별 거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당하게 말했다. “나 이제 예전의 김현회가 아니야. 뭐든 시켜봐.” 진민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딱 한 세트만 해봐.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러더니 진민호는 훈련장 여기저기에 콘을 세우기 시작했다. K리그에서도 혹독하기로 유명한 김학범 감독 시절 성남의 서키트 훈련이었다.

처음에는 콘 사이를 뛰어 넘어 인사이드 패스를 하고 바로 옆으로 넘어가 콘 사이를 뛰며 발등으로 패스를 한 뒤 봉을 뛰어 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헤딩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결합된 훈련이었다. 약 10여가지의 훈련을 다 끝내야 한 세트가 끝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의 좋아진 체력을 믿고 기고만장했지만 세 번째 코스에서부터 욕이 튀어나오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한 세트를 끝낸 뒤 운동장에 널브러졌다. 그러자 진민호가 말했다. “이걸 7세트 해야 끝이야. 그런데 형은 지금 한 세트했어.” 더 믿을 수 없는 건 내가 힘들까봐 몇몇 코스는 아예 뺐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세트의 마지막은 4kg에 이르는 메디슨볼로 리프팅을 하는 것이었다.

김학범 감독 시절 성남이 안 강할래야 안 강할 수가 없었다. 동계훈련 기간 동안 이 서키트 훈련 7세트를 매일 했단다. 매일 시간을 측정해 1초라도 전날보다 당기지 못할 경우에는 훈련장에서 숙소까지 뛰어가는 게 벌칙이었다고 한다. 체력을 다하지 않고 시간을 조절해 전날보다 매일 1초씩만 앞당기는 꼼수를 쓸까봐 아예 훈련 전에 선수들의 시계를 다 압수하고 시작하는 훈련이었다. 진민호가 말했다. “예전에 이거 해서 (김)상식이형이건 누구건 다 숙소까지 뛰어갔어.” 축구선수가 몸이 좋을 수밖에 없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죽어라 뛰는데 살이 찌는 게 이상한 일이다. 성남뿐 아니라 모든 K리그 팀들이 이런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내고 있다. 우리가 보는 축구는 그냥 축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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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인력 만든 놈 누구야.”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유산소 운동도 필요하지만 근력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

소홀히 할 수 없는 근력 운동

나는 맛있는 음식 먹는 걸 너무 좋아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번 ‘김현회의 무한도전’을 시작하면서도 식단조절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진민호가 말했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먹고 싶은 것도 적당히 먹어가면서 하자. 어차피 굶어서 빼는 다이어트는 다시 먹으면 금방 요요현상이 오잖아.” 난 또 우리 진민호 선생님 말은 잘 듣는다. 라면이나 햄버거 등 인스턴트 음식은 어느 정도 자제했지만 집에서 하루 세끼는 꼬박 챙겨 먹었다. 평소 두 그릇씩 먹던 걸 한 그릇으로 줄였지만 먹으면서도 의문이 든 건 사실이다. ‘이렇게 먹으면서도 살을 뺄 수 있을까.’ 일주일에 5일 동안 운동을 한 뒤 주말이면 가끔 친구들과 소주도 한 잔 했다. 이것마저 없다면 내 인생이 의미 없기 때문이다.

근육을 타고난 이도 있다. 진민호가 부산 시절 전해준 이야기다. 당시 부산에는 어마어마한 근육을 자랑하는 배효성이 있었다. 수비수로서 더 탄탄한 몸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싶던 배효성은 K리그 최고의 근육맨 루시아노에게 “어떻게 운동을 해야 너처럼 근육맨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포르투갈어에 능했던 진민호를 통해 통역을 해달라고 했다. 진민호가 루시아노에게 이렇게 묻자 루시아노가 답했고 배효성은 루시아노의 운동 비법을 배워 더 탄탄한 근육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이 빛났다. 하지만 진민호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효성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진민호가 말했다. “형, 얘는 태어나서 웨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는데요.” 젠장, 타고난 비만이 있는가하면 타고난 근육맨도 있는 모양이다.

루시아노 이야기를 듣고 낙담할 틈이 없었다. 근력 운동의 강도도 높였다. 처음에는 바벨을 들고 윗몸일으키기를 아예 하지 못했지만 체력이 좋아지니 가벼운 바벨을 들고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근력 운동을 한 다음 날 세수도 못할 정도로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점점 이런 고통도 사라졌다. 축구선수들이 복근 운동과 가슴 운동도 하는 걸 모르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은 남모르게 이런 근력 운동을 무척이나 많이 한다. 전술 훈련이 끝나고 밤이 되면 자율적으로 클럽하우스 내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모여 근육을 키운다. 그래야 좀 더 강인한 몸으로 상대와 부딪히고 부상 위험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만 빼면 되는데 진민호는 자꾸 가슴 운동과 등 운동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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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K리그 선수들 사이에서는 턱걸이 열풍이 불고 있다. 나도 K리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유행에 민감한 사람으로서 턱걸이는 꼭 해야했다.

K리그에 턱걸이 열풍이 분 이유는?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축구에 대한 공부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고무줄을 매고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땀을 뺀 뒤 공을 가지고 서키트 훈련을 하고 패스 연습과 드리블 연습을 끝내면 마지막으로 프리킥 연습이 이어졌다. 하나 하나가 다 축구 칼럼을 쓰는 나에게는 몸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형 보통 이렇게 수비가 벽을 서면 저기 4번과 5번 수비수 위에 머리를 겨냥해서 프리킥을 차야 돼. 골키퍼가 비워놓은 쪽으로 차는 게 정석이지만 역으로 갈수도 있어. 일단 정확한 프리킥이 필요하고 골키퍼와의 심리 싸움도 필요해.” 가장 재미있는 건 프리킥 연습이었다. 몇 번 프리킥을 차고 다시 공을 주워오고 또 프리킥을 차는 과정만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땀이 났다.

열심히 운동을 하다가 포항으로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노병준 인터뷰를 겸해 포항 경기를 보고 하루 자고 오는 일정이었다. “형,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포항 수비수 김원일이 문자를 보냈다.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형이라는 걸 잊고 김원일에게 밥을 얻어 먹으러 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선수들의 웨이트트레이닝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김원일이 이렇게 말했다. “요새 우리는 턱걸이 열풍이 불었어요. 중계 보니 기성용 몸이 장난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기성용하고 친한 (신)광훈이한테 이야기했죠. ‘기성용 어떻게 운동했는지 통화해서 좀 알아봐 달라’고요. 훈련 끝나면 혼자 남아서 턱걸이를 엄청 한 대요. 우리도 요새 운동 끝나면 다 턱걸이 해요.”

기성용 말대로 답답하면 내가 턱걸이하면 된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매일 운동이 끝나면 진민호와 함께 턱걸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개도 제대로 못해 기구를 이용해야 했지만 점점 실력이 늘었다. 어느새 축구를 통해 유산소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몸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고 거울을 보니 근육도 살짝 살짝 생기는 것 같았다. 일부러 나태해지거나 효과가 없어 중간에 포기할까봐 운동하는 중간에 체중계에 올라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4달이라는 시간 동안 땀의 진실을 믿고 꾸준히 하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굶어서 빼거나, 지긋지긋하게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나는 축구를 믿었다. 나에게는 최고의 유산소 운동인 축구가 있었고 숀리 이상의 트레이너인 진민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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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에 드리블 훈련을 하는 모습. 공을 가지고 놀다보면 땀도 나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일과 운동, 나의 힘겹고 긴 하루

하지만 이게 마냥 쉬운 건 아니다. 진민호가 나에게 정말 친절하면서도 열심히 대해줬지만 진민호는 전문적인 트레이너는 아니다. 그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짜 함께 운동을 해본 적은 없었다. 진민호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이 본업이 아닌 나로서는 이렇게 매일 고된 운동을 하는 게 너무나도 힘겨웠다. 축구를 한 시간 넘게 하고 근력 운동도 한 시간 넘게 한 뒤 강남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운동을 열심히 한 뒤 오는 피로감이나 근육통은 그나마 낫다. 몸도 피곤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컸다. 매일 칼럼을 써야하는데 운동과 일을 병행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칼럼은 그냥 쓰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거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냥 쓸 시간 돼서 책상에 앉아 뚝딱 쓸 수가 없다. 아침부터 칼럼 주제를 생각하고 하루 종일 고민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해야 그날 새벽에 칼럼 한 편이 나온다. 한 기자는 “칼럼 한 편 쓰면 정말 진이 빠진다”면서 “너처럼 하루에 칼럼 하나씩 쓰는 건 기계 같다”고 했다. 하지만 운동에 집중하면서 일까지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운동도 좋고 다이어트도 좋지만 나는 칼럼 쓰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이다. 그게 가장 나에게는 힘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써도, 저렇게 써도 똑같은 원고료인데 4개월 동안 고생해서 칼럼 하나 내는 건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였다. 축구를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날 무렵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일 마지막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