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열풍이다. 덴마크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 등 이름도 생소한 다이어트 비법이 세상에 널렸다. 남자 아이돌 그룹은 너나 할 것 없이 꿀복근을 자랑한다. 건강한 몸도 좋지만 무리한 식이요법으로 몸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겉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이런 무리한 다이어트는 속으로 골병이 든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건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것이다.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축구가 얼마나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운동인지 직접 증명하기 위해 내가 나섰다. ‘김현회의 무한도전’ 이번에는 축구로 다이어트하고 몸짱되기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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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선수들이 몸 자랑 하는 모습. 이 사진을 보고 근육 자랑하는 꼴불견이라고 하는 이들은 100% 배 나온 이들이다. (사진=카파코리아)

배 나온 축구 칼럼니스트의 단추 발사 사건

나는 이제 뱃살이 축 늘어진 아저씨가 돼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누군가를 만날 때면 배에 힘을 잔뜩 주는 걸로 어느 정도 뱃살을 감출 수 있었지만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섰다. 더 이상 맞는 옷도 없었다. K리그 경기장에서 지나가다 나를 본 이들은 “김현회 별로 살 많이 안 졌던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 다 숨 엄청 들이마시고 참으면서 걸어 다닌 거다. 한 번은 나이트클럽에서 부킹 온 여성 분 때문에 잔뜩 숨을 참고 있다가 그녀가 나간 뒤 숨을 내쉬다가 셔츠의 단추가 발사된 사건도 있었다. 이른바 ‘클럽아이 단추 발사 사건’이었다. 운동이라고는 요새 들어 해본 기억이 없다. 왜? 먹고 살기 힘드니까.

지난 5월 역시나처럼 방에서 뒹굴고 있다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뒤 담배를 사러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것이었다. 우리 집은 오피스텔 6층인데 잠시 고민했다. ‘담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가 담배를 사수할 것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정했다. ‘죽어도 담배는 피워야겠어. 1층까지 걸어가는 게 뭐 얼마나 힘들다고.’ 하지만 나에게 6층의 계단은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도전이었다. 편의점에 들른 뒤 다시 계단을 이용해 집까지 올라오는데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아 엘리베이터는 왜 고장이 나고 난리야.’

집에 돌아와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이 선수는 체력적인 문제가 있고 저 선수는 골 결정력에 문제가 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칼럼 한 줄이었지만 이날따라 내가 무척이나 한심했다. 나는 걸어서 6층 계단 하나 올라가는 것도 헉헉 거리면서 내가 무슨 남의 체력을 논하고 있나. 이건 그냥 손가락만 산 거다. 그라운드에서 90분 풀타임은커녕 5분도 못 뛰는 체력으로 선수들의 체력 문제를 평가하고 있는 건 어딘지 모르게 치졸한 일 같았다. 내가 축구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사랑받으려면 적어도 기본적으로 이 몸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글로만 평가받는다고 하더라도 배 나온 사람이 무슨 선수들의 체력을 논하고 실력을 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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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숨 막히는 상반신 누드. 그동안 숨을 참으며 꼭꼭 숨겨왔던 뱃살 대방출 사진이다.

일생일대의 도전, 축구로 다이어트하기

내 스스로에게 무척 부끄러웠다. 하루 정도 고민한 끝에 친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잠깐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형 무슨 일인데? 나이트 가자고?” “아니야. 이번에는 진지한 일이야.” 내 말이 끝나자 후배가 말했다. “형한테 나이트 가는 거 말고 진지한 게 또 있어?” 후배에게 나의 모습은 항상 이런 거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직접 이 후배를 만났다.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K리그 부산아이파크와 성남일화 소속으로 뛰었던 진민호였다. 내셔널리그 고양국민은행과 목포시청에서도 축구를 했던 그는 지금은 현역 생활을 그만두고 유소년 선수들에게 개별적으로 축구 레슨을 하고 있다.

“너 아이들 가르치잖아. 나도 같이 운동을 좀 할 수 있을까?” 만나자마자 내가 이야기를 꺼냈더니 진민호가 웃었다. “에이, 내가 가르치는 애들은 초등학생들이야. 형하고는 수준이 다르지.”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야, 내 체력 수준은 지금 초등학생도 안 돼. 그리고 이 뱃살 봐라. 나 무조건 운동해야 돼. 이 상태로 무슨 내가 축구선수들 실력을 논하냐. 나 좀 도와줘.” 내 말을 듣고 진민호가 말을 이었다. “그럼 동네에서 헬스장 다니면서 러닝머신하고 사이클 타도 되잖아.” 하지만 나는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축구가 얼마나 운동 효과가 있는지를 직접 몸으로 입증하고 싶었다. “나 축구로 살 빼서 이걸로 칼럼 쓰려고. 축구선수가 다 몸짱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직접 입증하고 싶어.”

진민호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알았어. 일단 내가 가르치는 애들하고 먼저 같이 운동해 보자.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줄게. 대신에 무엇보다도 형 의지가 제일 중요해. 알지?” 진민호호가 의지력 약한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전에도 몇 번 헬스장에 가서 석 달 운동 끊은 뒤 사흘 정도 나가기를 세 번은 반복한 나는 의지력과 체력, 모두 빵점이었다. 헬스장 라커에 맡겨 놓은 운동화와 운동복은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찾아가지 않을 경우 헌옷 수거함으로 보내진다던데 난 참 헌옷 수거함에 많은 운동화와 운동복을 기증한 훌륭한 인물이다. 그런 나에게 일생일대의 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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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장애물을 세워놓고 볼 트래핑 후 콘을 제치는 훈련. 진민호(왼쪽)의 매서운 눈초리 산 만한 덩치의 내 모습(오른쪽)이 참 안 어울린다.

‘나만의 숀리’ 진민호를 만나다

여기에서 잠시 진민호에 대해 소개를 하려고 한다. 나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개인 축구 코치 겸 퍼스널 트레이너로 4개월 동안 도와줬기 때문에 칼럼 중간 중간에 진민호에 대한 간접 광고가 들어가도 이해하길 바란다. 브라질에서 축구를 배운 진민호는 K리그 부산과 성남 소속으로 주로 2군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 시절 K리그 다른 팀 1군보다도 강한 성남 2군의 주전 멤버였다. 체력 훈련으로는 당시 성남을 따라갈 팀이 없었다. 그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한 덕분에 운동을 그만둔 뒤에도 체력 하나 만큼은 대단하다. 아침 6시까지 술을 마셔도 아침 7시 조기축구에 나가 해트트릭을 하는 친구다.

진민호에게 말했다. “나 체력 좀 괜찮아지면 네가 성남에서 했던 훈련 위주로 알려줘.” 진민호도 나의 적극적인 자세를 보고는 축구를 통해 살을 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중점을 둔 부분은 그냥 단순히 밥을 굶고 헬스장에서 기계 위를 뛰면서 살을 빼는 게 아니었다. 몇 번 해보고 너무 지긋지긋해서 포기한 헬스장의 유산소 운동 대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공을 가지고 놀면서도 살을 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내가 이걸 직접 입증하면 앞으로 축구를 즐기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배나온 선수를 찾아볼 수 없는 축구가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지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돼.” 진민호가 말했다. “왜? 그냥 공 차면서 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자 진민호가 말했다. “축구선수들도 공만 차는 게 아니라 근력 운동을 다 하잖아. 축구선수가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건 몸싸움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부상 방지 효과도 있어. 형처럼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해야 돼. 그래야 기초대사량이 올라가서 요요 현상도 막을 수 있고 다이어트에도 더 큰 효과가 있어. 그냥 살만 뺄래? 아니면 근육도 만들래?” 내 이 볼록한 배 안에 복근이 있다는 걸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지금 진민호는 나에게 근육을 언급했다. “오, 나 할래. 나 근육 만들래.” 하지만 이건 다가올 지옥 훈련의 서막을 알리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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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몸이 175cm에 74.75kg 정도면 딱 적당한 거 아닌가. 아니라면 미안하다.

“아저씨 배에 코끼리 있어요.”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내 몸무게는 74.75kg이었다. 칼럼상으로 조금 키를 높여 175cm라고 해도 독자들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도 이 키에 키 체중이 정상은 아니었다. 운동 첫 날 초등학생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운동장으로 갔다. 의욕은 앞섰지만 초등학생들 사이에 다 큰 어른이 함께 껴 있는 건 무척 창피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진민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아저씨는 누구에요?” “응. 오늘부터 같이 운동할 형이야.” 아이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초등학생들 틈 사이에서 배 나온 30대 아저씨가 함께 운동을 한다는 건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더 창피한 일은 운동이 시작된 후부터였다.

가볍게 몸을 풀고 진민호가 사다리를 바닥에 깔았다. “자, 인사이드 패스부터 하자.” 나에게는 생소한 일이었지만 아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네.” 그리고는 스텝을 밟고 한 명씩 인사이드 패스를 했다. 나도 K리그 훈련장 취재를 갔다가 몇 번 본 적이 있어 따라하자 진민호가 말했다. “형, 여기에서 형이 인사이드 패스를 제일 못해. 발목에 더 힘을 줘.” 아이들이 웃었다. 약 10분 정도 이 훈련을 반복하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어차피 내가 다이어트 도전 칼럼 쓴다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데 여기에서 포기해도 상관없잖아. 포기할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땀 범벅으로 구석에 앉아 있는 동안 초등학생 아이들은 이제 가벼운 몸 풀기가 끝났다면서 웃고 있었다. 아,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가벼운 몸 풀기가 끝나고 드리블 연습이 시작됐다. 콘을 지그재그로 놓고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 발바닥 등으로 통과하는 훈련이었다. 이 훈련이 끝난 뒤에는 삼각패스 연습을 한 뒤 리프팅 훈련과 슈팅 연습을 했다. 진민호만 쓰는 경기장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저기 옆에서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날에는 훈련이 다 끝나고 즐겁게 풋살 경기를 하기도 했다. 내가 중간에 장난기가 발동해 가장 성격 좋아 보이는 초등학생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복근 쩔지?” 티셔츠를 반쯤 들어 내 배를 보여주니 그 꼬마가 울상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으아, 코끼리 같아요.” 초등학생에게 굴욕을 당한 뒤 그저 묵묵히 진민호가 시키는 훈련만 따라했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너 내가 4개월 후에 이 코끼리 없애고 복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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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윗몸일으키기를 이렇게 못하는 줄 처음 알았다. 허리에 있는 육중한 타이어가 나의 윗몸일으키기를 방해한다.

충격적인 윗몸일으키기 10개

축구 훈련이 끝나고는 둘이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갔다. 예전에 몇 번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갔다가 며칠 만에 그만둔 나로서는 이곳이 별로 반가운 곳은 아니다. 그저 나에게는 지루한 러닝머신과 쇳덩어리들만 가득한 그런 곳이었다. 꿀복근의 소유자 진민호가 먼저 복근 운동 시범을 보였다. 복근대에 45도로 매달려 무거운 바벨을 목 뒤에 매고 표정 하나 바뀌지 않으면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 진민호를 따라하려고 하자 진민호가 말했다. “형, 지금 그 바벨 들고 하면 절대 못 일어나. 그냥 바벨 없이 양 손을 뒤로 하고 해봐.” 젠장, 옆에 예쁜 아가씨도 있는데 이런 창피가 또 있을까. 이건 분명히 저 아가씨를 겨냥한 진민호의 작업성 발언이 분명했다. 자기만 살겠다는 거다.

하지만 진민호의 말은 진짜였다. 윗몸일으키기는커녕 쇼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일어날 때도 마음 먹은 뒤 5분은 걸리는 나로서는 이 윗몸일으키기 하나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배가 하도 많이 나와 진민호처럼 완벽히 일어날 수도 없었다. 반쯤 올라오면 뱃살이 접혀서 더 올라올 수가 없었다. 겨우 낑낑 거리면서 10개를 했다. 젠장, 진민호는 옆의 예쁜 아가씨가 들으라는 건지 더 크게 말한다. “이게 뭐야. 어떻게 바벨 안 들고 윗몸일으키기 15개를 못 채워. 아 이 형 참 체력 저질이네.” “야, 조용히 말해. 나도 지금 창피하거든.” 생전 운동을 하지도 않던 나에게 한 시간이 넘는 축구를 통한 유산소 운동과 곧바로 뒤이은 근력 운동은 지옥이었다.

진민호는 선수 시절 웨이트트레이닝 비법을 그대로 나에게 적용했다. 기본적으로 금방 근육이 회복되는 복근 운동은 매일하고 어깨와 등, 가슴으로 나뉘어 사흘 간격으로 근력 운동 프로그램을 짰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게 러닝머신과 사이클이었기 때문에 이 운동을 빼고 유산소 운동은 축구로 대신했다. 하루 운동을 하고 집에 오는 길은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했다.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었다.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다. “이 돼지야. 너 축구로 살 빼서 칼럼 안 쓸거니?” 이제 4개월의 대장정 중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도 어마어마한 날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배 안에도 복근이 있다는 걸 아직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일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