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두 가지 나의 예언(?)이 적중했다. 대전에서 방출당한 최은성이 전북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칼럼을 쓴 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는 나의 예언이 적중한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두 번째 예언은 그대로 맞아 떨어져 너무나 슬프다. 지난 4월 상무의 자동 강등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시즌 개막 전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아 큰 혼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결국은 이게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상무는 K리그 이사회에서 올 시즌 종료 후 성적과 상관없이 상무의 강등을 확정짓자 리그 출전 보이콧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왜 꼭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지난 칼럼 다시보기

칼럼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내 의견이 있어야 한다. 이걸 교묘히 피해 “이쪽도 잘못했고 저쪽도 잘못했으니 우리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잘해 봅시다”라고 하는 건 욕은 덜 먹을 수 있어도 딱 떨어지는 칼럼은 아니다. 그저 내 의견에 대한 파급을 최소화하기 위한 말장난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프로축구연맹과 상무 모두 어느 정도의 잘못이 있다. 한 쪽은 일방적인 피해자이고 다른 한 쪽은 일방적인 가해자가 아니다. 양 측 모두의 의견에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반대쪽 의견도 틀린 게 아니다. 이번 논란이야말로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이쪽 말을 들어보면 이쪽 말이 맞고 저쪽 말을 들어보면 저쪽 말도 맞다. 머리 아프다.

상무, 지금껏 프로화 의지 보이기는 했나

경중을 따지자면 상무의 잘못이 더 큰 것 같다. 이미 아시아축구연맹(AFC)의 방침에 따라 법인화 되지 않은 팀은 리그에서 퇴출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상무 측에서는 여러 차례 연맹에 문의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했고 연맹은 이런 상무의 주장에 전적으로 반박했다. AFC 클럽 라이선스 충족 조건은 이제 웬만한 K리그 팬이라면 정확한 사안까지는 아니어도 대충 알고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오래 전부터 부각됐다. 그런데 상무가 지금껏 이 사실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더군다나 AFC는 두 차례나 상주에 실사까지 나갔었다.

또한 상주상무 이재철 단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법인화 하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 시간을 조금만 주면 이 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면 충분한 법인화를 지금껏 미뤄왔다는 점 역시 비난을 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지금껏 질질 끌고 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자신들의 부당한 피해를 알리려는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활동 무대를 볼모로 보이콧을 선언한다는 건 더 이상의 해결 의지도 없다는 뜻이 될 수 있다. 할 이야기가 있다면 남은 시즌을 보내면서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

사실 상무가 1부리그에 남기에는 AFC 기준으로 걸림돌이 많았다. 법인화를 마친다고 하더라도 선수 이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그리 마땅치 않았다. 군인 신분인 선수들을 원소속 구단에서 독립 법인인 상무축구단으로 임대 보내는 형식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우리 군 실정상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일반 사병 신분으로 임대 계약을 맺는다는 건 ‘투잡’이나 마찬가지다. 임대 계약을 맺어 근로 수당을 받건 무료로 일하건 우리나라 일반 사병 중 군인이라는 신분 외에 다른 직업을 갖는 경우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이 바뀌거나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걸 상무가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시기상, 절차상의 실수를 범한 연맹

연맹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나는 지난 4월 칼럼에서 연맹이 상무의 강등 문제를 시즌 전에 이미 결정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결국 시즌 도중 상무의 자동 강등을 결정하는 바람에 사상초유의 시즌 도중 K리그 참가팀 보이콧이라는 엄청난 파문을 겪고 말았다. 시즌이 개막하기 전 이 문제를 제대로 못 박았더라면 그때 상무가 리그 참가 거부를 선언했어도 K리그에 이토록 큰 타격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무의 의지를 놓고 봤을 때는 연맹의 결정이 불가피했지만 시기상으로는 연맹도 할 말이 없다. 시즌 전에 미리 이 문제를 결정지었어야 하는데 우리는 올 시즌을 앞두고 승강제의 꿈에만 부풀어 있었다.

연맹의 시기상 잘못을 떠나 밖으로 비춰지는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다. 지금껏 K리그 팀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상무를 품고 가려던 K리그가 이제 어느 정도 팀이 충족됐고 2부리그 구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상무를 팽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아마추어 팀으로 남아도 아쉬울 것 없는 상무를 K리그로 이끈 게 연맹이었는데 이제 와서 더 잘난 여자 만나겠다고 정든 여자친구에게 하루 아침에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건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그 여자친구가 아무리 단점이 있다고 해도 마지막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 어차피 AFC의 요구 조건에 의해 지금 상황으로는 K리그에 상무가 남을 수 없었는데 이별 방식이 잘못됐다.

연맹에서는 2부리그 구성을 위해 경찰청과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K리그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하던 상무를 하루 아침에 일방적인 통보로 내보낸 연맹이라면 얼마든 경찰청에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 지금이야 한 팀이라도 2부리그에 더 참가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2부리그 팀이 만족할 수준이 된다면 가장 먼저 내쳐지는 팀은 프로 자격이 없는 경찰청이 될 것이다. 연맹은 경찰청이나 상무나 2부리그에서 법인화를 포함한 AFC 요구 조건을 갖추고 프로 구단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면 승격 자격을 동등하게 부여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상무가 못한 걸 더 작은 규모의 경찰청이 해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경찰청도 언제든 상무와 같은 이유로 2부리그에서 퇴출 당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상무가 2부리그로 내려가는 건 개인적으로 찬성이다. 하지만 상무를 강등시키는 방법이 아쉬웠다. 냉정히 말하자면 상무가 프로화를 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고 상황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가장 좋은 건 시즌 전에 자동 강등을 여부를 확정짓는 것이었고 그게 안 된다면 현 시점에서 무조건적인 자동 강등이 아니라 “시즌 마지막 라운드 전까지 AFC 클럽 라이선스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성적과 상관없이 강등하겠다”는 게 더 옳은 방법인 것 같다. FM을 하다보면 ‘최후통첩’이라는 게 있는데 이번 상무 자동 강등은 너무 뜬금포였다. 물론 연맹이 상무에 개별적으로 몇 차례 통보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공식적으로 잔류 조건을 내걸었더라면 나중에라도 상무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강등된다 하더라도 그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진짜 피해자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로 피해를 입는 건 선수들과 팬들, 상주시 그리고 유소년들이다. 상무 선수들은 경찰청보다 더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2년 동안 돈을 못 벌어도 군 문제를 해결하고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상무를 택했다. 하지만 이제 상무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라운드에서도 그라운드에 서 있어야 할 선수들은 그저 생활관에서 이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듣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상무가 아마추어로 전환한다면 가끔 열리는 실업 축구 토너먼트 대회가 아니면 나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 얼마 전 입대한 최철순과 이상협은 2년 동안 몇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게 된다. 가장 큰 피해는 선수들이 입고 있다. 그동안 상무가 K리그에 있어 축구가 그나마 병역비리에서 자유로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언제든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상주시 역시 마찬가지다. 상주시는 지난 2010년 12월 상무와 연고지 협약을 맺고 K리그에 입성하면서 10억 원의 가입비를 상·하반기에 나눠 냈다. 또한 낙후된 상주종합운동장 시설 보수를 위해 무려 45억 원 이상을 썼다, 조명탑을 세웠고 잔디를 교체했다. 선수들에게는 한 경기당 승리수당으로 1백만 원을 내걸었다. 작은 도시 상주는 상무가 입성한 뒤부터 활기를 찾았다. 지역 기업 스폰서들로부터 1년간 20억 원의 광고 수입을 올리는 등 상무는 상주시에 활력을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상주종합운동장은 주인을 잃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많지는 않지만 상무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는 팬들도 이제 주말마다 갈 곳이 없어졌다.

또한 상주상무 유소년 클럽의 타격은 엄청나다. K리그 방침에 따라 상주에 정착한 상무는 유소년 클럽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용운고등학교와 함창중학교 축구부를 창단해 인재 육성에 나섰고 자체적으로 U-12 클럽을 만들어 120여 명이 축구를 배우는 등 키우는 등 무려 170여 명의 상주시 유소년들이 상주상무라는 이름 하에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상무가 K리그에서 퇴출되고 유소년 육성 클럽 보유 의무가 사라진다면 이 어린 선수들은 졸지에 ‘미운 오리’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운영의 책임을 지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 연맹의 일방적인 자동 강등 통보와 상무의 독단적인 리그 보이콧은 이 두 곳 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디 이 문제가 대화로 좋게 해결되길 바란다. 이미 31라운드 경기에 불참해 대구가 2-0으로 몰수승을 거둔 상황에서 상무가 보이콧을 철회하고 다시 리그에 나서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만큼 연맹과 상무 모두 지난 주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한 경기 보이콧은 어느 정도 논란을 감수하고도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상무가 보이콧을 철회하지 않고 서너 경기를 건너뛴다면 그때부터는 아예 상무의 남은 시즌 K리그 참가도 물건너간다. 지금이라도 연맹과 상무의 화합이 필요하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양 측뿐 아니라 피해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적극적이고 성의를 다해 상무를 지원한 상주시와 도약을 위해 힘든 결정을 내리고 군대에 입대한 선수들, 그리고 팬들과 유소년 선수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