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2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 한국과 레바논의 경기가 펼쳐진다. 이미 1차전에서 카타르를 4-1로 시원하게 격파한 한국은 안방에서 열리는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브라질행에 한 발 더 바짝 다가가게 된다. 우리의 염원이 담긴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더 가까기 다가가는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다. 이런 중요한 날 한 가지 과거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레바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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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스위스월드컵에 나선 한국의 모습. 이후 한국은 32년 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지 못했다.

서랍 속에서 잠 잔 참가신청서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처음으로 나선 한국은 참패를 당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하지만 세계 무대 경험은 한국이 아시아를 호령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첫 월드컵에 나가고 2년 뒤 열린 제1회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한국은 정점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다. 연이어 월드컵에 나간다면 한 차원 더 성장해 세계 무대와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제1회 아시안컵 우승 뒤 국내의 축구 열기도 점점 뜨겁게 타올랐다. 그렇게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다음 월드컵인 1958년 스웨덴월드컵을 향해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1956년 말 대한축구협회에 한 장의 서류가 날아들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1958년 스웨덴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출전신청서를 보내온 것이었다. 당시 박정휘 협회 부회장은 이 출전신청서를 한 번 대충 읽어본 뒤 사무국장에게 넘겼다. “날짜에 맞춰서 처리해.” 출전신청서를 받아든 사무국장은 투덜거렸다. “아니, 아직도 시간이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무슨 예선전 준비야. 가뜩이나 연말이라 업무도 밀려 있는데 참 성가시게 하네.” 사무국장은 이 서류를 자신의 책상 서랍에 쳐 박아 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무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참가신청서가 협회 직원 책상 서랍에서 7개월 째 잠들어 있던 1957년 6월 당시 협회 김윤기 회장이 부회장을 불렀다. “여기 신문을 보니 지금 한창 월드컵 예선 중인데 왜 우리는 예선전에 참가하지 않는 거지?” 중국과 인도네시아와 함께 한 조에 속한 홍콩이 기권했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김윤기 회장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은 것이었다. 박정휘 부회장은 아차 싶었다. 7개월 전 사무국장에게 아무 생각 없이 건넨 출전신청서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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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는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이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경기도 안 하고 월드컵 갈 뻔 한 이스라엘

박정휘 부회장은 부랴부랴 사무국장을 불렀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월드컵 예선이 열리고 있잖아.” 사무국장도 깜짝 놀랐다. 무심코 어딘가에 쳐 박아 놓은 참가신청서가 떠올랐다. “아, 깜빡했어요. 죄송합니다.” 한참 사무실을 뒤진 사무국장은 결국 자신의 책상 서랍에 잠들어 있는 참가신청서를 찾아내 급하게 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뒤늦게 서류를 접수한 FIFA는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지금 한창 월드컵 예선이 진행 중입니다. 한국의 참가 신청을 불허합니다.” 결국 한국은 이렇게 아예 그라운드에 서 보지도 못하고 월드컵 2회 연속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예선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한 데 묶어 한 장의 티켓을 놓고 싸우는 방식이었다. 1그룹에서 홍콩이 기권하면서 중국과 인도네시아가 두 차례 맞붙어 1승 1패를 기록한 뒤 3차전 재경기에서도 0-0 무승부를 기록, 결국 추첨 끝에 인도네시아가 승리를 챙겼다. 2그룹에서는 터키의 기권으로 이스라엘이 단 한 경기를 치르지도 않고 최종예선에 올랐고 3그룹 역시 이집트가 키프러스의 기권으로 최종예선에 올랐다. 4그룹에서는 수단이 시리아에 1승 1무를 거두고 최종예선에 안착했다.

하지만 최종예선에 오른 이스라엘과 인도네시아, 이집트 수단 네 팀 중 세 팀이 기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나 아랍국가였던 이집트와 수단은 이스라엘과 경기를 치를 수 없다면서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스라엘은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고 1차예선과 최종예선을 손쉽게 통과하는 사상 초유의 팀이 됐다. 하지만 FIFA는 한 경기도 소화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는 걸 막았다. 장시간 회의를 통해 이런 안을 내놓았다. “이스라엘은 유럽 예선에서 체코에 패해 본선행을 놓친 웨일즈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합니다.” 예선 도중 방식이 변경되는 웃지 못할 헤프닝이었다.

이후 32년 간 초대받지 못한 축제

“이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도중에 예선 방식을 바꿀 수가 있죠?” 당연히 이스라엘이 반발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이스라엘은 웨일즈와 홈 앤드 어웨이로 두 경기를 치러야 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웨일즈에 1,2차전 모두 0-2로 패하면서 본선 진출 꿈을 접어야 했다. 웨일즈의 월드컵 참가로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 영국의 4개 축구협회 모두가 본선에 참가하는 흥미로운 일이 펼쳐지기도 했다. 만약 한국이 아시아·아프리카 예선에 참가해 이스라엘과 단 한 경기라도 치렀다면 역사는 뒤바뀌었을 것이다. 한국과 이스라엘, 둘 중의 한 나라는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한국이 이스라엘을 제압하고 월드컵 본선 무대에 2회 연속으로 진출했다면 지금쯤 한국 축구의 위상이 더 높아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협회의 실수로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지 못했던 일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월드컵보다 올림픽이 더 대우받는 상황에서 월드컵에 한 번 나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별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실수가 일어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월드컵이 얼마나 큰 대회인줄 모르고 있었다. 54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웃어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1954년 스위스월드컵 참가 이후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축구를 바라본다면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 나서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쉽다.

이후 한국은 1986년까지 무려 32년 동안 월드컵 무대에 서지 못했다. 1962년 칠레월드컵 예선에서는 동유럽의 강호 유고슬라비아와 예선을 치러 무너졌고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예선 때는 당시 29승 1패라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던 북한과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아예 대회에 불참, 벌금 5천 달러를 물어야 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과 1974년 서독월드컵 예선에서는 호주에 밀렸고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예선 때와 1982년 스페인월드컵 예선 때는 각각 이란과 쿠웨이트라는 중동의 강호에 패하면서 본선에 서지 못했다. 실수로 1958년 스웨덴월드컵 참가신청서를 접수하지 못한 한국은 이후 오랜 시간 국제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다.

레바논전 승리를 바란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 우리는 월드컵에 반드시 나가야 하는 나라다. 54년 전에는 월드컵 참가신청서를 아무렇게나 서랍 속에 쳐 박아 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국민은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는 걸 간절히 바라고 있고 협회에서는 예선을 앞두고 스페인이라는 좋은 스파링 파트너를 선정해 힘을 실어줬다. 54년 전에는 어이없는 실수로 월드컵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렇게 지금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생각하는 오늘 경기가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던 시절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오늘 레바논을 꺾은 뒤 브라질월드컵 본선 무대에 한 발 더 바짝 다가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