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6년 겨울 고양 국민은행의 승격거부 당시 국민은행 본사에서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비장한 각오로 시위 피켓을 목에 걸자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귀찮다는 듯 이런 말을 했다. “여기 국민은행 본사 아니거든요.” 알고 보니 여의도에는 국민은행이 두 개 있었고 내가 찾아간 곳은 본사가 아니었다. 굉장히 민망한 표정으로 다시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승강제 때문에 내가 했던 고민은 6년이 지난 이제 막 해결될 참이었다. 프로축구연맹에서 승강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올 겨울에도 누군가 승강제 때문에 거리로 나가 1인 시위를 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 승강제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도민구단이 현재의 승강제 시스템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맹이 스플릿 시스템을 통해 네 개의 강등 팀을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시·도민구단은 올해 두 개, 내년에 두 개 팀을 강등시키는 승강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잘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승강제는 의견 충돌로 또 다시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올 시즌 막판 강등팀 구경할 재미에 벌써부터 설레던 나는 벌써 김이 쫙 빠진다.

‘2+2’ 방식의 문제점

시·도민구단의 주장대로 ‘2+2’ 방식을 도입할 경우 문제가 많다. 올 시즌에 강등이 확정된 두 팀은 2년 동안 2부리그에 있어야 한다. 강등된 것도 서러운데 2년을 승격 없이 2부리그에 있어야 하니 이 얼마나 잔인한가. 또한 K리그에서 두 팀만 합류해 2부리그를 구성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2부리그는 아무리 적어도 8팀 정도는 모여야 하는데 K리그에서 당장 네 팀이 내려가지 않는다면 독자적인 2부리그를 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2+2’ 방식을 도입해 올 시즌 두 팀만 강등될 경우 승강제는 사실상 이번에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순위와 상관없이 강등될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 상무를 뺀다면 올 시즌 강등 팀은 딱 한 팀 뿐이다.

나는 현재 시·도민구단의 주장이 집단 이기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기업 구단 입맛에 맞춘 승강제에 반대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승강제 시스템이 기업 구단을 위한 제도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건 시·도민구단의 전력이 떨어져 강등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일 뿐이지 기업 구단이 기업이 운영하는 팀이라는 이유로 시스템 자체에서 혜택을 받는 건 없다. 시·도민구단의 주장은 바꿔 말해 “우리 같은 약팀이 강등되어야 할 승강제에 반대한다”는 것 아닌가. 승강제가 원래 그런 거다. 약팀이 내려가는 건 당연하다. 이걸 왜 기업 구단 위주의 승강제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시·도민구단의 주장은 사실상 승강제 도입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강등 팀을 줄이고 강등 시기를 늦추려는 핑계일 뿐이다. 2006년부터 승강제를 준비해왔고 지난해에는 승강제 공청회를 열었는데 그때까지는 아무 말도 없다가 이제 와서 ‘2+2’ 방식을 슬쩍 내미는 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일이다. 현재 연맹이 추진하는 승강제 방식에 시스템 결함을 느꼈다면 처음부터 반대하는 게 정상 아닌가. 뒷짐 지고 있다가 승강제가 현실로 다가오니 이제 와서 왜 이러나. 이건 마치 친구들하고 오늘 술 내기 사다리타기 하자고 의견을 모아 종이에 사다리 다 그려놨는데 “그러지 말고 제비뽑기로 하자”는 내 친구 김동혁의 행동과 다를 게 없다.

스플릿 시스템에 상반되는 주장

조금 더 강하게 말해볼까. 시·도민구단 중 제대로 된 클럽하우스를 갖춘 팀은 강원뿐이다. 나머지 팀들은 조립식 건물에서 생활하거나 아파트 등에서 지낸다. 대전은 창고라는 표현이 더 걸맞을 숙소에 산다. 이들은 훈련을 위해 여러 훈련장을 돌아다닌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시·도민구단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만 이렇게 선수들에게 생활 및 훈련 여건도 제대로 만들어 주지 못하는 팀들이 당연히 강등 가능성이 더 높아야 한다. 제대로 된 환경도 갖추어주지 못한 상황에서 K리그에 남으려는 건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다. 둘 중에 하나 골라라. 자생적으로 수익 구조를 연구해 클럽하우스도 짓고 제대로 된 구단을 만들거나 아니면 2부리그로 내려가거나.

시·도민구단의 주장대로라면 올 시즌 고민하며 만든 스플릿 시스템을 할 이유도 없다. 30라운드 후 상위 8개 팀과 하위 8개 팀을 나눠 펼치는 스플릿 시스템은 하위 8개 팀에서 치고받는 양상으로 강등될 세 팀(상주까지 네 팀)을 정하는 게 백미다. 이걸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만약 시·도민구단의 주장대로 상주와 함께 강등될 한 팀을 정하려면 스플릿 시스템을 할 이유가 사라진다. 아니 한 팀 떨어뜨리는 데 무슨 스플릿 시스템으로 44경기나 치르나.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풀리그 하는 게 더 편하다. 시·도민구단의 주장은 연맹이 도입한 스플릿 시스템에 완벽히 상반되는 것이다.

만약 두 팀이 강등되고 내후년에 14개 팀으로 스플릿 시스템을 한다면 상위 7개 팀과 하위 7개 팀으로 나눠야 한다. 그러면 매 라운드 두 팀이 휴식을 갖는다. 결국 14개 팀으로는 스플릿 시스템을 적용할 수가 없다. 스플릿 시스템 1년 적용하고 내년에 또 다시 풀리그로 돌아가는 건 안 된다. 풀리그 하면 또 6강 플레이오프를 도입할 텐데 이렇게 밥 먹듯 바뀌는 리그 방식은 지금까지 K리그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였다. 시·도민구단은 지금 연맹의 리그 일정과 방식까지도 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강등될 두 팀 살리려다가 아주 머리 빠질 정도로 복잡한 문제에 산적하게 될 것이다. 그냥 시원하게 네 팀 내려가자. 팬들이 과연 팀이 2부리그로 떨어진다고 팀을 버릴까. 적어도 내 주변에는 팀이 2부리그로 떨어지면 더 죽기살기로 응원할 팬들이 넘쳐난다. 이건 결국 구단 수뇌부 몇몇을 위한 이기주의다.

살아날 방법 찾기를 해야 할 때

시·도민구단이라고 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인천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시와 함께 머리를 맞대 숭의아레나의 완공을 눈 앞에 뒀다. 고민하고 연구하면 다 살아날 방법은 있다. 열악한 환경을 “우리는 시·도민구단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시의 협조를 구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받지 않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이렇게 노력해도 모자랄 시간에 강등이 무서워 집단 이기주의나 부리고 있으니 시·도민구단은 기업 구단과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시·도민구단과 기업 구단으로 나누는 걸 떠나 클럽하우스 있고 선수들에게 더 좋은 대우 해주는 팀과 그렇지 않은 팀으로 나눠 생각해 보자. 당연히 그렇지 않은 팀이 강등되어야 한다.

순위와 상관없이 강등이 유력한 상무를 빼면 강등될 네 팀 중 세 팀이 정해져야 한다. 시·도민구단이라고 다 강등되는 건 아니지만 만약 6개의 시·도민구단이 최하위권을 형성한다면 이 중 세 팀은 살아남고 세 팀은 떨어진다. 시·도민구단끼리의 경쟁이라고만 생각해도 생존 확률은 50%다. 대구처럼 야심차게 외국인 감독과 코치진 영입하고 강원과 대전처럼 좋은 선수들 데려온다면 잔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실력으로 살아남으면 된다. 무조건 우리 팀이 강등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겁나나. 그리고 강등되면 팀 해체 운운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렇게 구단 운영 의지가 부족한 팀은 아픔이 있더라도 해체하는 게 K리그를 위해서도 낫다. 다만 열심히 뛴 선수들과 팬들을 무시하는 이런 개념 없는 구단은 없길 바란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누군가는 새로운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괜히 우리만 더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목소리 다 내면 결국 아무 것도 못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K리그는 승강제를 반드시 실행해야 팬들을 더 끌어 모을 수 있다. 지금처럼 정체된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몇몇 구단이 겁을 내 승강제를 이런 식으로 방해하는 건 결국 다 같이 죽는 꼴이다. 제발 연맹이 추진하던 대로 일이 풀리길 바란다. 이제는 승강제가 또 다시 꼬여도 나이 먹어서 한 겨울에 1인 시위하는 거 자신 없다. 올 겨울은 축구팬 모두 따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