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경질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조광래 감독의 경남 시절과 대표팀에서의 지도 방식을 비교해 고민도 해보고 ‘윙백 논란’에 대해서는 조광래 감독을 옹호하는 칼럼도 썼고 레바논전 패배 이후에는 비판 칼럼도 썼었다. 최근 여론이 조광래 감독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나 역시 대표팀의 경기력이 불안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경질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하고 싶다. 경질 방식에서부터 후임자 물색까지 모든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조광래 감독 경질에 이의를 제기한다.

지극히 후진적인 경질 방법

지금까지 대표팀 감독 경질 소식은 기술위원회 회의를 거쳐 기자회견 형식으로 전달됐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언론에서부터 먼저 이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대한축구협회는 이 사실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아무리 언론이 빠르게 정보를 입수했다고 하더라도 협회의 결정보다 먼저일 수는 없다. 이미 협회는 조광래 감독에게 경질을 통보한 상태에서 아무런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않았고 팬들은 이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순서다. 여자친구와의 이별통보를 친구를 통해 듣는 황당한 꼴이다.

협회 내부에서도 감독 경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이들이 많았다. 이회택 협회 부회장도 이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고 박태하 수석코치는 감독 경질 소식을 조광래 감독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한가. 조중연 회장과 최근 새로 부임한 황보관 기술위원장 등 극소수 협회 고위층의 결정으로 이뤄진 일이라는 게 명백하다. 아니, 세상에 대표팀 감독을 놓고 몇몇 고위층이 모여 밀실 경질을 하는 게 마땅한 일인가. 일단 경질 방식에서부터 한참 잘못됐다.

밀실 행정을 하고도 단체가 제대로 돌아간 걸 본 적이 없다. 기술위원 전원이 참석해 끊임없이 토론을 벌이고 감독 경질이 이뤄져야 하는지, 이뤄진다면 어느 시점에 결정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당장 여론에 등 떠밀리고 스폰서 눈치 보기 급급해 고위층 지시로 감독 모가지 내치는 게 지금 협회의 현주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욕할 것도 없다. 우리는 지금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한 시스템으로 감독의 거취를 결정하고 있지 않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최강희와 홍명보

또한 차기 감독도 정해지지 않았다. 협회에서는 최강희 전북 감독과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압신 고트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을 물망에 올려놨다고 밝혔다. 이건 다 여론 형성을 위한 과정일 뿐 결국에는 고트비 밖에 대표팀 감독을 할 사람이 없다. 감독 경질 과정도 도리에 어긋나니 당연히 차기 감독 선임 문제도 상식 밖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기술위원회를 열어 1000분 토론을 해봐라. 몇몇 고위층이 반대하면 그만 아닌가. 고트비가 아니면 안 될 분위기가 딱 형성됐다.

일단 최강희 감독은 절대 아니다. 이미 조광래 감독 선임 당시부터 대표팀 러브콜을 받았던 최강희 감독은 당시에도 이를 고사했었다. 그런데 조광래 감독이 이런 식으로 팽 당하는 꼴을 보고도 그가 이번 대표팀 감독을 수용할 확률은 갑자기 그가 2대 8 가르마를 포기하고 레게 파마를 할 확률보다 적다. 전북이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상태에 내년이면 꿈에 그리던 클럽하우스까지 얻는데 미쳤다고 파리 목숨인 대표팀 감독을 맡을까. 이건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만약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선택한다고 해도 K리그에서 더 멋진 ‘닥공’을 보고 싶은 팬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감독 선임에 오르내리는 것만 해도 무척 불쾌한 일이다. 허정무 감독이 재계약을 포기했던 시점에서 모든 감독이 하나 같이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을 때 총대를 멘 게 조광래 감독이었다. 당시 경남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인 조광래 감독은 지도력을 인정받아 대표팀으로 향했다. 경남에서 키워놓은 선수들을 포기할 수 없어 대표팀과 경남 감독 겸업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경남을 떠나야 했다. K리그에서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고 떠난 감독을 경질하고 또 다시 K리그 명장을 빼간다는 발상은 꿈에도 하지 않길 바란다. 이건 K리그 가지고 노는 일이다.

홍명보 감독도 시기상 성인 대표팀을 맡을 수 없다. 내년에 올림픽이 열리는 데 여기에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다. 그런데 내년 2월에 열릴 숙명의 쿠웨이트전을 준비하고 다가올 최종예선까지 대비하는 건 몸이 두 개여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아직 성인 대표팀을 맡기에는 경험과 지도력 모두 검증되지 않았지만 능력을 떠나 시기상 당연히 대표팀 감독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현재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큰 꿈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그가 책임감을 가진 지도자라면 성인 대표팀을 선택하며 올림픽 대표팀을 포기하거나 겸업이라는 유혹을 뿌리칠 것이다.

결국에는 고트비, 그의 능력은?

결국에는 고트비 감독 뿐이다. 그는 조광래 감독 경질 보도가 터진 뒤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지만 이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아마 협회에서는 그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고트비 감독을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 촉박한 시간에 이렇게 감독을 경질한 것도 협회고 이 핑계를 이용해 고트비 감독을 선임할 것도 협회다. 결국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 그를 대표팀에 앉히려는 인상이 강하다.

고트비 감독이 한국 축구와 연관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고트비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분석관으로 4강을 이끌었고 2004년부터 2007년 아시안컵 때까지는 코치로 한국과 다시 한 번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 한국 축구는 완벽한 세대교체 과정을 겪었고 당시 대표팀 선수 중 지금까지 대표팀에 남아있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안정환과 김남일이 뛰던 대표팀에서 일했다고 그를 ‘지한파’라고 할 수는 없다. 4년 전 한국에서 일한 뒤 이란과 일본 등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지한파’라고 한다면 오히려 파리아스 감독이 더 ‘지한파’ 아닐까.

또한 그의 능력이 위기의 한국 축구를 한 번에 바꿀 정도는 아니다. 고트비 감독은 2007/08시즌 이란 프로리그에서 페르세폴리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듬해 부진으로 사임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란 대표팀 감독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 나섰지만 결국 2승 5무 1패 8득점 7실점의 성적으로 5개 팀 중 4위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2011년 아시안컵 예선에서는 요르단에 0-1로 패하는 등 휘청거리다가 8강에서 한국을 만나 0-1로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다. 현재는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올 시즌 18팀 중 10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능력 있는 감독이지만 우리가 이 위기에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히딩크 사단’ 돌려쓰기는 그만

협회는 만만한 게 ‘히딩크 사단’인가보다. 거스 히딩크 감독 퇴임 후 당시 코치였던 박항서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에는 한일월드컵 당시 그를 보좌했던 핌 베어백을 감독으로 앉혔다. 그리고 이제는 당시 전력분석관이었던 고트비까지 감독물망에 오르니 참 ‘히딩크 사단’에 대한 사랑이, 아니 집착이 대단하다. 세월은 10년이나 흘렀는데 아직도 우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 코치진을 돌려가며 감독으로 쓰려고 한다.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도 이런 해바라기가 없다. 이건 마치 첫사랑과 닮은 여성만 10년째 찾고 있는 꼴이다. 고트비 감독이 오면 베어백 감독 부임 때와 다른 게 뭔가.

그래도 고트비 뿐이다. 왜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팬들은 거스 히딩스 감독를 다시 데려오라는 이야기부터 카를로 안첼로티 등 현재 쉬고 있는 세계적인 감독을 영입하라고 성화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극히 낮다. 현직 감독을 밀실에 모여 내치는 이런 축구 후진국에 그들이 미쳤다고 도전하러 올까. 아마 돈 보따리 싸들고 가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인 비전도 없이 다가올 쿠웨이트전에서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한다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진출이 좌절되는 판국에 단 한 경기에 목숨을 걸 세계적인 명장이 있을까. 차라리 원빈한테 시골 장터에서 사인회 하자고 제안하는 게 더 성사 가능성이 높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대표적인 ‘지일파’다. J리그 오이타 트리니다에서 1995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해 수석코치와 감독, 육성부장, 부사장 등을 거치면서 무려 15년간 오이타에 머물렀다. 그런 그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되고 내린 첫 번째 결단이 바로 조광래 감독 경질이다. 그리고 후임으로 시미즈 에스펄스 사령탑 고트비가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거 뭔가 뒤가 구리지 않나. 커넥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결국 대표팀 감독 선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술위원장이 바라보는 시선도 일방적이고 선택할 수 있는 폭도 좁다는 말이다. 왜 지금 대안도 없이 감독을 경질하고 J리그 중위권 팀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 물망에 올라야 하나.

방식, 시기, 대안 모두 잘못됐다

경질 시점도 대단히 잘못됐다. 우리는 지금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쿠웨이트와 중요한 승부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감독을 경질했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한국 선수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외국인 감독이라면 선수 파악 시기는 상상 이상으로 길어진다. 고트비가 오건 히딩크가 오건 일단 선수 파악하는 데만 6개월은 넘게 걸린다. 전술을 짜는 것도 이 이후다. 그 전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다음 한 경기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선수 테스트 수준이 아니라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아직 총기 사용법도 모르는 사람을 전쟁에 내보내야 한다.

결국에는 내년 2월 열릴 쿠웨이트전을 지휘할 외국인 감독은 꼭두각시일 뿐이다. 선수 파악은 물론 감독이 선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전술이랄 게 뭐 있나. 한국인 코치가 해주는 조언을 100%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럴 거면 꼭 이 시점에서 경질이 필요했을까. 조광래 감독 체제 하에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어 쿠웨이트를 격파하고 그 다음에 이 문제를 논의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정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고 싶거든 차라리 그냥 박태하 코치 체제로 쿠웨이트전을 준비하는 게 낫다. 적어도 선수 파악에 대한 시간은 줄일 수 있고 선수들 역시 집중력과 정신력을 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밀실 경질로 조광래 감독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았다. 공부하는 지도자 조광래 감독은 방대한 분량의 선수단 평가 자료와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일방적으로 내쫓아버리면 인수인계는 어떻게 되는가. 세트피스 활용 방법에서부터 하다못해 선수들의 성격 하나까지 조광래 감독이 쌓은 1년 5개월의 노하우가 다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우리는 지금 1년 5개월을 그냥 허공에 날려 보내고 있다. 일본은 지금 펄펄 날고 있는데 우리는 다음 감독이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 조광래 감독의 부진한 경기력보다 대책 없는 밀실 행정이 오히려 한국 축구에는 더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방식도 잘못됐고 시기도 적절하지 않고 대안도 없다. 조광래 감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나 역시 그의 지도력을 비판했었지만 지금은 그가 대표팀에 남는 게 더 옳아 보인다. 또한 지금 이럴 바에 차라리 다가올 쿠웨이트전에 모든 걸 쏟아 부을 수 있도록 조광래 감독을 조력하는 게 협회에서 할 일이었다. 경질은 이 위기를 넘긴 뒤 논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협회는 또 다시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감독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대안도 없이 이렇게 내쳤다. 어느 누가 용기를 내 파리 목숨이 되길 자처할까. 이 상황에서는 어떤 감독이 와도 안 된다. 사람 불러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