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한 판만이 남았다. 전북현대는 오는 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알 사드와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른다. 이 단 한 경기에 모든 게 걸려 있다. 전북이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무조건 알 사드를 잡아야 한다. 더군다나 최근 돌아가는 정황은 더욱 이 경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감성과 이성이 충돌하는 경기가 될 것이다.

유례없는 관심 끄는 이번 결승전

AFC는 수원과의 4강전에서 폭력을 휘두른 알 사드 선수들이 결승전에 나설 수 있도록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다. 관중을 폭행한 선수가 버젓이 경기에 나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로 인해 국내 팬들과 언론, 전북 관계자 모두 분노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중동의 힘에 굴복한 AFC의 결정은 축구에 정의가 사라졌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감정적이 돼 있는 상황이다.

결승전에 나설 자격도 없는 알 사드 선수들이 경기에 나선다는 건 분명 전북으로서는 손해다. 하지만 팬들을 응집시키는 효과로는 최고다. 현재 전북 팬뿐 아니라 K리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전북-알 사드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전북 축구의 위대함은 물론 K리그의 위엄, 더 나아가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전주성으로 가자는 캠페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알 사드가 지난 수원전처럼 폭력을 행사하고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가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건 완벽한 스토리텔링이다. 평소 이야기가 부족했던 K리그는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초대가수도 섭외하고 경품도 내거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팬들을 위한 이런 물량공세가 필요 없을 만큼 이번 알 사드전은 완벽한 스토리를 갖췄다. 4강전에서 보여준 알 사드의 지저분한 플레이와 AFC의 편파 징계로 K리그 팬들은 이를 갈고 있다. 혹자는 축구를 신사의 스포츠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축구를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결승전은 최고의 상황을 갖췄다.

팬들은 더 감성적이어도 된다

전북 팬들은 더 감성적으로 이 경기를 바라봐도 괜찮다. 경기가 펼쳐지는 90분 동안에는 알 사드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야유와 조롱을 보내도 된다. 폭력적인 행동과 일본 대지진 축하 걸개와 같은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감성적이어도 좋다. 알 사드 선수가 시간 지연 행위를 하면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분노의 야유를 보내자. 알 사드 선수가 거친 태클을 한다면 당장이라도 그라운드에 뛰어들 것처럼 눈을 치켜뜨고 감정을 숨기지 말자. 알 사드 선수들 플레이 하나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이성은 90분 경기가 끝난 뒤 차려도 늦지 않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알 사드를 상대하는 시간 동안 만큼은 전쟁터가 되어야 한다. 전북의 홈에서 결승전이 치러진다는 점을 100% 이상 발휘할 필요가 있다. 알 사드가 지금까지 보여준 지저분한 플레이와 정의를 팽개친 AFC의 결정은 전북 팬들을 자극했다. 더 흥분해도 괜찮다. 내가 감정에 호소한다고 뭐라고 하는 이가 있어도 상관없다. 스토리텔링은 결국 감정 대 감정의 싸움이다. 그런 면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더 감정적이어도 된다.

실제로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히딩크 감독은 관중까지 대한민국의 편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이 다소 거칠 플레이를 하면 주장 홍명보를 통해 심판에게 큰 동작으로 항의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경기장을 꽉 채운 팬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관중들은 홍명보의 항의에 ‘무언가 우리가 판정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흥분하기 시작했고 이는 더 큰 야유와 응원으로 이어졌다. 다가올 토요일에 전주월드컵경기장도 이런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결과를 지켜보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한다.

선수들은 이성 잃지 말아야

반대로 관중석이 감성적일 동안 이번 경기에 나서는 전북 선수들은 냉철할 정도로 이성적이어야 한다. 4강전에서 ‘꼼수’를 부리며 결승에 오른 알 사드는 분명히 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지연하고 거친 플레이를 펼치면서 자꾸 전북을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노골적인 AFC의 알 사드 편들기는 이미 편파 징계에서부터 시작됐다. 판정에서도 유리할 게 없다. 득점이 노골로 선언될 가능성도, 파울을 불지 않을 가능성도 머리 속에 넣고 경기장에 들어서야 한다.

이런 경기 외적인 것들에 말려드는 건 알 사드가 원하는 상황이다. 부당한 파울을 당했거나 오심 논란이 있어도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절대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전북이 홈팬의 응원을 등에 업고 경기를 하는데 알 사드가 여기에 맞불을 놓아서는 이길 가능성이 무척 적다. 알 사드는 분명히 수원과의 준결승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경기를 이끌고 가려는 의지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전북은 이를 비웃듯 지극히 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해야 한다.

조성환은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알 이티하드와의 원정 1차전에서 상대에게 거친 파울을 당하고 충돌 직전의 상황에서 잘 참는 모습을 보고 그의 자제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록 2차전에서 경고를 받아 결승전에 나설 수 없게 됐지만 조성환이 알 이티하드와의 1차전에서 보여준 자제력을 다른 선수들도 이번 경기에서 발휘해야 한다. 스테보의 묵직한 훅도 무척 통쾌했지만 그보다는 한 번 더 참고 골로 복수를 하는 게 더 통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라운드에서 누워 뒹굴거리는 이들에게는 골만큼 확실한 처방전이 없다.

응원은 감성적으로 축구는 이성적으로

전문가들은 전북이 이길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스포츠토토 배당률에서도 전북의 승리 가능성이 대단히 높게 점쳐지고 있다. 아마 선수들도 대다수가 자신들의 우세를 점치는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설레발을 떨어 놓고 결과를 망친 경우를 몇 번 봤다. 지금 상황은 전북이 1차전에서 알 사드를 3-0으로 이긴 채 2차전을 맞는 게 아니다. 똑같이 0-0으로 시작해 90분 안에 승부를 내야하는 동등한 입장이다. 예상은 예상일뿐이다. 심리적으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관중석은 대단히 감성적이어야 한다. 알 사드 선수들을 잡아먹을 듯 야유를 내뿜어야 한다. 반대로 그라운드에 서는 선수들은 대단히 이성적이어야 한다. 절대 알 사드의 지저분한 플레이와 심판의 판정에 말려서는 안 된다. 이번 경기는 아시아 축구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전투적인 분위기의 관중들과 차가울 만큼 이성적인 선수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아시아 전체에 보여줬으면 좋겠다. 남들이 그저 우승을 생각할 때 전북은 한 차원 더 수준 높은 세계를 선보이는 팀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