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그에서 뛰던 한 선수가 얼마 전 나에게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K리그 팀에 입단했지만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채 내셔널리그로 내려온 이 선수는 사실상 상무 입대가 불가능하다. K리그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만 상무에 입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추어 팀인 경찰청 입대를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도 사실상 이룰 수 없는 꿈이 됐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무보다 경찰청 입대가 더 어려워요.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입대한대요.”

그는 결국 경찰청 입대 꿈을 접고 축구화를 벗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현역 입대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선수뿐 아니라 실제로 많은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경찰청 입대를 포기하고 현역으로 군대에 가거나 챌린저스리그(과거 K3리그) 방위산업체 팀을 알아보고 있다. 몇몇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변칙적인 입대 전략’으로 한국 축구의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나는 경찰청이 입대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도미노 현상을 겪으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선수들의 경찰청행, 잘못된 방향

만27세 이하만 입대가 가능한 상무와 달리 경찰청은 만29세까지 지원할 수 있다. 상당수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입대 시기를 최대한 늦추다가 만29세가 되기 전 경찰청 입대를 노리고 있다. 해외파 선수들뿐 아니라 K리그에서 뛰고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들 중 만27세를 넘겨 상무 입단 자격을 잃은 이들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경찰청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앞서 ‘변칙적인 입대 전략’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다니지도 않는 대학원에 등록해 놓고 군대를 차일피일 미루는 게 변칙적인 입대 전략이 아니면 뭘까.

이들이 경찰청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만29세면 우리 나이로 31세의 선수들까지 경찰청에 입대할 수 있는 셈이다. 제대하면 우리 나이로 33세다. 전성기를 K리그나 해외 구단에서 보낸 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경찰청에서 장식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하루라도 더 늦게 군대에 가야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입대 시기를 최대한 늦춘다. 전성기에서 이제 서서히 기량이 떨어질 때까지는 어떻게든 군 입대를 연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무보다는 경찰청 입대가 더 좋다. 또한 R리그(2군리그)에 소속된 경찰청은 상무에 비해 성적 부담도 없을뿐더러 관심 밖의 팀이라 모든 게 더 자유롭다.

하지만 나는 이 현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연히 상무나 경찰청은 현역 선수들이 군 복무 기간 동안 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래를 위한’ 팀이다. 한국 축구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 할 만큼 다 해놓고 종착지로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청에 입대하는 선수들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 순수한 아마추어 팀 경찰청에 국가대표가 대거 몰려드는 현상이 ‘경찰셀로나’나 ‘레알 경찰청’처럼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건 한참 잘못된 일이다.

한국 축구 병역 시스템 붕괴된다

경찰청은 K리그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추어 선수들의 실력 향상이 목적이다. 지금까지 상무에 국가대표를 비롯해 K리그에서도 주축으로 뛰는 선수들이 입대하는 동안 경찰청은 K리그 백업 멤버나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주로 입대했었다. 이게 가장 올바른 방향이다. 경찰청이 K리그에 참가하지 않고 R리그에 참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들은 아마추어 자격으로 한국 축구의 소외된 선수들을 위해 존재했다. 비록 상무에 비해 덜 조명 받았지만 경찰청이 있음으로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들도 군 복무 기간 동안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 몇 명이 한국 축구를 이끄는 게 아니다. 이런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아야 결국 한국 축구도 강해진다. 결국 경찰청은 한국 축구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을 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만약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경찰청행이 지속된다면 이건 한국 축구의 근간을 흔드는 좋지 않은 현상이 될 것이다. 당연히 경찰청에 입대해야 할 K리그 백업 멤버나 내셔널리그 선수들은 결국 또 한 단계 밀려나게 된다. 챌린저스리그 선수들이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입단하는 방위산업체 구단을 K리그 백업 멤버나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또 챌린저스리그 선수들은 방위산업체 구단의 외면을 받고 갈 곳 없는 신세가 돼 축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의 맨 위에는 경찰청에 입대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경찰청에 입대하지 않고 상무를 선택하면 이런 시스템이 붕괴될 일은 없다.

현재 김두현은 경찰청에서 뛰고 있다. 박주영을 비롯해 정조국, 염기훈 등은 이미 상무 입대 시기를 놓쳐 경찰청에 가야 하고 상무 입대 연령에 포함된 상당수 국가대표급 선수들도 시기를 미루다 경찰청에 입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렇게 되면 K리그 빅클럽보다 경찰청 전력이 더 강해지는 상황이 생겨난다. 이들이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약 하부리그 팀이 놀라운 경기력과 투혼으로 FA컵에서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하는 건 아름다운 동화로 남을 수 있다지만 경찰청이 FA컵에서 우승하는 건 기형적인 시스템이 만들어 낸 해프닝일 뿐이다. 한국 축구에 도움 될 일이 별로 없다.

경찰청, 입대 제도 제한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입대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경찰청에 입대하려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제도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경찰청에는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이들만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이제 몇 년 뛰지 않고 은퇴할 몇몇 국가대표급 선수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경찰청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다니지도 않는 대학원에 등록해 병역을 연기하면서 많은 축구선수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등 따시고 배부른’ 상무행도 스스로 포기한 이들이다. 왜 그들을 위해 경찰청이 존재해야 하나. 경찰청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아마추어를 위한 팀으로 남아야 한다.

만약 상무가 없다면 이들의 경찰청 입대에 대해 뭐라고 할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K리그에 이미 상무가 있는 마당에 이들이 경찰청까지 정복하는 일은 분명히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경찰청에 국가대표급 선수 몇 명이 입대해 R리그 우승을 차지한다고 누가 경찰청을 진정한 강팀으로 보겠나. 우르르 몰려와서 우승하고 우르르 제대해서 꼴찌하는 팀이 생겨나는 건 옳지 않다. 승강제를 실시해도 2군리그에 남을 경찰청에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대거 입대해 기형적인 구조를 갖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순히 몇몇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10년은 더 뛸 수 있는 다른 선수들이 경찰청에 가지 못해 축구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주영만 한국 축구 선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