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트넘 홋스퍼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토트넘 홋스퍼가 또 사고를 쳤다.

14일 새벽(한국시각) 이탈리아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유벤투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토트넘이 유벤투스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거뒀다. 토너먼트 경기, 그리고 원정 경기에서 얻어낸 두 골 무승부는 토트넘에 매우 훌륭한 결과다. 사고를 쳤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다.

원피스의 루피, 헌터헌터의 곤, 나루토나 블리치의 이치고가 생각난다. 강적을 만나도 눈을 돌리지 않는 그들. 이길 수 없을 거란 말을 들으면서 얻어터지고도 결국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승리하고 마는 소년 만화 주인공들. 토트넘이 그런 모습이었다.

토트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중위권을 기대했던 팀. 가레스 베일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토트넘이 이렇게까지 잘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014년 포체티노 감독 부임 후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은 유럽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작년에 유럽 무대에서 무너졌던 팀 맞아?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15/16시즌 후반기 멘탈이 무너지며 아스널에 2위를 내줬던 시즌, 16/17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졸전을 거듭하며 유로파리그에서도 충격적인 패배로 탈락했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그랬던 토트넘이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별예선에서 거함 레알 마드리드를 누르고 1위로 통과하더니 결국 유벤투스 골문에 두 골을 집어넣었다. 유벤투스는 토트넘을 만나기 전까지 무려 7경기에서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토트넘이 두 골을 기록한 것이다.

최근 토트넘은 '도장 깨기'를 하는 팀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아스널 등 빅클럽 도장을 찾아가 하나둘씩 격파하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자신감이 붙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 유벤투스는 수비 철학이 뚜렷한 팀이고 강력한 수비력과 한방으로 유럽 정상에 두 차례나 오른 팀이다. 그 팀을 상대로 원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결과의 만족도는 감독의 표정에서부터 나왔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활짝 웃고 있었다. 2-2 무승부로 끝난 결과지만 이미 승자와 패자는 그렇게 갈려졌다.

'언더독'의 짜릿한 순간

전북 현대도 13일 가시와 레이솔을 만나 0-2로 끌려가고 있던 순간을 3-2로 뒤집으며 승리했다. 그러나 전북의 모습과는 다르다. 전북은 K리그 챔피언이고 아시아 무대에서도 이미 실력이 증명된 팀이다. 전북은 이길만 했고 이겼어야 했고 결국엔 이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토트넘은 상대적으로 약팀의 위치에서 유벤투스를 상대했다고 봐야 한다. 유벤투스도 파울로 디발라 등 주축 선수들이 빠진 핸디캡은 있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위닝 멘탈리티'를 가진 팀이고 경기 초반에 그를 증명하듯 두 골을 먼저 달아났다. 전반 10분도 안 된 상황에서 0-2의 상황. 지난 시즌 유로파 리그 토너먼트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토트넘은 포기하지 않았다. 빠르게 정신을 차렸고 도전자의 위치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 영리하게 플레이했다. 중원에서 보여준 패스의 흐름, 좌우 전환, 끊임없이 유벤투스의 두터운 수비 공간을 뚫어내려는 에릭센과 해리 케인. 부딪히고 차이면서도 그렇게 유벤투스의 진영으로 공을 투입했다. 전반 35분 에릭센은 수비 사이 공간으로 침투하는 해리 케인에게 기가 막힌 패스를 연결했고 케인은 잔 루이지 부폰을 제치고 골을 기록했다.

분명히 이 한 골이 차이를 만들어냈다. 토트넘 입장에서도 원정 1골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한 골에 만족하고 내려앉았다면 유벤투스는 더 달아났을 것이다. 토트넘은 이미 원정 1골에 만족할 수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더 공격했다. 혹시 어쩌면, 전반 종료 직전 곤잘로 이과인의 페널티 킥 실축은 더 달아나야 한다는 조급함에 나타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이과인의 페널티 킥 실축에 유벤투스에 심리적 압박이 찾아왔다. 토트넘이 경기를 지배하자 유벤투스는 로드리고 벤탄쿠르를 투입하며 중원을 강화했다. 그래도 토트넘은 막을 수 없었다. 전반전 부진했던 에릭 라멜라와 델레 알리가 살아났다. 후반 중반 그들의 패스 호흡은 무시무시했다. 역습과 전진을 하면서도 드리블 거리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패스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뜻은 그들이 현시점 어느 위치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제대로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알리가 반칙을 당하며 공이 프리킥 위치에 놓인 순간. 에릭센은 결국 카운터 펀치를 꽂았다. 말하자면 16강 에피소드 보스를 무릎 꿇게 만든 것이다.

'뽕'이라고? 취할만 합니다

소년 만화에는 성장 만화가 참 많았다. 복싱 만화 중에는 경기 내내 얻어 터져가면서도 그 와중에 점점 집중력을 발휘해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만화도 있었다. 오늘 토트넘이 보여준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실패했기 때문에, 맞아봤기 때문에,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었던 유럽 무대. 그래서 먼저 2실점을 당해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토트넘이었다.

'뽕'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축구를 실현한 팀이다. 이날 보여준 유벤투스의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단지 중원이 좀 연약했을 뿐. 디발라의 부재는 아쉬웠다. 만주키치의 몸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더글라스 코스타와 이과인은 할 만큼 했다. 그런 팀을 상대로 2득점을 올렸으니 뽕에 취할 만도 하다. 물론 3월 초에 열릴 2차전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느 팀이 됐던 약팀이 강팀에 절망을 안겨주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자이언트 킬링'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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